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85
x 285
서울 (1)
“다녀왔어요.”
“그래, 와서 이것 좀 봐 봐.”
어디 동네 편의점에 심부름 다녀온 친구를 마중하듯 성의 없는 태도였다.
“…빈말이라도 다녀오느라 수고했다는 말부터 해 주면 안 될까요?”
“그래, 수고했다. 준석아, 이것 좀 봐 봐.”
이준석은 그 성의 없는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가 알기로 김민혁은 친절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짜증을 내기보단 김민혁이 내미는 쪽지를 받아 보았다.
“며칠 전에 밖으로 나온 녀석이 준 정보야. 경합 도중에 호재의 분신이 저지른 일이라는데. 여기부터야. 적의를 가진 타 차원의 도전자와 대면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검은 연기가 나타났다. 상대가 죽었다.”
검은 연기가 나타났다, 그랬더니 상대가 죽었다.
결과는 있는데 원인은 불분명했다.
“뭐가 생략된 거 아니에요? 아니면 그 사람이 제대로 못 봤거나.”
“그렇지는 않을걸. 이거 자경단에서 보낸 정보야.”
“…자경단이요?”
자경단은 튜토리얼 내부와 외부 간의 의사 전달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부족하고 곡해된 정보를 얻기 일쑤고, 그마저도 아예 들어오지 않는 달도 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자경단은 항상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꼼꼼히 적어 보내왔다.
무엇보다 편집증적인 면이 있는 박정아가 이런 부실한 정보를 내보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자기들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러니 이렇게 보냈겠지.”
사견을 보탰다가는 맞지도 않은 정보가 사실화될 수 있으니까.
김민혁은 이준석에게 다시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글쎄요,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김민혁은 본인이 물어 놓고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도 할 수 있다고?”
“아뇨… 호재 형이 할 수 있겠다는 말이죠. 원래 그 형 심검이니, 뭐니 눈에 안 보이는 기술에 집착한 적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완성한 적도 있었어요. 그걸 생각하면 그리 놀랍지도 않죠, 뭐. 찌르기 형태로 심장 같은 곳에 송곳만 한 구멍을 내 주면 죽지 않겠어요?”
타당한 의견이었다.
“외관상 보이는 상처는 없다고 했어. 그리고 상대가 헬 난이도의 고층 도전자라는데, 심장에 구멍이 났다고 그 자리에서 즉사할까?”
“전격이 섞인 공격이면 가능하죠. 고열에 지져지니 환부로 피가 흐를 일도 없고, 급소를 꿰뚫는 순간 몸을 마비시킬 테니 그대로 쓰러질 거고, 급사하기에도 충분한 충격을 주겠죠. 물론 눈에 안 띄게 하는 건 다른 문제지만, 호재 형이라면 그 정도는 어떻게 했겠죠.”
들으니까 또 가능할 것 같긴 하네, 하고 김민혁이 중얼거렸다.
김민혁 그 또한 노말 난이도를 클리어했고, 튜토리얼에서 오랜 시간을 지냈던 경험도 있지만, 도통 이준석이나 이호재의 능력을 어림짐작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가능할 리 없다고 여기고 있던 상식들이 ‘되는데?’ 하고 부정될 때마다 이래도 되나 싶은 위화감이 들었다.
“얼마나 셀까, 지금은.”
“겁나 세겠죠, 뭐.”
이준석이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
이전에도 김민혁이 여러 번 들어 본 대답이었다.
김민혁이 이호재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독보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로 십 년이 넘는 시간이 더 지났다.
지금은 과연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지 김민혁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연희가 60층에 올라갔다면서요? 걱정되세요?”
“기사 봤냐?”
“네. 공항에 내리자마자 봤죠.”
이연희가 결국 헬 난이도 60층에 도달했다.
전 세계가 그 사실에 열광하고 있었다.
요즘 시대에 각성자가 갖는 위상을, 그리고 헬 난이도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튜토리얼 도전자들을 향한 그런 관심이 가십화되었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이 몬스터와 게이트의 위협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을 즈음부터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어느 도전자가 가장 먼저 헬 난이도를 통과할지, 혹은 몇 층에 언제 도착할지에 판돈이 걸렸다.
티브이 프로에선 헬 난이도 도전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수도 없이 만들어 대었다.
미국에선 아예 그들을 우상화시키고, 캐릭터화해 장사마저 하고 있다.
예전에는 헬 난이도 도전자 하면 보통 미국과 한국 서버를 꼽았다.
미국의 경우에는 국가적인 지원을 통해 가장 많은 헬 난이도 도전자를 보유하고 있었고.
한국 서버에는 이호재라는 이레귤러가 있었다.
언론은 두 서버를 경쟁 구도로 만들었고, 첫 번째 헬 난이도 출신 각성자를 배출하는 국가가, 혹은 그 각성자를 영입하는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주도권을 쥐게 될 거라고 떠들어 댔다.
몇 년 전까지 미국 헬 난이도는 열 명에 달하는 30층 도전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언론에선 한국 서버보다도 더 빨리 클리어가 가능할 거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여러 명이 동시에 공략을 진행하는 미국 서버의 도전자들은 파티 플레이가 강요되는 60층에서 가로막히지 않을 테니.
하지만 그들을 가로막은 건 60층이 아니라 30층의 벽이었다.
미국 도전자들이 30층에 도달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최고 층수는 아직 33층에 불과했다.
34층에서 다섯 명의 도전자가 사망한 이후 그들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연희의 약진이 시작되었다.
이연희는 미국 서버의 도전자들이 도태되어 있는 동안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30층대를 넘어섰다.
40층에 도달한 뒤부터는 공략 속도가 느려지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 공략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한 회 차에 서너 층씩 올라가는 이연희의 층수가 공개될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그 이연희가 60층에 도착했다.
당연히 언론들은 헬 난이도 공략이 머지않았다며 설레발을 떨어 대었다.
이호재와 이연희의 클리어 이후 행보를 예측하거나 그들의 과거를 다시 한 번 재조명했고.
그들의 클리어로 시작될 각성자 판도의 지각변동 같은 이야기를 하루 온종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어찌 보면 사람들의 열광적인 성원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주요 도시들은 이제 어느 정도 몬스터의 위협에서 벗어났다지만, 아직 완전하진 않았다.
여전히 밤중에 길을 걷다가 몬스터에게 습격당할 확률이 없지 않았고, 때때로 생성되는 게이트에 교통이 마비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지역에선 몬스터의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게다가 십여 년 전까지 이어졌던 대격변의 파장으로 사람들 대부분이 가까운 친지를 잃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헬 난이도 출신 각성자에게 품는 기대와 희망을 김민혁도 모르진 않았다.
‘문제는 기대와는 다를 거라는 거지.’
김민혁이 아는 이호재는 속세에 관심이 없는 수도승 같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가 생각하기에 맞는 일만 한다.
무엇보다 하고 싶고, 하기 싫은 것을 떠나, 누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시킨다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반골 기질에 또라이 기질도 충만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건 이호재는 그 기대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연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김민혁은 61층을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명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61층을 클리어할 사람은 이호재와 이연희 둘 중 매우 높은 확률로 이호재가 될 거라는 것도.
“근데 이거 원래 안 터뜨리기로 하지 않았어요? 59층까지만 보도하고 60층에 올라갔다는 건 나중에 알리기로 했던 것 같은데.”
이준석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가 알기로 김민혁은 이연희가 60층에 올라갔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한국 정부와 그 정보를 잠시 묻어 두자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정부 쪽에서 새 나갔어.”
덕분에 김민혁의 두통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김민혁은 이 사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숨겨 두고 싶었다.
이호재가 밖으로 나오기 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준비를 해 두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그 사실이 보도된 지금, 준비는 한층 더 어려워질 것이다.
“공무원이 그렇죠, 뭐.”
그럴 수 있다며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이준석과는 달리, 정보를 유출한 사람을 찾아가 멱살을 틀어쥐고 짤짤 흔들어 대고 싶은 것이 김민혁의 심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지 않게 소환 포탈 위로 건물을 완공시켰다는 점이었다.
튜토리얼을 클리어한 도전자는 각국 수도의 중심가 한복판에서 소환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서울역 앞이었다.
당연히 그 장소는 명소가 되었다.
누군가 클리어하고 나온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방송사는 그 앞에서 진을 쳤고.
각성자들이 나오자마자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이따금 날이 좋을 때면 사람들은 서울역 앞에 모여 소환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방송사의 시청률은 치솟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서울역 근처의 상권은 활기를 띠었다.
그들에게 있어 각성자들의 소환은 축제였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인터뷰를 해야 하는 상황을 좋아하는 각성자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각성자가 더 많았다.
그들 대부분 짧게는 일 년에서 길게는 십 년 이상 튜토리얼에 갇혀 있었고, 지구로의 귀환은 그들에게 복잡한 심정을 느끼게 한다.
기쁠 수도 있고, 반대로 두려울 수도 있다.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각성자에게 주목과 환호, 그리고 마이크를 들이대는 건 절대 좋은 처사가 아니었다.
김민혁이 생각하기에 평범한 각성자들도 성을 내고 짜증을 내는 상황을 이호재가 참아 줄 것 같진 않았다.
김민혁은 서울역 앞의 소환 포탈을 중심으로 건물을 쌓아 올렸다.
반대가 많았지만, 각성자 세계 협회에 인권 단체들, 자신이 길드로 끌어모은 각성자들의 힘으로 꾸역꾸역 밀어붙여 이번 달 초, 건물이 완공되었다.
건물 앞에 인터뷰를 위해 진을 치고 있을 기자들도, 관중들도 그대로일 테지만, 각성자는 최소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것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문제는 이 건물이 정부 소관이라는 점이다.
최근 정부의 행태를 보자면, 이호재의 마중을 정부 인사들에게 맡겼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각성자 유출과 길드와의 파워 싸움으로 한껏 몰려 있는 한국 정부다.
금배지 단 공무원들이 어떤 미친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조건 우리가 대기하다가 마중해야 돼.”
“정부에서 지랄할 텐데요.”
“감수해야지.”
까딱 잘못했다간 지랄할 정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김민혁은 제법 많은 것을 내주더라도 정부의 양보를 받아 낼 생각이었다.
정 합의가 되지 못한다면, 당일 길드원들을 동원해 서울역을 점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호재를 가장 먼저 마중해야 했다.
물론 그건 최후의 수였고, 아마 길드의 이권 몇 가지를 정부에 넘겨주거나 반환하는 조건이면 될 것이다.
“한동안 또 바빠지겠네. 아, 너 출장 간 건 어떻게 됐어?”
“빨리도 물으시네요.”
이준석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예의상 차랑 과자라도 주면서 물어보시면 안 될까요. 저 남극에서 방금 돌아왔는데.”
* * *
이준석은 초코파이 하나를 까먹으며 이야기했다.
“미국에서 사냥했다는 G급 몬스터는 석연찮은 부분이 너무 많아요. 미군에서 핵무기를 썼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방사능 수치가 낮았어요. 그 경우는 따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구에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했던 G급의 몬스터 중 처치된 것은 미국 동부 해안에 자리를 잡았던 몬스터 하나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G급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그 어떤 시도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준석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나왔을 때, 가장 주목되었던 점이 바로 이 G급 몬스터의 사냥이었다.
실제로 그는 세계 협회와 함께 사냥을 시도했고, 마지막 순간 사냥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준석에게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준석은 자신의 영역에서 움직이지도 않는 G급 몬스터를 처치하느라 피해를 보느니 세계 도처에 널려 있는 다른 몬스터들을 처치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남극에서 보고 온 게 마지막이었지?”
“네, 이걸로 G급은 한 번씩 다 확인했어요.”
“어땠어?”
G급 몬스터를 당장 처치하지 않더라도 김민혁은 그 전력을 대강이나마 알아 두고 싶었다.
이준석이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G급을 정찰하게 해, 공략 가능성을 확인하려 했다.
“공략 불가. 못 건드려요.”
단호한 대답이었다.
거의 십 년 전에 미국의 주도로 사냥에 성공했던 G급이다.
당시 손실되었던 각성자 전력을 복구하다 못해 몇 배는 앞서는 지금도 공략이 어렵다니.
석연찮아 하는 김민혁에게 이준석이 쐐기를 박았다.
“G급은 호재 형이 나와도 안 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