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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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
“야, 이거 몰카 아니지? 너희끼리 짜고 보고서에 지랄해 놓은 거 아니지?”
내심 지금이라도 이준석이 피식피식 웃으며 ‘장난이었어요, 형’ 하는 말을 듣고 싶었다.
물론 이게 무슨 지랄이냐고 화를 내겠지만, 이 개 같은 상황을 인정하는 것보단 나았다.
“진짜예요. 한국 서버에서만 안 나온 게 아니에요.”
이준석의 말은 선고와 같았다.
뭔지 몰라도 상황이 매우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는.
모든 튜토리얼 도전자는 동일한 날짜에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물론 밖으로 나오는 시점은 해당 도전자가 언제 튜토리얼 100층을 클리어하느냐에 달려 있다.
때문에 도전자들은 아무 때나 제각각 지구로 귀환하고는 했다.
하지만 튜토리얼의 출현으로부터 이미 십 년 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났다.
이미 튜토리얼 안팎을 이어 주는 규칙이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가 각성자의 귀환 일에 대한 것이었다.
예고 없이 지구로 귀환해 조용히 잠적해 버리는 각성자는 때때로 괴물보다도 위험하게 여겨졌다.
정부는 각성자들에게 최소한의 목줄을 채우고 싶어 했다.
아무리 그들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지문을 찍고, 몇 날 몇 시에 튜토리얼을 클리어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새로운 신분증을 발급했다.
그런 조치들을 통해 정부는 최소한 자국 내에 각성자가 몇 명이 있는지, 그 각성자들은 누구고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규칙들은 이미 몇 년에 걸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물론 규칙이 무시되는 경우는 있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각성자.
한시라도 빨리 튜토리얼에서 나와야 할 이유가 있는 각성자.
신원이 파악되기 전에 음지로 숨어들고자 하는 각성자.
다양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해진 날에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나온다.
하지만 귀환일이었던 어제 서울역에 나타난 각성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아무리 공략 속도가 빨라지고 생존율이 높아졌다지만, 튜토리얼로 유입되는 인원은 매달 백 명뿐이다.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
때문에 어떤 달은 열 명에 가까운 각성자가 귀환하기도 하고, 어떤 달은 한 명도 귀환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에서도, 도쿄에서도 각성자가 귀환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민혁은 급히 이준석을 파견해 다른 나라의 상황을 확인하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번 회 차에 그 누구도 튜토리얼을 클리어하지 않았어요. 전 세계에서 그 누구도.”
일개 서버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더 이상 우연의 결과로 치부할 수 없다.
튜토리얼 안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
“이쯤 되면 클리어하지 않았다는 말보다는 클리어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요.”
“그건 아직 모르지.”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변수는 경합의 장이었다.
근래 경합이 열렸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다.
경합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서버 간의 대표자들이 여러 차례 회담을 가졌다는 것 또한.
“튜토리얼 내 도전자들 간에 합의가 있었다면?”
“에이, 그건 좀. 그랬으면 경합 끝난 바로 다음 회 차에 안 나왔겠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도전자들끼리 아무 말 없이 클리어를 안 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요. 본인들 손해인데요. 무엇보다 도전자 개개인의 클리어를 수뇌부가 다 틀어막을 수도 없고요.”
튜토리얼 내에서 다른 도전자를 강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 단절된 공간에서 지내기에 그랬다.
90층 거주 지역 이상 층에 지내는 도전자의 경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자유의지를 침해할 수 없다.
물론 협박이나 회유를 할 수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튜토리얼에 남아 있는 수뇌부는 대부분 그 힘을 상실했다.
각성자들의 힘은 튜토리얼 밖에 존재한다.
튜토리얼 안에 터전을 잡고 도전자들을 관리하는 이들은 이제 그저 NPC나 도태된 낙오자들 취급을 받을 뿐이다.
“으아, 뭐지. 한국만 해도 이번 달 예정자가 네 명이나 있었어. 네 명이나 되는 도전자가 예기치 못하게 클리어에 실패한다고?”
말도 안 된다.
100층 근처의 스테이지들은 완벽하게 공략되어 있다.
거의 공략의 공식대로 진행되기에 실패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나 더 있잖아요.”
“누구?”
“호재 형도 나올 때 됐잖아요.”
이연희가 60층에 도착했다.
그 말은 오랫동안 60층에 묶여 있던 이호재가 다시금 스테이지를 오르기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이것도 골치 아프네. 이러면 그놈도 못 나올지도 모른다는 얘기잖아.”
기껏 나올 거라 생각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해 뒀는데.
다 무의미하게 되었다.
‘아니지.’
이번 사태로 이호재도 다른 도전자들처럼 못 나오게 되었다 생각하고 넘어가는 게 맞는가?
김민혁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기로 이호재는 어떤 문제에 휘말리기보다는 본인이 직접 문제를 일으키는 편이었다.
물론 그 문제의 해결은 김민혁 자신이 매번 도맡아야 했고.
‘만약 이번 일에도 그가 연관되어 있다면… 그렇다면.’
김민혁은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모르겠다, 시벌. 뭐 아는 정보가 있어야 추측이라도 해 보는 거지. 뭣도 모르는 데다 안쪽에 간섭할 방법도 없는데, 우리가 고민해 봐야 뭐하겠냐.”
포기했다.
“예. 뭐 우리가 신들이나 관리자들하고 연락할 방법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안쪽의 문제는 안쪽에서 해결해야겠죠.”
이준석이 태연하게 말했다.
김민혁은 항상 저 태연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나 하자. 이번 기회에 서울역은 우리 담당으로 끌어오는 거야.”
“될까요? 이번 사태 때문에 더 힘들어질 것 같은데.”
“아니야, 반대야. 위험상의 이유로 우리가 주둔해야 된다고 주장하면 돼.”
정부를 설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더 많은 이득을 안겨 주든가, 우리 말대로 안 하면 아주 좆 될 거라고 겁을 주든가.
튜토리얼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줄은 아무도 모르고, 서울역의 포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아무도 모른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각성자들을 주둔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일단 종식이 형한테 연락부터 해 둬야겠네.”
“뭐라고 하시게요?”
“일본 파견 건부터 취소하자. 지금부터 A급 이상은 다 서울에 대기야.”
* * *
“치즈 김밥 세 줄이요.”
박민은 협회로 돌아가는 길에 김밥집에 들러 치즈 김밥을 주문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출출했다.
굳이 다른 이유를 꼽아 보자면, 그가 튜토리얼에서 가장 즐겨 먹었던 음식이 김밥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박민은 초창기 각성자였다.
튜토리얼과 괴물들이 이 세상에 나타나자마자 그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튜토리얼 1층으로 소환되었었다.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되는 초창기 튜토리얼.
별의별 문제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여태 선하게 기억나는 것은 음식 문제였다.
튜토리얼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식사는 1층의 육포뿐이었다.
1층을 클리어하고 2층으로 올라간 순간부터 도전자들은 모든 식사를 포인트로 구매해 해결해야 했다.
지금이야 어떨지 몰라도, 박민이 튜토리얼에 있던 시절은 한 푼의 포인트라도 더 아껴 포션을 사야 했다.
대다수의 도전자는 매끼를 육포와 건빵 등으로 때워야 했다.
가끔, 아주 가끔 본인의 생일 같은 날에나 다른 사람들의 선물을 모아, 모아 김치찌개 한 그릇 사 먹으면 그게 사치였다.
물론 박민은 그런 튜토리얼 안에서도 제법 부유한 편에 속했다.
자경단에서 주력으로 지원해 주던 도전자였으니까.
남들보다는 여유가 있었지만, 박민 또한 음식에 많은 포인트를 소비하지 못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김밥 한 줄씩 사 먹었던 것이 딱 그에게 허락된 수준의 사치였다.
박민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지구로 귀환해 처음 찾은 음식도 김밥이었다.
왜인지는 그도 잘 몰랐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먹었으니, 튜토리얼을 클리어한 그때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지.
단순히 자신의 성취를 실감하기 위해서였는지.
재밌는 건, 박민은 그 이후로도 김밥을 종종 사 먹었고, 그때마다 묘한 감상을 느꼈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어도 느낄 수 없는 그런 감상이 있었다.
힘든 시간 속에서, 하나의 보상으로 존재했던 음식이라 그런 건지는 박민 본인도 잘 모르고 있었다.
신경 쓰지도 않았고.
박민은 김밥이 포장된 봉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질문했다.
“제가 주문한 건 세 줄인데요?”
봉지에 든 김밥은 어림잡아도 대여섯 줄은 넘어 보였다.
봉지를 건네준 아주머니는 웃으며 덤으로 좀 더 넣었다 이야기했다.
푸근한 미소였다.
아주머니는 김밥 값조차 받지 않았고, 박민은 결국 공짜 김밥을 받아 들고 협회로 돌아가게 되었다.
‘유니폼이 좋긴 좋아.’
박민은 제 복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예전에는 각성자들에게 무슨 배트맨이나 슈퍼맨이 입을 법한 코스튬을 입히려 했었다.
시대가 지나 이제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지금 박민이 입고 있는 복장은 코스튬이라기보다는 지하철 공익 근무 요원이 연상되는 점퍼였다.
칙칙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복장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 복장으로 자신을 알아보았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공짜 김밥을 얻어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선의와 호감을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기쁠 수밖에 없었다.
박민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서울역으로 나왔을 때, 그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럴 만했다.
박민은 한국 최초의 각성자였으니까.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었다.
몇 년을 그렇게 보냈다.
사실 괴물 앞에 섰던 시간보다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선 시간이 더 길었다.
하지만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인터뷰와 방송을 통해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으니까.
그 당시 박민 그는 실제로 영웅이었다.
이미 흘러간 시간이었지만.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협회장실로 향했다.
중간에 마주치는 사람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 주고 나서야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와 김밥 봉지를 열어 볼 수 있었다.
* * *
“김밥입니까?”
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 내가 다 먹기엔 양이 너무 많더라고.”
“예. 그럼.”
이성은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김밥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김밥을 곧바로 입에 넣기보다는 잠시 기다렸다.
그의 입은 달리 할 일이 있었다.
“협회가 휘청할 겁니다, 협회장님. 협회의 근간은 각성자 아닙니까. 이번 일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이성은은 협회의 영향력 축소를 이야기했다.
각성자들이 귀환하지 않는 이 사태가 몇 개월 이상 지속되면 협회에 치명적일 것이고, 만약 이대로 영영 각성자들이 배출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거라고.
“내 생각은 다른데.”
박민은 이성은 팀장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건은 우리에게 호재야.”
“예?”
박민은 늘 생각해 왔다.
각성자가 너무 많다고.
“각성자의 영향력이 축소될 리가 없어. 이 세상에서 괴물들이 한순간에 말소되는 게 아니라면. 아니,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각성자의 위상은 변함이 없을 거야.”
오히려 괴물들이 없어진다면 각성자의 위상은 더 올라갈 것이다.
정부에선 쓸모가 없는 각성자들의 이권을 도로 빼앗으려 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각성자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너무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정부에, 그리고 기업에 소속되던 각성자들은 이제 반대로 기업을 소유하고 각국의 정부 요직에 앉아 거미줄 같은 인맥을 가지게 되었다.
각성자가 있어야 땅값이 오르고 사람이 모인다.
각성자가 돈의 흐름이었고, 안전한 삶을 보장했다.
강력한 각성자는 이제 국가의 역할을 일부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괴물이 없어진다면.
영웅의 자리에서 내려온 각성자들은 통치자의 자리로 올라갈 것이다.
물론 각성자들에게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느냐는 다른 문제이지만.
각성자들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막지 못할 것이고, 각성자들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거리낌이 없을 테니까.
“문제는 각성자들의 영향력의 축소가 아니야.”
오히려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다른 각성자들이 문제가 된다.
한국의 각성자들은 본래 협회와 정부, 두 개로 양분되어 있었다.
물론 각성자들의 해외 유출이 극심했던 탓에 양쪽 모두 다른 한쪽을 압도하는 형세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판도가 재편되었다.
김민혁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나오면서.
그는 나오자마자 길드를 설립했다.
그 온라인 게임에나 나올 법한 길드 말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한국인 출신 각성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것만으로도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각성자 공동체가 성립되었다.
한국 내에서, 하드 난이도 출신의 A급 이상 상위 각성자들은 대부분 김민혁의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박민으로서는 도대체 무슨 수를 써서 그 많은 각성자를 회유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박민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나왔을 때, 하드 난이도 도전자들은 채 50층을 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김민혁과 하드 난이도 각성자들 사이의 유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어찌 되었건 한 가지 확실한 건, 김민혁의 길드는 협회와 정부 모두에 위협이 되었다.
협회와 정부 소속의 각성자들을 죄다 모아 놓아도 길드의 규모를 따라갈 수 없었다.
만약 이대로 튜토리얼이 폐쇄되고, 박민의 생각대로 각성자들의 위상이 더 올라간다 해도 그 과실은 협회가 아닌 길드가 독식하게 될 것이다.
그게 문제였다.
“그러니 더 큰 문제가 필요하지. 판도를 재편할 만한 커다란 폭탄이 필요해.”
“혹시 생각해 두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이성은 팀장이 박민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사실 이런 대책을 생각해 내는 것이야말로 이성은 팀장의 일이었다.
무능하다는 평을 들을까 잔뜩 졸아든 이성은 팀장을 보며 박민은 지도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것은 평양 부근이었다.
북한은 괴물들의 침공 이후 빠르게 무너졌다.
그들은 더 이상 국가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가라기보다는 군벌에 가까웠다.
휴전선 인근의 군부대야말로 북한의 남은 전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너머는 괴물들의 침공에 무너져 사실상 공백지로 취급되었다.
박민이 가리킨 평양도 과거엔 북한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괴물들에게 점령된 공백지에 불과했다.
그런 공백지를 가리키며 박민은 이성은 팀장에게 물었다.
“여기에 G급이 있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