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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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60층 (0)
“꼭 죽인다. 반드시 찾아내서 죽인다. 여러 번 죽인다.”
꾹꾹 눌러 씹듯이 말했다.
도시의 신기루를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머리에 오른 열도 더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벌써 스무 번이 넘는 신기루를 마주쳤다.
이쯤 되니, 도시보다도 이딴 장난질을 하고 있는 놈의 면상이 더 보고 싶었다.
내 중얼거림에 적이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대신에 아부부가 말을 걸었다.
[용사님. 혹시 날개 때문이 아닐까요?]아부부가 말했다.
날개 때문이라니.
[원래는 걸어서만 찾아가야 하는 곳 아닐까요.]날아서 도시를 찾아가면 너무 쉬우니까?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튜토리얼은 그런 식으로 제약을 두지 않는다.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키리키리가 스테이지 진입 전에 그런 정보는 미리 알려 줄 것이다.
아니, 이번에는 못 알려 줬을 수도 있었겠구나.
워낙 정보 값이 비싼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남은 정보 값은 프라이버시에 다 쏟아붓기도 했고.
비행을 멈추고 지면으로 내려갔다.
탈라리아의 날개를 접고 보니, 벌써 초저녁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비행한 건 제법 오랜만이었다.
몸을 탈탈 털었다.
마력으로 막는다고 막아 보았지만, 비행 내내 모래를 완벽히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우산에서 물 떨어지듯 옷에서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니까 날지 말고 걸어서 가면 된다는 얘기지?”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이죠, 뭐.]달리 생각나는 방법도 없으니, 아부부의 말대로 해 보기로 했다.
다시 사막을 슬슬 걸었다.
뛰어갈 수도 있었겠으나, 그러고 싶진 않았다.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시간이 앞으로 많을 테니까.
해야 할 일을 급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미적미적거리진 않겠지만, 굳이 시간에 쫓기듯 조급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굳이 시간 효율을 따질 필요가 없으니까.
“아니, 그것도 아닌가.”
[예?]내가 혼자 중얼거리자, 아부부가 되물었다.
천천히 가고 싶다.
남은 할 일은 한정적이지만, 남은 시간은 지나치게 많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다면, 곧 할 일이 사라지고, 시간이 남게 될 것이다.
그게 싫었다.
끔찍하게 싫었고 또 무서웠다.
솔직히 그랬다.
차라리 지옥같이 위험한 상황에 날 던져 넣고 거기서 빠져나와 보라고 하는 게, 더 달가울 것이다.
아니면 지금 내 힘으로는 차마 대항할 수조차 없는 적을 상대로 이겨 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그럼 나는 정공법이 아닌 다른 꼼수로 적을 공략할 방법을 찾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치열하게 그리고 위험하게.
나는 그편이 도리어 나았다.
내가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련을 마쳤을 때.
정말 더 이상은 혼자 무언가를 하지 못하겠다고 단정 지었을 때, 내게 시간이 더 남아 있다면.
나는 그걸 견디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그게 무서웠다.
그러니 사막 위를 달리기보다는 산책이라도 하듯, 이리 천천히 걷는 중인 것이다.
초인이 되고, 신의 힘을 얻어 휘둘렀다.
격이 높아진 것은 당연하고 이제 나 자신을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내 두려움은 너무나 단순했다.
또 유치하기도 했다.
심심하고 외로운 게 무섭다니.
다섯 살짜리 어린애도 아니고.
정말 어린 시절, 그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본질적으로는.
나는 스스로를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 협동하는 게임보다는 혼자 이겨 먹는 게임을 선호했다.
혼자의 입장이 편했고 효율도 좋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항상 상대방이 필요했다.
나와 게임을 하고, 또 내게 패배할 상대방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완전한 독립을 견디지 못했다.
[천공의 신이 당신을 지켜봅니다.]모든 것을 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천공의 신은 어떨까.
그의 주변에는 그리고 위에는 아무도 없어야 한다.
친구, 동료도, 스승과 조언자도, 형제와 부모도.
아, 이건 패드립인가.
미안하다.
하지만 천공의 신은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주위와 그 위에는 그 누구도 두지 않고, 모든 것을 아래로 깔아 본다는 건, 지독한 독선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반대로 천공의 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의존을 나타내기도 한다.
언젠가 아부부가 말했듯, 천공의 교단이 다른 교단에 비해 보다 세속적이고, 신도들의 복지와 혜택이 잘 확립되어 있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이겨 먹기 위해서는 내 반대편에 서 있는 상대가 필요했고, 그 필요가 절실했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내가 여태껏 죽여 왔던 수많은 적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별 감정 없이 죽인 적도 많았으나, 정말 나를 빡치게 했던 적들도 있었다.
나를 위기로 몰아세웠던 적과 함정도 많았고.
그 모든 적들이 내게는 소중했다.
선선히 걷다 보니 어느 새 해가 떨어졌다.
슬슬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조명을 위해 불덩이를 만들어 띄워 볼까 했지만, 곧 관두었다.
하늘이 맑아 별빛이 훤한 밤이었다.
이것도 호사다 싶었다.
지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파도 한복판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촘촘히 빛나고 있는 별들은 선명하게 보이다 못해, 당장에라도 아래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자연 경관에 압도될 때면, 꽁꽁 싸매고 있던 자존감을 조금은 내려놓게 된다.
모래로 어석한 머리를 쓸어 올리려 왼손을 움직이려다, 멈칫했다.
왼손이 없었다.
한숨을 쉬며 오른손으로 머리를 정리했다.
왼팔이 사라진 것 자체는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왼팔이 쓸모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평소에 나는 상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필요에 따라 사라진 왼손을 찾을 때면, 그 상실감이 뒤늦게 찾아왔다.
“목표를 잘못 잡았는지도 모르겠어.”
[예?]목표가 너무 쉬워, 모든 목표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가장 멀리에 있는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좋아했다.
문제는 너무 멀리에 있는 목표라는 거지.
너무 빨리 목표를 이루고 사라져 버릴 걱정은 없었지만, 너무 멀리 있는 탓에 목표가 희미해 보이기도 했다.
“기다릴 수 있을까. 형진이가 60층에 올라올 때까지.”
[그럼요. 올라올 수 있을 겁니다. 저번에 만났던 그 친구 말하는 거잖아요. 그 친구 정도면 충분히 올라올 수 있습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요.]당장 첫날부터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쌓은 수양이 물거품이라도 된 것처럼.
모래 위에 쌓은 조악한 탑이나 다름이 없었다.
얼마나 높이 쌓은 탑이건, 지반이 흔들리자 모든 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료함에 무너져 내렸던 백수 시절처럼.
형진이가 올 때까지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고 기다릴 수 있을까.
불안했다.
[하루, 이틀을 못 참을 리가 있나요. 며칠 푹 쉰 적도 있잖아요. 짧은 시간조차 참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있을 시간들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거예요.]아부부의 말이 맞았다.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거지.
그 긴 시간들을 내가 잘 견뎌 낼 수 있을지.
[괜찮아요. 저도 있고, 세레지아 양도 있고, 개구리도 있잖아요. 넷이서 놀다 보면 일, 이년 보내는 건 금방이죠.]아부부가 계속 내게 위안을 주었다.
솔직하게 그에게 감사했다.
“그래, 고맙다.”
[모험의 신이 당신을 향해 미소 짓습니다.] [느림의 신이 당신을 향해 짙게 미소 짓습니다.]그래, 아부부의 말대로 잘 버텨 봐야지.
좆같아도 버티고 버티다 보면, 이 기다림도 끝날 날이 오겠지.
[모험의 신이 당신을 향해 더 크게 미소 짓습니다.] [느림의 신이 누군가를 한심하게 쳐다봅니다.]* * *
아부부의 말대로 하루 이틀이 더해진다고 무너지지는 않았다.
벌써 61층에 들어온 지 닷새째였다.
닷새 동안 거의 마흔 개가 넘는 도시의 전경을 발견했고, 그 모든 것이 신기루임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진짜일 거야.”
[예… 그럴 수도 있겠죠.]“진짜가 아니면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뭘요. 신기루를요?]뭐든 간에.
이 사막을 통째로 날려 버려서라도 도시를 찾아내고 말 거다.
벌써 닷새였다.
닷새 동안 날다가 걷다가만 죽어라고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결계나 정신 마법에 갇힌 게 아닌가 싶어 아부부를 통해 확인도 여러 번 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어떤 마법의 징조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엔 진짜인 거 같아.”
진짜로.
도시에 거의 근접했음에도 신기루가 되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설마 도시의 정문 코앞까지 갔는데 사라진다거나 하진 않겠지.
않아야 할 거다.
그러면 진짜 다 날려 버릴 거야.
“안녕!”
도시의 담벼락 위로 조그마한 꼬마 아이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이는 활기차게 인사했다.
“안녕!”
“저것도 신기루는 아니겠지.”
[아니겠죠.]“안녕!”
아까부터 안녕을 반복하고 있는 꼬마 아이에게 답해 주었다.
“그래, 안녕하다.”
내게 인사를 받은 아이는 담벼락에서 내려와 마을의 문을 열어 주었다.
뭐 신분 검사를 한다던가, 방문 목적을 물어본다던가 하는 경비원은 없었다.
그냥 꼬마 아이가 임의로 마을의 문을 열어 주었다.
꼬마는 대뜸 자신의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괜찮은가 싶었지만, 일단은 그냥 따라갔다.
아이의 집에선 갑자기 방문한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물과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정말 사막을 건너온 거요?”
아이의 조부로 보이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노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사막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조금 다른 상식을 이야기했다.
“그게 신기루가 아니라 이정표라고요?”
노인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만나 왔던 마을의 신기루가 사실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해 주는 이정표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기루를 따라 걸으며 길을 잃지 않고, 마을까지 잘 찾아온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용케도 잘 찾아오셨구만.”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씻고 쉬라고 말했다.
물론 무료는 아니었다.
인벤토리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들 몇 개를 꺼내 주었다.
노인이 배정해 준 방은 조그마한 침대 하나가 전부인 작은 방이었다.
침대 위에 눕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지만, 그럭저럭 누울 수는 있었다.
[그래도 도시가 있네요, 다행히도.]그러게.
스테이지 내에 도시가 있는 건 큰 장점이다.
여차했을 때, 도시를 기반으로 종파를 만들어 신앙을 끌어모을 수 있으니까.
56층에서 그랬듯.
61층 스테이지를 여러 차례 도전해야 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도시의 존재는 여러 가지를 실험해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단순히 신앙으로 끌어모은 신력으로 61층 공략을 수월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득하게 신력을 가지고 실험하고 수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신력이라.
그러고 보니, 키리키리가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신력이나 근원이나 다름이 없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천공의 신이 당황합니다.]아, 천공의 신이 알려 준 거였던가.
아무튼.
신력이 다른 사람의 지배력을 침해한다면, 근원은 자신의 틀을 억지로 무너뜨리는 힘이었다.
틀이 무너지고 경계가 사라졌을 때,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근원에 잡아먹히는 것이고.
정신을 붙잡고 이겨 낸다면, 근원이 자신의 틀을 부순 것을 통해 격을 한 꺼풀 벗어 낼 수 있다는 거겠지.
천공의 신이 신력과 근원이 별 차이가 없으리라 말한 건, 근원도 다루기에 따라 타인의 지배력에 간섭할 수 있고.
반대로 신력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힘이라 분명히 인지되는 신력을 자기 자신을 깨부수는 데 사용하기는 어렵겠지.
관념적으로.
그 단계를 넘기 위해 필요한 게, 강제로 틀을 부수는 근원.
그렇기에 정체되어 있는 사도들은 신격에 더 다가가고자 근원을 필요로 한다.
[어쩌시게요?]“신력을 모아 근원처럼 다루는 데 성공한다면, 내 잘린 팔을 복구할 수 있겠다 싶어서.”
만약 성공한다면, 사라진 왼팔도 되찾을 수 있을 뿐더러, 신력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기다려야 할 시간도 많고, 할 일도 많겠지만.
가장 먼저 하기로 결정한 것은 신력을 통해 내 팔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그럼 종파부터 만들어 볼까?”
아부부는 적극적으로 내 의견에 찬성했다.
세레지아는 조용히 침묵했다.
종파를 만들고 운영할 때는 세레지아 자신이 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심심해하는 것 같다.
“케에엑!”
소환된 개구리는 좋다고 괴성을 질렀다.
이전에 했던 종파의 마스코트 역할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럼 계획부터 짜 보자.”
넷이서. 아니, 세레지아는 조용히 있었으니.
셋이 머리를 맞대고 종파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