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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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1)
이야기를 마친 협회 사람들을 내보냈다.
“저대로 내보내도 되나.”
“안 될 게 뭐 있나.”
할 말 다 했고, 더 할 말 없으니 보내는 거지.
“아니, 박민 말이야.”
그것도 상관없었다.
어디다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판단하는 것도, 처벌하는 것도 내가 될 테니.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니 알아서 찾아오게 두면 된다.
박민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새로운 방안을 찾아 대처하든, 두려움에 떨며 이곳으로 찾아오든.
전자라면 새로운 걸 알아낼 수 있으니 좋고, 후자라면 그냥 처리하면 된다.
“정부 쪽은 어때? 어제 도심 한복판에서 그 난리를 쳐 놨는데.”
호치가 물었다.
이런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던 호치가 이런 걸 물어보니 좀 의외였다.
“지금 읽는 소설 보니까, 보통 이럴 때 정부가 병크를 터뜨려야 되던데.”
“뭔 소설인데 그런 게 나오냐.”
호치는 거의 대부분의 소설에 등장한다고 답했다.
클리셰인 모양이다.
김민혁이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 당장에 무언가 행동을 시작하지는 않을 거야. 범죄를 일으킨 각성자의 구속은 보통 협회에 협조를 받아야 하거든.”
그만큼 정부의 각성자 전력이 빈약하다는 말이다.
군대는 도심 한복판에서 날뛰는 각성자를 제압하기에 부적절했다.
그러고 보니 방금 들었던 협회가 나와 정부 사이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건, 여차했을 때 정부의 요청을 무시하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아까 집으로 돌려보낸 아저씨가 용감할 만했네.
서로에게 좋고 좋은 이야기였으니, 내가 화낼 거라는 우려 없이 자기가 할 말을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사법부에서는 처벌을 논의하겠지만, 뭐, 시행이 불가능하니까. 경찰이 단독으로 움직일 리도 없고. 아마 행정부에서는 적당한 타협안을 들이밀 거야.”
서울역 일을 그냥 넘어가는 대신 몇 가지 요청을 한다든지.
친정부파로 끌어들이려 한다든지.
김민혁은 그렇게 몇 가지 자신의 예상을 설명했다.
그럴싸했다.
“뭐가 됐든 움직이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
“그렇지. 그쪽에서도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합의를 봐야 하니까. 언론과 대중의 반응도 신경 써야 하니, 조치 중이라는 말을 내놓고 며칠 돌아가는 상황을 두고 볼 수도 있는 거고.”
당장 귀찮아질 일은 없겠네.
다행이었다.
“각성자들이 힘의 우위를 가진 지도 몇 년이 지났고, 정부도 이래저래 타협하는 게 익숙해졌으니, 황당한 제안을 해 오지는 않을 거야. 그쪽 사람들도 머리가 있고, 대가리가 돌아 버린 각성자 한 명이 무슨 짓을 할 수 있을지는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물론 적당한 제안을 해 오더라도 너는…….”
“관심 없지.”
김민혁은 ‘그래, 문제는 거기부터 생길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 먼저 신경 써야 할 문제는 대중일 거야.”
김민혁은 최근 한국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시위가 계속되고 각성자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심화되고 있던 상황을.
“내 덕에 좀 잠잠해지겠네.”
“…더 난리가 커지는 게 아니라?”
“당연하지. 원래 집 지키는 개한테는 왜 할 일을 안 하냐고 화낼 수 있는 거야. 하지만 개의 덩치가 감당할 수 없이 커지고, 사람을 알아보지도 않는다면 화내기에 앞서 겁내겠지.”
김민혁은 감탄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를 비유로 드니까, 놀랍도록 잘 어울리는데?”
이 자식이?
“그래도 어떻게 하긴 해야 돼.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등 돌린 채 살아갈 수는 없어.”
김민혁은 꿋꿋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대중의 문제를 해결하긴 해야 한다.
그들을 저대로 두는 건 이래저래 손해였다.
어떻게 할까.
무언가 창의적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떠오르는 게 없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가는 게 좋겠다.
61층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방법으로.
“사람들한테 공표해. 무슨 병이든 치료해 주겠다고. 한 달에 선착순으로 서른 명만. 아, 막 죽은 사람이면 살려 줄 수도 있어.”
무조건 선착순으로.
병의 경중과 상관없이.
“…그게 가능해? 엘릭서라도 가져왔어?”
물론 가져왔다.
하지만 여기서 쓸 것은 아니었다.
엘릭서가 없더라도 인간의 병을 치유하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잠시 내 제안을 두고 고민하던 김민혁은 불안하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오히려 반발이 생기지 않을까.”
김민혁은 여러 경우를 이야기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사람들은 능력이 있음에도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지 않는 나를 비난할 수도 있다.
게다가 선착순을 무시하려는 권력자들이 생길 수도 있다.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무궁무진했다.
그런 김민혁의 설명을 들었지만, 나는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선의로 남을 도우려는 봉사자들이 누군가의 종 취급 당하는 일은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사람은 관계에서 사회성을 얻은 존재이고, 선의로 가득한 봉사는 구호를 주고받는 수직 관계를 역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거야 힘없는 호구들 이야기이고.
불행히도 사람들은 내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없다.
나는 이미 헬 난이도를 클리어하고 나오면서, 그리고 서울역을 터뜨리면서 힘을 증명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증명해 나갈 것이다.
굳이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내 힘에 대해.
물론 절박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친지를 위해 자비를 구걸하며 비는 사람도,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절박함에 인정을 베풀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해 수직 관계를 확고히 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한 관계의 역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절박함이야말로 내 힘이 된다.
“원성이 모든 것을 덮어 버릴 만큼 커질 수도 있어.”
김민혁은 계속 선착순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박탈감과 그들의 분노를 나에게 이해시키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해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원성은 엄청날 것이다.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것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화제가 과열되면 자연히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지적하고 비난할 것이다.
나는 그 진흙탕에 끼어들지 않는 걸로 충분했다.
물론 왜 여력이 있음에도 모두를 구해 주지 않느냐는 의문은 계속 남을 것이다.
그를 위한 아주 좋은 답이 존재했다.
‘너희의 믿음이 부족하다.’
기가 막힌 대답이다.
그 대답 하나로 나와 모든 인간을 다르게 분류하고, 모든 인간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너희 탓이라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들이 절박할수록, 나를 유일한 희망으로 여길수록 나를 두둔하고 신성시한다.
서울역에서의 폭발도 내 변덕이 아니라 무언가 의미가 있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둔갑시킬 것이다.
무지한 인간은 그 무지를 자신만의 상상으로 채워 넣고, 곧 그 상상을 진실로 믿게 된다.
“이걸 어찌해야 되나. 어휴…….”
김민혁은 결국 나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에 이 일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다.
“두 번째 달에는 서른한 번째부터 다시 서른 명을 치유하는 거지?”
“아니.”
당연히 아니지.
“두 번째 달에는 두 번째 달의 서른 명을 다시 받아야지. 선착순으로.”
“…그럼 첫 달의 서른한 번째 사람은?”
꽝이지.
대기 순번을 다음 달, 그다음 달로 연장하는 건 안 된다.
대기 순번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사람들은 구원에 목매는 것을 그만두고 그것을 남의 일로 치부할 것이다.
그때 돌아올 감정은 절박함이 아니라 강한 질투와 증오가 된다.
매달 모두가 참가하고 모두가 기대를 걸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인데. 차라리 선착순 말고 추첨으로 하는 게 낫지 않아? 선착순으로 받으면 정말 개판이 될 거야.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개판이 되라고 하는 일이다.
“선별 자체가 어려울 거야. 1초 만에 수백, 수천 명이 몰려들 텐데 그걸 어떻게 순번을 가려. 혹시 네가 따로 방법이 있으면…….”
“추첨으로 하자.”
그냥 추첨으로 가자.
잘못하면 내가 직접 매달 사람들의 순서를 가려내게 생겼다.
귀찮았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 정도면 가만두기만 해도 신앙이 자연히 생긴다.
압도적인 힘에 상징성도 충분했고, 치유의 기적이라는 이적 행위까지.
방치할 테니 광신이 되어 갈 테지만, 그 또한 신앙이다.
신앙이 생기고 신도들과의 연결이 생겼을 때, 그것을 통해 몇몇 신도에게 따로 상을 주고 관리해 주어 내 존재를, 내 전지함을 몇 번 과시하면 그것으로 종교가 자리 잡는다.
어렵지 않았다.
결국 시간문제다.
수고를 많이 들이면 빠르게 자리 잡고, 덜 들이면 조금 더 오래 걸릴 뿐이었다.
종교는 인간들이 세우는 것이다.
신은 그저 종교의 토대가 될 이야기를 준비해 주기만 하면 되었다.
61층에서 몇 번이고 종교를 세워 보며 느꼈던 것이지만, 시간 문제를 무시한다면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시간에 쫓기는 신은 없다.
이러니 태생이 괴물 따위였던 완성자들도 신이 되어 날뛰는 거겠지.
김민혁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옆에서 조용히 무릎 꿇은 채 입 닥치고 있던 사마귀를 보았다.
아까의 조용히 있으라는 말 때문인지 협회 사람들이 간 이후에도 조용히 있었다.
이 모질이도 시간만 있었으면 지구에서 신이 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사마귀가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며 지구에서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던 것은 그런 준비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귀야.”
“네! 한국 협회장이랑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부터 말씀드릴까요?”
사마귀는 내가 말을 걸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사마귀 앞다리랑 날개는 왜 달고 있는 거야.”
인간 모습이야 지구인들을 따라 했다 쳐도.
왜 사마귀와 인간이 반반 섞인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원래 사마귀였나?”
“아뇨, 사마귀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어떤 점이.”
사마귀에 좋은 점이 뭐가 있지.
“아빠! 완성됐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용용이가 사마귀의 집을 준비했는지 2층에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우연히 풀밭에서 봤는데, 그 사마귀 암컷이 교미 중에 수컷을…….”
다가오던 용용이가 들을까, 급히 사마귀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 * *
사마귀에게서 완성자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마저 캐내었다.
그리고 사마귀를 용용이에게 넘겨주었다.
용용이가 준비해 온 것은 초등학교 방학 숙제 할 때나 볼 수 있을 법한 작은 곤충 채집통이었다.
목에 걸 수 있도록 줄까지 달린.
용용이가 채집통의 문을 열자 채집통은 사마귀를 빨아들였다.
무슨 피콜로 빨아들이던 호리병처럼.
공간 왜곡으로 사마귀의 몸을 작게 만드는 효과에, 강제 소환 효과에 온갖 보호 효과가 주렁주렁 달린 채집통이었다.
저거, 좀 탐나는데.
미니어처 크기로 작아진 사마귀는 채집통의 벽을 통통,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자유롭게 풀어 준다고 했잖아요! 정보도 다 드렸잖아요! 충분히 값진 정보였잖아요!”
열심히 소리를 질렀지만 몸이 작아져서인지, 채집통의 효과인 건지 모기가 앵앵거리는 정도의 소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대답은 해 주기로 했다.
“어, 미안, 거짓말이었어.”
사마귀가 준 정보는 유용했다.
솔직히 말해,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의 정보들이었다.
하지만 풀어 주기는 싫었다.
용용이도 섭섭해할 거고.
사마귀는 대경한 표정으로 빽, 소리쳤다.
“신께서 이렇게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건가요!”
“어, 돼.”
내 신성은 정직과 별 연관이 없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구라를 칠 수도, 치졸해질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