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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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
“이야, 취한다.”
구라 치지 마.
김민혁은 목구멍 끝까지 넘어왔던 말을 간신히 삼켰다.
호치는 연신 소주잔을 비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말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기도 하고, 배배 꼬인 말투로 말을 걸기도 했다.
물론 개수작이었다.
일반 각성자도 쉽게 취기를 느끼지 못하는데, 호치가 소주 몇 잔 마시고 취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김민혁은 그저 마음속에 ‘참을 인’ 자를 새기며, 호치의 이 주정 같지 않은 주정을 받아 주고 있었다.
“야! 마! 술을 마시다 보면 취할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그러냐.”
물론 술을 마시다 보면 취할 수 있고.
또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취한 척 꼬장을 부리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김민혁이 어떻게 생각하건 호치는 계속 술잔을 비워 대었다.
그러다 고개를 푹 숙이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꼬라지가 영락없이 취한 사람이었다.
연기력이 굉장했다.
“야… 사실 나 고민이 있어.”
호치가 말했다.
사실 호치는 이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어 괜히 취한 척을 하고 있었다.
그가 책에서 보기로, 술 마시다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며, 다소 부끄러운 고민도 허심탄회하게 늘어놓을 수 있고, 무엇보다 그걸 창피해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세상을 글로만 배운 부작용이었다.
김민혁은 잠시 호치의 말을 무시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대꾸해 주었다.
“무슨 고민인데.”
“진로 문제.”
거 아주 심각하고 대단한 고민이었다.
기운 빠지는 김민혁과는 달리 호치는 세상 심각했다.
“나는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김민혁은 뭐라 해 줄 말이 없었다.
사실 그는 호치에 대해 잘 모른다.
이호재에 대해서는 제법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호치에 대해선, 그가 이호재의 분신이며, 소설책과 먹는 것을 좋아하고, 이따금 애 같은 행동을 보인다는 것 정도밖에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원론적인 해답을 말해 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호치는 그 말에 더 심각해졌다.
* * *
김민혁은 결국 호치에게 일거리를 주기로 결정했다.
자신이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에 걸리느니, 남에게 폭탄을 돌리겠다는 심보도 있었고.
호치의 고민을 들은 후, 한 가지 확신한 것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호치를 가만 집에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러려고 해도 밖으로 나다니며 이것저것 해 보려 들 것이 분명했다.
김민혁은 빠르게 호치에게 줄 일거리를 찾아보았다.
그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던 정부와의 불화부터 해결했다.
정부 소속으로 호치가 몇 가지 일을 해 주는 대신, 서울역 사건을 깔끔하게 덮고 넘어가기로 김민혁과 정부는 협의했다.
그리고 며칠 후.
호치와 세레지아 그리고 용용이는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 있었다.
“그냥 날아가면 안 됩니까?”
세레지아가 물어보았다.
좌석을 한계까지 뒤로 넘겨 누운 채 고개만 돌려 묻고 있었다.
호치는 좀 아까 누구보다 신나게 기내식을 먹어 치우던 그녀가 저러니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안 될걸. 한국 정부 소속으로 가는 거라.”
말을 마친 호치는 이준석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준석은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단으로 날아가는 건 이런저런 법에 접촉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호치와 일행의 무단 입국을 일본 측에서 심각한 위협 행위로 인식할 경우다.
이 경우 상황이 아주 위험해진다.
일본에게.
지금 이준석은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김민혁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과 함께 이들을 일본에 보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실은 그저 폭탄 돌리기에 당첨되었을 뿐이었다.
평양에서 용용이가 피떡이 된 사마귀의 시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았던 이준석이기에 더 그랬다.
실수로 누가 죽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호치가 조금 더 용용이의 행동을 단속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호치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준석이 무슨 생각을 하건 말건, 호치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창밖의 풍경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왜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 건지 의아할 정도로.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어쩌면 호치가 60층에서 나고 자라서인지도 모른다.
용용이도 그랬지만, 호치의 경우에는 입장이 조금 달랐다.
호치가 태어났을 때, 60층은 이호재의 변덕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무너지고 재건되던 곳이었다.
항상 어두웠고, 어수선했다.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 속에 들어가 몸을 숨긴 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호치의 일상이었다.
호치가 무쓸모 판정을 받은 뒤로는 아예 항상 잔해 속에 낑겨 있었다.
당시 이호재는 호치를 생각하기도 싫어했다.
없었던 일 취급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너뜨린 뒤 재건하기 귀찮아 구석에 쌓아 둔 건물들의 잔해.
그 안에 호치는 자신의 처지도 별다를 게 없다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좁은 곳에 갇혀 있는 것에 익숙했다.
그리고 넓은 전경을 보았을 때, 왠지 모를 감동을 느끼고는 했다.
* * *
“와아아아!”
함성 소리다.
원래 공항이 이렇게 시끄러운 곳인가.
호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면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쉼 없이 터졌다.
정신 사나웠다.
세레지아는 빠르게 모습을 감춰 버렸고.
그것을 목격한 기자들과 군중은 더 놀란 듯, 더 많은 함성과 셔터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이준석은 불안한 시선으로 호치와 용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일본 입장에선 환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환대였지만, 이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 각성자도 많았다.
“안녀엉!”
다행히 용용이는 좋아했다.
그리고 이준석은 자신의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순간적으로 용용이가 인사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하려는 줄 알고 식겁했다.
그나마 호치가 용용이를 안고 있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본래대로라면 간단한 인터뷰까지 마쳐야 했으나, 이준석은 최대한 빨리 일행을 공항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경호원들을 재촉하고, 그 자신도 경호를 자처하며 일행을 인파 사이로 내보냈다.
이따금 누군가가 내민 손에 용용이가 하이파이브를 해 주거나 할 때마다 이준석은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준비되어 있던 리무진에 타고 나서야 이준석은 안심하고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초인적인 폐활량을 가지고 있지만, 심리적인 압박에서 오는 호흡 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근데 공항은 원래 저래? 한국에선 되게 조용히 왔었잖아.”
호치가 물었다.
당연히 한국에선 조용히 출발했다.
김민혁이 절대로 일행을 대중에 노출시키려 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한국에서도 난리였다.
호치 일행의 일본 파견은 긴급 속보로 보도되었고.
정부는 일행을 포함한 기자회견을 준비하려 했다.
청와대 방문과 회담 일정까지 잡았고, 출국 과정을 모두 생방송으로 내보낼 계획이었으나 김민혁의 극렬한 반대로 모두 무산되었다.
결국 정부는 일행의 일본 파견 앞에 정부 주관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일본에는 민혁이 형이 없으니까요.”
호치는 빠르게 납득했다.
사실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김민혁은 일본 정부에도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그것을 무시했다.
서로에게 유쾌한 결정은 아니었지만, 일본 정부는 그만큼 급했다.
세계가 천천히 안정화되고 있는 와중 일본은 여전히 최전선으로 분류되는 국가 중 하나였다.
최전선 대부분이 제3국가 혹은 사람이 거의 없는 외지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뼈아픈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각성자의 유입은 사라지고, 일본 전선을 책임지던 각성자들도 하나둘 일본을 떠나기 시작하고 있다.
일본 국적의 각성자들마저 위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동참하기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위하기 시작했다.
국민들도 더 늦기 전에 해외로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물어 가는 해.
너무 저물어 이제는 지평선 너머로 잘 보이지도 않는 해.
그게 일본에 대한 세계의 판단이었고, 사실이 그랬다.
“외국에 나와 보는 건 처음이야.”
호치가 중얼거렸다.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당장 남극도 외국이었다.
어쨌든 호치의 인식 속에서 외국에 나온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 일본에 와 본 적 있습니다.”
조용히 채집통에 있던 사마귀가 말했다.
“오, 그래?”
호치는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리고 이준석은 속으로 암담함을 느꼈다.
저걸 신경 못 썼다.
용용이의 목에 걸린 채집통.
그리고 그 채집통 안에 있는 날개 달린 여성 인간처럼 보이는 사마귀.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굉장한 난리가 날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
잠시 고민하다 이준석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사마귀는 자신이 일본에 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일본의 동부 해안은 아주 생난리입니다. 국가별로, 집단별로 각성자가 모여 군영을 이루고 있고, 해안에서는 불규칙하게 몬스터들이 올라오죠. 가만 보다 보면 모바일 게임 같기도 해요.”
G급 괴물이 모바일 게임을 언급한다.
말세였다.
“가끔씩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모여서 나오거나, 좀 센 놈이 섞여 나오기도 하는데, 인간들은 그걸 웨이브라고 부르더라고요.”
“오오.”
호치는 매우 흥미로워했다.
사실 일본 동부의 웨이브는 몇 년 전만 해도 동아시아 종말의 위기로 거론되었던 아주 중대한 위협이었다.
“그럼 저는 무국적 출신 각성자로 섞여 들어가는 거죠. 웨이브가 일어나면 아주 난리가 나거든요. 그럼 뭐, 이야기 다 한 거죠.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먹으면 됩니다.”
사마귀는 크… 하는 소리를 내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준석은 낭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마귀에 대한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사망한 각성자들 중에는 이준석의 예전 동료들도 있었다.
“이제 아무거나 먹으면 안 돼.”
“들키지는 않았어?”
용용이와 호치가 사마귀에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일행 중 이준석과 같은 감상을 느낀 이는 없었다.
* * *
“확실합니다.”
박민은 재차 물어오는 목소리에 답했다.
목소리는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박민에게 질문했다.
‘목소리에 기운이 없군. 무슨 일이라도 있나?’
그 질문에 박민은 어쩔 수 없이 욱하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감정을 감추려 해도 신은 자신의 숨겨 둔 감정을 끄집어내려 했다.
짐승이 낮게 으르렁거리듯 박민이 되물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신은 그 목소리를 듣고 재밌어했다.
‘이제야 기운이 생겼군. 활력이 아니라 증오가 묻어 나와 탈이지만.’
박민은 뭐라고 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꾹 다문 입에서 조용히 이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좀 더 감사의 마음을 갖는 건 어때. 내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지 않았나.’
진지하게 태도를 바꿀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장난스럽게, 마치 놀리는 듯한 말투였다.
맞는 말이었다.
예정대로 박민이 이호재를 만났다면 단박에 머리가 뽑혔을 것이다.
이호재는 박민의 마음속에 G급을 사냥할 생각 자체가 없었고, G급이 불러올 혼란으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 싶었음을 간파할 수 있으니까.
그 어떤 핑계를 준비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무실에서 고심하던 박민에게 신은 제안했다.
거래를 하자고.
거래 내용은 간단했다.
이호재라는 공통의 적을 몰아내기 위해 협조하자.
일차적으로 신은 박민과 이호재를 만나지 않게 만들어 주고, 박민은 이호재와 그 일행의 동향을 알려 주기로 했다.
신은 약속을 지켰다.
병상에 누워 있던 박민의 부친을 살해하면서.
이호재를 피할 방법을 바랐던 건 박민 본인이었다.
하지만 부친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타개책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
‘정보는 확실하겠지?’
증오스러운 목소리에 당장 내 머릿속에서 꺼지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속으로 칼을 갈지언정 그렇게 소리치지는 못했다.
이제 와서 신의 조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신의 도움을 거부한다면 결과는 뻔했다.
어딘가에 숨어 평생 도망자로 살든가, 아니면 이호재에게 죽겠지.
당장 희망의 신에게 죽을 수도 있었다.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야망 때문도 아니었다.
이미 잃은 것이 너무 컸다.
그것을 무의미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박민은 최후에 승리해야 했다.
되돌릴 수도, 손절하고 나올 수 있는 판도 아니었다.
“…예, 일본으로 간 건 일행 셋뿐입니다. 이호재는 아직 서울에 있습니다. 그리고 할 일이 있어 한동안 두문불출할 거라 얘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