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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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
“호치랑 용용이는 그냥 둬. 알아서 하게.”
세레지아가 누운 침대 머리맡에 앉아 귤을 까며 말했다.
이게 은근히 귀찮네.
“괜찮겠어?”
일본 동부 해안에서 발생하던 몬스터 웨이브는 깔끔하게 방어했다.
앞으로 재발할 일도 없고.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또 안심시켜 줘야 한다.
호치와 용용이에게 그런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를 알고 있는 입장으로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물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무시해 봐야 나중에 더 귀찮아질 뿐이다.
거기에 이번 일을 성공적인 방어와 토벌로 포장하고 홍보하려 할 일본 정부와도 쿵짝을 맞춰 줘야 한다.
대외 선전을 위해 참여도 해야 할 거고.
“괜찮아.”
더럽게 귀찮겠지만.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뭐.
호치가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고 오면 계획대로 희망의 신의 성지에서 모은 신도들을 맡겨 볼 생각이다.
“사이비 단체하고도 연락됐어. 약속은 언제로 잡을까?”
강원도 쪽에 내 이름을 팔아 장사하고 있는 사이비가 있다고 들었다.
안 그래도 장사가 잘되었을 텐데, 최근 뉴스에 내 이름이 곧잘 오르내리니 더더욱 성황일 것이다.
“그것도 호치한테 맡겨 봐야겠네.”
희망의 신의 신도들을 맡기기 전에 예행연습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래, 희망의 신의 신도들은 난이도가 좀 높았다.
희망의 신에게 속아 절망 속에 허덕이는 신도들보다는 사이비에게 속아 돈 뜯기던 시골 사람들이 다루기 더 편할 것이다.
더 안전하기도 하고.
“아.”
세레지아는 내가 귤껍질을 다 까자마자 칼같이 입을 벌렸다.
한입에 귤을 넣어 주려 하자 고개를 젓는다.
“뭐, 하나씩 넣어 주라고?”
세레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았다.
그냥 귤 한 덩어리를 세레지아의 입으로 던져 넣었다.
그녀는 나를 째려보았지만, 입안에 들어온 귤을 뱉어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우물거리며 먹었다.
“세레지아, 귤 말고 딸기 같은 걸 먹지 않을래?”
귤은 껍질 까는 게 너무 귀찮았다.
“꼬다리 따 주시면 딸기를 먹겠습니다.”
응, 싫어.
귀찮다.
“그럼 얼추 마무리된 거지?”
“일단 네가 오자마자 벌여 놨던 일은 어느 정도.”
김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색이 조금 밝아져 있다.
호치와 용용이를 일본에 보내고, 내가 사라졌던 동안 얼굴 혈색이 조금 나아져 있었다.
어쩌나 다시 바빠질 텐데.
“협회에 박민 좀 불러.”
“그 녀석은 왜? 적당히 내버려 두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아니었다.
희망의 신에게 이용당한 녀석이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손은 봐 둬야 했다.
“감염시켜서 꼭두각시로 만들어 두면 충분하겠지.”
“…너, 그런 것도 할 줄 아냐?”
당연히 알지.
비 신격을 대상으로 한다면 김민혁이 상상할 수 있는 건 뭐든 할 수 있다.
“그리고 각성자 애들 좀 모으자.”
“애들은 왜. 각성자가 필요한 거면 그냥 길드 인원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아냐, 부족해.”
나 자신의 힘은 충분했다.
일행과 61층의 부하들도 능력 자체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숫자였다.
세력을 넓히기 위해선 더 많은 하수인이 필요했다.
“내 밑에서 일할 애들이 더 많이 필요해. 아마 대외적으로는 호치나 네 밑에서 일하는 게 되겠지만.”
김민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일단 내 선에서 모을 수 있는 건 지금 길드에 있는 애들이 전부야. 지금 묶여 있는 계약이 끝나면 오겠다는 녀석들도 있지만, 많지는 않고.”
요컨대 미끼가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각성자를 끌어모을 만한 미끼라.
“레벨 업을 보조하는 시스템창. 제한적인 크기의 인벤토리. 튜토리얼 산 아이템 하나씩. 이 정도면 미끼로 충분할까?”
“충분하지.”
김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나부터 혹하는 제안인데. 진짜 시스템이랑 인벤토리를 지원할 수 있어?”
있다.
시스템은 내가 만들면 되고.
인벤토리는 내 아공간의 일부를 내주고, 개인 좌표를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처리된다.
아이템은 그냥 튜토리얼에서 구해 오면 되는 거고.
“그래도 안 오는 애들은 그냥 알아서 하라고 둬. 다 데려갈 수는 없는 거니까.”
굳이 관심 없는 사람에게 매달려 가며 끌어모을 필요까지는 없다.
“그런데 애들 모아서 뭐하게?”
김민혁이 물었다.
사실 지구에선 각성자들을 아무리 모아 봐야 쓸데가 없다.
지구에서보다는.
“애들 좀 밖으로 내보내자.”
“밖?”
“타 차원.”
튜토리얼을 클리어한 지구의 각성자들은 다들 다른 세계로 넘어가 미션을 클리어하는 것에 익숙했다.
좀만 더 키워 주고 훈련시킨다면 차원 게이트 너머로 원정을 내보낼 수 있다.
“타 차원이라고? 그게 가능해?”
가능하다니까.
사실 좌표만 있다면 타 차원과 연결된 포탈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이번에 희망의 신 때문에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꽤나 많은 좌표를 알아 왔다.
희망의 신의 흔적을 찾으며, 있는 대로 좌표를 찾다 보니.
그중에는 지구인들이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을 만한 행성도 더러 있었다.
차원 원정은 당연하게도 어마어마한 이득을 불러올 것이다.
타 차원의 새로운 자원과 문물들만 생각해도 그랬다.
개발되지 않은 오지를 식민지로 삼아도 되고, 문명화된 종족들과 협약을 맺고 거래를 해도 된다.
이런저런 교류를 통해 토착지에선 자연히 지구 인간들의 영향력이 증대된다.
그리고 지구의 영향력은 곧 내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차원 게이트를 열고, 관리하는 게 나니까.
게이트를 이용하는 인간들에게 적당히 공물을 바치게 하고, 신도로 들어오도록 할 수 있다.
“입장 수수료가 아니라 아예 우리가 독점해도 되겠는데?”
김민혁이 물었다.
새로운 화두가 주어지자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바람직했다.
“아니면 아예 그룹을 분산시키고, 그 모두를 우리 산하 그룹으로 끌어들여도 되고. 어차피 차원 게이트를 보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래, 그래, 나는 상관없으니까, 모델은 네가 알아서 만들어 봐.”
“알았어.”
김민혁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이렇게 귀찮은 일을 성심성의껏 대신 고민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편했다.
내가 머리 쓸 필요가 없잖아.
“용사님.”
조용히 있던 세레지아가 나를 불렀다.
“어, 왜, 귤 더 까 줄까?”
“돈가스가 먹고 싶습니다.”
…아, 그래.
돈가스가 먹고 싶구나.
그럴 수도 있지.
“야, 야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김민혁을 불렀다.
게이트에 대한 생각으로 집중하고 있는지 여러 번 불러야 했다.
“왜?”
“야, 우리 돈가스 먹지 않을래?”
네가 사 오라는 뜻이었다.
덤으로 네 것도 사 오고.
“시킬게. 배달시키면 되지.”
“안 돼, 네가 사 와야 돼.”
“…왜.”
“우리 서울에 있는 신전에 가 있을 거거든. 거기, 잠실 운동장 개조해서 쓰고 있는 거기. 거긴 아직 배달 오면 안 되거든. 그러니까 네가 사서 가져와야 돼.”
신전은 나중에 용용이가 꾸며 주기 전까지 인간들에게 개방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쨌든 신전이니까.
너무 허름하고, 별것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위신이 깎인다.
“…거 돈가스 안 먹으면 안 되겠냐.”
“안 됩니다.”
세레지아가 칼같이 말했다.
평소에는 어조조차 들리지 않는 평온한 말투였지만, 이럴 때만큼은 목소리에 날이 서 있는 것만 같다.
“…알았어.”
김민혁은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쭉 떨어뜨린 채 방을 나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굳이 그 머릿속을 읽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다.
사라졌던 녀석들이 오자마자 다시 귀찮을 일투성이라고 툴툴거리겠지.
세레지아는 김민혁이 나가자마자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귤 줄까?”
세레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겠지.
세레지아가 먹는 걸 좋아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그저 투정이었다.
침대에 누워 아픈 시늉을 하면서, 귀찮은 잔심부름을 시키고.
꽤나 인간다운 투정이었다.
지구로 빨리 돌아가자는 의견을 무시했기 때문이거나, 자신을 험하게 사용했다는 이유로 툴툴거리며 내게 죄책감과 사과를 강요하는 투정은 아니었다.
세레지아는 검이었고, 무기였다.
그녀를 도구처럼 다뤘다는 이유로 화를 낼 리가 없었다.
세레지아가 원하는 대로 김민혁도 내보냈으니, 이제 그 이유를 들어 볼 차례였다.
“굳이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래.
역시 그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화두였다.
희망의 신이 건네준 힘을 받은 가짜와 정면으로 격돌했을 때.
세레지아는 그때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겼잖아.”
세레지아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다.
세레지아가 이러는 이유는, 그녀가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기 때문이라는 걸.
“적은 신격의 끝자락에 겨우 발을 걸치고 있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힘은 대등했습니다. 어쩌면 용사님보다 앞섰습니다.”
확실히 그랬다.
힘의 총량만을 생각한다면, 그때 가짜가 휘둘렀던 희망의 신의 힘은 내 힘을 상회했다.
“상대는 당연하게도 한 방 싸움을 준비했습니다.”
가짜는 힘으로 찍어 누르기 위한 가장 당연한 방법을 선택했었다.
막아 내거나 그 힘을 흘려버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모든 힘을 일격에 담았다.
좋은 판단이었고, 옳은 판단이었다.
내가 그 입장이더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상대는 그 순간을 계획하고, 또 오랫동안 준비해 왔을 겁니다. 판단의 근거는 충분했습니다.”
“그랬겠지.”
애초 희망의 신은 그 순간만을 위해 가짜를 준비시켜 둔 것처럼 보였다.
가짜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모든 걸 불태우며 집중했던 순간이었고.
“싸움이 조금이라도 끌리면 내 필승이었겠지.”
“예.”
정면으로 싸워 주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면.
희망의 신이 먼저 도망쳐, 사라진 그 상황에서 가짜와의 싸움을 조금 더 비비 꼬았다면.
보다 간편하게 이길 수 있었겠지.
그게 세레지아가 우려하는 이유였다.
물론 내가 승리하긴 했지만, 가짜가 순간적으로 방출했던 위력은 세레지아가 힘을 소진하고 앓아누울 정도였다.
위험부담이 전혀 없는 승부는 아니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내가, 상대에게 유리한 정면 대결을 왜 굳이 받아들였나,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과거 튜토리얼에서처럼 성장과 경험을 위해서였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 정면 대결은 결투의 신이나 할 법한 행동이었지.”
“맞습니다.”
그 정면 대결의 이유가 어쩌면 가짜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 아닐까, 하는 것이 세레지아의 걱정이겠지.
실제로 가짜가 죽어 가던 와중에 세레지아는 가짜를 동정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세레지아는 항상 이런 점을 염려한다.
감정에 의해 빈틈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어쩌면 다분히 무기다운 사고방식이었다.
한때는 내 사고방식도 그녀와 정확히 일치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조금의 차이가 생겼을 뿐, 아주 다르진 않았다.
대답하기 전, 신전 내부로 이동했다.
혹시나 누가 엿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동 후, 세레지아에게 말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
“두 가지나 됩니까?”
세레지아가 되물었다.
오히려 판단 근거가 두 가지밖에 안 된다고 타박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를 단세포로 보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는 그냥 이길 것 같아서. 상대가 얼마나 유리하고, 그 유리함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는지와 상관없이 내가 이길 거니까.”
그런 확신이 있기에 승부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애초에 그 확신이 없었다면 이곳에 있지도 못했겠지만.
“두 번째는 물러날 수 없었기 때문이야.”
“무슨 뜻입니까?”
세레지아가 되물었다.
이거 설명하기 애매하네.
“왜 가끔은 이기고도 진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
프로게이머 시절에도 종종 느꼈던 기분이다.
분명 내가 이겼는데, 마치 내가 진 것처럼 짜증이 날 때.
보통 나보다 급이 떨어지는 선수와의 대결에서, 상대의 선전이 아니라 내 실수로 게임이 말렸을 때가 그랬다.
“…혹시 그런 기분이 패배를 의미하기도 합니까?”
“그렇지. 실질적으로는 패배하지 않았더라도.”
세레지아는 침묵했다.
나는 그녀의 침묵을 받아들여, 잠시 기다려야 했다.
내 신성의 근간은 계속되는 승리이다.
그 승리에 대한 확신과 신앙이야말로 현재의 나를 있게 했고, 또 지탱한다.
다르게 설명한다면, 승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내 신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신격이라는 게 그렇다.
결투의 신이 비열한 승리를 위해 누군가의 뒤통수를 칠 수 없고, 빛의 신이 어둠 속에서 잠들 수 없는 것처럼.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였다.
“…지나치게 페널티가 큰 신성이었군요.”
잠시 침묵하던 세레지아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했다.
나는 그저 적당히 강한 힘이 아니라 압도적인 힘을 바랐다.
내 목적을 위해선, 어쩌면 백신전의 모든 신을 적으로 돌리는 가정마저 해야 했다.
60층과 61층을 내 성지로 삼고, 나아가 튜토리얼의 모든 스테이지를 내 손에 넣겠다는 목표를 위해선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다.
“단 한 번, 내 마음속에 패배라는 단어가 울린다면 나는 모든 걸 잃을지도 몰라.”
패배하더라도 그게 최종적인 승리를 위한 발판이라 여긴다면 나는 그걸 이겨 낼 것이다.
하지만 승리하더라도 내 마음속에 패배감이 드리운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확신이 있어.”
“무슨 확신 말입니까.”
“결국은 내가 이겨 낼 거라는 확신. 몇 번을 넘어지고 가로막혀도 계속 나아갈 거라는 확신. 이제는 평생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장담하건대.
그 확신은 절대 부러질 일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