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81
x 281
튜토리얼 60층 (18)
[용용이 깨웠어.]호치가 말했다.
용용이는 아직 안 깨워도 되는데.
조금 더 자게 두지.
나는 그냥 알았다는 말을 전해 두었다.
호치가 이연희의 입장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경합에서 그런 일이 있기도 했고.
사실 그 이전에도 호치는 이연희를 만나고 싶지 않아 했다.
가능하다면 그냥 그녀를 두고 우리끼리 나가길 원했다.
“세레지아.”
“네, 용사님.”
정말 오랜만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세레지아가 대답했다.
어쩐지 그녀의 모습이 어색하게 보였다.
그녀 자신도 그럴 것이다.
“가자. 결계는 이제 그만 지켜도 돼.”
“저 다시 백수 되는 겁니까?”
안타깝게도 그랬다.
세레지아의 역할은 이제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할 때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세레지아는 별 겸양의 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데리고 60층의 포탈 앞으로 향했다.
때마침 포탈이 구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정말로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사람이 포탈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보네요, 아저씨.”
제법 태연한 태도였다.
가장된 태도인 것 같다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우린 방금 처음 만났는데.”
“저는 몇 번 만났었잖아요.”
모호한 말이었다.
그녀 자신은 나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는 건가.
17층의 환영. 얼마 전에는 호치를 만났었지.
나중에 호치는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걸 알려 줘야겠다.
그녀에게 분신에 대해 가르칠 때, 누락시킨 부분이 제법 있었다.
딱 필요한 만큼만 가르쳤기에 그랬다.
“그나저나 6개월만 기다려 달라더니, 딱 6개월 되는 날에 들어왔네.”
“네. 마음 같아서는 더 늦게 오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내가 약속대로 탈출해 버릴까 봐 그랬겠지.
내 말을 들은 이연희는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든 절 밀어 넣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어서요. 내시경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왜 그 대장 내시경 있잖아요.”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자, 안내해 줄게. 아, 이쪽은 세레지아. 26층에서 등장하는데, 만나 봤지?”
* * *
이연희는 세레지아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세레지아가 그렇듯.
대신 60층의 전경을 꼼꼼히 살폈다.
“제가 알던 것과는 많이 다르네요. 원래 60층 거주 지역은 이런 형태가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여러 번 고쳤거든. 워낙 오래 지내다 보니.”
리모델링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던 재건축 때문이었지만.
이연희는 정말 꼼꼼히 주변을 살폈다.
60층의 모습이 정말 신기하고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그녀에게 붙어 있는 수많은 시선의 궁금증을 채워 주기 위해서겠지.
포탈을 넘어온 이연희를 보고 속으로 식겁했다.
신들의 시선을 달고 올 줄은 알았지만.
솔직히 저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저게 몇 개야, 도대체.
이연희의 눈앞에는 지금도 빼곡히 신들의 반응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안녕~”
2층 건물의 창문이 열리고, 용용이가 거리를 걷고 있던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아고, 예뻐라, 우리 아들.
“저번에 만나 봤지, 우리 용용이.”
“…네.”
손을 흔들고 있는 용용이 옆에 호치가 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연희는 그 인사에 반응하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인사해 줘.”
이연희는 어색함과 불편함이 뚝뚝 떨어지는 태도로 용용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우스꽝스러웠다.
“저기가 내 방이야. 위치 잘 기억해 둬.”
이연희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렸다.
나도 굳이 더 말을 걸지 않았다.
세레지아는 호치와 용용이가 있는 곳으로 합류시켰다.
이연희를 준비해 둔 숙소로 안내했다.
“내일 바로 출발할 거니, 오늘만 여기서 지내면 될 거야.”
이 부분은 이연희와 이야기를 미리 해 두었다.
하루만 쉬고 다음 날 곧바로 출발한다고.
“몸은 괜찮아?”
“…예?”
아까부터 이연희의 반응이 느리다.
물론 신들의 시선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혹시 컨디션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용이에게 좀 당했다고 들었는데, 여파가 좀 남아 있지?”
“…네. 위험하니 일부러 분신을 보낸 건데, 그것 때문에 역으로 큰 피해를 입을 줄은 생각 못 했네요.”
그랬겠지.
내가 가르치긴 했지만, 용용이의 성장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가끔은 나도 놀란다.
이 아이가 정말 몇 년 전에 태어난 해츨링이 맞나 싶어서.
“백신전의 드래곤보다도 강한 것 같던데요.”
“당연하지. 아, 그러고 보니 너는 그 드래곤 만나 봤겠네.”
이연희는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이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가고자 했다.
분위기를 좀 풀어 둘 필요가 있었다.
지나치게 긴장해서 경계심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이연희 본인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거의 잊어버리고 있던 50층 후반대에서 만났던 드래곤의 기억을 끄집어 올렸다.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스테이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곧 나와 이연희 모두 이야기에 열중할 수 있었다.
어렵지 않았다.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은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물며 헬 난이도라는 특성이 있다면야.
나에게 이연희는, 그리고 이연희에게 나는 지구에서 유일하게 공통분모를 가지고, 또 공감할 수 있는 상대였다.
고립되어 항상 공감이 절실하고 위안을 필요로 하는 상대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커뮤니케이션에 약한 나라도 이 정도는 가능했다.
“17층은 위험했지만, 사실 많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힘든 거랑 위험한 거는 별개로 찾아오기도 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나도 위험했던 스테이지들은 생각보다 시원하게 통과했었다.
“6층이 최악이었죠.”
그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 이형진과 미국의 존 오버튼과 이야기했을 때도 나왔던 주제다.
헬 난이도 최악의 스테이지.
우리는 모두 6층을 꼽았었다.
좁고 어두컴컴한 굴속에서.
악취를 풍기며 끝없이 몰려드는 해골을 때려잡아야 한다.
등 뒤에는 굳게 닫힌 문밖에 없으며, 그 문이 열리는 즉시 실패한다.
필사적으로 지원군을 기다리며 버텨야 하는 스테이지이지만.
정작 지원군이 너무나 늦게 오는 바람에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스테이지다.
처음으로 타인의 부재를 절감하게 되는 스테이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이 아니라 세상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고립감 때문에 더 괴로운 스테이지다.
모든 일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척척 해낸다는 건 독립적이고, 자율, 능동적으로 비쳐 보이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하지만 사실 그건 절대로 긍정적인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의 교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헬 난이도 6층은 도전자에게 그런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음을 알려 준다.
다른 차원의 도전자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구의 튜토리얼은 그랬다.
“몇 달 동안 6층에 갇혀 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저씨는 그때 어땠어요?”
어땠긴, 가관이었지.
반쯤 미쳐 있었다.
“정신 오염 면역 스킬이 오를 정도였으니까. 꾸준히 성장하고 조금씩이나마 진행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랬다면 반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미쳤었을 것이다.
여기 60층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전 아저씨보다는 좀 나았네요.”
“그래?”
“아저씨랑 매일 편지 주고받는 재미로 버텼었거든요. 기억나세요, 그때 편지들?”
으음…….
물론 기억한다.
[야, 저거, 그 얘기 하는 거 아니냐? 자라인가, 뭔가.]그 얘기하는 것 맞다.
젠장, 6층 말고 다른 층 얘기할걸.
[내 양심까지 콕콕 아파 오는 것 같은데.]시끄러워.
호치에게 대충 대꾸했다.
뭐라고 답해야 하지.
적당히 둘러댈 말을 찾아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이연희가 먼저 말을 이었다.
“저는 아저씨한테 감사해요. 그만큼 섭섭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살아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아저씨가 없었으면 전 진작 죽었겠죠. 어쩌면 1층도 못 벗어났을지 몰라요.”
그렇게 말해 주면 고맙긴 한데.
슬슬 내 양심도 아파 오는 것 같아.
“저를 속인 걸 원망하… 기는 하지만, 아저씨 말을 들은 걸 후회하지도 않아요. 이건 진심이에요.”
* * *
“이래서 싫었어.”
호치가 툴툴거렸다.
얘는 아까부터 이랬다저랬다, 듣는 내가 다 혼란스러웠다.
“미워하기도 애매하잖아.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 계속 미안해진다고.”
“그래, 그래, 전적으로 내 탓이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용용이가 외쳤다.
“아냐! 아빠 탓 아니야!”
“그래, 내 탓 아니야!”
용용이의 말을 따라 외쳤다.
사실 내 잘못이 맞았다.
젠장.
하지만 당시엔 그게 내 한계였다.
내가 부족했던 걸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아빠는 잘못한 사람이 아닌데…….”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용용이의 말도 맞았다.
나는 이 문제를 야기한 사람이 아니다.
61층과 튜토리얼을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그 룰을 내가 정한 것도 아니다.
이연희를 이곳에 데려온 것도 내가 아니다.
나도, 이연희도 이 개 같은 환경에 똑같이 밀어 넣어졌을 뿐이다.
서로의 입장에서 어떻게 행동했고, 어떻게 준비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연희와 나 사이의 관계를 따질 때.
그저 세상이 틀렸다, 신들이 잘못했다는 말로.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었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정당화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왜?”
다시 물어보는 용용이에게 대답해 주기에 앞서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해 보았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 주기엔 너무 중요한 이야기였다.
“내게 소중한 것이나, 내가 잘한 것만큼이나 내 잘못과 내 죄도 소중하니까. 다른 사람이 일으킨 문제라 해도 자기가 저지른 잘못과 죄를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아. 정말 잘못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설명이 잘됐을까 모르겠다.
어리둥절해하는 용용이의 표정을 보면 안 된 것 같다.
다행히 용용이 말고 내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호치였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런 의미로 오랜만에 다시 한 번 나한테 사과해라.] [응, 미안해.] [와, 하나도 안 미안해 보여.]호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낄낄 웃었다.
그랬던 덕분에 호치에게도 용서를 받고 이렇게 가족처럼 지낼 수도 있는 거겠지.
[오, 아닌데? 아직 다 용서 안 했는데?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우려먹을 건데?]자기가 언제 늙어 죽을 줄 알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과연 죽기는 할지가 더 의문이다.
호치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용용이가 생각을 마친 것 같았다.
용용이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정말 잘못한 사람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아무도 벌주지 않는데.”
오, 용용아, 그건 아니야.
“내 말은, 자기 잘못은 스스로 가져야 한다는 거지. 남의 잘못을 덮어 주라는 건 아니었어.”
”그럼 정말 잘못한 사람은? 처음 문제를 만든 사람은?”
“당연히 그 사람들도 자기 잘못에 대한 대가를 가져야겠지.”
용용이는 여전히 뭔가 풀리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조금 더 고민해 보던 용용이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잘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벌을 받지 않을 거야.”
그렇긴 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와서 그들이 ‘그동안 튜토리얼 도전자들한테 너무했던 것 같아. 이제부터라도 반성하고 대가를 치르자’라고 이야기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럴 거면 애초에 튜토리얼을 이딴 식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럼 벌을 줘야겠지.”
“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물어보는 용용이에게.
그리고 이연희를 통해 우리의 대화를 훔쳐 듣고 있을 신들에게 말했다.
“내가.”
* * *
[61층 스테이지에 입장합니다.]하루의 휴식 후 61층 스테이지로 향했다.
이연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한 듯한 태도였다.
희생당할 운명의 가련한 여주인공 배역을 충실히 수행 중이었다.
하지만 이연희에게 순순히 희생당할 생각이 없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만반의 전투태세를 마친 상태였다.
[입장 인원 (224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