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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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전 (1)
“야, 근데 이준석 아이템은 왜 안 돌려준 거야?”
“응……? 어?”
호치가 느닷없이 이준석의 아이템에 대해 물어보았다.
무슨 아이템?
“예전에 이준석이가 튜토리얼 클리어하고 나갔을 때, 너한테 아이템 주고 갔다던데.”
아, 기억났다.
이준석을 설득해 밖으로 내보냈을 때, 이준석은 그동안 모아 왔던 아이템들을 모두 나에게 보내 주었었다.
성장 일지 같은 잡템부터 주력으로 사용하던 장비템까지.
튜토리얼 밖으로는 물건을 가지고 가지 못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내 경우에는 튜토리얼 밖에서도 인벤토리를 자유롭게 쓰고 있지만.
“그 아이템들, 네 인벤토리에 아직 남아 있을 것 아냐.”
…아닌데.
“빨리 줘. 얘, 그 아이템들이 꼭 필요하대.”
난감하다.
호치가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준석에게 미리 부탁을 받은 모양이다.
이준석으로서는 정말 간절했을 테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극단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스킬의 위력만을 성장시켰다.
문제는 그 위력을 안정적으로 받아 낼 역량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당연히 힘을 쓸 때마다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고, 컨트롤이 안 되니 힘을 일점에 집중시킨다든가, 범위를 한정시킨다든가 하는 기술은 꿈도 못 꿨다.
자신의 힘조차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유리 대포였고, 그나마도 그냥 쾅, 터뜨리는 게 전부인 인간 폭탄이다.
이준석은 호치의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지만.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보면, 그가 지금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거 커뮤니티에다가 뿌렸는데.]이준석이 필요로 하는 아이템은 아마 그가 주력으로 쓰던 핵심 아이템들일 것이다.
일지나 액세서리, 포션류의 다른 아이템들은 크게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근데 그 핵심 아이템들을… 커뮤니티에다가 뿌렸다.
댓글 선착순으로.
그 아이템들의 행방은 당연하게도… 전혀 몰랐다.
[…미쳤냐? 남이 맡긴 걸 왜 뿌려.]호치가 나를 나무랐다.
할 말이 없었다.
“준석아.”
“네, 형.”
“내가 보기에 말이야…….”
어쩔 수 없이 약을 팔아야 했다.
이준석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너는 아이템이 필요한 게 아니야. 지금 네 문제를 아이템으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다시 그 아이템에 의존할 뿐이지. 스스로 성장해서 네 문제를 극복하는 게 우선이야.”
사실 헛소리다.
도구로 약점을 극복할 수 있으면, 극복하면 되는 일이지.
편집증적으로 약점을 없애기 위해 몸뚱이를 험하게 굴리던 과거의 나나 할 법한 말이었다.
물론 과거의 나를 알고 있는 이준석으로서는 ‘아, 역시’ 하고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일 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형… 저 지구에선 제대로 수련도 못 해요. 힘을 시험해 볼 상대도 없고요. 잘못 힘을 썼다다가는 주변에 피해가 가서…….”
그러겠네.
젠장.
빠르게 빠져나갈 구멍을 생각해 보았다.
“그럼 지구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훈련하면 되겠네.”
“다른 곳이요?”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서 수련이 힘들다면 다른 곳으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퀘스트창] [죽음의 신-타나토드의 정화]설명: 죽음의 신은 계속되는 회귀로 오염된 타나토드를 정화하고 싶어 합니다.
다수의 완성자를 인위적으로 탄생시키기 위한 실험이 진행되었던 타나토드는 완전히 오염되어 버렸습니다.
그곳에선 망자가 망자를 잡아먹고, 잡아먹힌 망자가 다시 태어나 자신을 잡아먹은 망자를 잡아먹습니다.
끝맺음이 없는 포식의 고리이며, 동시에 불사불생의 순환입니다.
타나토드는 백신전의 공동 구역이지만, 과거 죽음의 신의 영향력이 강성했던 장소입니다.
죽음의 신은 타나토드를 정화하고, 과거 타나토드의 모습을 되찾아 주고자 합니다.
타나토드에 존재하는 모든 망자를 소멸시키십시오.
타나토드의 망자들은 당신의 기준에서 크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이들에게 버려진 폐행성이라는 점과 백신전의 공동 구역으로 남아 있다는 점 때문에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죽음의 신은 어떤 도전자에게 모든 권능을 몰빵해 선물했지만, 그 도전자는 당연하게도 얼빵한 죽음의 신을 선택하지 않았고(아하핳), 결국 퀘스트를 통해 타나토드의 정화를 요청했습니다.
중간에 죽음의 신이 얼빵하다느니, ‘아하핳’ 하는 웃음은 그냥 무시하자.
이 퀘스트창은 백신전의 시스템이 아니라 키리키리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어쨌든 타나토드는 이준석을 보내기에 적합한 곳으로 보인다.
애초에 죽음의 신이 원했던 건, 신격인 내게 할 만한 부탁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사도에게 부탁할 일이었지.
문제는 죽음의 신이 튜토리얼을 통해 사도를 구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퀘스트라면 이준석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망해 버린 행성이니, 망자들을 처치하는 도중 주변에 피해가 갈까 염려할 일도 없고.
이준석에게 퀘스트 내용을 알려 주면서 제안했다.
“저런 곳이라면 네가 원하는 만큼 수련할 수 있을 거야. 퀘스트는 둘째 치고, 힘을 원하는 만큼, 마음껏 써 볼 수 있는 기회니까.”
겸사겸사 내가 직접 하기엔 귀찮았던 퀘스트도 떠넘기고.
퀘스트는 물론 하긴 해야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것보다는 60층과의 연결이 더 급했다.
“만약 네가 이 일을 잘 수행해 내고, 유의미한 성장을 보여 주면 내가 보상으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줄게. 기깔나는 걸로.”
장담하건대, 이준석이 내게 맡겼던 것보다는 훨씬 나은 물건일 것이다.
“어때, 할 수 있겠어?”
“네.”
잠시 고민하던 이준석이 대답했다.
다행이었다.
“타나토드의 망자들은 93층에서 본 적이 있어요. 행성의 모든 망자를 처치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요. 하지만 마음껏 힘을 쓰고, 또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다행히 이준석은 튜토리얼에서 타나토드라는 곳을 겪어 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이준석은 임무의 어려움보다는 훈련의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 더 반가운 듯 싱글벙글했다.
역시 201레벨까지 노가다로 성장한 노력충다웠다.
“그래, 혹시 위험할지 모르니까, 처음에는 용용이를 같이 보내 줄게.”
이준석은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이제 막 일본에서 돌아온 참이니, 집에 들러 가족을 만나고 오겠다고 했다.
나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충분히 쉬다 오라고 했고.
이준석을 보내고 나자 호치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한테 퀘스트 받아 가는 게 재밌어 보였나.
나는 호치에게 강원도에 있는 사이비 집단을 방문해 그들을 만나 보라고 부탁했다.
희망의 신의 신도들을 맡기 전, 예행연습 정도로 삼을 생각이다.
“걔네 스스로도 사이비라 생각하지만, 나는 진짜 신이잖아. 그걸 바로잡아 주고, 신도들을 고취시켜 주는 정도면 충분해. 할 수 있겠어?”
“당연하지.”
호치의 대답은 자신만만했다.
* * *
부들부들한 촉감의 풀이 바닥에 깔린 장소였다.
따스한 빛과 푸석푸석하지도, 축축하지도 않은 흙까지.
누구나 이곳을 가리켜 아름다운 들판이라 부를 만한 환경이었다.
지평선 근처에 보이는 거대한 벽과 구름 위를 가로막고 있는 천장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크기의 벽과 천장은 이 장소가 실외가 아닌 실내임을 알려 주었다.
키리키리는 이곳을 좋아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장소는 으레 탁 트여 있고, 생명의 기운이 만연한 들판이나 산지였다.
그러니 표현을 조금 수정해야 했다.
키리키리는 백신전 안에서는 이 방을 가장 좋아했다.
그녀의 방이었고, 그녀의 취향에 가장 부합하도록 조성된 방이었으니까.
“어찌 생각하는가.”
키리키리의 방에 찾아온 균형의 신이 물었다.
키리키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콧잔등을 긁적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키리키리는 아직 선택하지 못했다.
“판단을 알려 달라는 게 아니네.”
“그럼?”
“나는 그저…….”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한 거지.”
균형의 신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긋하고 부드러운 동시에 차갑고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키리키리처럼 수인이었다.
토끼 귀가 아닌 여우의 귀가 보였고, 등 뒤로는 여러 개의 꼬리가 나풀거렸다.
“희생의 신.”
“당장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어. 그냥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듣고, 우리도 조금 더 이 상황을 이해하고 싶은 것뿐이야.”
키리키리는 희생의 신의 말에 침묵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뜻을 함께하고 있고, 그녀의 의견을 지지하고 있는 신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상황을 보고 있는지조차 숨길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신들과 충돌하게 될 거야, 어떤 이유로든.”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를 위해 직접 퀘스트창을 만들어 주긴 했지만, 그건 결국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백신전의 신들은 키리키리가 제시한 조건에 동의했다.
투표를 통한 다수결로.
각자 한 가지씩 퀘스트를 내걸고, 이호재가 그 모두를 클리어하면 튜토리얼을 이양해 주기로.
신들은 알고 있었다.
몇몇 신은 이호재가 어떤 조건의 퀘스트를 클리어해 주건 튜토리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그래서 퀘스트를 통한 튜토리얼의 이양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들에게, 이호재에게 주어진 퀘스트는 튜토리얼을 대가로 한 거래가 아니라 그를 기만해 공짜로 한 가지 부탁을 강요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도 알고 있어. 사실 퀘스트에는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그럴까? 그는 퀘스트 때문에 희망의 신의 생존을 용인했어. 내키지 않는 결투의 신과의 대화도 감수했고. 여기, 균형의 신과 거래하기도 했어.”
희생의 신은 키리키리의 예상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양, 확실해.”
“이유를 들어 볼 수 있을까?”
키리키리는 대답하기에 앞서, 땅바닥에 낙서하듯 그림을 그렸다.
정말, 정말로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녀가 존재해 왔던 길고 긴 시간만큼이나.
균형의 신과 희생의 신도 그녀의 습관을 알고 있어서 키리키리가 낙서를 마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만약 퀘스트를 정말 중요하게 여겼다면, 이미 대부분의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거야. 직접 움직이면서. 그는 눈앞에 있는 목표를 두고 딴짓할 만큼 여유 있지 않아.”
이호재가 지구에 온 이후 한 일은 별거 없다.
주변을 조금 정리하고, 자신과 함께 지구로 나온 일행이 지구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험을 쌓게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튜토리얼 60층과의 연결에 전념하고 있다.
중간에 희망의 신과 충돌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먼저 나선 것이 아니라 희망의 신의 공격을 받아친 것이었다.
60층, 61층과의 연결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신력의 공급을 원활히 하고, 60층과 61층에 숨겨 놓았을 전력들을 가져오는 것.
당장 퀘스트창에 명시된 퀘스트를 클리어하기에는 지금 있는 힘으로도 충분했다.
이호재는 명백히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 필요한 힘 이상을 준비하고 있다.
“그냥 자기 성지와 연결해 두고 움직이는 편이 좋아서일 수도 있잖아.”
희생의 신이 말했다.
키리키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이호재라면 그런 여유를 부리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 많이 변화했다지만.
“결국 모든 신의 부탁을 들어주기보다는, 몇몇 신의 경우 희망의 신처럼 힘으로 굴복시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
“흐응, 거기서 문제가 생기는구나? 어느 쪽이 승리할지. 아니지, 어느 쪽이 승리하는 편이 백신전에 이로운지가 의문인 모양이네.”
이호재의 힘은 아직도 다 드러나지 않았다.
그가 희망의 신과 충돌할 때만 해도 대부분의 백신전의 신은 그저 즐겁게 그 충돌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원했던 충돌이었으니까.
룰을 비틀어 가며 백신전을 좀먹고 있던 희망의 신은 수많은 신의 공적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충돌의 결과가 이호재의 일방적인 승리로 드러나자 신들의 태도는 급변했다.
이호재의 특수한 위치 때문이었다.
그는 희망의 신처럼 규칙을 뒤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규칙의 바깥에 존재했다.
신들이 경각심을 갖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당장 지금도 이호재를 백신전, 최소한 만신전에라도 포함시켜야 된다는 의논과 투표가 오가고 있었다.
강제적으로 그를 신전에 소속시켜야 된다는 주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시기에 따라 튜토리얼과 무관하게 그와 백신전의 신들이 충돌할 것이다.
“아직 어느 쪽을 도와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어.”
키리키리가 답했다.
그 말에 희생의 신은 웃으며 말했다.
“설명 고마워. 어느 쪽을 택하든, 나는 네 의견에 동의할 거라는 건 알아 두고.”
“내 선택을 믿는 거야?”
키리키리의 물음에 희생의 신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믿어야지. 모든 일에는 희생이 불가피하지만, 나는 희생당하는 쪽에 서는 건 싫거든. 항상 그 반대편에 서는 네 쪽에 붙는 게 당연하지.”
“나, 그대의 선택을 따를 것이다. 그대는 항상 혼란을 종식시키는 방향을 택해 왔으니.”
희생의 신에 이어 균형의 신도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이야기를 마친 둘은 키리키리의 방에서 떠났다.
다시 혼자가 된 키리키리는 쪼그려 앉아 뜀박질을 하며 들판을 뛰어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뛰어다니다 보니 키리키리의 기분도 조금은 상쾌해졌다.
“정말 어떻게 되려나.”
키리키리는 백신전의 몇몇 신과 이호재의 충돌보다는 그 이후를 걱정했다.
그가 신들의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튜토리얼을 얻었을 때, 그의 오랜 목표를 비로소 이루어 냈을 때.
그 이후가 걱정되었다.
“호오우재애.”
혼자 그의 이름을 중얼거린 키리키리는 잠시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 요상하게 늘어지는 이름을 가진 인간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 또한 감히 짐작되지 않았다.
비로소 과녁을 꿰뚫은 그가, 스스로에게 버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 있는 천장을 무시하려 애쓰며.
느림의 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우주의 시간을 증거하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신은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을까.
알 수 없었다.
자신은 미래를 예지할 수도, 인과에 관여할 수도 없다.
그저 염원하고, 행동할 뿐이었다.
모험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 결과를 미리 엿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