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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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60층 (0)
희생.
딱 한 마디만 더 들었을 뿐인데, 61층 스테이지의 좆같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조건 두 사람 이상이 도전해야 하는 스테이지에 희생이라는 콘셉트라니.
제정신인가, 61층을 설계한 신은.
이쯤 되니 속에서 열불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차분해졌다.
이건 그냥 넘어갈 만한 위기가 아니었다.
전력 차이가 많이 나는 적을 마주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우회 공략의 여지가 없기에 더 그랬다.
아무리 강력한 적이라도 하기에 따라 기습, 회유, 도주, 매복 등 여러 방법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2인 공략에 희생 콘셉트를 가진 스테이지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무조건 동료를 구해야 하는데, 그 동료는 언제 올라올지 알 수가 없는 데다 온다 해도 희생당해야 한다.
“일단 스테이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줘.”
키리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키리키리가 이번에 정보값을 털어야 된다는 말도 했었지.
묻지도 않았는데 신이나 근원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 주기도 했고.
61층을 금방 클리어하지 못할 거라 확신하고 있던 모양이다.
“응… 금방 나오진 못하겠징. 일단 스테이지부터 설명해 줄게.”
키리키리의 말에 알았다고 했다.
우선 듣자.
무슨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61층 스테이지는 두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어. 각 구간은 시작 지점에서 한 곳을 선택할 수 있고.”
“그리고 두 명 이상의 도전자가 양쪽의 구간을 모두 공략해야 된다는 거지? 다른 한쪽을 도울 수는 없고.”
“응.”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다.
게임에서도 두 갈래로 갈라지는 던전은 종종 등장하니까.
“문제는 61층 스테이지의 난이도야.”
“난이도?”
“응. 엄청, 엄청, 엄청 어려워.”
뭐야, 그 형용사는.
키리키리가 이전에 이렇게 어렵다고 했던 스테이지들이 얼마나 있었더라.
6층과 35층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61층 수준의 도전자가 공략할 수 없는 수준이야.”
“대충 어느 정도인데.”
“26층에서 혼자서, 그것도 성검을 포함한 누구의 도움 없이 마왕을 처치해야 하는 정도.”
미쳤네.
내가 기억하기로 26층은 제법 큰 규모의 파티 스테이지였다.
거기에 제국군의 파병 병사들이나 기사들, 마법사들에 성검까지 들고 공략하는 스테이지다.
전선의 요새에 주둔해 있는 병사들은 마왕에게 향하기 전까지의 마족들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한다.
“그걸 50인 이상의 대규모 파티로 대처하는 거야?”
“아닝, 50인이라는 걸 감안한 난이도가 그 정도야. 대신 도전자들을 희생해서 적들을 약화시킬 수 있어.”
…잘 가다가 갑자기 너무하잖아.
제물로 바쳐 적들을 약화시킨다고?
유희왕이냐?
“제물로 바쳐진다 해도 위험하진 않아. 그냥 희생된 도전자는 스테이지에서 60층 거주 지역으로 이동될 뿐이니까.”
으음.
그냥 난이도가 괴랄하게 어려운 거라면 어찌어찌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양쪽 모두를 제물 없이 공략하려면 내 힘만으로는 안 되겠지만.
형진이를 빡세게 키워 보면…….
“그리고 각 구간의 보스들을 처치하고 나면 새로운 장소가 열려. 그리고 그 전당에서 양쪽 파티가 다시 모여서…….”
한쪽을 꺾어야 된다는 거네.
빌어먹을.
“룰은?”
“처치 혹은 항복.”
항복이 붙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나마.
“어쩌자고 이딴 스테이지를 넣어 둔 거야. 희생은 개뿔이, 마피아 게임도 아니고, 동료를 하나씩 버려 가며 올라가는 걸 유도해서 어쩌자는 거야.”
다 같이 인성 파탄자가 되어 보라는 스테이지인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여타 악감정을 심어 주고자 하는 의도라면, 아주 훌륭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도 후보라 볼 수도 있는 헬 난이도 도전자들을 서로 갈라놓아서 어쩌자고?
“힝, 사실 그런 거는 아니양.”
“그럼?”
“헬 난이도 도전자의 수는 적고, 귀하기 마련이니까. 도전자들은 최대한 적은 손실로 나아가고자 할 수밖에 없어. 마지막에 어느 한 팀이 포기를 해야 하지.”
최대한 적은 손실이라.
한쪽에 주력이 모여 있고, 나머지는 처음부터 희생을 각오하고 스테이지에 들어온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는 건가.
“하지만 한쪽이 너무 약하면 스테이지 자체가 실패해 버리겠지. 끝까지 가는 와중에도 희생할 사람이 필요하고.”
눈치 게임이네.
정치 요소에 커뮤니케이션도 강제되고.
“생각보다 강제적인 상황은 많이 나오지 않아. 헬 난이도 60층 도전자쯤 되면 다들 한가락 해서. 혹시 과반을 차지한 그룹이 억지로 클리어하더라도, 그러고 나면 남은 사람들이 다음 도전을 준비하게 되니까.”
여러 상황이 나올 수 있었다.
기수를 정해 차례대로 평화롭게 클리어할 수 있긴 하겠다.
헬 난이도에 사람이 한 백 명 넘게 있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숫자가 부족할 경우에는 정말 피 튀기는 경쟁과 정쟁이 시작될 것이다
“서로 회유하고, 그룹과 파벌을 만들어 대치하고, 또 끼어들고. 다투다가도 결국은 일정 부분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스테이지야.”
거 더럽게 까다로운 스테이지네.
이 정도면 60층과 61층 사이에 새로운 사회가 형성될 수준이다.
거주 지역에 도착한 김에 아예 60층에 눌러앉는 사람도 있을 거고.
김민혁이 있는 노말 난이도 30층과는 경우가 달랐다.
그곳은 살기 좋은 데다, 굳이 바깥에 나가지 않더라도 괜찮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61층 스테이지의 콘셉트 때문에 조성된 사회가 될 것이다.
“사실 61층은 백신전 내에서 나름 평가가 좋은… 힝, 미안행.”
내가 빤히 쳐다보자 키리키리가 재빨리 사과했다.
평가가 좋다니.
죄다 미친 신밖에 없어서인지 평가 기준도 아주 미쳐 돌아갔다.
“쯧, 이거 망했는데.”
이 정도면 이형진의 성장을 돕는 것만으로는 클리어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이형진이라면.
분명 안 올라온다.
죽을까 봐.
내가 정보를 자세히 알려 줘도 그럴 것이다.
우선은 50인 규모의 스테이지를 둘이서 해결해야 한다는 위험성.
게다가 희생이 사실은 정말로 죽는 거라 의심할 수도 있다.
키리키리가 그 부분을 잘 타일러 준다 해도 이형진은 올라오지 않겠지.
마지막 구간 때문에.
그 구간에서 이형진이 맞게 될 결과는 두 가지뿐이다.
60층에서 낙오되는 것과 나에게 죽는 것.
어느 쪽이든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겁이 많은 이형진이라면 내가 깔끔하게 죽이고 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아마 이형진은 61층에 대한 정보를 얻자마자 적당한 스테이지에 눌러앉을 것이다.
능력만 충분하다면 거주 지역보다도 지내기 좋은 스테이지가 몇 있다.
이미 다른 난이도 도전자들 중에서는 공략하기 쉽고, 즐겁고, 지내기 편하고, 대접받을 수 있는 스테이지에 여러 차례 도전하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
이형진도 그런 길을 택할 것이다.
61층에 올라와 위험을 감당하는 대신.
결론은 이형진이 61층의 정보를 모르게 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거짓을 말해 두더라도 이형진은 내가 클리어하지 못하는 61층의 정보를 궁금해할 것이고.
키리키리에게 따로 물어보겠지.
자연히 나는 키리키리를 바라보았다.
키리키리는 자신의 입가에 손가락을 엑스 자로 교차해 가져다 대었다.
말 안 하겠다는 제스처 같았지만, 그렇진 않았다.
키리키리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강하게 거부하지 않는다.
정보값이 충분하다면.
“프라이버시.”
“힝.”
정답이었다.
키리키리가 대답할 수 없도록 61층 스테이지에 대한 정보값을 올려 두어야 한다.
정보값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몇 가지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프라이버시에 대한 것이다.
신에 대한 정보와 비견될 만큼, 프라이버시에 연관된 정보는 알아내기 어려웠다.
나머지는 대충 말을 꾸며 내는 건가.
“이곳 헬 난이도 61층에 도달한 도전자는 나뿐이지. 그런 내가 뚫지 못하고 있는 61층 스테이지는 경우에 따라 내 능력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어. 나는 내 전력을 남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61층 스테이지에 대한 정보를 프라이버시로 지정했으면 하는데. 가능해?”
“가능행. 그만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대가?”
프라이버시 설정에 대가가 있다고?
“정보값이양.”
정보값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그 어떤 정보든 알려 주는 키리키리였지만, 그녀는 종종 내게 정보값을 아껴야 한다며 내 질문을 막아 왔다.
덕분에 60층까지 올라온 지금, 정보값은 넘칠 만큼 있었다.
수치로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예전에 정보값만 충분하다면 프라이버시도 알려 줄 수 있다고 했지?”
“그랬지.”
아주 옛날이었지만.
키리키리를 처음 만났을 때였던가, 두 번째였던가, 세 번째였던가.
기억도 잘 안 났다.
“프라이버시를 알기 위해 필요한 정보값은 프라이버시로 지정할 때 지불된 정보값과 비례해.”
“좋아, 그럼 프라이버시 지정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정보값을 지불하는 걸로.”
키리키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동안 키리키리가 내 정보값을 알뜰하게 관리해 왔던 게 이때를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정보값은 수치로 표현되지 않았다.
내가 알 수 있었던 방법은, 키리키리가 정보값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해 주는 것뿐이었다.
만약 그녀가 내 정보값을 예전부터 꾸준히 모아 왔다면.
관리자 대역이라며 만났던 드래곤은 내 정보값에 아쉬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근원이든, 신이든, 그 어떤 이야기든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 알려 주었었다.
내 생각이 사실이라면, 내가 가진 정보값은 내가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었다.
“그 부분은 내 프라이버시. 힝.”
“얼씨구.”
이 생각은 이쯤에서 접기로 했다.
알아낼 수도 없는 걸 따져 가며 고민할 필요 없었다.
“프라이버시 설정은 했어?”
“아니, 아직.”
“아직이라고?”
“응, 아직.”
키리키리는 단답으로 딱 잘라 말했다.
내가 뭐 놓친 게 더 있던가.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는지 알려 줘.”
키리키리는 그걸 알려 주는 데도 정보값이 소모된다는 걸 잊지 말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냥 물어보았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프라이버시와는 달리, 단 한 사람, 특정 인물에 대한 정보 통제 방법이 있어.”
“어떤 방법인데.”
“대상 인물이 직접 정해진 키워드를 말했을 경우에만 적용되는 방법이야.”
대상 인물이?
정보 통제를 해야 할 대상 인물이?
“응.”
형진이로 하여금 키리키리에게 키워드를 직접 말하게 해야 하는 건가.
까다롭네.
그보다 이딴 기능은 왜 있는 거야.
나중에 김민혁에게만 말해 둬야겠다.
이미 써먹고 있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없어.”
키리키리가 대답했다.
내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다시금 입에 엑스 자를 표시했다.
아까와는 조금 달랐다.
아, 이런 걸 알려 주는 것도 정보값이다, 이건가.
“좋아, 넘어가자고. 키워드는 뭐지? 아니, 직접 정하는 거겠네.”
키리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겠지.
하나의 단어로 모든 키워드가 정해져 있을 리는 없으니까.
키워드를 뭐로 정해야 할까.
가만히 고민해 보았다.
딱히 떠오른 게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연상할 만한 게 없었고.
이곳에 있는 건 푸른 들판과 산들바람 그리고 흔들리는 토끼 귀밖에 없었다.
“자라.”
“자라? 무슨 뜻이야? 잠들라는 뜻이야?”
키리키리가 되물었다.
너무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라 그런지, 내 생각을 미처 읽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파충류의 동물이야.”
“엑, 나는 파충류 싫어.”
키리키리는 징그럽다는 듯이 얼굴을 구긴 채 다시 물어보았다.
진짜 싫어하나 보다.
“파충류는 왜?”
“우리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옛이야기가 있거든. 별주부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