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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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60층 (17)
[야, 교대 안 할래?]호치에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자꾸만 날개를 퍼덕거리는 용용이를 고쳐 안았다.
호치와 용용이가 경합에서 돌아온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호치는 경합에서 돌아온 후,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박정아에게 듣기로는 별 탈 없이 잘 지냈다고 하던데, 정작 호치는 뭔가가 심난해 보였다.
그렇다고 크게 상심을 했거나, 우울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머릿속이 좀 복잡한 것처럼 보였다.
그냥 사춘기라고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호치의 나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처음으로 다른 세계에 나가 사람들과 마주친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하겠지.
용용이는 경합에서 돌아오자마자 사흘째 잠만 자고 있다.
경합 내내 흥분해서 잠을 거의 자지 않은 모양이다.
매일 일정 시간 수면을 취해야 하는 용용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깨지도 않고 계속 자기만 하고 있다.
문제는.
침대에 누워 자는 게 아니라, 내 팔에 안겨 자고 있다는 거지.
심지어 인간 폼도 아닌 해츨링 폼으로.
이게 은근 불편하다.
무게의 문제가 아니라, 버둥거리는 짧은 다리와 퍼덕거리는 날개를 잘 간수하며, 편한 자세로 안는다는 게 은근 난이도가 있었다.
그렇다고 제 방 침대에 눕혀 놓자니, 나한테 안겨서 자고 싶다는 용용이의 부탁을 외면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래도 이렇게 며칠씩이나 잘 줄 알았으면, 그냥 침대에서 자라고 할 걸 그랬다.
책상 앞에 앉아, 용용이를 무릎 위에 눕혔다.
한 손으로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책자를 넘겼다.
뭐, 거창한 책은 아니고.
그냥 내 일기였다.
이걸 쓰기 시작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처음 시작은 61층에서 종파를 만들고 종파 일지를 쓰는 것이었다.
첫 장에는 간략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새로 개설한 종파의 이름과 성향, 지향점.
신도들을 유혹하기 위한 수단들.
매일매일 변동되던 신도들의 숫자와 그들의 분위기.
단순히 기록을 목적으로 한 일지였다.
한 장을 넘겨 보았다.
[41회 차]-두 회 차 만에 종파를 통해 신앙을 조금이나마 모으는 데 성공했다. 사막 사람들이 이렇게 폐쇄적인 성향을 가졌는지 알았다면, 조금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정작 외지인을 대하는 태도가 친절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이 사람들은 토착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종교라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았지만. 대화산과 대설산의 지배자들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었다. 이러니 종파의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지.
-신력으로 왼팔을 복구했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사막을 넘어,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오아시스에는 포탈이 있었다. 포탈을 통해 대화산으로 갈 수 있었다.
-대화산엔 쓸 만한 적들이 많았다. 화 계열에 피해를 입지 않아, 다양한 방법으로 신력을 활용할 기회가 되었다.
-보스몹을 잡았다. 왼팔을 복구하겠다고 신력을 모은 것이 정답이었다. 신력이 없었다면 상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보스몹은 스테이지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혼자 왔다는 사실을 황당하게 여겼다. 단순히 자신에게 혼자 도전한다는 것에 재밌어한 걸지도 모르겠다.
-60층으로 돌아왔다. 왼팔이 또 사라졌다.
그걸로 41회 차의 기록이 끝났다.
사실 저 때는 크게 상심했었다.
텅 빈 60층으로 돌아왔을 때, 앞으로 이 짓거리를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클리어와 귀환을 수백 번쯤 반복하고 나서도 내가 잘 버텨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잘 살아 있었다.
[42회 차]-세레지아가 곧바로 대설산으로 가 보자고 주장했지만, 나는 60층에 며칠 남기로 결정했다.
-60층으로 돌아오자 61층에서 모았던 신력이 또 사라졌다. 하지만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조금의 신력은 그대로였다. 그 힘으로 왼팔을 다시 복구했다.
-신력의 활용, 주술에 대한 지식 정리, 아부부가 기억해 둔 55층의 마도 지식, 계약 마법. 그동안 나중에 시간이 나면 공부하자고 미뤄 둔 숙제가 산더미였다.
이 뒤로는 한참 동안 연구와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부부가 정말 큰 역할을 해 주었다.
천공의 신의 사도가 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 주는데도 별 제약이 없어졌고, 나와 계약을 한 덕분에 그의 지식이나 노하우를 쉽게 건네받을 수 있었다.
조금 띄엄띄엄 읽어 보자.
[44회 차]-대화산의 지배자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첫 도전자라 불렀다. 다른 스테이지와는 확실히 달랐다.
-제법 친해졌다. 그를 처치하고 돌아온 뒤, 아부부와 한참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키리키리에게 돌아가 이 스테이지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중에 자경단에 의뢰를 넣어 보기로 했다.
[48회 차]-형진이가 죽었다.
48회 차에는 딱 한 줄만 쓰여 있었다.
이때는 정말 난리였지.
이형진이 17층에서 죽었다.
나는 아직도 이형진이 어떻게 죽은 건지 모른다.
분명 나는 그에게 충분한 전력을 준비시켰다.
17층을 클리어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그가 17층에 들어간 지 15분 만에, 헬 난이도의 리스트에서 숫자 하나가 사라졌다.
그건 이형진의 죽음을 의미했다.
이형진이 방심을 한 건지, 17층의 내 환영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저력을 발휘한 건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이연희의 경우에는 정말 압도적인 전력으로 17층에 진입시켰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연희가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자칫 잘못했으면 그녀 또한 17층에서 죽을 뻔했었다.
아무튼, 저 때는 반쯤 미쳐서 거주 지역을 때려 부수고 난리를 쳤었지.
아마 그때 처음으로 거주 지역을 박살 냈을 것이다.
[49회 차]-다른 도전자가 필요했다. 1층에 남은 몇 명은 영 써먹을 수 없다. 혹시 그들이 바뀐다 하더라도 60층까지 올라오려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대체할 것이 필요했다.
-아부부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에고가 담긴 아이템이라는 점이 주요했다. 비록 불안정했고 곧 파괴되었지만, 가능성이 보였다.
-시간 유폐 스킬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건 아무런 이점이 없지만, 그 시간 동안 고도의 집중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최근 들어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연구 중에는 시간 유폐 스킬을 계속 유지했다.
[52회 차]-아부부의 복제품에 내 기억을 담았다.
-이걸 어떻게 사람처럼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56회 차]-개구리가 아프다.
-자경단을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단순한 수명 문제라고 한다.
-엘릭서도 마시게 해 보고 개구리를 위한 개울도 만들어 보았지만, 개구리의 건강은 나아지지 않았다.
[57회 차]-복제 인간이 완성되었다. 복제라기보단 분신에 가까웠다.
-아직 완전하진 못했다. 이제는 분신을 다시 만들 수 없다. 함부로 실험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된다. 어떻게든 망가지지 않게 해야 한다.
-문제가 생겼다. 분신이 자가변형을 거듭하고 있다. 20층에서 보았던 키메라 같은 꼴이 되고 있다.
[58회 차]-천공의 신이 아부부를 데려갔다.
빌어먹을.
보호를 위해서라고? 개소리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아직 아부부에게서 배우지 않은 마법 지식도 있었다.
언제든 배울 수 있으니, 나중으로 미뤄 두었던 그 지식들이 아까웠다. 어디에다 기록이라도 해 둘 것을.
-천공의 신은 언젠가 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60회 차]-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나 했더니, 시간 유폐 스킬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모르겠다.
-시간 유폐의 지속 시간이 거의 무한정 늘어났다. 문제는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시간 유폐의 특성상, 시간의 흐름을 눈치채고 자의로 그것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61회 차]-분신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내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에 불과했다. 자율성이 없었다. 사람보다는 마네킹에 더 가까워 보였다. 훈련이 필요했다.
-아부부가 있었다면 그에게 분신을 맡기고 다른 방향의 길을 공략하게 했을 텐데.
이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호치에게 미안했다.
이미 여러 번 사과했지만, 앞으로도 그때 있었던 일들에 대해 계속 사과하게 될 것이다.
[64회 차]-내가 한쪽을 공략하고 분신에게 세레지아를 쥐어 준 채, 다른 쪽을 공략하게 했다.
그동안 세레지아를 꾸준히 강화해 왔으니, 분신이 위험할 리는 없을 것이다.
-61층 공략에 실패했다. 분신은 포탈을 통해 마지막 방에 진입하는 데 실패했다.
64회 차.
기억에 남는 회차다.
두 번째로 거주 지역을 쓸어버린 회 차로.
아주 깔끔히 쓸어버렸던 덕분에 한동안 텐트에서 지냈다.
[66회 차]-신력이 약해지고 있다. 세레지아의 말대로 내게 남아 있던 한 줌의 신력은 나 자신이 내게 주고 있던 신앙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신력이 약해졌다는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고 있다는 거겠지.
실제로도 그랬다.
[67회 차]-나는 헬 난이도 입장을 금지하는 한국 정부의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경단을 통해 심각하게 논의되었지만, 박정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다른 난이도의 도전자를 헬 난이도로 옮겨 오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박정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박정아와 크게 다투었다.
-박정아와 김민혁에게 61층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후회했다.
이 이후로는 기록이 한동안 끊겨 있다.
이 당시에 나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70회 차]-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내서인지 점점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연구하는 기계나 바위 따위가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박정아가 꾸준히 메시지로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면, 내가 사람이라는 것마저 잊어버릴 지경이다.
-살아 있기 위해선 심장이 뛰는 것만큼이나 타인과의 관계가 필요했다.
61층으로 향했다. 한동안 그곳에서 지내야겠다.
-대화산의 지배자와 계약을 맺었다. 내 목표를 이뤄 내는 대가로 그에게서 지원을 얻기로 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가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대화산의 지배자도 내가 내 목표를 이뤄 낼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둘 다 낮은 확률의 복권을 하나 사 둔 것뿐이다.
[71회 차]-61층에 들어가기만 하면 신력이 들어왔다. 화산의 지배자에게서 들어오는 신력이다. 그는 회 차가 반복되건, 내가 공략을 끝내고 귀환하건, 몇 번을 죽건, 리셋되지 않았다.
-이 힘으로 뭘 할 수 있을까.
[76회 차]-두 지배자들의 도움으로 60층과 61층을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나는 60층에서도 신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78회 차]-이 이상 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미 신에 가까웠다.
내가 생각할 수 있던 모든 성장을 이루었다.
더이상 시도해 볼 것조차 없다.
[79회 차]-시간 유폐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정말 1초, 1초 느리게 흘렀다. 너무나 느리게 흐르는 시간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 시간 유폐가 적용된 게 아닌지 몇 번이나 의심했다.
[81회 차]-헬 난이도에 뉴비가 들어왔다. 이번 도전자는 부디 살아남기를.
81회 차.
이연희가 들어온 회 차였다.
쓸 만한 도전자가 들어왔다며 기뻐하긴 했지만, 사실 그녀가 정말로 여기까지 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 이전에 실패했던 도전자들을, 나는 너무 많이 지켜봤었다.
이연희에게 감사했다.
그녀가 난관을 하나하나 넘으며 층을 올라올 때마다, 나는 희망을 얻었다.
그 희망 덕에 무기력하게 주저앉아만 있던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번번히 61층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허사로 돌아갈 때마다, 그녀가 올라오고 있음을 확인하고 곧바로 다음 도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이연희, 59층 : 아저씨, 저 지금 올라가요.] [153회 차, 1일. 8시 20분]드디어.
이연희가 60층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