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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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2)
“호치야, 가서 중추 좀 뜯어 봐. 이 자식 얼마나 해 먹었는지 확인 좀 해 보자.”
그 말에 한 남자가 오른쪽 두 번째 옆문을 열고 방으로 나갔다.
정확히 던전의 중추, 추출기가 위치한 방향이었다.
토마스는 절대로 외부인의 접근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중추를 향해 다가가려는 남자를 막을 수도, 붙잡을 수도 없었다.
중추는 말 그대로 던전의 모든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플레이 로그는 물론 던전의 운영과 지구 각지에 퍼져 있는 몬스터들의 관리와 현황까지.
중추를 내주는 것은 던전을 통째로 내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뭘 그렇게 서럽게 우냐. 억울하냐?”
억울했다.
허망하고, 또 억울했다.
토마스는 지금 이 상황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토마스 펠트추크.
독일 태생의 과학자.
천문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유사 과학, 그러니까 사이비 과학에 투신한 과학자였다.
사이비 과학의 신봉자 대부분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론을 가장하려 하지만, 실상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제법 특이한 이력이었다.
토마스 펠트추크는 일종의 선전물이었다.
단순한 자랑거리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론은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것이 아니다.
고명한 천문학 박사도 우리의 이론을 지지한다.
그렇게 사아비 과학의 타당성을 끌어올려 주는 역할이었다.
한편으로는 사이비 과학의 빈약한 이론의 허점들을 보충해 주기도 했다.
순탄한 종교 생활은 아니었다.
토마스가 처음 사이비 과학에 투신하고, 그의 이름이 잡지에 내걸렸을 때 토마스는 생전 본 적도 없는 학계 선배들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한때 그와 함께했던 동료들 또한 그랬다는 점이었다.
자신을 투명 인간 취급 하던 동료들이 자신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토마스 개인의 감상이었다.
토마스의 경력은 한순간에 길가에 내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와 같은 꼴이 되었다.
어떻게 번호를 알아내었는지, 학계의 사람들은 ‘정말 실망했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오고는 했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런 나날이 기꺼웠다.
집회에 나가면 자신을 마치 신이 내린 사자처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좋았고, 높은 자리에서 뭐라도 된 것처럼 연설을 하는 것도 좋았다.
대우받는 것이, 주목받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말이 신의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했고, 감격하고 불안해했다.
학계와 동료들의 비난 또한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심적으로 고통스럽기도 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졌다.
이내 토마스는 비난마저도 즐기게 되었다.
비난을 받을 때마다 토마스는 유명한 코믹북의 빌런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또한 주목이었고, 관심이었다.
처음 빚을 갚기 위해 사이비 단체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는 정말 많은 후회를 했었지만, 돌아보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대격변이 일어났다.
세계 각지에 괴물들이 나타나 날뛰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이비 종교의 집회는 중지되었다.
더 이상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없었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기존 가치들이 붕괴되고 있는 세상에서 토마스, 그는 단지 나이 많은, 지인도, 친구도 없는 노인에 불과했다.
갑자기 뒤바뀌어 버린 세상을, 그리고 떠나 버리는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런 그의 귓가에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이비 종교에 투신한 그였지만, 정말로 저 우주 너머에 신이 존재하며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불신을 고백하며 용서를 비는 토마스에게 신은 기꺼워하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신의 대리인이 되라는 말이었다.
죄에 물든 인간들을 단죄하기 위한 대홍수에서 그를 믿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구했던 노아처럼.
신의 선지자가 되어 지구에 남을 소수의 사람들을 이끌라는 제안을 토마스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것이 신의 제안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남극에 위치한 던전의 주인이 되었다.
던전의 운영은 마치 게임과 같았다.
던전 중추에 떠오른 홀로그램으로 던전을 성장시키고, 인간들이 던전을 눈치채지 못하게 이곳저곳 타격하는 것은 정말로 게임을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덕분에 토마스는 빠르게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는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도시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가를 고심했다.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수록 토마스는 즐거웠다.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나온 각성자들이 있었지만,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아 내기만 할 뿐, 토마스에게 위협이 되진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던전 중추를 통해 얻게 되는 에너지의 양도 점점 늘어갔다.
신께 바쳐야 할 에너지와 던전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덜어 내고 나서도 에너지가 남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노쇠했던 그의 육체는 빠르게 젊어졌고, 강해졌다.
되찾은 젊음은 그저 던전 안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건강해지자 도리어 생각이 많아졌다.
욕심이 커졌다.
몇 년이 지나자 그는 주먹을 휘둘러 빙하를 조각내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던전의 수많은 몬스터 중에서도 토마스 그 자신보다 강력한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토마스는 이동 포털을 설치해, 남극의 던전에서 지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습격이 예정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 습격을 지켜보았다.
하급 몬스터의 출연에 혼비백산해 도망치는 사람들과 급박하게 모이는 군인들과 각성자들.
그리고 너무나도 치열한 그들의 투쟁을 지켜보았다.
그는 전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세상 이면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세상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몬스터들을 실질적으로 조종하고 또 통제하고 있었다.
가진 힘은 각성자라는 이들마저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신의 대리인이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던전 근방의 몬스터 무리 일부를 일격에 일소시키며 등장한 각성자들을 확인했을 때도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각성자들이 누군지는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나온 헬 난이도의 각성자, 이호재와 그의 일행이었다.
토마스는 그들을 포섭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압도적인 우월감으로 인간들을 깔보는 것도 즐거웠으나 지나친 격차는 그에게 따분함을 가져다주었다.
적당한 부하와 동료가 있었으면 했다.
누구와도 나누지 못했던 주제들을 함께 털어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만찬 자리를 준비하고 각성자 일행을 마주했다.
그리고 지난 모든 시간이 거짓이라도 된 듯, 저 하늘 위를 날고 있던 토마스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 * *
“대충 420억 포인트 정도.”
“그게 어느 정도인데.”
던전에서 사용하는 포인트가 어느 정도의 단위인지 모르니 말해 줘도 알 수가 없었다.
“89층 스테이지의 목표치가 1억 포인트였어. 89층 스테이지의 무대가 되었던 행성의 근원을 다 모으면 1,000억포인트 정도 될걸.”
행성의 근원 총합이 1,000억 정도라고?
거기서 420억이면 벌써 반 가까이 빼먹은 거잖아.
“많이도 해 먹었네. 야, 야.”
뺨을 몇 대 때리자 정신이 돌아왔는지 눈을 떴다.
점점 힘 조절이 익숙해지고 있다.
“야, 너는 무슨 깡으로 도망도 안 가고 그랬냐.”
그게 제일 기가 막혔다.
나는 우리가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이놈이 튈 줄 알았는데.
끝끝내 자리를 지키는가 싶더니, 우리를 안내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게 함정도 아니었다.
“지구에 몬스터를 풀어놓고 있던 놈이 이제 와서 반갑다고 하면 내가 똑같이 반가워할 줄 알았냐? 이해가 안 가네.”
토마스라는 놈은 눈을 뜨긴 했지만 제대로 대답하진 못했다.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역시 힘 조절 실패인가.
호치를 바라보았다.
“어때, 네가 쓸 수 있을 것 같아?”
“당연하지. 보안이 있긴 했는데.”
“그런데?”
“내가 다 뚫어 놨지, 벌써.”
호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라서 그런지 의욕적일 뿐만 아니라 유능하기까지 했다.
낯설었다.
“그럼 이놈은 필요 없겠네.”
빌빌거리고 있는 토마스의 목을 뽑아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십 몇 년간, 수천만 명, 어쩌면 수억 명의 인명을 해친 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가리가 없는 녀석이었다.
“이런 던전이 몇 개가 더 있다는 거지.”
“네 개요. 평양과 남극 제외하면.”
이준석이 말해 주었다.
이준석은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지 한동안 얼을 타더니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아까부터 호치와 함께 던전을 돌아다녔다.
하드 난이도에서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던전에 대해 경험한 것이 있어서인지 적응이 빨랐다.
“이런 던전이 네 개나 더 있으면 지구에 근원은 거의 바닥났겠는데.”
“모르지. 이 던전이 유난히 많이 채굴해 낸 걸 수도 있잖아.”
그래도 남은 양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왜 신들이 행성의 근원을 뽑아내는 방식을 꺼리는지 이해가 갔다.
소비가 너무 빠르다.
이 던전은 고작 십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행성 근원의 절반을 채굴해 냈다.
그 절반의 근원이 어느 정도의 힘이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 키리키리는 오랜 시간 신앙을 통해 끌어낼 수 있는 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양이라고 답했었다.
수천 년, 혹은 수만 년도 넘는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신앙을 생산해 낼 토양을 단 십 년 만에 죽여 버린다.
신들의 입장에서 근원의 추출은 촘촘한 그물로 치어까지 싹쓸이해 생태계 자체를 무너뜨리는 불법 조업 정도로 비치지 않을까 싶었다.
심지어 자기 영역에서 이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으니, 자연히 남의 영역에 숨어 이런 짓을 할 테니 중국의 불법 조업 어선과 같겠지.
그나저나 근원이 한계까지 추출된 행성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새로운 문명이 쉽게 싹 틔우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반쯤 추출된 행성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는 바가 없었다.
호치에게 물어보았으나 호치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전히 내가 모르는 정보가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감할 수 있었다.
“일단 추출기부터 멈춰 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
“알았어.”
호치가 다시 추출기가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던 호치는 어느 순간 딱 멈춰 섰다.
“멈춰라.”
호치를 막아 세운 목소리는 내 등 뒤에서 들렸다.
그리고 내 등 뒤에는 목이 뽑힌 토마스의 시체뿐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목과 머리통이 불완전하게 붙은 토마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완성자였고, 동시에 신이었다.
용용이의 채집장에 갇혀 덜덜 떨고 있는 사마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제대로 된 완성자였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완성자를 대하기에 앞서 일단 일행을 살펴보았다.
호치는 잠시 자기가 멈춰 섰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 발을 털어 내고 있었고.
이준석은… 주저앉아 피를 토하고 있었다.
저놈, 진짜 왜 저리 약하지.
용용이가 놀라서 이준석에게 뛰어가고 있었다.
알아서 치료해 주겠지.
일행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토마스의 시체를 뒤집어쓰고 있는 완성자를 바라보았다.
“누구 마음대로 내 던전을 정지시키겠다는 거지?”
제 하수인이 죽을 때는 조용히 있다가 추출기를 멈추겠다고 하니 튀어나오다니.
아니면 그저 이곳으로 오는 데 시간이 소요된 것뿐일까.
정말 궁금한 게, 물어볼 게 많았다.
그래서 나는 밝게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방금 목이 뽑힌 토마스가 그랬듯이.
“이제야 사장님이 나오셨네. 이제야 이야기를 좀 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