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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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4)
설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신격과의 전투를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
갈망해 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신격과의 전투가 가능해야 했다.
모든 백신전의 신들을 평화적으로 설득한다 해도, 힘을 가지고 있어야 그런 설득이 가능했다.
신격 간의 전투는 결국 물리력 싸움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물리력 방면으로는 시밤쾅 만한 것이 없었다.
시밤쾅은 30층에서 심검을 수련하던 와중 우연히 개발하게 된 기술이다.
그 이후로 필요할 때마다 주구장창 써먹었지만, 단 한 번도 그 화력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던 아주 유용하고 효과적인 기술이었다.
하지만 단점이 너무 명확했다.
시밤쾅은 폭발이었다.
대량의 적을 쓸어버리기에 매우 적합했으나 단일 개체를 상대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했다.
당장 그 물리력이 한 점으로 집중되지 않는 데다, 그 폭발 범위가 지나치게 넓었다.
전방위로 폭사되는 빛과 열은 적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린다.
한번 사용할 때마다 행성을 하나씩 날려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힘의 범위를 줄여야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범위를 제한해 상대를 공격한 뒤 일정 범위 너머로는 폭발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결계를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힘이라면 적이 세울 방어 또한 뚫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고심 끝에 떠올린 방법은 그냥 시밤쾅의 면적 자체를 줄여 버리는 것이었다.
시밤쾅을 폭탄이 아닌, 압도적인 열기를 가진 탄환으로 활용해 보았다.
발사 궤적을 둘러싼 공간을 왜곡해 열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니, 주변에 피해가 갈 일도 줄어들었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는 추진력을 높여 발사 속도를 끌어올리고, 시밤쾅 자체의 화력을 더욱더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꽤나 확신했다.
시밤쾅을 완성자에게 연달아 쏘아대면서 승리를 확신했다.
“시밤, 쾅.”
더 이상 꽝꽝거리지도, 폭발하지도 않는 기술이 되었지만, 이름은 여전히 시밤쾅이었다.
조용하게 그어진 실선이 완성자가 나를 향해 내려찍는 힘과 충돌했다.
쾅!
아, 이러면 또 쾅쾅거리네.
시밤쾅은 완성자의 힘을 꿰뚫고 그 너머 완성자의 본체마저 관통했다.
워터파크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완성자의 몸 일부가 떨어져 나와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개량된 시밤쾅은 피해 면적이 적었지만, 한 번 사용될 때마다 완성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그 결과, 거대한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완성자는 전투가 시작된 지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걸레짝이 되어 헐떡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행성째로…….]완성자는 어디 소년 만화에서 자주 나오던 대사를 읊으며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누구는 지구에 피해를 안 주겠다고 깨작깨작 힘들게 싸우고 있구만, 행성째로 날려 버리겠다니.
괘씸했다.
“세레지아.”
세레지아를 소환했다.
세레지아가 나타난 곳은 하늘이었다.
완성자의 머리 위에 거대한 대검의 모습으로 나타난 세레지아는 그대로 낙하했다.
쾅!
세레지아는 완성자의 방어를 가뿐히 뚫어 내고, 그 몸을 꿰뚫고 바닥까지 내리꽂혔다.
충격으로 물이 솟구쳤다.
몸에 닿는 물이 미지근했다.
아니, 좀 뜨거운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화상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세레지아의 낙하 때문에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던 빙하 지대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이래저래 애쓴 의미가 없었다.
빙하 지대는 산산이 갈라져 녹아내리고 있었고, 바닷물은 끓고 있는 건지 기포를 뿜어내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환경 단체가 보면 거품을 물겠군.
저 멀리, 거대한 파도가 밀려가고 있었다.
인접국이 받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았다.
우선 힘을 세워 그 여파를 막아 두었다.
세레지아에게 꿰뚫린 채 제압되어 있는 완성자에게 다가갔다.
완성자는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입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꿈지럭거릴 뿐이었다.
당연했다.
세레지아의 검날은 그 자체로 그녀의 존재였고, 의지였다.
[살려 다오.]입으로 말할 수가 없으니 의념으로 의사를 전했다.
의념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큰 타격일 텐데, 꽤나 간절해 보였다.
[내가 어리석었다. 그대를 존중하겠다.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빠르게 말을 쏟아 내었다.
의념으로 말과 함께 전달되는 절박함이 굉장했다.
삶에 대한 집착이 아주 철철 넘치는 녀석이었다.
[나를 살려 준다면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겠다. 내 신명을 걸고 약속하겠다. 제발 죽이지만 말아 다오.]그 말에 빙그레 웃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
“야, 내가 널 왜 죽여.”
[고맙다, 정말 고맙다. 이 대가는 반드시 치르겠다.]정말로 고마웠는지 완성자는 연거푸 감사의 말을 전했다.
완성자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 일부가 되어서이겠지만.
“일어나라.”
물에 비친 완성자의 그림자가 꾸물꾸물 완성자의 몸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건가. 이게 무슨. 잠깐! 잠시만! 내게 기회를 다오, 제발!]완성자는 늪에 빠진 것처럼 그림자 아래로 가라앉았다.
급히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세레지아에게 제압된 상태였고, 질척거리는 그림자들이 빠르게 완성자의 사지를 붙잡았다.
[제발, 제발! 제발!]열심히 빌어 봐야 소용없었다.
몇 초 되지도 않는 시간 만에 완성자의 거대한 몸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열심히 되풀이하던 완성자의 외침은 이제 내 안에서 울리게 되었다.
[제발!]이거 다 소화시키려면 시간 좀 걸리겠네.
이만 한 건 처음 먹어 보는 거라 얼마나 걸릴지 확신이 없었다.
어찌 되었건 뿌듯하니 되었다.
완성자를 잡아먹은 포만감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느끼는 승리의 고취감도 좋았다.
61층에서 신들을 쫓아내고 사도들을 사로잡기는 했지만, 너무 싱거웠다.
이번에 만난 완성자도 기대한 만큼 강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갈증을 다소 풀어 줄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어느새 인간 폼으로 돌아온 세레지아가 물었다.
어쩐지 변태를 보는 듯한 눈이었다.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은데.
따로 변명하지는 않았다.
완성자를 처리했으니 이제 뒷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우선 세레지아에게 책임을 좀 떠넘기기로 했다.
“세레지아.”
“네.”
“그렇게 난폭하게 낙하하면 어떡해. 그것 때문에 남극이 죄다 박살 났잖아.”
세레지아는 내 말을 무시했다.
나는 머쓱해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던 하얀 빙하 지대는 산산조각이 나, 그 아래 바닷물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바닷물은 간헐적으로 기포를 토해 내고 있었고.
저 멀리서는 거대한 파도가 치고 있었다.
벽을 세워 파도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지만, 완전히 막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변국들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어쩌면 지구 전체에 피해가 갈지도 모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까부터 시선이 느껴지고 있다.
지구는 어디까지나 백신전의 공동 구역이다.
완성자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던전 안에서 싸웠다면 모를까, 초장부터 던전을 박살 내고 싸웠기 때문에 전투는 백신전의 신들에 의해 훤히 보여졌을 것이다.
여기서 내 힘을 더 내보이는 게 현명한 판단일지 고민해 보았다.
물론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다.
지구인들을 위한 판단도 아니었다.
만난 적도 없는 이들을 위해 손해를 감수할 만큼 나는 선하지 않았다.
내 위상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이 일로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해 큰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내 위상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자연재해는 고대부터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힘을 상징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쓰나미를 일으킨 날 원망하고 두려워하겠지만, 그 또한 신의 덕목이었다.
하지만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남극을 이 상태로 내버려 두면 김민혁이 과로사할 것이다.
아니면 스트레스로 가 버리겠지.
내가 아는 김민혁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끝끝내 신경을 쓸 녀석이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위험하고 불행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인 것만 같은 녀석이다.
물론 김민혁이 어떤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든 내가 알 바는 아니었으나.
그냥 무시하기에는 내가 그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았다.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래, 함 해 주자.
“역행.”
이전의 형태로 돌아가기 시작한 남극의 풍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어느새 다시 검의 형태로 돌아간 세레지아를 들고 용용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것으로 백신전의 신들은 내게 시간과 인과에 관여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시점에 능력을 내보이는 건 절대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하지만 뭐, 페널티라 생각하고 감수해야지.
* * *
“응? 벌써 왔네?”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혁은 노트북을 펼쳐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었다.
어디 메일이라도 보내는 걸까.
“강원도에서 사이비하던 놈들과 약속 잡았어. 이번 주말에 서울로 오겠다고 했고. 이 근방에 게이트는 따로 없어서 서울에 있는 게이트를 확보해야 할 것 같아. 협회 쪽이랑 얘기해 봐야지. 나중에 박민이 여기로 오기로 했으니, 그때 말하면 될 것 같고. 그 추첨으로 사람들 치료해 주겠다는 건 아직.”
열심히 일하고 있었구만.
신경 써 준 보람이 있었다.
김민혁은 일행이 함께 오지 않고 나만 온 것이 이상했는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게 말했다.
“정찰만 하고 온 거야? 잘했어, G급 공략은 굳이 서두를 필요 없잖아. 며칠 푹 쉬고, 그쪽 사람들한테 언질도 해 두고, 그다음에 다시 가자. 일단 아까 안 먹은 점심부터 먹고…….”
“했어.”
“응?”
“G급 퇴치했다고.”
정확히는 던전 공략과 완성자 퇴치라고 해야겠지만.
아무래도 김민혁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G급을 퇴치했다, 정도로 이야기해 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게 이해하기도 편하고.
“G급을 퇴치했다고, 벌써…….”
주머니에서 이준석을 꺼내 당황하는 김민혁에게 건넸다.
인형 크기로 작아져 있기 때문에 그냥 손으로 집어서 건네주었다.
김민혁은 뭔가 싶어 살펴보다가, 그게 작아진 이준석이라는 걸 알고는 이준석을 손에서 떨어뜨릴 뻔할 만큼 크게 놀랐다.
“얘 맡기러 왔어. 중간에 기절했더라고. 몸 상태는 용용이가 치료해서 별 이상 없겠지만, 여기다 두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사마귀의 상태도 안 좋았지만, 여기 맡겨 두면 탈출을 시도할 수 있어서.
그냥 용용이의 채집통에 두기로 했다.
“어… 그…….”
김민혁은 잠시 눈을 굴리다가 내게 물었다.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두고 간다고? 야, 어딜 또 간다고 그래.”
“러시아.”
“러시아는 왜.”
거기 G급이 있으니까.
안타깝게도 남극에서 완성자를 처치한 것이 백신전 신들에 의해 목격되었다.
그리고 그 정보는 다른 완성자들에게도 새어 나갈 것이다.
남극에서 만났던 완성자가 튜토리얼 61층에서 있었던 일마저 알고 있었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지구에 던전을 박아 놓은 다른 완성자들이 눈치채고 완전히 철수하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던전 안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을 에너지를 수거하고, 끄나풀 놈들도 잡아야 되고, 던전을 통해 연결된 완성자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도 알아봐야 하고.
얻어 낼 건 정말 많은데, 완성자가 던전 자체를 철수해 버리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다.
“러시아에 갔다가는 바로 다른 G급을 찾아갈 거야. 오늘 내로 전부 처리하고 올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럼 다녀온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죽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