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24
x 324
희망의 신 (4)
희망의 신이 일본에 개입하며 벌어졌던 일련의 소동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더 파 봐야 나오는 것도 없고.
희망의 신이 수작질 부리는 걸, 설계하고 기다린 만큼의 보람도 있었다.
희망의 신을 완전히 잡아먹진 못했지만, 그 기반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그보다 좋은 것은.
희망의 신이 자신의 성지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나를 저주하며 도망가던 모습이 매우 흡족했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더 강하게 빛나느니 하는 말을 계속 지껄이던 희망의 신도 끝에 가서는 내 도발에 응수하지도 못한 채 꼬랑지를 말고 도망만 쳤다.
상황이 절망스러울수록 희망의 신의 힘이 커지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증폭되는 힘보다 내게 파괴된 기반이 더 컸다.
희망의 신의 신도들은 하나같이 구원을 애타게 바라고 있었다.
수십 년, 일생 동안 혹은 수 대에 걸쳐 희망의 신에게 쥐어짜이며 동아줄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랬기에 내가 진짜 동아줄을 내리자 아무런 의심 없이 내 품으로 들어왔다.
얻은 것이 많다.
일반적인 신에겐 본신의 능력보다 신도들의 수와 그 신앙이 더 중요하다.
내가 거둔 성과는 힘만 센 반쪽짜리 신에서 번듯한 신격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61층의 신도들이 섭섭해하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너무나도 흡족하게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당황했다.
아무도 없다.
별생각 없이 숙소로 돌아왔더니 숙소는 텅 비어 있었다.
당연히 호치가 소파에 누워 뒹굴고, 용용이는 방에서 놀고 있을 줄 알았는데.
확인해 보니, 호치와 용용이의 기운은 여전히 일본에 머물러 있었다.
무슨 일 있나 싶어 호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호치는 이준석과 함께 바닷가에 앉아 석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거 팔자 좋네.
누구는 열심히 일하다 왔는데.
“뭐 하냐?”
“응? 그냥… 어?”
호치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어이구.
나랑 똑같은 얼굴로 저러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호치에게 얼굴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내 분신이라는 사실을 괴롭게 받아들이는 호치이기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 걸 더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얼굴은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한다.
어떻게 생겼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냐가 정해진다는 외모 지상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기 스스로를 정의한다.
나도, 호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호치는 자기만의 새로운 얼굴을 가지는 것에 반대했다.
어째서인지 호치는 나와 같은 얼굴을 유지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나는 호치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저렇게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면 저 녀석이 나와 다른 얼굴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숙소에 갔는데, 너 없어서 당황했잖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어, 그게…….”
호치는 말을 더듬었다.
석양을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인지 얼굴이 붉게 보인다.
뭔가를 민망해하는 모양인데.
“형, 다치신 데는 없어요?”
“당연히 없지.”
이준석이 물었다.
그는 뭔 일이 있었냐, 큰일은 아니었냐며 물었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도망간 희망의 신 쫓아갔다 왔지. 잡진 못했지만.”
“아, 그래서 늦으셨구나. 다행이에요. 호치 형이 얼마나 형 걱정을… 읍……!”
호치가 이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제야 이 녀석이 왜 부끄러워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뭐야, 나 걱정했냐?”
“아니!”
호치는 당황했는지 허둥지둥하며 부정했다.
허공에서 뿅, 하고 용용이가 나타났다.
용용이는 곧장 내 품에 안겨 들었다.
“아빠! 너무 늦게 왔어!”
용용이는 나를 한번 꼭 안아 주고는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보며 질책했다.
연락도 없이 며칠간 사라졌던 것이 서운한 모양이다.
짐짓 엄한 눈을 하고 있는 것이, 어릴 적 용용이가 잘못했을 때, 내가 용용이를 혼낼 때마다 지었던 표정과 똑같았다.
내 나이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아들한테 혼나고 그런다.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미안해, 희망의 신이 생각보다 도망을 잘 치더라고.”
희망의 본질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라 희망의 신이 자신할 만했다.
어지간한 신이었으면 자기 본진이 그렇게 탈탈 털리는 걸 보고 수치스러워서라도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을 것이다.
모든 사도들과 성지를 포기하고 도망을 선택한 희망의 신은 분명 특이 케이스였다.
용용이는 내가 사과하자 금세 표정을 풀고 내 품에 꼭 안겨 왔다.
아이고, 우리 예쁜 아들.
“용용이도 아빠 걱정했어?”
“야, 나 걱정 안 했다니까 그러네!”
옆에서 호치가 외쳤다.
무시했다.
노을보다도 붉게 물든 얼굴로 소리쳐 봐야 설득력이 없었다.
“아니, 나는 안 걱정했어.”
용용이가 평온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야 걱정 안 하겠지.
사실 이게 옳은 판단이었지만, 어쩐지 서운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굳게 믿어 줬으면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걱정해 줬으면 하는 모순적인 생각이 들었다.
“히히.”
그러거나 말거나 용용이는 내가 돌아와서 좋은지, 내 가슴께에 제 얼굴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전… 끄악!”
이준석이 비명을 질렀다.
“왜 그래?”
“채집통에 손가락 넣었다가 사마귀한테 물렸나 봐.”
호치가 설명했다.
사마귀는 무슨.
네가 방금 이준석 옆구리 꼬집는 걸 봤는데.
그새 많이 친해진 것 같다.
“그나저나 왜 숙소에서 안 기다리고, 여기…….”
쿵!
말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둔중한 소음이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공사 자재가 운반되고 있었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공사 차량과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해안 방어선의 복구 공사가 한참이었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몬스터들의 공습이 발생할 일은 없겠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무의미한 지출과 수고였지만, 그것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 해안선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인간들 기준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규모의 소동이었을 것이다.
방비를 하는 것이 맞겠지.
호치 일행이 아직 해안가에 머물고 있는 이유도 그것에 있을 것이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호치에 대해.
항상 무기력한 녀석이기에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맡겨 보니, 능력이 되는 선에서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책임감 있는 모습까지 보여 주고 있다.
“정말 수고 많았어.”
호치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호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겨우 수고하라는 한마디였지만.
“…어. 뭐… 하기로 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수고는 용용이랑 준석이가 더 했지.”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제는 내가 없어도 의젓하게 혼자 잘살 것 같았다.
안심이 된다고 해야 하나,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둘 다일 것 같다.
이참에 호치에게 맡겨 볼까, 생각했던 일을 물어보았다.
“호치야, 내가 이번에 희망의 신의 신도들을 흡수했거든.”
신도들이 처했던 상황과 내가 그들을 이끌고자 하는 방향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사람들의 관리를 네가 맡아 줬으면 해. 내가 책임지고 게임 시스템처럼 만들어 줄게. 인터페이스가 엄청 친절할 거라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네가 수락하기만 하면 내가 그…….”
“할게.”
“통조림을… 응? 그럴래?”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볼게.”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곧바로 숙소로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호치가 이렇게까지 책임감 있고 의젓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초 치기 싫었다.
“그래, 그럼 나는 먼저 돌아가서 좀 쉬고 있을게. 일본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때 다시 얘기해 보자.”
이준석에게도 그때 얘기 좀 하자고 말해 두었다.
훈련도 좀 시키고, 앞으로도 호치와 붙여 두는 게 좋을 듯싶었다.
어째서인지 이준석도 나중에 얘기 좀 하자는 내 말을 반가워하는 듯했다.
* * *
“아주 거하게 일을 벌였넹. 아하핳.”
키리키리가 말했다.
책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항상 방실방실 웃고 다니는 그녀이지만, 오랫동안 보아 온 덕에 기분이 어떤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희망의 신의 상태는?”
“망했어, 망했어, 완전히 망했어.”
키리키리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희망의 신의 패망이 진심으로 즐거운 모양이다.
“신격은 유지할 수 있을까?”
“있을 거양.”
의외의 대답이었다.
나는 유지하지 못하는 편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희망의 신은 평범한 신도들에게서만 신앙을 받고 있는 게 아니야. 희망의 신이 위험했던 이유는 그 신도들이 대부분 신격을 얻은 완성자이기 때문이었지.”
신에게 신앙을 받는 신이라.
생소한 경험은 아니었다.
느림의 신을 통해 다른 신을 경외하는 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영감과 할멈 그리고 세레지아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했다.
“뭐, 그것도 힘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는 거긴 하지만.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할걸? 단기간에 재기는 어려울 거야. 아하하핳.”
키리키리는 정말 기뻐 보였다.
그녀가 남의 불행을 두고 기뻐하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희망의 신은 오랜 골칫거리였어.”
그랬겠지.
완성자에게 신앙을 받고 있다면.
그 완성자를 키워 주는 것만으로도 이득이 된다.
백신전의 정보를 알려 주고, 시스템의 빈틈을 이용해 완성자들을 키워 주며 세력을 키웠을 것이다.
어찌 보면 지구에 이 사달이 난 최종적인 원인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지구에 나타난 괴물들과 게이트, 던전들, 그 모든 것을 지휘한 완성자들을 뒤에서 후원하고 있던 게 희망의 신이니까.
처음부터 내게 적의를 갖고, 바깥에 나왔을 때를 위해 가짜를 준비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튜토리얼 내에서는 내게 위해를 입히지 못했겠지만, 한 층, 한 층 클리어해 나가는 내 모습을 보며 얼마나 초조해했을지 상상이 갔다.
다시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몇몇 신의 퀘스트가 이미 완료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키리키리처럼 완성자 세력의 약화를 바라던 신들이다.
그 목록을 꼼꼼히 읽어 두었다.
퀘스트가 완료된 항목의 신들 중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빛의 신-시밤쾅 해 주세요!(완료)] [자연의 신-(완료)] [천공의 신-(완료)] [희생의 신-(완료)]별 시답잖은 이유나 아예 아무런 이유 없이 퀘스트가 완료된 신들도 있었다.
빛의 신이야 특이 케이스라 보고.
자연의 신이나 천공의 신 경우에는.
“히힣, 더 이상 연관되기 싫다는 거겠징.”
완성자 세력과 키리키리 세력 간의 충돌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건가.
“너무 미친놈처럼 남의 성지를 헤집어 놨잖앙. 호오우재애랑은 더 이상 연관되고 싶지 않아 하는 신이 많아. 반대로 호오우재애 정도의 강한 신격이라면 백신전에 포함시켜야 된다는 신들도 있고.”
내 문제였다.
나랑 약간의 문제가 있던 자연의 신이나 희생의 신이라면 충분히 그럴 법하다.
천공의 신의 경우에는 퀘스트고 뭐고 내가 찾아가서 따져야 할 문제가 있지만.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백신전에 날 포함시킨다고?”
“응, 응. 나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호오우재애는 어떻게 생각해?”
순간 키리키리의 뒤통수를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은 개뿔.
“시스템의 통제 아래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
지금 그 시스템 때문에 이 사달이 났는데, 나도 그 아래에 들어가 똑같이 족쇄를 차라고?
사양이었다.
혹시 그런 시도가 있다면 아주 필사적으로 저항해 줄 의지가 있었다.
“히힝, 호오우재애랑 한식구가 되면 참 좋을 텐뎅.”
요 영악한 토끼 녀석.
한식구는 얼어 죽을, 방금 전까지 희망의 신의 몰락에 세상 기뻐하던 키리키리다.
음흉한 신들과 가 족같은 관계를 맺는 건 사양이었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애초에 백신전과 만신전의 탄생 배경도 서로 충돌하던 위험 신들을 시스템 아래 묶어 둔 것이라 들었다.
어쩌면 나도 그런 식으로 강제로 영입될 수 있다.
대책이 필요했다.
“아핳, 손님이 왔네. 나는 이만 가 볼게!”
키리키리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져 버렸다.
나도 곧 키리키리가 말한 손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숙소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한 인영이 나타났다.
붉은 피부, 인간보다 두 개는 큰 신장, 빽빽하게 근육이 들어찬 단단한 몸.
13층에서 보았던 수도승과 같은 종족으로 보였다.
“결투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