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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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89층 (2)
게이트가 생성되었지만 당장은 잠잠했다.
시간이 지나고, 저 게이트 안의 아공간에서 생성되는 괴물의 수가 일정 수 이상이 되면 바깥으로 뛰쳐나오겠지.
그때까지 아무도 이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인근 마을은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사실 미리 발견한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이 이 아공간으로 진입해, 안에서 생성되고 있는 모든 괴물들을 죽인 다음, 아공간의 핵을 깨뜨려 게이트를 닫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이트의 생성을 확인하고 던전으로 돌아갔다.
던전 바깥에는 일단의 무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병사들로 보였는데, 어째서인지 던전으로 진입하지 않고 근처에 대기 중이었다.
그들을 무시하고 던전으로 들어갔다.
던전의 길목마다 하수인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나에게 인사를 하는 하수인도 있었고, 지성이 떨어지는지 짖어 대는 놈도 있었다.
꼬불꼬불한 던전의 미로를 지나 던전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추출기가 있는 마지막 방으로.
마지막 방에 도착하자 대화 소리가 들렸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목소리 중 하나는 매우 귀에 익었지만, 다른 하나는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였다.
“누구야?”
방 안으로 들어가며 호치에게 물었다.
“아빠 왔다!”
“어, 왔냐.”
용용이와 호치가 나를 반겨 주었다.
내게 달려드는 용용이를 안아 들면서 마지막 방 안에 있던 낯선 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 이 아저씨는 던전 근처 왕국의… 그 뭐였더라, 아무튼 귀족이야.”
끄나풀이었군.
* * *
던전 밖에서 보았던 병사들은 마지막 방까지 찾아왔던 귀족의 사병들이었다.
귀족은 호치와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공손히 인사하고는 마지막 방을 떠났다.
안내역으로 붙은 괴물을 따라 던전의 통로를 걷는 귀족의 뒷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저런 놈은 언제 또 알게 된 거야.”
호치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호치가 말하기를, 우연히 던전에 들어왔던 저 귀족의 병사를 사로잡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서로의 정보를 적당히 공유하고 거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건수는 좀 커. 조만간 왕국에서 대규모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네. 막기 버겁겠지만, 이번 일만 넘기면 그만큼 편해질 거야. 미리 공습을 알고 있으니 막을 확률도 한층 높아질 거고.”
거참, 유용한 아저씨였다.
“저놈은 뭘 얻을 수 있길래 너한테 협조하는 거야?”
내 물음에 호치는 고개를 으쓱였다.
“뭐, 다양하지. 장물 중 원하는 걸 빼 줄 수도 있고, 사로잡은 포로 중 원하는 놈이 있으면 내주기도 하고. 적당히 돈도 주고받고, 경쟁자의 영지에 괴물을 풀어 주기도 하고.”
듣고 보니 호치도 저 아저씨 못지않게 유용했다.
고작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정말 별걸 다 하고 있었구나.
누가 보면 던전 경영만 한 십 년쯤 한 줄 알겠다.
아주 천직이네, 천직.
“뭘 또 질투하고 그러냐. 너도 하고 싶어? 지금이라도 끼워 줄까?”
말을 말자.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지금 내가 느끼는 착잡함은 유치한 질투 때문이 아니었다.
짜증과 답답함, 그리고 한심함 때문이었다.
“지구에도 저런 놈이 있겠지.”
그리고 그놈은 그리 멍청하지도, 한심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똑똑한 놈이겠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뭘 팔아넘기건 그 행동을 어떻게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타인의 도덕성을 논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입에선 한숨이 흘러나왔다.
“몇 놈이나 있을까.”
너무 많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바깥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 * *
“아니라고?”
“응.”
키리키리의 대답은 의외였다.
믿기 힘들 정도로.
“진짜야. 89층에서 네가 본 건 근원의 추출이 맞아. 하지만 백신전을 비롯한 만신전의 어느 신도 그렇게 근원을 추출하지 않아.”
나는 당연히 백신전의 신들도 89층 스테이지에서처럼 근원을 추출할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자신들의 정체성과 힘 외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신들이라면 당연히 근원을 긁어모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키리키리에게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상당히 의외였다.
“간단한 이유가 있어. 어느 정도 이상 근원을 추출당한 행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빠르게 쇠락하게 돼. 예전에 들어 본 적 있지?”
있었다.
근원이 사라진 땅은 그대로 폐허가 되고, 재건되지 않는다는.
직접적으로 확인되진 않았으나 근원과 관련된 스테이지를 거쳐 오면서 간접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행성의 근원을 추출해 얻을 수 있는 힘이 상당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한 행성의 미래를 없애면서까지 얻을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어느 행성의 미래가 사라진다 해도 신들에겐 아무런 해가 없다.
그렇다면 거리낄 이유가 없을 텐데.
“차라리 그 땅에 종교를 세우고 장기적으로 신앙을 얻는 게 훨씬 효율적이야.”
아, 효율인가.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근원의 추출과 종교의 신앙 사이에는?”
내 물음에 키리키리는 잠시 고민해 보더니 대답했다.
“경우에 따라 많이 다르지만, 한 행성의 최대 종교라는 가정하에 얼추 이백 년이면 행성의 근원 전부를 추출한 것과 비슷한 힘을 모을 수 있어.”
효율 차이가 크긴 했다.
행성이 죽지 않는다면 수천 년 동안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신앙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
“신들이 근원 추출에 관심이 없을 만하네.”
“그렇지? 신들은 절대 행성을 망가뜨려 가며 근원을 추출하지 않아. 자기 영역에서라면.”
마지막에 붙은 말 한 마디가 의미심장했다.
“자기 영역 바깥에선?”
“그걸 못 하게 하려고 신전의 규칙이 있는 거지.”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이 너무나 우스웠다.
근원을 추출하는 대신, 종교를 우선하는 건 신도와 그 행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서였다.
신전의 규칙들과 그로 인해 생겨난 여러 사태는 결국 서로의 영역을 보존하기 위한 협약에서 비롯되었다.
그것도 득실의 논리에 따라.
스케일이 남다르긴 했지만, 인간들이 사회 안에서 아옹다옹하는 꼴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스케일이 크다는 사실 때문에 더 추해 보이기도 했다.
키리키리는 내 웃음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억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래도 신전의 시스템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만약 신전이 없었다면, 그래서 아무런 제재 없이 신들이 다른 존재의 영역을 침범해 힘을 뽑아내는 일이 자행되었다면 지금 이 세상에 온전히 남아 있는 문명은 몇 없을 거야.”
신전과 그 시스템의 효용성에 대해선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신경 쓸 문제도 아니었고.
“그럼 백신전이나 만신전 내에 속해 있다는 완성자들은?”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애초에 그들을 신전에 소속시킨 건 우리의 뜻이었으니까.”
애초에 신전의 시스템 자체가 서로에게 목줄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이다.
나는 그동안 어떤 이유에서 생겨난 시스템이 그 규모를 더해 가고 신들을 지나치게 제약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제 보니 시스템은 애초에 제약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문제는 신전에 소속되지 않은 완성자들이야. 그들이 세를 불려 나가고 있어. 반대로 신전 내부의 제약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그 결과가 슬슬 나타나고 있어. 지구가 바로 그런 경우였지.”
“지구?”
갑자기 지구가 언급되었다.
“지구는 백신전의 공동 구역이었어. 완충지대라고나 할까. 그런 지구에 완성자들이 손을 뻗쳤을 때, 우리는 튜토리얼에 인간들을 소환해 그들을 양성하는 것 외에는 달리 나설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키리키리는 내가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뛰어난 사도를 애타게 바라는 것도, 너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모두 같은 이유야. 백신전의 신들은 강력하지만 그만큼 강한 제약을 받고 있으니까.”
키리키리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신전의 규제는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완성자들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의 세를 불려 나가고 있어. 언젠가 저울추가 저쪽으로 넘어가 버리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해. 완성자들을 소탕하든, 불필요하게 쌓여 가고 있는 규제를 걷어 내든.”
완성자들을 소탕하고, 그들의 세를 줄이려면 사도가 아닌 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
완성자들도 신격을 얻었다 했으니.
신이 직접 나서려면 제약에 걸리고.
마지막 수순으로 완성자들을 족치기 위해 제약을 깨부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완성자들은 신전 내부의 사정에 밝은 모양이네.”
신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들의 영역을 애매하게 침범하지 않으며 세를 불리고 있다.
당연히 신들의 고유 영역과 그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제약에 대해 잘 알아야만 한다.
“아주 잘 알고 있징.”
키리키리가 눈을 번뜩였다.
무언가에 대한 적의가 보이는 눈빛이었다.
키리키리에게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49층을 기억해?”
“어.”
워낙 인상이 깊었던 스테이지라 잘 기억하고 있었다.
“49층에는 신의 성지가 있었지. 물론 숨겨진 성지였고, 작은 규모였지만. 그럼에도 그 세계는 근원의 괴물로 뒤덮였어.”
희망의 신의 성지가 있었다.
물론 괴물들은 성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괴물들은 대륙의 대부분을 점령할 수 있었다.
아마 그 대륙 어딘가도 추출기가 설치되고, 근원이 추출되었겠지.
나는 키리키리에게 어떻게 신의 성지가 있는 행성에서 그렇게 괴물들이 날뛸 수 있었는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키리키리는 그 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저 한 가지 당부를 반복했다.
“기억하고 있어야 해.”
* * *
“새삼 나한테 얼마나 큰 기대가 걸려 있는지 알겠는데.”
“그랭?”
케이크를 먹고 있던 키리키리가 물었다.
조금 전에 심각한 얼굴로 정보를 알려 주던 것과는 매우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키리키리는 옆에서 함께 케이크를 먹고 있는 호치와 용용이보다 한 입이라도 더 먹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내 대답에 대꾸하고 있긴 했지만, 마지못해 하는 것에 가까웠고, 눈과 입, 손은 온전히 케이크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내가 사도가 되길 거부한 이상, 나는 완성자나 다름없지.”
신에 필적하는 힘과 능력을 가졌지만, 신전의 제약과는 무관하게 움직일 수 있다.
“동시에 신들이 바라는 것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고.”
“네 선택이양. 원하는 대로 해.”
키리키리는 여상스럽게 말했다.
말투만 들어서는 케이크에 정신이 팔려 대충대충 대답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키리키리가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튜토리얼을 해방시키길 원한다.
그 방법으로 나는 신전의 시스템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얻은 정보대로라면, 튜토리얼 해방을 위해선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튜토리얼의 소유주인 백신전의 신들의 동의.
그리고 그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대가.
무언가를 가져오려면 필연적으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과연 백신전의 신들은 튜토리얼을 내게 넘겨주는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까.
여러 가지가 떠올랐지만, 모두 거기서 거기였다.
“이거 나가서도 용병 노릇을 하게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