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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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61층 (4)
[입장 인원(2243/50)]“계속 놀라게 되네. 나도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
내 말에 호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이건 너무 티 나게 데려온 거 아니야?”
“자기들 나름대로 숨긴 걸 거야, 이게.”
“숨기기는. 몇 명인지 숫자까지 다 나오는데.”
사실 이 입장 인원수는 나에게만 보인다.
물론 이연희도 입장 인원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녀에게는 이렇게 안 보일 거다.
아마.
[입장 인원(2/50)]이렇게만 보이겠지.
이연희가 만반의 준비를 해 온 것처럼,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두었다.
“확실해?”
[61층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설명 : 도전자들이여,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금 여정을 떠나고자 하는 도전자들이여.
여기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타는 사막 위를 걸어야 하는 고행 길이고, 다른 하나는 눈보라 치는… 당연히 확실하지. 지금 이거 내가 쓰고 있는 거거든.
60층과 61층에서 나타나는 모든 메시지는 시스템이 아니라 내 뜻대로 표기되고 있다.
나는 이연희의 눈에 비쳤을 입장 인원수를 두 명으로만 표기했다.
이연희는 아직 나에게 동료들을 안 들켰다 생각하겠지.
“너 이제 이런 것도 할 줄 아냐.”
“사람 눈앞에 메시지창 띄우는 게 뭐가 어려워서 못 하겠냐.”
내가 원하는 메시지를 띄우는 것보다는 시스템이 띄우는 메시지를 차단하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물론 그건 한참도 전에 해결된 문제였고.
“자, 걱정 다 했으면 가자.”
* * *
두 갈래의 길로 나뉘어져 있는 61층에서 이연희는 화산 방향을, 나는 설산 방향을 진행하기로 했다.
설산 방향을 택한 이유야 단순했다.
용용이가 눈을 좋아해서 그랬다.
“매번 이 얼음 궁전에서만 모이는군. 한 번쯤은 내 전당에서 모이는 것도 좋았을 텐데.”
오랜만에 만난 영감은 투덜거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화산의 지배자이자 대사막의 통치자.
용암에 잠긴 거대한 왕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던 존재의 투덜거림이라기엔 너무나 소박했다.
“뜨겁기만 한 그 용암 전당보다는 당연히 내 궁전이 낫지.”
그런 영감을 옆에서 살살 긁고 있는 할멈도 다를 건 없었다.
61층의 보스라고 할 수 있는 화산과 설산의 지배자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둘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지금은 다른 걸 확인하고 싶었다.
“주민들은?”
“물론 다 대피시켜 두었다. 혹시라도 그대의 안배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안배라니.
이연희를 말하는 건가.
사람을 안배니, 뭐니 하는 말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제 정말로 나가는 건가. 이상하게 와 닿지 않는군. 그저 평소처럼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멈이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용용이가 어느 정도 자라난 뒤로는 종종 이곳으로 소풍을 오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다 같이 모여 수다를 떨며 놀고는 했다.
“때가 됐으니까 나가야겠지. 아쉬워도 어쩔 수 없어.”
“아쉽기는!”
영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산과 전당은 내 자부심이자 긍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영원의 속박에 묶인 가짜일 뿐이지. 하지만 내가 속박을 벗고 이곳을 떠남으로써 화산과 전당도 가짜라는 허울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쉽기는!”
영감은 당치도 않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두서없는 말이었지만, 의미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늘 하던 이야기니까.
“너는?”
호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실 지금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호치였다.
이곳에서 태어났고, 또 그 사실에 별 아쉬움이 없는 그에게는 바깥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이 그리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거처를 옮기는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나야 뭐 그냥 그렇지. 사실 너만 내보내고 내가 이곳에 남는 것도 생각해 봤어. 사실 내가 태어난 목적도 그거였잖아.”
하지만 호치는 결국 함께 나가는 걸 택했다.
그는 턱짓으로 저 구석에서 혼자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용용이를 가리켰다.
“가족들이 다 나간다는데, 나 혼자 남아서 뭐하겠어. 같이 가야지.”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웠다.
속으로 호치에게 감사를 전하고 할멈을 쳐다보았다.
“할멈은? 나가게 됐는데, 소감 한마디 어때?”
“소감이라. 그래, 이제는 더 이상 그대에게 죽을 일이 없겠구나. 그동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너무 고통스러웠느니라, 매번.”
방금 전까지 훈훈한 눈으로 나를 보던 호치가 음식물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달리 변명할 말도 없어 할멈에게 사과했다.
할멈은 내 사과에 기껍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했다.
“소감을 말하기 전에 그대에게 감사를 전해야겠지.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대신 그대를 돕는다는 계약을 맺었지만, 나는 사실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할 거라 믿지 않았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대는 포기하지 않았어. 나는 지난 몇 년간 그대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기억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약속을 지켜준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옆에서 영감이 자신도 감사하다며 말을 얹었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때, 궁전의 옥좌 앞의 포탈이 빛을 뿜었다.
61층의 마지막 구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포탈이다.
저 포탈이 열렸다는 건 단 하나의 사실만을 의미했다.
이연희가 화산의 전당을 클리어했다.
드디어 61층에서 벗어날 시간이 왔다.
* * *
[이연희]이상했다.
내가 알기로 61층 스테이지는 이런 곳이 아니다.
끝없이 펼쳐진 불타는 사막과 계속되는 신기루들은 이전에 들었던 정보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응당 나타나야 할 것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사막에 등장한다는 불을 뿜는 온갖 괴물들도.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의 주민들도.
화산을 지키고 있는 용암 전사들도.
마치 61층 스테이지 전체가 비워진 것처럼.
아무도 없었다.
“원래 이런 스테이지는 아닐 텐데.”
[당연히 아니다. 조심해라. 무언가 잘못되었다.]조력자 중 한 명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차원의 튜토리얼에서 61층을 이미 클리어해 낸 도전자였다.
불안했다.
보이지 않는 칼날의 끝이 내 목을 향해 겨누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그 칼날이 그만큼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칼날을 향해, 절벽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발을 돌려 거주 지역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죽겠지.
신들은 자비롭지 않았다.
그들이 도전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건, 그들이 자비로워서가 아니라 그저 제약에 묶여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제약이 그들을 얽매지 않는 영역 내에서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그들의 행사 앞에 인간의 목숨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키리키리는 분명히 경고했었다.
자신을 가호하지 않는 신의 힘은 손잡이가 없는 칼날이라고.
누군가를 그 칼날로 찌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의 피를 스스로 흘려야 할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신들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어떤 리스크가 있더라도 나는 내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를 잡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아저씨에게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매 순간 내 머리를 겨눈 러시안룰렛이 돌아가고 있는 듯한 끔찍한 긴장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정말로.
죽음을 향해 스스로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던 전당의 벽을 마주했다.
제물을 통해 약화시키지 않으면 61층 도전자 50명이 덤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던 화산의 지배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텅 빈 옥좌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첫 번째 고행 길, 불타는 화산의 고행 길의 끝에 다다랐습니다.]설명 : 무수히 많은 희생을 딛고 당신은 이 자리에 섰습니다.
희생이 가치 있는 이유는 희생자들의 생명과 미래의 가능성, 과거의 사연과 당신과의 유대 등 온갖 소중한 것을 짓밟고 그 위에 당신의 자의식을 바로 세우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 앞에는 마지막 난관만이 남았습니다.
서로의 의지를 시험하는 결투장에서 당신이 승리자이며 주체자임을 증명하십시오.
[클리어 조건이 변경됩니다.] [클리어 조건]-첫 번째 고행 길을 정복한다.
-두 번째 고행 길을 정복한다.
-승리한다.
알아듣기 쉬운 지령이었다.
하지만 저 마지막 클리어 조건, 승리하라는 저 하나의 감춰진 정보는 정말 많은 걸 바꿔 놓았다.
메시지창을 잠시 노려보다 포탈을 탔다.
포탈을 통해 이동된 곳은 거대한 경기장이었다.
한쪽은 불타는 용암으로, 다른 한쪽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경기장이었다.
첫 번째 고행 길을 클리어한 일행과 두 번째 고행 길을 클리어한 일행을 겨루게 하고 그 승자를 가려내는 결투장이었다.
[희생의 결투장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어떻게 강제되는 상황이든, 누가 대상이 되든 희생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제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증명해 내야 합니다.
두 번째 고행 길, 얼어붙는 설산의 고행 길을 헤쳐 낸 당신의 동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당신을 위해 패배를 자초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보다 자신을 우선해 승리를 쟁취하고자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그들을 무찌르고 좌절시켜 당신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으십시오.
“하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할 일을 시작했다.
아직 아저씨 일행은 결투장에 입장하지 않았다.
미리 결계를 설치해 둘 기회다.
나와 함께하고 있는 도전자들은 모두 헬 난이도의 도전자이며.
동시에 신들의 사도이기도 하다.
신들이 그들의 사도에게 임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승리가 확정된다.
경합에서 보여 준 아저씨의 힘, 타인의 생명을 그대로 죽음으로 뒤바꾼 그 힘조차도 신의 힘 앞에선 무의미하다는 걸 확인받았다.
내가 할 일은 시간을 버는 것이다.
30초가량의 시간을 벌어낸다면 내 승리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내 패배가 될 것이다.
겹겹이 결계를 쌓고 또 쌓았다.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 둔 정령들을 도처에 깔아 놓고 아저씨의 입장을 기다렸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결투장 한구석의 포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저씨의 일행들이 소환되었다.
가장 먼저 경합에서 만났던 해츨링의 모습이 보였다.
한번 호되게 당해서인지 절로 눈길이 갔다.
그 해츨링을 안고 있는 아저씨 분신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일행 뒤편에 서 있는 거대한 거인들.
각각 강렬한 열기와 냉기를 내뿜고 있는 거인들의 커다란 몸체는 절로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일행의 가장 앞에서 흐뭇하다는 듯 미소 짓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TV 매체를 통해, 그리고 분신과 환영을 통해 여러 번 보았던 얼굴이고, 어제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적으로 마주한 아저씨에게선 이전과 전혀 다른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길 바라면서 입을 열었다.
* * *
묘한 감상이었다.
이곳에 오고 싶었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만족감이 들었다.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과 그 모든 기다림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그리고 이연희가 결국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뿌듯함과 대견함에.
거대한 결투장 한복판에 이연희가 혼자 서 있었다.
무수히 많은 조력자들을 가지고도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그 모습이 그녀의 처지와 같아 보였다.
그녀의 행색도 그랬다.
앙다문 입술과 하얗게 질린 얼굴.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까지.
이연희는 혼란스러운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조금 더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 줬으면 했는데.
“61층의… 화산과 설산의 지배자인가요?”
이연희가 내 뒤의 영감과 할멈을 가리키며 물었다.
영감과 할멈은 이연희가 신기했는지 연신 탄성을 내며 그녀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응.”
그건 왜 물은 걸까.
이연희는 가타부타 말을 잇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아저씨…….”
“그래.”
이연희는 곧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이제 와서 망설이는 건가.
나는 입장과 동시의 이연희의 공격이 시작되리라 예상했다.
그걸 위해 이연희보다 한발 늦게 포탈을 타기도 했다.
이렇게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며 내게 말을 걸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저 할 말이 있어요…….”
이건 그리 좋지 못한 전개다.
그간의 섭섭했던 점이라도 이야기할 셈인가.
그녀에게 했던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그것에 사과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연희와의 대화는 나중이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서로 행동해야 할 순간이다.
이연희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입을 열어 한 단어를 말했다.
“바루스.”
이연희의 목걸이에 심어 두었던 제압기의 시동어가 바로 바루스였다.
물론 이연희는 그 목걸이를 더 이상 차고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바루스라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듣자마자 끓는 기름에 데인 것처럼 급격히 반응했다.
일순 허공에 켜켜이 쌓여 있던 결계들이 일행을 덮쳐 오듯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저기서 정령들이 내 몸에 달라붙었다.
그중에는 사슬의 모습을 한 정령도 있었다.
나는 결계와 정령들을 내버려 두었다.
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시간을 끄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일행은 용용이가 알아서 보호할 것이다.
이연희는 반사적으로 결계와 정령들을 소환하고 나서 스스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금제할 수단이 하나쯤 더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했으려나.
이연희의 주변으로 처음 보는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드넓던 경기장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다른 차원의 헬 난이도 도전자들.
보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신의 사도였다.
이천 명이 넘는 수의 사도.
이건 단순히 사도들의 전력을 생각해선 안 된다.
사도가 어느 장소에 있다면, 그건 그 자리에 신 또한 함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윽고 도전자들의 몸에서 강렬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신이 임하고 있었다.
이천에 달하는 신이라.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 장소에 강신하고 있는 신들 중 익숙한 신이 있나 찾아보았다.
지구 서버를 담당하던 백신전의 신은 별로 참여하지 않은 듯, 대부분이 낯선 신들이었다.
하지만 그중 굉장히 익숙한 느낌의 힘이 섞여 있었다.
이연희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사도에게서 이전에 실제로 한 번 만나 보았던 존재의 힘이 느껴졌다.
“오랜만이구나, 이름이 재밌는 인간아.”
의외의 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 그녀는 분명 신이 아니었으니까.
“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