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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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1)
시원한 풍경이었다.
새하얀 바닥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남극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 위로 보이는 맑고 푸른 하늘도 아름다웠다.
서울에 있다가 이런 데 오니, 지구도 나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한 공기도 좋았다.
기온도 시원하니, 할멈을 데려올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왔으면 좋아했을 텐데.
지금이라도 소환해볼까 하는 고민을 잠시 해보았다.
“이 근처예요. 형. 여기서부터는 힘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접근하지 않았어요.”
이준석이 말했다.
김민혁은 필요 없다는 내게 기어코 이준석을 붙여서 보냈다.
솔직히 짐이 될 뿐이었지만, 남극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는 말에 혹시 몰라 데리고 왔다.
G급이 자리 잡고 있는 장소는 하나같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였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G급의 서식지는 다름 아닌 남극이었다.
근처에 사람이 전혀 없기에, 인근 지역에 대피령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김민혁은 이곳을 추천했다.
이준석이 근처라고 말해서인지 주변에 돌아다니는 괴물들이 눈에 띄었다.
물론 G급은 아니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잡몹들이었다.
“원래 던전 주변에는 저렇게 몬스터들을 뿌려두는 게 좋지. 던전 위치가 확정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왕 위치를 들킨 상황이라면 그것도 상관없을 테고. 우선 침입자들을 저지하는 파수꾼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저 괴물들이 죽을 때마다 던전 중심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미리 침입자를 확인할 수도 있어.”
호치가 설명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확실히 이 녀석 신 나 있는 것 같다.
옆에 있던 용용이가 ‘삼촌, 대단해!’ 하면서 호치를 칭찬했다.
우리 아들은 어쩜 저리 착할까.
호치는 칭찬이 흐뭇했는지, 씩 웃었다.
쿨하게 미소를 지어주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입꼬리가 신나게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설명을 계속했다.
“인식 방해 결계를 쳐놨네. 가격이 비싸지만, 제값을 하는 결계지.”
그런 호치의 모습이 재밌기도 했지만, 웃지 않고 진지하게 경청하기로 했다.
굳이 알아둘 필요가 있는 정보는 아니었지만, 신 나서 설명하고 있는 호치의 말을 끊고 싶지 않았다.
“던전이 여기에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결계가 아니라, 사람에게 위화감과 불안감을 심어주어 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결계야.”
호치의 말에 이준석은 크게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그럼 정말 여기 있는 게 괴물 하나가 아니라 던전이라고요?”
호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나는 그보다 이준석이 던전을 알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하드 난이도에 몇 번 등장했었어요. 던전을 공략하는 스테이지였는데, 저는 그냥 게임에서 따온 구성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흥미로웠다.
하드 난이도에서는 던전을 공략하는 스테이지가 나왔다.
단순히 타도와 공략의 대상으로.
하지만 헬 난이도에서는 던전을 직접 운영하는 스테이지가 나왔다.
물론 반대의 입장을 경험해보고 더 수월히 타도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던전을 운영하면서 헬 난이도 도전자는 던전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그것을 완성자들이 왜 원하는지 알게 된다.
확실히 헬 난이도와 여타 난이도들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난이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애초에 도전자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방향 자체가 달랐다.
어쨌든, 지금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이준석도 던전이 등장하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적이 있다 하니, 어느 이상으로 얼 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데리고 오길 잘한 것 같다.
“그럼 들어갈까?”
“예?”
이준석의 반문을 무시하고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가볍게 공간 결계를 깨부숴주었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유리 깨진 것처럼 일그러지더니, 이내 감춰져 있던 공간이 나타났다.
던전의 입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이준석이 중얼거렸다.
뭐긴 뭐야, 결계지.
맹한 이준석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녀석 왜 이렇게 아는 게 없지.
“너 근데 사도는 왜 안 됐냐?”
사도라도 했으면, 뭐라도 좀 알 수 있었을 텐데.
“형이 사도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런 단순한 놈을 봤나.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잘했어.”
대답을 하고 나니, 때마침 공간의 일그러짐이 완전히 사라졌다.
던전의 입구가 완전히 드러났다.
“음.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닌데.”
“뭐가.”
호치에게 물어보았다.
“이 입구 형태는 별로 추천할 만한 게 아니야. 내구도 떨어지고 침입자에게 공포를 심어줄 수도 없어. 그렇다고 상대를 자만하게 할 만한 모습도 아니고.”
던전 입구는 고대 그리스의 신전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대리석으로 짜여져 있는 듯했고,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는 벽면이나 장식들은 보면 공들여 건축했다는 티가 많이 났다.
하지만 상대에게 비웃음과 방심을 이끌어낼 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모습 탓에 오히려 침입자들은 적당히 긴장하게 될 것이다.
“궁전을 만들어놨네.”
호치가 아는 던전은 쉴 새 없이 적들이 몰아치는 던전이다.
하지만 이 남극의 던전에는 침입자가 없다.
간혹 이준석 같은 놈이 와도 결계 주변을 배회하며 근처의 괴물이나 때려잡다가 돌아갔겠지.
그러니 침입자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다.
“흠.”
마음에 안 드는데.
완성자에 붙어서 세상에 게이트와 몬스터들을 뿌려 혼란을 야기하고, 고향 행성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놈이 이렇게 잘 차려놓고 지낸다니.
괜히 배알이 꼴렸다.
“들어가자.”
“저는 여기다 두고 가면 안 될까요!”
용용이 목에 걸린 채집통 속에서 사마귀가 말했다.
“안 돼.”
“아니면 아까 그 집에 가 있을게요! 어디 안 도망가고 가만히 있을게요!”
“안 돼.”
사마귀가 울상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용용이는 그 모습을 보다가, 또 뭐가 미안했는지 사과했다.
“걱정 마.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지켜줄게.”
상냥하게 말하는 용용이를 보면서 흐뭇함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우리 아들이 너무 착해서 걱정이다.
* * *
던전 안에 들어온 이후, 호치의 설명충스러운 수다는 더 심해졌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저 조명은 다른 조명보다는 조금 더 비싸지만, 던전 중추에서 온오프가 가능하지. 무엇보다 침입자들이 뽑아서 횃불 대용으로 쓸 수 없다는 게, 큰 특징이야.”
“…그래.”
이따금 함정이 튀어나오더라도.
“폭발 트랩이야. 한 번 터진 다음, 작동을 멈춰 상대를 안심하게 하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다가오면 다시 작동을 개시하는 트랩이야. 보통 뛰어난 길잡이 한 명이 트랩을 모두 해체하고 다닐 때를 대비해 사용해. 길잡이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비교적 부주의한 편이거든.”
혹시 괴물이 튀어나오더라도.
“저 녀석은 자이언트 클리퍼라고, 좁은 길목의 수문장으로 쓰면 효과적인 녀석이야. 큰 룸에서 다른 몬스터와 조합하기는 좋지 않아. 단독으로 쓸 때 진가를 발휘하는 놈이지.”
물론 호치의 저런 설명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조명이 뭐가 달렸건, 무슨 함정이 있건, 어떤 괴물이 난입하건, 일행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괴물들이 용감하네.”
보통 평범한 괴물이라면 나를 보자마자 뒤로 돌아 도망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곳의 괴물들은 모두 우리에게 달려들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사기 관리도 던전 운영의 중요한 부분이지. 하지만 이 던전에서는 몬스터들의 사기와 공격성을 최대로 유지하는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가격이 너무 비싸서 직접 몬스터들을 북돋아주는 것에 비해 너무 손해지만, 이렇게 강적이 급습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써야겠지.”
…그래, 그렇구나.
참으로 놀랍다는 식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호치는 별로 반응하지도 않았다.
너무 흥분해 있어서, 내 대답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다.
용용이도 더 이상 호치의 설명에 칭찬을 하지 않았다.
계속 따분한 설명을 들으며 걷다 보니, 좀 졸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걷는 속도를 높였다.
절대 호치의 설명을 조금이라도 덜 듣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조금 걷다 보니, 문이 등장했다.
“던전은 보통 통로와 방, 두 가지 형태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런 문 너머에 있는 방은 보통 함정 방, 교전 방, 보상 방 등이 있고. 보상 방의 경우는 조금 특이한데, 침입자들이…….”
벌컥.
거칠게 문을 열었다.
절대 호치의 입을 잠시라도 다물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방 안에는 한 마리의 괴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특이한 모습의 괴물이었다.
이족 보행을 하는 사람 키만 한 늑대개에게 옷을 입혀둔 모습이었다.
“오. 저 몬스터는 지능이 높아. 말도 할 줄 알고, 보통 던전의 관리를 맡길 때 고용하는 녀석이지.”
“어서 오십시오.”
호치의 말대로 늑대개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로드께서 손님분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늑대개는 그렇게 말하며 대뜸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잠시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냥 따라가기로 했다.
귀찮음을 덜어주겠다는데 사양할 필요 없어 보였다.
“로드는 뭐야.”
“던전 로드. 던전의 운영자를 말하는 거야.”
호치가 내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로드.
키리키리는 이성을 얻게 된 근원의 괴물들은 완성자 혹은 지배자라 불린다 했다.
여기서 시작된 어원인 듯했다.
혹시 저 늑대개가 안내하고 있는 길의 끝에, 완성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기대를 했다.
늑대개는 이리저리 던전의 숨겨진 길들을 따라 우리를 안내했다.
제법 구조가 복잡했다.
그 구성에 대해 호치가 계속 설명했지만, 나는 더 이상 무의미한 정보를 내 머릿속에 저장하고 싶지 않았다.
입으로만 응, 그래, 그렇구나, 대단하네 하는 말을 반복하며 멍하니 걸었다.
이윽고 우리 일행은 늑대개의 안내를 따라 전에 없이 화려한 문 앞에 도착했다.
늑대개는 문을 열어주고 옆으로 비켜섰다.
“어서 오십시오. 정말 반갑습니다.”
조금 전 늑대개가 했던 말과 똑같이 우리에게 인사하는 남자가 있었다.
완성자는 아니었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언제고 찾아오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이야! 생각도 못 했습니다. 때문에 준비가 늦어 인사드리는 것이 조금 늦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토마스 펠트추크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각성자는 아니네.”
이상한 이름을 한 남자의 소개를 끊고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튜토리얼의 초대를 받지 못했죠.”
“그런데 한국말은 잘하고.”
“던전 추출기를 통해 얻는 포인트로 몬스터와 함정, 던전만을 강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본인 스스로를 강화할 수도 있어. 언어 스킬을 구매했겠지.”
어쩐지.
각성자는 아닌데, 인간치고는 너무 튼튼해 보이더라.
“그 강화가 뭔지는 몰라도 이것저것 많이 했나 본데.”
알 수 있었다.
어지간한 각성자는 저 토마토인가 토마스인가 하는 남자의 손끝 하나 건드리기 힘들 것이다.
옆에 있는 이준석 정도나 돼야 해볼 만하겠지.
토마스는 내가 말을 받아주지 않아서인지, 어색하게 웃다가 정중하게 식탁을 가리켰다.
식탁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몇 사람이 배부르게 먹을 정도가 아니라, 수십 명이 뷔페식으로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이었다.
“멀리서 오셨는데, 식사는 하셨습니까?”
방을 둘러보았다.
식기와 가구, 실내 인테리어까지.
호치의 설명대로라면 이 모든 걸, 근원 추출기로 뽑아낸 에너지로 구매했다는 거지.
키리키리는 던전의 대리인은 추출한 근원 에너지 일부를 던전의 진짜 주인인 완성자에게 보내고, 남는 것으로 던전을 관리한다고 설명했었다.
이제 보니, 그 남는 에너지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생각을 마치고 토마스에게 다가갔다.
토마스는 의아한 표정을 했지만, 뒷걸음질 치지는 않았다.
입가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미소에는 여유가 느껴졌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을 들어 올렸다.
토마스는 악수를 하자는 건 줄 알고 제 손을 들어 올렸지만, 내 손은 그의 손을 무시하고 계속 올라갔다.
토마스의 뒤통수를 잡고 식탁에 내리꽂았다.
쾅!
뭘로 만들어진 건지, 식탁은 깨지면서 폭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었다.
식탁이 쪼개지면서 그 위를 가득 채우고 있던 음식과 술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토마스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토마스는 죽지 않았다.
힘 조절이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 달 뒤, 아공간에 유폐 보냈던 일곱 명이 돌아왔을 때, 효과적으로 갈굴 수 있을 것 같다.
토마스를 내 눈높이까지 위로 들어 올렸다.
“야.”
“푸헥.”
토마스는 대답하기보다는 입에 가득 찬 피와 깨진 이빨을 뱉어내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표정이다.
“야. 안 들리냐? 고막이 나갔나.”
“갑자기, 갑자기… 왜…….”
대충 들리는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너 근데 누구 허락받고 여기서 장사하냐?”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