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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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80층 (2)
[박정아, 90층 : 80층은 언제 또 간 거야. 엊그제 60층에서 나온 사람이.]엊그제 나왔는데 아직 80층이면 충분히 느린 진행 속도였다.
솔직히 말해서, 키리키리와의 재회와 소원을 위한 고민 그리고 용용이와 호치가 스테이지 공략에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아, 90층 :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튜토리얼을 멈췄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게 가능해?]내가 직접 멈추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키리키리가 내 소원을 들어주어 멈춘 것에 불과했다.
이 점을 박정아에게 설명해 주었다.
예전에 관리자와 약속했던 소원으로 튜토리얼 스테이지들을 정지시켰다고.
이참에 정지시킨 이유와 앞으로 있을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이미 그녀도 대충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세세하게는 설명해 준 적이 없었다.
[박정아, 90층 : 그래… 뭐, 이유는 눈곱만큼도 납득이 안 가지만 그렇다 치자고. 그럼 나는?] [이호재, 80층 : 응?] [박정아, 90층 : 이러면 나도 못 나가잖아.]당연한 말이었다.
스테이지로의 입장이 안 되는데, 100층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호재, 80층 :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부탁 좀 하려고. 네가 몇 년만 더 여기 남아서 수고해 줬으면 좋겠어. 남겨진 도전자들도 챙겨야 되고, 아무래도 이연희를 돌봐 줄 사람도 필요하고.]사실 이 부탁 때문에 박정아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다.
혹시 먼저 나가 버릴까 봐.
이연희를 사도로 임명했고, 60층과 61층에는 외부 침략에 대비한 방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
한동안만이라도 이연희의 멘탈을 챙겨 줄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박정아는 내 계획에 찬성하지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빠, 뭐 해?”
용용이가 다가왔다.
호치가 열심히 달래 주었는지 꿈틀이의 죽음 때문에 울적했던 건 많이 가신 모양이다.
나는 손을 들어 용용이의 눈을 가렸다.
메시지창에서 욕설이 난무하고 있었다.
굳이 아이에게 보여 줄 어휘는 아니었다.
[박정아, 90층 : 아주 날 노처녀로 늙어 죽게 만드려고 작정했지?]오해다.
도전자는 쉽게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튜토리얼 안에서라면 더더욱.
그리고 나는 박정아가 튜토리얼 안에서 늙어 죽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곳에 방치해 둘 생각이 없었다.
호치가 메시지창을 내 어깨너머로 힐끗 보더니 용용이를 저 멀리 데려갔다.
꿈틀이의 사체를 구경하러 가는 모양이다.
[박정아, 90층 : 그럼 이제는 더 이상 각성자가 배출되지 않을 텐데, 그건 어쩌려고.] [이호재, 80층 : 괜찮아, 내가 나가잖아.]내 말에 박정아는 또 골이 아프다는 둥, 화병으로 속 터져 죽겠다는 둥 짜증을 부려 대었다.
하지만 그게 맞는데 어쩌겠는가.
내가 나가는 이상 굳이 새로운 각성자는 필요하지 않았다.
[박정아, 90층 : 일단 이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자. 우리끼리만 알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예기치 못한 사태 정도로 설명하자.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알아내지도 못할 거야. 스테이지로의 진입이 안 되니 관리자들한테 물어보지도 못할 거 아냐.] [이호재, 80층 : 나는 알려도 괜찮은데.] [박정아, 90층 : 내가 안 괜찮아! 내가!]박정아의 말대로 다른 사람에겐 알리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김민혁에게나 말해 두면 되겠지.
[박정아, 90층 : 이제는 은퇴하고 쉬나 했더니, 또 일하게 생겼네, 젠장.] [이호재, 80층 : 조금만 더 수고해 줘. 무엇보다 이연희 좀 잘 챙겨 줘. 예전에 나한테 했던 것처럼.]매일 연락해서 싸우고, 욕하고.
쓸데없는 걸로 서로 말꼬투리 잡아 가며 다퉜지만, 박정아는 멈추지 않고 꾸준히 연락을 해 왔다.
포기하지 않고, 매번 별 시답잖은 건수를 끌어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박정아와 다투는 것이 타인과의 유일한 교류였다.
덕분에 흐르는 시간을 자각했고,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을 버텨 낼 수 있었다.
박정아는 한참 내 욕을 하다 결국은 내 말대로 이연희를 돌봐 주기로 약속했다.
예전과 달리 말도 험해지고 항상 히스테릭한 짜증을 달고 있었지만, 예전과 다르지 않은 부분도 남아 있었다.
[박정아, 90층 : 이걸로 빚은 없는 거야, 하나도. 다 갚았어.]그 빚은 청산된 지 오래였다.
나는 그녀에게 답장을 했다.
* * *
“잉?”
“어?”
키리키리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그거 해체 안 해 봤엉? 실험도?”
“안 해봤는데.”
“…잉?”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내가 괴물의 사체를 해부하지 않은 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엥… 나는 당연히 할 줄 알았지.”
키리키리가 자기 코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근원의 사체를 챙길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 사체에서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보잘것없었다.
내 말을 들은 키리키리는 그제야 그럴 수 있다는 듯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징. 그건 모조품이고 실패작이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래.
나는 키리키리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실제로 있었던 것들이고,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라는 건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80층은 좀 특이해.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했지만, 그건 괴물이 움직임을 멈췄을 때까지야.”
다시 말해, 괴물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 안에서 껍데기를 깨고 나온 것부터는 실제와 다르다는 건가.
“괴물의 껍데기를 뚫고 나온 것은 스테이지에 등장했던 것과 많이 달랐어. 그리고 그건 실제와 동일하게 가져올 수도, 그럴듯하게 모조품을 만들어 대체할 수도 없었어.”
대체할 수 없었다라.
의외였다.
“그 정도였어, 괴물 안에서 튀어나온 게?”
튜토리얼을 만든 백신전의 신들이 카피조차 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고?
모든 스테이지마다 하나의 세상을 담아 두던 신들이다.
그들의 설계에 한계가 있었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왔던 건 네 경우와 똑같았어. 모든 경우가 그렇듯.”
키리키리는 나를 예시로 삼았다.
“네가 근원을 극복했을 때처럼 이성을 되찾았고, 이전까지와는 비교하기 힘든 힘을 휘두르기 시작했지. 단숨에 격이 뛰어올랐고.”
키리키리의 말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령왕은 근원을 통해 신격으로 다다를 수 있다 말했다.
근원을 얻는 순간 거대한 힘을 쥐게 되지만, 그것을 극복해 내는 순간, 단순한 힘이 아닌 격을 얻게 된다.
그랬다면 왜 백신전이 괴물을 재현해 내지도, 모방해 내지도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80층 스테이지에 등장했던 괴물은 결과적으로 신격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을 테니.
그것을 모조품으로나마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백신전은 신격을 공산품처럼 찍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차이는?”
“응?”
내 물음에 키리키리가 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너무 대충 질문했다.
키리키리에게는 이렇게 대충 질문하는 것이 익숙했다.
키리키리가 내 생각을 읽고 알아서 대답해 주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키리키리가 내 생각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좋은 일이었으나 불편한 점도 있었다.
“나와 같았다고 했잖아, 그 괴물이. 하지만 차이가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
“힝, 맞아, 차이가 있었어.”
키리키리는 뭐가 멋쩍은지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네 경우에는 근원의 욕망을 극복해 냈었지. 80층의 괴물은 행성을 몇 개나 잡아먹고 나서야 욕망에서 해방되었고.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 그렇게 욕망을 벗어던져도 그 이성은 여전히 욕망을 찾아 헤매게 돼. 질이 더 안 좋지.”
확실히 더 질이 안 좋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근원의 욕망에서 벗어났지만, 그 목적은 이전과 동일하다는 뜻이니까.
더 높은 힘과 강력한 힘 그리고 이성을 갖춘 채로.
나는 근원의 괴수를 대단치 않게 생각해 왔다.
그로부터 위기를 느낀 적도 없었고, 내 인식 속에서 근원은 신들이 힘을 얻기 위해 노리는 사냥감 정도였다.
그 모든 것은 근원의 괴수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성이 없는 적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든 사냥감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성이 있다면.
“지능의 수준은?”
“근원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문명의 일부였다는 뜻이야. 그것도 제법 고도화된 문명. 대충 튜토리얼 스테이지가 등장한 문명들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보면 돼.”
음, 최악이네.
“왜 내가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는지 이제 알겠지?”
키리키리가 흥흥거리며 물었다.
아무래도 자기의 조언을 확실히 믿어 주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좀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래, 네 덕에 중요한 걸 알았네. 자, 케이크.”
키리키리에게 케이크를 사 주었다.
옆에서 쎄쎄쎄, 하면서 놀고 있던 용용이와 호치가 끼어들 것을 감안해 평소보다 큰 케이크로 사 주었다.
당연하게도 용용이와 호치가 다가왔다.
키리키리는 케이크를 함께 먹자는 용용이와 호치의 요청을 거절했다.
물론 용용이와 호치는 키리키리가 거절하거나 말거나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고.
키리키리는 매몰찬 거절의 대가로 혼자서만 포크 없이 손으로 생크림 케이크를 퍼먹게 되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에 알아낸 정보는 매우 중요했다.
근원을 극복해 내고 격을 이룬 존재가 있다는 것.
괴물들의 정점에 이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괴수들이 나타나고, 공습이 시작된 것을.
아무런 이성 없이 날뛰기만 하는 괴수들이 한날한시에 나타나고, 심지어 무리를 이루는 것을.
괴물의 종류에 따라 조합을 맞춰 움직이는 듯한 기묘한 구성들까지.
괴물들은 때때로 조직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 괴물들을 향한 가설은 수없이 많았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몇 가지는 된다.
‘괴수들의 본거지와 연결된 차원의 통로가 열렸고, 그 때문에 괴수들이 갑자기 난립했다.’
‘괴수들끼리도 동족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인지력은 있다.’
‘원시적인 수준이지만, 서로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
‘인간들이 알아내지 못했을 뿐, 괴수들도 교미를 통해 번식을 한다.’
‘괴수들은 어디에서 부화되는 것이다.’
다양한 가설이 있었지만, 한 가지 사실을 더한다면 꽤나 많은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이성을 가진 자가, 괴물들을 양성하고 지휘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 보니 키리키리와 용용이, 호치가 달라붙어 열심히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평화롭고 다정하다기보다는 경쟁적이고 매우 치열한 분위기였다.
한 입이라도 케이크를 더 먹으려고 서로 케이크를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게 더 있었지만, 우선은 키리키리가 케이크를 다 먹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 * *
“보통 완성자 혹은 지배자라고 불러.”
“타칭?”
“자칭이지.”
광오한 표현이었다.
욕망에 잡아먹히고, 수를 세기도 힘들 양의 목숨을 잡아먹고 나서야 이지를 되찾은 괴물들이 자칭하기에는.
“신들은? 그것들을 가만 내버려 두고 있는 거야?”
“응…….”
키리키리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부탁했다.
“워낙 활동 범위가 넓기 때문에 찾아가기도 어려워. 영역에 묶여 있는 신들이 나설 명분도 쉽게 주지 않고. 무엇보다 그렇게 마주친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 더 문제고.”
키리키리의 설명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신들이?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그들도 신이 되었으니까.”
키리키리는 대답했다.
그들 또한 신이 되었다고.
신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신으로서의 정체성, 그걸 위한 스스로의 수양, 만민의 지지와 신뢰를 통한 신앙.
정말 많은 조건을 떠올릴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한 가지뿐이었다.
압도적인 힘.
57층에서, 그리고 61층에서 내가 사람들에게서 신앙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내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성품이나 인격 따위는 사람들에게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을 것이다.
오직 힘만이 신앙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
더 많은 힘을 원해 눈에 보이는 모든 타자를 잡아먹는 괴물들은, 더 많은 힘을 위해 남에게서 신앙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이성과 지식도, 힘과 격도 가지고 있을 터이니.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기를 바라며 키리키리에게 질문했다.
“만신전의 신 중에도 있어?”
“있어.”
빌어먹을.
“백신전에는?”
“있어.”
이거 상황이 아주 개같이 꼬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