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74
x 274
튜토리얼 60층 (0)
“알아.”
천공의 신이 내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
그것을 모르고 호의를 받을 순 없었다.
나는 충분히 알아본 뒤 신과 접촉했다.
“천공의 신을 너무 가까이하지 마. 천공의 신은 모든 것을 내려다보아야 하는 신이야. 반대로 말하면 모든 것이 그를 우러러보아야 하는 신이기도 하고.”
알고 있다는 내 말을 무시하고 키리키리가 설명했다.
“천공의 신이 널 마음에 들어 하는 건 네가…….”
“내가 그를 우러러보니까.”
키리키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을 우러러본다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인식이 정말 확고해야 하거든.”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신의 존재를 의심해 보지 않은 신도가 얼마나 될까.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천공의 신도 네가 바라보는 게 투쟁과 타도, 도전의 의미라는 걸 알아. 그걸 알고도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야.”
[천공의 신이 불만을 표합니다.]”안다니까 그러네. 결국 천공의 신도 제정신 아닌 신이니 너무 믿지 말라는 거잖아.”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그 신물인 아부부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백신전의 신 중 제정신인 신이 얼마나 되던가.
죄다 또라이지.
해 봐야… 헌신의 신이나, 헌신의 신이나, 헌신의 신 정도다.
젠장, 헌신의 신 하나밖에 없잖아.
키리키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힝, 그건 아닌뎅.”
“아니긴, 뭘 아니야. 케이크나 먹어.”
상점창에서 케이크를 구매했다.
“응, 먹을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유난히 맹렬한 기세로 케이크에 달려드는 키리키리를 내버려 두었다.
정리할 생각이 많았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근원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대주술사에게서 얻은, 스테이지 내에서 등장하는 근원의 핵은 단순한 모조품이 아니었다.
스테이지 안의 존재들은 이 가짜 핵 안에 근원의 힘이 가득 차 있다 느끼지만, 정작 나는 아무런 힘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핵이 스테이지용으로 만들어진 가짜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토착 신들과 싸우던 도중 핵으로 모여들던 근원의 힘을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주술사의 핵은 모조품이 아니라 그냥 빈 그릇 정도라 생각되었다.
실제로 근원의 힘이 모여들었을 때, 대주술사의 핵은 그릇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었다.
그리고 스테이지 내의 존재들은 이 핵이 비었다는 걸 모를 뿐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이다.
57층,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던 스테이지에서 형성된 근원의 괴물이 떠올랐다.
나는 초능력자가 근원이 되어 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았었다.
어쩌면 그 괴물의 내부에는 근원의 힘이 가득 담긴 진짜 핵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괴물을 처치하자마자 급하게 스테이지가 끝나 버린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건 생각해 볼 만한 주제였다.
59층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일어난 것은 무언가가 근원의 힘이 가득 찬 핵을 빼앗아 간 것이었다.
만약 그것이 스테이지 밖에서도 유의미한 힘이 될 수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이 튜토리얼은 사실 근원의 양식장이 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사도의 양성과 괴수의 퇴치라는 튜토리얼의 설계 목적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된다.
“목적은 많앙. 백이나 되는 신이 있으니, 목적도 백 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
케이크를 파먹던 키리키리가 말했다.
목적이 백 가지라.
전부터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어쩌면 튜토리얼의 100층 스테이지는 각각 백신전의 모든 신이 하나씩 참여해 설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각 스테이지마다 워낙 성향도 다르고, 지향하는 목표도 조금씩 달라졌다.
무엇보다 특정 신들은 어느 스테이지에서만 관심을 크게 드러내고, 다른 스테이지에선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기도 했다.
“응, 맞아.”
백신전의 모든 신이 각각 100층의 튜토리얼 스테이지를 설계했다면, 키리키리의 말대로 설계 목적도 여러 개라고 말할 수 있겠지.
사도의 양성에 관심이 많은 신은 그쪽에 도움이 될 스테이지를 설계하고.
튜토리얼을 좋게 보는 신은 도전자가 튜토리얼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도록 설계하고.
반대로 안 좋게 보는 신은 도전자가 클리어하기 최대한 어렵게 스테이지를 설계할 수도 있다.
설계에 큰 관심이 없던 신들은 거주 지역을 맡고, 그마저도 아닌 신들은 그냥 드래곤에게 안내를 맡기고.
근원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고, 각자 스테이지의 설계 방향이 갈릴 수 있겠지.
“내가 생각한 게 맞아?”
“으응, 주제와 난이도를 맞춰야 한다는 점을 빼면 얼추.”
난이도 상승 그래프에 지장이 갈 정도만 아니면 어느 정도 성향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긴 한 모양이다.
“이걸 미리 알고 있었으면 도움이 많이 됐을 텐데.”
어느 신이 설계한 스테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목표와 지향점에 대해, 그리고 나타날 난관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헤헹, 그건 못 알려 주지.”
키리키리가 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딴에는 단호해 보이고자 한 모양인데, 손가락에 생크림이 덕지덕지 묻어 있어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새로운 정보였지만, 지금 당장 도움이 될 정보는 아니었다.
내가 59층에서 모은 근원이 스테이지 밖에서도 유의미한지.
그래서 튜토리얼 스테이지를 통해 근원의 양식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해 주지 못할 것이다.
내가 혼자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였다.
“정답!”
대주술사의 핵은 사라졌지만, 회한의 신이 주었던 핵은 남아 있었다.
물론 59층에서 얻은 힘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이제껏 이 핵의 힘을 다루려 오랜 시간 노력해 왔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동안 내 능력이 부족해 이 핵의 힘을 다루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회한의 신이 준 핵에는 정말 쥐똥만 한 힘밖에 없었다.
내가 다룰 수도, 휘둘릴 수도 없는 극소량의 힘만이 들어 있었기에 그동안 다루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 이것을 품고 있었던 덕에 59층에서 쉽게 근원에 적응할 수 있었지만, 그게 회한의 신이 스스로 징계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음으로 내 근원을 빼앗아 간 그 존재는.
“그것도 못 말해 주징.”
그렇겠지.
덕분에 목표가 하나 추가되었다.
어느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어야겠다.
“무모해, 무모해.”
원래 계획에 비하면 그리 무모한 계획도 아니었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의 세계들을 해방시킨다는 게 워낙 무모한 계획인지라.
“알긴 아는구낭.”
당연히 알았다.
설마 목표를 세워 놓고, 성공 가능성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내 목표가 얼마나 험난한 건지는 잘 알고 있었다.
“흠흠.”
키리키리가 헛기침을 했다.
뭔가 해서 봤더니, 키리키리는 어느새 케이크 한 판을 다 먹어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뭐 할 말 있어?”
“응.”
키리키리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항상 방실방실 웃고 있는 키리키리가 이렇게 정색하고 말할 때면 무슨 큰일이 있는 건가 해서 항상 긴장되었다.
“다음 스테이지에 대한 이야기야.”
다음 스테이지?
60층은 그냥 주거 지역이잖아.
* * *
아, 그러고 보니 60층에 올라가면 상점창이 업데이트되겠구나.
전에 아부부의 검신을 복원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키리키리는 가능하다고만 대답했고.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지는 말해 주지 않았었다.
“아니,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양.”
“그럼 무슨 이야기인데.”
60층에 올라가는 기념으로 뭐 바뀌는 게 있는 걸까.
새로운 시스템창이 생긴다든지.
개인적으로 스킬창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스탯창이지만, 밑에 달린 스킬들이 너무 길어서 읽기가 불편했다.
“으응… 바뀌긴 해. 우선 60층 이후 스테이지들은 난이도가 대폭 올라갈 거야.”
그건 반가운 소식이네.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10인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 50인 규모의 스테이지도 등장할 거고.”
그 정도면 파티 스테이지가 아니라 레이드 스테이지라 불러도 되겠다.
50인이 달려들어야 해볼 만한 레이드 보스라.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스테이지 콘셉트도 많이 바뀔 거야.”
“어떻게?”
키리키리는 턱을 긁으며 난처해했다.
뭔가 우물쭈물하는 것이, 내가 물으니 대답해 주긴 하지만,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이게 아닌 것처럼 보였다.
“40층은 사도의 역할에 대한 스테이지가 많았고, 50층은 사도와 근원 그리고 백신전에 대한 스테이지들이었지?”
“그랬지.”
“그러다 보니 전투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았을 거야. 60층부터는 콘셉트가 다시 예전처럼 바뀌어.”
예전?
“저층 구간처럼. 스테이지를 통해 알아내야 하는 정보 같은 게 없어져. 그냥 스테이지를 공략하고 살아남으면 되는 구간이 시작될 거야. 스테이지의 스토리를 따라갈 필요가 없어진 대신, 공략과 생존의 난이도가 크게 올라갈 거고.”
아주 바람직했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정보들을 더 알고 싶었고, 새로운 사실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컸다.
“문제는… 그 60층 다음의 61층인데.”
“61층이 어떤 스테이지인데.”
솔직히 나는 자신이 있었다.
61층이 어떤 스테이지이든 클리어해 낼 수 있다는.
키리키리가 이렇게 불안해하던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마다 나는 고생을 하긴 했어도 실패하지 않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냈다.
“힝…….”
키리키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울상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스테이지길래 저러는 걸까.
호기심과 의욕이 솟구쳤다.
“그게… 도전자가 2명 이상 필요한 스테이지야…….”
“2인 파티 스테이지?”
“아니, 50인 규모의 스테이지인데, 진행을 위해선 최소한 두 명이 필요해.”
머리가 갑자기 차갑게 식었다.
활활 타오르던 가슴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듯.
“혼자서 클리어할 방법은?”
“없어, 현실적으로는. 진행 자체가 막혀 있어.”
이런, 빌어먹을.
내가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무슨 생각으로 그딴 스테이지를 만들어 둔 거야.”
“전에도 말했지만, 우린 인간 한 명이 혼자 여기까지 올라올 줄 몰랐어. 그리고 누군가 어느 층에 도달하면 자연히 그보다 많은 후발 주자가 뒤따라오게 돼. 보통 그런 후발 주자들이 쌓이는 곳이 30층과 60층 같은 거주 지역이고… 그래서…….”
정체된 도전자들을 말하는 건가.
확실히 노말 난이도와 하드 난이도의 경우에는 그런 구간이 있었다.
거주 지역이나 특별히 어려운 스테이지 바로 전 스테이지에는 십수 명씩 도전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구간이.
헬 난이도에서는 60층이 그런 곳이라는 걸까.
50층 후반대는 드래곤이 각자에 맞는 스테이지를 지정해 주니 공략 자체가 어려울 리는 없고.
61층부터는 난이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했다.
당연히 60층에 정체된 도전자가 모일 거라 예상하고 61층의 테마를 짤 수 있을 법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지금 헬 난이도에서 진지하게 스테이지를 공략하고 있는 사람은 나와 형진이 둘뿐이다.
심지어 형진이와의 스테이지 차이도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헬 난이도가 인간이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설계된 곳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이호재, 60층 : 형진아, 지금 몇 층이냐.] [이형진, 13층 : 13층이에요, 형.]얘는 왜 아직도 13층이야.
젠장.
[이형진, 13층 : 형 말대로 13층이 여러 번 도전하면서 이것저것 배우기 괜찮네요. 수도승들도 금방 친해질 수 있고, 가르치고 같이 연구하는 것도 좋아해서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형진이는 착실하게 성장 중이었다.
이러면 왜 이렇게 느리냐고 타박하기도 그렇잖아.
전에 13층이 성장에 큰 도움이 될 테니, 뽕을 뽑고 올라오라고 말한 건 바로 나였다.
어찌 되었건 키리키리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현실적으로 61층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형진이가 필요하다.
빌어먹을, 생각할수록 화가 나네.
형진이가 60층에 올라오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1년? 못해도 2년은 잡아먹을 게 분명했다.
남는 시간 동안 죽어라고 수련만 하게 생겼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당장 떠오르는 대로 정리를 해 보자.
60층에 올라가 거주 지역에 자리를 잡고 수련하는 게 유일한 내 일과가 될 것이다.
남는 시간에는 형진이의 성장에만 집중해야겠지.
지금처럼 가끔 조언을 던져 주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해 가며 형진이를 키워야 한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60층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이호재, 60층 : 형진아, 지금 시간 괜찮냐? 할 얘기가…….]그렇게 형진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키리키리가 내 팔을 붙잡았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그 메시지 보내지 마.”
나는 다시 한 번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키리키리가 조언을 넘어 무언가를 행동으로 제지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뭔데, 뭐가 또 있는 건데.”
“우선 61층에 대해 더 설명해 줄게.”
“그 설명이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반드시 들어야 하는 거야?”
“응.”
키리키리는 단호하게 답했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61층에 대해 알아야 한다라.
“말해 봐.”
“61층의 테마는 희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