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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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60층 (0)
키리키리는 별주부전 이야기에 금방 심취했다.
용왕의 명을 받은 자라가 토끼를 속여 용궁으로 데려갈 땐 긴장으로 자신의 귀를 빳빳히 세운 채 이야기를 들었다.
토끼가 재치를 발휘해 용왕과 자라를 속여 뭍으로 도망쳤을 땐 너무나 신나 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즐거워했다.
토끼라서 그런가.
“그럼 키워드는 자라로?”
별주부전을 재밌게 듣고 나서 키리키리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키리키리는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뭐야, 그 손바닥은.
“키워드를 정했으니, 이제 대가를 줘야징.”
“정보값?”
내 물음에 키리키리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닝, 그건 프라이버시 설정을 위한 대가고. 이건 별개야.”
이 와중에 장사를 하려 드네.
찝찝한 입맛을 다시며 다시 물어보았다.
“대가는 뭔데?”
“힘.”
뭐, 포인트나 내놓으라고 할 줄 알았던 키리키리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힘이라니.
새삼 도전자의 힘을 소모해 무언가를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곳은 도전자를 육성하기 위한 튜토리얼이었다.
그렇다면 키리키리에게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힘은.
“근원이나 신력?”
“맞앙.”
천공의 신과의 계약을 통해 끌어 왔던 신력은 스테이지 클리어 이후 사라졌다.
59층에서 모았던 근원의 힘은 마찬가지로 클리어 이후 빼앗겼다.
남은 건 하나밖에 없었다.
회한의 신이 선물한 근원의 핵.
고개를 들어 다시 키리키리를 보았다.
키리키리는 여전히 손바닥을 내민 채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고민을 해 보자.
왜 키리키리가 근원을 원하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상관없다.
정령왕이 근원의 핵을 탐했었고, 그것이 격의 상승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건 직접 체감해 보기도 했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키리키리의 제안이 합리적인가 하는 부분이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제약하는 대가로 근원의 핵을 건네주는 것이 합당한 대가인가.
이 부분을 생각해 보아야 했다.
우선 위험성.
근원의 핵을 지불하지 않고 프라이버시만으로 정보를 차단했을 때의 경우.
프라이버시는 정보값을 크게 소모하지만, 어쨌든 알아볼 수는 있다.
언젠가 키리키리는 프라이버시는 정보값이 비싸다고 했었다.
절대 열람 불가능이 아니었다.
물론 61층 스테이지에 대한 정보를 내 프라이버시까지 풀어 가며 알아내려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한 정보값이 있는 사람도 없을 거고.
단 하나 있다면 내 후발 주자인 형진이겠지.
가장 알아서는 안 될 사람이다.
위험성은 충만했다.
다음으로 제안 자체에 대한 것이다.
대가가 근원이나 신력이라는 건 지나치게 터무니없다.
애초에 두 힘 모두 튜토리얼의 도전자가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만 해도 회한의 신에게 선물을 받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힘이다.
이건 도전자를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도전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주 고객은 신이나 최소 사도쯤 되는 존재들이겠지.
사도 후보로 점찍은 도전자를 적당히 구슬리기 위한 방편일까.
게다가 키리키리는 이 정보 제약에 대해 최대한 설명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녀는 정보값을 아껴야 한다는 말과 제스처만을 반복했다.
“프라이버시 설정을 위한 정보값이 필요하니깡.”
하지만 그 전까지 신들과 근원에 대한 정보는 잘만 설명해 주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
정보값을 아껴야 한다는 핑계로 대답을 회피하고 있든가.
이 제약 시스템에 대한 정보가 정말로 비싼 것이다.
신이나 근원에 대한 정보 이상으로.
“어떻게 할래?”
키리키리가 물었지만, 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다.
“트리거가 발동되면 나는 대상에게 61층은 협동이 강제되는 스테이지라고 설명할 거야.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딱 잘라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만, 우회적으로 속일 수는 있지. 대상이 61층 스테이지의 콘셉트가 희생이라는 걸 알아낼 수는 없을 거야.”
당연히 속일 수 있을 것이다.
키리키리는 헬 난이도 도전자의 유일한 정보 제공자다.
굳이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속이는 건 가능했다.
이제 생각해 볼 건 딱 한 가지 남았다.
저 정보 제약이 나 자신에게도 적용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다.
지금까지 키리키리와 했던 말 중에 거짓이 있었을까.
내가 트리거를 말한 적이 있을까.
근원이나 신력을 지불하고서라도 날 속이려 들 만한 신이 있었을까.
* * *
키리키리는 내가 몸에서 뽑아낸 근원의 힘을 예쁜 수정 구슬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주변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구경했다.
십여 분쯤 지나자 신나게 굴러다니던 키리키리가 다시 내게 다가왔다.
여기저기 풀 쪼가리와 흙이 묻은 모습이었다.
키리키리는 그걸 털어 낼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남은 심란해 죽겠는데, 그래 좋냐.”
“미안행. 힝.”
하나도 안 미안해 보였다.
눈곱만큼도 안 미안해 보였다.
“생각은 해 봤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키리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의 대화를 쭉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키리키리가 나를 속였다고 의심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스테이지의 정보와 성장을 위한 조언 외에는 크게 들은 게 없었다.
내 목표는 그녀와 별개로 형성되었고, 그 목표를 향해서 키리키리는 가타부타 간섭한 적이 없다.
자신의 의견을 밝힌 적은 있어도.
신들에 대한 정보는 많이 알려 주었지만, 그 또한 무의미했다.
그녀의 정보를 참고하긴 했어도 나는 내 생각대로만 신들을 판단했다.
게다가 키리키리는 대다수의 신을 좋게 평가한 적이 없다.
좋게 포장하려 했던 건, 해 봐야 모험의 신 정도.
지금 당장 걸리는 건 없어 보였다.
나중에 더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머리를 싸매고 매달릴 일은 아니었다.
키리키리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그보다 형진이를 생각하자.
우선은 한동안 공략을 멈추고 60층에서 쉴 생각이라고 말해 두자.
그리고 남는 시간에 도와주겠다며 성장에 간섭을 하는 거다.
그렇게 스테이지 공략을 도와주다가, 나중에 61층 스테이지가 이러하니 네 도움이 필요하다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지금 곧바로 61층을 향해 달리라 하면 형진이 성격에 부담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생각을 마치고 곧바로 형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호재, 60층 : 형진아.]* * *
“갈 거야?”
“그래야지.”
키리키리의 물음에 대답했다.
“더 있다 가도 되는데.”
키리키리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래도 되긴 했다.
어차피 나는 60층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아무리 치열하게 수련에 매진한다 해도 남는 시간은 얼마든지 생기겠지.
하지만 이곳에 더 있는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 키리키리.”
“응, 왜?”
“정상적으로는 혼자 클리어가 불가능하다고 했었지?”
키리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비정상적인 방법이 있긴 하다는 거다.
“투표겠지?”
백신전 신들의 투표.
모험의 신은 4층에서 나를 강제로 이동시켰었다.
내가 근원이나 신력에 너무 빨리 다가갈 때마다 신들은 강제로 스테이지를 클리어시켰었다.
61층에서도 신들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응. 하지만 그러지 않겠징.”
그렇겠지.
백신전의 대다수의 신은 나를 사도로 원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도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이 기회에 호오우재애가 한계를 직면하고 굽혀질 거라 생각하는 신들이 있으니까.”
신들 입장에선 원하는 도전자를 사도로 선정할 기회를 위해 날 61층에 몇 년이고 처박아 놓는 건 별다른 손해가 아니다.
시간 개념이 다르니까.
언젠가 내가 신들의 도움을 애타게 바라게 되었을 때, 그때쯤 나서서 꺼내 주면 딱 좋겠다 생각하겠지.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행.”
가능성은 무슨 가능성.
내가 신들의 사도가 되어 투표를 통해 스테이지에서 탈출할 가능성?
“내기할래?”
“응, 할래!”
키리키리는 내기를 좋아한다.
대체로 지긴 하지만.
“그럼 내가 정상적으로 클리어하고 나온다에 소원 하나.”
키리키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녀는 내 소원이 뭔지 묻지도 않았다.
“나도 클리어한다에 걸 거야. 내가 이기면 케이크 사 줘!”
케이크고 뭐고.
둘 다 클리어한다에 걸면 내기가 성립이 안 되잖아.
피식 웃으며 포탈에 올라섰다.
“다음에 봐! 꼭 케이크 사 줘야 해!”
키리키리가 깡충깡충 뛰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케이크를 사 줘야 한다는, 늘 하는 인사말이 평소와는 다른 의미로 들렸다.
꼭 클리어하고 나오라는 응원처럼 들렸다.
그녀에게 알았다고 대답하며 나는 60층으로 이동되었다.
* * *
[60층 거주 지역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30층 거주 지역에 들렀던 기억이 있는지라 별로 당황하진 않았다.
60층 거주 지역은 두 번째 경합에서 보았던 것과 흡사한 풍경이었다.
적당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깔끔하게 정리된 도로.
제법 널찍한 광장까지.
얼핏 살기 좋은 유럽의 동네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네 주민이 나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 함정이지만.
적막함에 혀를 찼다.
여전히 이런 조용한 공간은 내 신경을 건드렸다.
졸린 와중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과 같은, 오싹하고 날카로운 압박감이 느껴진다.
이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신이라도 되어야 하는 걸까.
신이 되면 고독감을 느끼지 않을까.
의문이었다.
막상 60층에 도착하고 나니 앞으로 남은 나날에 더욱 갑갑해졌다.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다.
잘 헤쳐 나가는 게 아니라 잘 버텨 내야 하는 거겠지.
다시금 혀를 차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세레지아와 아부부, 개구리를 소환했다.
아부부는 인벤토리에서 나오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용사님, 빨리 저것들을… 엉?]아무래도 아부부는 천공의 신에 의해 멈춰진 이후의 시간 흐름을 인지하지 못한 듯하다.
[용사님, 59층은요?]“클리어했어.”
[읭?]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아부부를 무시하고 개구리를 보았다.
개구리는 당연하게도 괴성을 지르며 반가워했다.
“케에엑!”
“그래, 오랜만이라서 미안해. 저번 스테이지에선 널 꺼내 줄 기회가 없었어.”
“케에엑!”
“알았어. 한동안은 이렇게 꺼내 둘게.”
개구리와 이야기를 마치고 세레지아를 들어 보았다.
당연하게도 세레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부부와 세레지아, 개구리에게 한동안 이곳에 체류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개구리는 좋아했고, 아부부는 무덤덤했다.
오히려 조용히 있던 세레지아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럼 전 오늘부터 백수입니까?]세레지아가 물었다.
아까 인사할 때는 대답도 안 하더니.
“61층을 클리어하진 못하겠지만, 도전은 가능할 거야. 그러니 백수 신세는 아닐걸.”
[그럼 빨리 출발하죠.]당장은 곤란하다.
59층에서 얻은 정보들을 정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술사들에게서 얻은 주술 이론 깜지들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많이 남을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건 나중에 하고, 출발하시죠.]시간이 많이 남으니, 61층은 나중에 가고 정리부터 하려 했는데.
세레지아는 반대로 하길 원했다.
61층을 직접 진행해 볼 필요가 있기도 했으니, 세레지아가 원하는 대로 해 주기로 했다.
[61층 스테이지에 진입합니다.] [참가 도전자(1/50)]-이호재
[61층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설명 : 도전자들이여,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금 여정을 떠나고자 하는 도전자들이여.
여기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타는 사막 위를 걸어야 하는 고행 길이고, 다른 하나는 눈보라 치는 산을 올라야 하는 고행 길입니다.
두 갈래의 길 모두 너무나 위험한 적들과 난관이 가득합니다.
두 고행 길 모두를 정복하고, 그 끝에서 동료들과 재회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첫 번째 고행 길을 정복한다.
두 번째 고행 길을 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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