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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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3)
“이제야 사장님이 나오셨어.”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이야기할 놈이 나왔다.
완성자는 목이 뽑힌 토마스의 몸을 뒤집어쓰고 있어서인지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숨겨지지 않는 기세는 그 몰골과는 별개로 완성자의 위세를 증명했다.
“으헥헥.”
덕분에 저 뒤에서 이준석이 열심히 마른기침을 뱉어 내고 있었다.
연신 피를 토해 내던 이준석은 용용이의 도움으로 다소 진정이 된듯했으나, 피 대신 마른기침을 뱉어 내고 있었다.
정신이 사나웠다.
“거 어린 친구가 너무 허약한데.”
완성자가 쓰러진 이준석을 보고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동감이었다.
용용이는 잠시 이준석을 돌봐 주다가 빠른 조치를 취했다.
조치는 다름 아닌, 사마귀가 갇혀 있는 채집통에 이준석을 넣어 버리는 것이었다.
용용이가 직접 설계한 만큼, 안전하긴 할 것이다.
다만 사마귀와 좁은 공간 내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점이 걸렸다.
고작 하루 만에 애완동물 신세로 전락한 사마귀이지만, 그 정체는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다.
이준석 정도라면 분명 탐나는 먹잇감일 테니, 한곳에 오래 놔두는 건 좋지 않았다.
아무리 투명한 채집통 안이라 하지만.
용용이는 그런 내 우려를 읽기라도 한 건지, 채집통을 내려다보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갑자기 집이 비좁아졌다고 싸우면 안 돼. 금방 꺼내 줄게.”
사마귀는 이준석을 습격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겁에 질려 있었다.
사마귀는 오히려 이준석을 붙들고 그 등 뒤에 숨으려 했다.
전혀 가려지지 않았지만.
완성자는 잠시 채집통과 용용이를 바라보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 아이, 드래곤 맞나? 맞는 것 같은데.”
“맞아. 예쁘지?”
반론은 받지 않는다.
완성자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용용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용용이 목에 걸린 작은 채집통으로.
채집장 안에서 달달 떨고 있는 사마귀에게로.
“저 멍청이는 잠자코 내게 먹혔으면 좋았을 것을. 왜 도망쳐서 저 꼴을 당하는지 모르겠군.”
완성자는 그렇게 말하며 끌끌, 웃었다.
아무래도 사마귀가 예전에 알았다는 완성자가 이 녀석인 모양이다.
희소식이었다.
나중에 사마귀에게 들은 정보와 이 녀석의 정보를 비교해 가며 심문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완성자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전투에 돌입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침착한 반응이었다.
던전을 뒤집어 놓은 데에는 별 관심이 없는 건가.
일단 말을 받아 줘 보자.
“다시 잡아 보지 그랬어. 찾기도 쉽더만.”
“찾는 건 쉽지만, 던전으로 끌어들일 방법이 없었지. 던전 밖으로 나갔다가는 백신전이 나를 쫓을 빌미를 줄 수 있으니, 하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역시 그랬구만.
하지만 던전 안에서는 이렇게 나타날 수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거네.
61층에 찾아왔던 만신전의 신들처럼.
흥미로웠다.
언제 한번 신전의 시스템을 하나하나 뜯어 봐야 되는데.
조항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니, 그들에게 허용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추측만 해야 했다.
“이 녀석을 키워서 나중에 잡아 볼 생각도 했었는데.”
완성자는 자신이 뒤집어쓰고 있는 토마스의 몸을 가리키며 말했다.
토마스를 성장시켜 사마귀를 던전으로 잡아 오게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죽어 버렸군.”
“그렇게 아까우면 다시 살리지그래?”
“아니, 그건 안 되지.”
완성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 녀석이 단순하다는 이유로 선택했었지. 잡생각이 없고, 원초적이었어. 적당한 쾌락주의에 이기주의. 그게 써먹기 편해서 선택한 녀석이었으니, 이제는 못 써먹어.”
“왜?”
“공포를 느끼지 않았나.”
“공포도 꽤나 원초적인 감정인데.”
달리 비교할 것을 찾기 힘들 만큼 원초적이었다.
“뒤에 존재하는 공포는 그렇지. 하지만 앞에 존재하는 공포는 좀 다르지 않겠나.”
모르겠다.
사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뭐라고 말을 더 이어 보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말주변이 없으면 이게 안 좋다.
상대방의 말을 이끌어 내어 정보를 수집할 때,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너라면 알고 있지 않은가?”
“응?”
“백신전 신들이 만든 세계를 거쳐 온 너라면, 공포에 쫓기는 것과 공포에 가로막힌 것의 차이는 알고 있지 않은가.”
관심 없었다.
그보다는 다른 게 궁금했다.
“나에 대해 아는 모양이네.”
“당연하지. 백신전의 튜토리얼에서 새로운 신격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 고향 행성이 이곳이라 언젠가 만날 것도 예상했지. 그리고.”
“그리고?”
“만신전의 신들이 당한 망신은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일인지라, 모를 수가 없지.”
그래서 침착했구만.
61층에서 나와 만신전의 신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안다면, 내가 던전에 찾아와 깽판을 치는 것도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올 것도 예상하고 있었나?”
이 완성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오기 전에, 이 던전에 나를 막기 위한 방비 따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던전을 버릴 생각이었나.
이미 충분한 에너지를 추출했으니까?
아니면 대화로 적당한 타협을 바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완성자는 등장부터 차분히 대화를 시도했다.
“그래, 이야기를 좀 해 볼까? 같은 구역을 공유하게 되었으니, 서로의 영역을 정리해야겠지.”
완성자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바닥에 어지러이 쏟아져 있던 음식들과 박살 난 식탁이 사라지고, 대신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나타났다.
소환 계열.
차원 너머에 준비된 가구를 이곳으로 불러온 것뿐이다.
차원 간 이동이라는 점 때문에 대단해 보이지만, 실상 내가 인벤토리를 사용하듯 개인에게 귀속된 아공간을 사용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완성자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흉오의 신.”
그리고 나는 덩달아 의자에 앉으며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뭐?”
“흉오, 그게 내 신명이다.”
그렇게 완성자는 자신의 신명까지 알려 주었다.
이쯤 되니 떨떠름할 지경이었다.
이 녀석들은 도대체 뭘 믿고 내게 친근한 태도로 접근하는 걸까.
“네 신명은?”
“그걸 내가 왜 너한테 알려 주겠냐?”
한심함을 담아 되물어 주었다.
완성자는 갑자기 바뀌는 내 태도에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갓 태어난 어린 신이군. 아직 모르는 게 많아.”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완성자는 설명을 시작했다.
“신명은 감추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이들이 그것을 알고 너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더군다나 그 상대가 신격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새로이 신이 된 이들 중에는 아는 신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신명을 홍보하기도 할 정도다.”
아이고, 그러세요.
당연한 이야기를 뭐 인생의 진리나 되는 것처럼 무게 잡고 설명하고 있다.
말하는 투가 꼰대 같았다.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굳이 설명해 주는 것이나.
당연한 말을 하면서도 상대가 어리숙해 모르고 있다 치부하는 것이나.
은연중에 상대를 깔보며 우쭐하는 태도나.
마음에 드는 태도는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완성자는 선배 신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어린 신에게 유용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아무래도 대화로 타협을 볼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자, 이제 네 신명을 말해 보아라.”
미안하지만, 나는 내 신명을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완성자 따위에게 알려서 얻을 비루한 힘에는 관심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신명을 노출해 상대에게 나를 분석할 여지를 줄 생각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 신명은 나만 알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완성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파안하며 웃었다.
“역시 어리군. 뭐 되었다. 조만간 필요 없다 해도 네 쪽에서 나를 찾아와 알려 주게 될 테니.”
음, 아까부터 말 하나하나가 거슬리는데.
“그럼 이야기를 좀 해 볼까. 일단은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다. 아, 그보다 우선 네 행보를 알아 두어야겠군. 혹시 이 행성에 관심이 없다면 다른 행성을 소개해 줄 수 있다.”
“아니, 그것보다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게 있잖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이 녀석은 왜 가장 중요한 걸 빼 놓고 시작하는 거지.
“지금까지 지구에서 먹은 것부터 다 토해 놔.”
물론 그것만 받아 내고 돌려 보내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우선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지.
“…뭐라?”
완성자는 다소 황당해 보였다.
“무슨 이유로. 이 멍청하고 어린 신아, 아직 필멸자의 관념에 얽매여 있는 것 같구나. 네 고향 행성이라는 이유로 네게 소유권이 생기지 않는다. 신들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요소는 단 하나.”
“힘이지.”
아까부터 당연한 말만 내놓고 있는 완성자의 말을 더 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완성자 발밑의 그림자를 일으켜 그 몸을 얽매었다.
“가관이다! 가관이야! 아무리 짧은 시간 안에 급조된 신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무지하고 무모한가!”
그림자에게 완전히 포박되고 나서도 완성자는 버럭 소리쳤다.
신선한 반응이었다.
“이 시체는 내가 임의로 쓰고 있는 화신체일 뿐이다. 화신체의 운용은 신격이 수많은 차원을 두루 관장하기 위한 기본 수단이다. 이 몸을 죽인다 하더라도 내 본신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그저 쓸모없는 수족 하나가 사라지는 것뿐이지.”
화신체는 기본적으로 신들이 사도를 이용해 강신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권속에게 임하는 강신과는 달리, 화신체는 그 또한 자기 자신이라는 점 정도였다.
분신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애초에 다른 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게 된, 백신전과 만신전 소속의 신들이 어떻게든 행동 영역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게 사도를 이용한 강신이었다.
완성자는 두 가지를 오해하고 있었다.
첫 번째 오해는 내가 화신체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
나는 자신했다.
온 세상을 털어도 화신과 분신에 대한 조예가 나보다 높을 존재는 몇 되지 않았다.
해 봐야 신명 자체가 그런 것과 연관된 신 몇 정도일 것이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 무례를! 감히 급조로 만들어진 신 주제… 에…….”
따박따박 쏘아대던 완성자의 말이 급격히 느려졌다.
당연했다.
그의 그림자가 그의 몸을 조금씩 좀먹고 있었으니.
“우리 박식한 선배 신에게 내가 하나만 물어볼게.”
완성자는 허옇게 질린 얼굴이었다.
피부색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시체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피부색은 처음부터 허옇게 보였다.
하지만 초점을 잃어 가는 눈과 벌려진 채 달달 떨리고 있는 입술은 그 피부색과 별개로 허옇게 질렸다는 표현을 올바르게 만들어 주었다.
그럴 것이다.
사마귀는 근원에 처음 잡아먹혀 괴물이 되었던 순간을 기억한다고 답했었다.
만약 이 완성자도 그렇다면 분명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근원의 힘에 잡아먹히던 때와 같은 감각을.
“여기 내 앞에 있는 화신체가 잡아먹히면, 네 본체는 무사할까?”
사도든, 화신이든, 자신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아닌 존재이다.
필요할 때 자신이 아니라며 끊어 버릴 수 있다면, 반대로 필요치 않을 때 자신이라며 스스로를 얽맬 수 있다.
화신과 본신의 연결 고리가 남아 있다면, 그 연결 고리를 타고 넘어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화신을 남에게 함부로 내보이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내보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흉오의 신은 수족이라 말했지만, 그보다는 심장을 꺼내 따로 돌아다니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화신을 얽매고 있던 그림자가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결심한 모양이다.
흉오의 신은 화신체를 빌미로 본체까지 허무하게 사로잡히는 대신, 본체로 이곳에 현신하는 것을 선택했다.
“용용아.”
용용이를 부르자마자 용용이가 일행을 데리고 공간을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즉시 흉오의 신이 현신을 마쳤다.
그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지나갔다.
더 이상 우리는 던전 안에 있지 않았다.
던전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남극 지대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도 조만간 완전히 녹아 바다 아래로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이거 영감이 좋아할 법한 광경인데.
할멈은 싫어하겠지만.
폭발의 여파로 눈보라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녹아내린 눈과 얼음이 만들어 낸 자욱한 수증기도 한몫했다.
남극의 빙하 지대에 선 거대한 흉오의 신의 모습이 하얀 수증기 너머로 어렴풋이 보였다.
드디어 제대로 신격을 갖춘 완성자가 지구에 나타났다.
[이 아둔한 것! 이제 스스로 무례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저 드높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힘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신격을 이룬 존재들의 전투는 꽤나 원시적이다.
인간일 적 상상했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힘겨루기 따위는 없었다.
서로의 존재에 간섭할 수 없는 신들은 역설적이게도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전투법을 사용했다.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짓이겨 죽이는 것이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었다.
“시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