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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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60층 (20)
“의외야.”
키리키리가 말했다.
“뭐가.”
“히힝…….”
키리키리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귀를 긁적였다.
그냥 손을 들어 올리면 귀를 긁을 수 있는 인간과 달리, 키리키리는 자신의 귀를 긁기 위해 팔을 하늘 높이 뻗어야 했다.
꽤나 불편해 보였다.
결국 키리키리는 얼굴 앞까지 귀를 끌어내린 뒤에야 보다 편하게 귀를 긁적였다.
“벼룩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양!”
키리키리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나는 복슬복슬한 털이 있는 귀를 자꾸 긁으니까.
뭐, 벌레라도 있는 줄 알았지.
키리키리는 내 말에 화가 났는지, 씨익씨익, 콧김을 내쉬며 나를 째려보았다.
벼룩 있냐는 말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기분 나쁜 모양이다.
수인이라서 그런가.
보통 인간에게 벼룩 있냐는 말은 그냥 벌레가 있을 만큼 더럽거나 안 씻고 다니냐는 정도의 놀림…….
음, 기분 나쁠 수도 있겠구나.
“실례야!”
“그래, 실례네. 미안해.”
“치…….”
키리키리는 분이 덜 풀린 것 같아 보였지만, 내가 사과를 한 이상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과정을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결과에 얽매인다.
“근데 뭐가 의외라는 거야?”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키리키리는 내 물음에 자신도 모르게 다시 귀를 긁적이려 했지만, 그것을 눈치채고 급하게 팔을 내렸다.
대신 자신의 볼따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호오우재애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엉.”
그렇게?
“아까 이연희에게 했던 말?”
“응.”
키리키리는 내가 60층에 들어올 때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다.
단지 이연희가 자신에게 화낼 거라며, 숨어 있었을 뿐이다.
“너도 내가 이연희를 죽일 줄 알았나 보네.”
“응.”
키리키리는 이번에도 짧게, 그리고 칼같이 대답했다.
이거 내 대외적인 이미지가 어디까지 떨어져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세상에낭, 섭섭해랑.”
키리키리의 말투를 따라해 보았다.
“하지 마아.”
키리키리가 도끼눈을 하며 말했다.
솔직히 그리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다.
“응, 안 할게. 미안.”
“…….”
칼같이 사과하니, 키리키리는 이번에도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새로운 공략법을 찾았다.
하지만 너무 남발하지 않는 게 좋다.
어느 선을 넘어간다면, 장난처럼 했던 말들 때문에 내 말에 대한 그녀의 신뢰가 떨어질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키리키리는 양치기 소년이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를 아주 친절하게 알려 줄 것이다.
“정말 의외였어. 연희를 죽이지 않은 것보다는 호오우재애가 했던 말들이. 나는 호오우재애가 적이었던 이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키리라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한때 적이었지만, 더 이상 적이 아니게 된 이들과도 곧잘 지냈었다.
당장 이디부터 그랬다.
만나는 대부분의 인물이 적이거나, 적이 될지도 몰랐던 튜토리얼 스테이지였기에 그랬다.
만약 내가 한번 적으로 만난 상대와는 절대로 상종하지 않았다면.
내가 대화하고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이는 튜토리얼 안에 몇 되지 않았다.
“이연희의 능력을 아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키리키리는 과거 이연희가 나와 주고받던 편지들을 보여 주며, 어떻게 답장할지 상의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유대를 이야기하면서 설득할 줄은 몰랐어.”
역시 그게 의외였나.
“그리고 내가 아는 호오우재애는 그런 걸로는 거짓말 안 해.”
“그래, 그거 진심이었어.”
사실 이연희와 내 관계는 조금 미묘하다.
가족이나 친구라고 하기에는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 짧았고.
동료나 제자라고 말하기에는 더 큰 존재였다.
정확히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깊은 관계임은 확실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연희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 믿는다.
“나는 호오우재애가… 가족과 동료들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키리키리는 결국 제 귀를 끌어내려, 그것을 긁적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유대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약점이 된다고 생각할 줄 알았어.”
나는 이연희에게 우리의 유대를 말하며, 그 때문에 그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중요한 문제다.
키리키리에게는 그랬다.
“예전에는 그랬지.”
과거에도 친구들이나 다른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기는 했지만, 분명 그들의 존재를 약점으로 여겼다.
내 마음에 빈틈을 만드는.
그럼에도 소중했기에 놓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시선을 빼앗겨 목표를 망각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도 했다.
“지금은 달라?”
나는 키리키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60층에서 나를 견디게 해 주었던 건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었다.
하루하루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박정아.
다시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던 이연희.
내 가족이 되어 주었던 호치와 용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믿고 기다려 준 세레지아까지.
내 주변에 있는 이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고,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오글거리고 민망한 이야기였지만, 키리키리에게 그런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키리키리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양.”
그러고는 힝힝거리며 콧소리를 내었다.
“느림의 신이 언짢아하겠네. 히힣.”
그게 중요한 거냐.
나는 어이가 없어 그냥 웃어 버렸다.
* * *
“가려고?”
“응.”
키리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희가 일어나면 얼굴이라도 보고 가지그래?”
국밥을 먹으며 거하게 눈물을 쏟아 내었던 이연희는 조금 진정되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보나 마나 평소에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야, 그냥 갈랭.”
아쉬웠다.
아무래도 아직 이연희를 마주하기는 어색한 걸까.
키리키리를 설득할 다른 말을 생각해 보았다.
“여기 있으면 어쩐지, 누군가가 내 힘을 조금씩 훔쳐 가는 기분이 들엉.”
아이고.
날카로워라.
“그… 럼 어쩔 수 없지. 잘 가.”
“히힝, 잘 있어. 사람들은 5분쯤 있다가 소환될 거양.”
키리키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60층에서 사라졌다.
나는 오랜만에 메시지창을 열었다.
[이호재, 60층 : 정아야, 준비됐지?] [박정아, 90층 : 어.]박정아에게서 답변이 왔다.
어쩐지 말이 다시 짧아졌다.
조금 불안했다.
[이호재, 60층 : 이제 시작될 거야.]곧 지구 서버의 모든 튜토리얼 도전자가 소환된다.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구는 이제 백신전이 아니라 내 영역이 되었다.
당연히 백신전이 지구인들을 대상으로 튜토리얼을 운영하는 건 월권행위였다.
내 영역을 상대로 한 침략이기도 했고.
나는 지구의 튜토리얼 도전자들을 60층을 통해 지구로 귀환시키자는 키리키리의 제안에 동의했다.
[지구 서버의 모든 튜토리얼 스테이지가 정지합니다.] [지구 서버의 도전자들의 도전자 자격이 회수됩니다.] [지구 서버의 도전자들이 외 차원 ‘HX60’으로 강제 이동됩니다.]저 ‘XH60’은 더 이상 튜토리얼 스테이지가 아니게 된 내 60층을 백신전에서 부르는 말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메시지 때문인지, 아니면 차원 링크가 열리는 걸 감지한 건지 자고 있던 이연희가 밖으로 뛰어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대충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 있자 곧 사람들이 60층 광장에 소환되기 시작했다.
빠르게 아는 얼굴을 찾아 뭉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부산을 떨며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도 있었다.
생각보다 혼란은 적었다.
하긴 저 사람들은 두 달간 거주 지역에 머물며, 이 상황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서.
하지만 혼란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도 있는지, 조금은 높은 언성이 들려오기도 했다.
시끌시끌했다.
아무래도 천 단위의 사람이 갑자기 한곳에 소환되다 보니 혼잡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보다는 소환되자마자 나에게 맹렬하게 달려들고 있는 저 여자부터 받아 내야 했다.
퍽!
“어윽!”
내 몸에 부딪힌 박정아가 억눌린 비명을 흘렸다.
다행히 기절하지는 않았다.
“나는 최대한 힘 뺀 거야.”
그러지 않았으면 박정아는 지금쯤 다진 고기 비슷한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박정아는 뭐라 대꾸도 하지 않고, 내 몸에 매달린 채 가만히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내 가슴에 밀어붙인 채로.
“얼굴 좀 들어 봐. 십 년 만에 만났는데, 얼굴 좀 보자.”
박정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꼭꼭 찌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예전에는 여기 누르면, 움찔거리면서 간지러워했는데.”
끄음…….
이제 와서 그런 간지러움에 반응할 리가 없다.
“혹시 신이 되셨다고 감각이 무뎌졌다거나.”
얘는 계속 뭔 소리를 하려는 거야.
“아니면 번뇌를 벗어던지고 해탈하셨다거나, 성욕이… 아니, 그 고자가…….”
“아니야, 여전히 건강하거든? 정상적이거든?”
나도 모르게 발끈하며 대답했다.
정아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응, 이런 성격이었다.
신이 되었다고 욕망이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에 더 맹목적으로 매달릴 뿐이다.
박정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떨림이 더 여실히 느껴졌다.
“정아야.”
항상 이런 식이다.
박정아는 항상 대범함을 가장하려 했다.
더 대범하게, 더 잔인하게 보여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려 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그녀가 다음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럼 이제는 더 이상 예전 같은 감정이… 아니라거나…….”
그게 묻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 긴 시간이 지나 버렸다.
그녀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가지고 있는 불안이어서 그랬다.
“만약, 만약 그러면 지금 말해 줘요.”
“아니야.”
확답할 수 있었다.
박정아는 잠시 침묵한 뒤에야 다시 말을 이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잖아요. 다시 만나고 싶기는 했어요?”
마지막으로 박정아를 만났던 건 내가 60층에 갇히기 전이었다.
세 번째 경합 때.
그게 무려 11년 전이었다.
“나도 널 다시 만나기를 항상 바랐어.”
솔직하게 말했다.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박정아에게는 항상 미안했다.
지금 이렇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지금도 그렇고.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박정아가 튜토리얼에 남아 있던 이유가 나를 기다리기 위함임을 알고 있었다.
오래전에 이미 90층에 도달했고, 이제는 자경단 일도 손에서 뗐지만.
그녀가 먼저 나가 버렸을 때, 남을 나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음을.
박정아는 그제야 나를 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을 훔치면서 속 시원하다는 듯이 웃었다.
“하, 진작 솔직하게 물어볼 걸, 괜히 끙끙 앓았네.”
박정아는 금세 씩씩한 태도를 되찾았다.
보기 좋았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그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실 외형은 십 대 시절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으니, 더 그랬다.
“어때, 십 년 만에 얼굴 보니까.”
“좋네요. 그리고.”
박정아는 잠시 ‘으으음’ 하며 뜸을 들였다.
“되게 어색하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나도 피식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기에는 너무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과거와 똑같은 모습 속에서 조금씩 달라진 것들이 보였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히 생기는 변화였지만, 우리는 서로 그 변화를 지켜보지 못했거나, 메시지 따위로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했어.”
경합에서 호치를 중계 수단으로 한 반지를 통해 했던 말이다.
메시지를 통해서도 여러 번 했던 말이고.
하지만 얼굴을 직접 보고, 다시 말해 주고 싶었다.
“나도 그래요.”
박정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나를 꼭 끌어안았다.
잠시 그렇게 있는데 박정아가 씨익 웃음을 보였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듯.
박정아는 내 어깨너머로 얼굴을 빼고 있었기에, 내 시야에 비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굳이 눈에 비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주변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나를 꼭 끌어안은 박정아는 내 어깨너머로, 뒤에 서 있던 이연희를 바라보며 지긋이 웃어 주고 있었다.
이연희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박정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무서운 표정으로.
저기… 이런 구도는 좀 곤란합니다.
* * *
박정아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그녀와의 재회도 중요했지만, 저기,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인간들을 가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자, 조용히 해라. 여기 집중하고.”
언령을 섞어 말하자 모두의 입이 일제히 닫혔다.
광장의 단상 위에 올라가,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지금부터 너희는 필요한 말만 할 수 있다. 질문 받는다.”
필요한 말만 할 수 있다는 언령은 여러모로 유용했다.
말 그대로 쓸데없는 질문이나 중복 질문을 하려는 사람의 입은 애초에 열리지도 않는다.
“저희는 바로 지구로 돌아가는 건가요?”
누군가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아니었다.
“아니.”
나는 저들을 백신전으로부터 양도받았다.
저들은 이제 내 손아귀에 있다.
저들은 쓸 만한 인력이었고, 나는 지금 인력이 필요했다.
내가 저들을 자유롭게 집으로 돌려보내 줘야 할 이유.
그딴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너희는 튜토리얼을 다 클리어하지 못했어. 다 교육이 안 끝났다는 말이지. 앞으로는 튜토리얼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서 훈련을 받게 될 거다.”
그 훈련이 끝나면 지구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휴가 기간 동안에는.
“그… 훈련은 위험한 건가요?”
매우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응, 위험해.”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도전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내 훈련은 위험할 거다.
힘들기도 할 거고.
대신 목숨을 잃을 위험은 없었다.
보상 또한 확실할 것이다.
내 훈련을 거친 녀석들은 모두 어디 가서든 제 몫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니까.
여러 번 말했지만, 유일한 예외는 호치뿐이다.
“저기… 저는 하드 난이도 99층 도전자인데요. 저 정도면 굳이 훈련을 다시 받지 않아도 지구로 돌아갈 자격은 충분한 것 아닌가요?”
“닥쳐.”
불리한 질문은 무시했다.
조금 강압적이었지만, 그들을 막 대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지불할 것이다.
미래에 그들이 나와 함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호출]“응?”
한참 도전자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호출 신호가 잡혔다.
이런 식으로 날 호출할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지구에 두고 온 호치가 보낸 호출 신호였다.
호치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