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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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전 (3)
나는 하나의 성지에 하나의 신격만이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만신전의 신들이 다른 신의 성지에 거하며 협력하지는 않았지만.
만신전 신의 밑에 소속된 다른 하위 신격들이 모여 있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만신전은 지금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우주와 차원을 점거하고 있는 대세력이다. 내 성지를 생각하며 전력을 상정했다간 곤란해질 것이다.]그런가.
우리가 첫 번째로 도착한 신의 성지에는 열 가량의 신격이 모여 있었다.
그중 성지의 주인으로 보이는 신격 하나는 제법 강대해 보였으나.
나머지 아홉 신은 하위 신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정도였다.
희망의 신을 추적할 때 만났던 고창의 신.
그리고 남극에서 잡아먹은 완성자 출신의 흉오의 신.
그 정도였다.
확실히 상정해 두었던 것보다 많은 수의 신격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전력 차는 그대로였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떨어져라.]만신전의 신격이 선언했다.
성지에 몸을 기대고 있는 신격의 거대한 몸체는 마치 산맥과 같아 보였다.
탈라리아의 날개를 펴고 날고 있던 거인들과 내 위로 거대한 압력이 쏟아졌다.
그대로 떨어지지 않고 견뎌 내었다.
이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이 압력을 견디기 위해 힘을 소모해야 하지만, 성지의 신은 아무런 소모 없이 우리를 압박할 수 있다.
답은 하나뿐이다.
속전속결.
익숙하다 못해 슬슬 식상하게 느껴지는 기술을 준비했다.
정면에 붉은 구체가 형성되었다.
겨우 좁쌀만 한 크기였지만, 저걸 괄시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저 안에 담긴 힘을 알아볼 수 있다면.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내 모든 기술을 나눠 준 거인들도 제각각 붉은 구체를 형성해 내었다.
이내 수백이 넘는 구체가 허공에 아로새겨졌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구체의 힘을 해방시켰다.
“시밤, 쾅.”
이 웃기지도 않는 이름의 기술을 신이 되고 나서도 줄곧 써 댈 줄은 몰랐다.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거인도, 상대편의 신격들도, 성지도 모조리 불길에 휩싸여 버렸다.
지근거리에서 터진 시밤쾅의 폭발력은 모든 것을 무로 돌려 버릴 만큼 강력했으나 내가 데려온 거인들 중 그 힘을 견디지 못하는 녀석은 없었다.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빛의 신의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빛의 신이 새로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빛의 신의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빛의 신의 퀘스트를…….]퀘스트의 갱신으로 메시지가 어지러이 나타났다.
무시했다.
어차피 빛의 신이 신나서 부산을 떨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시밤쾅의 화력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60층에 도달하기 전, 신격을 얻기 전부터 자주 사용하던 기술이다.
당연히 60층에 갇힌 후에도 개량에 개량을 거듭했다.
그 폭발에 의한 물리력과 화력만으로 신격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강력한 기술이었지만.
한 가지 장점이 더 있었다.
마력이 아닌 신력을 재료로 사용했을 때, 이 기술의 진가가 드러난다.
시밤쾅을 통해 일어난 화력은 폭발 직후 곧바로 소멸하지 않고, 공간을 잠식한다.
신력이 담긴 화력을 온 세상에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다른 신의 성지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아무리 성지라 해도 다른 신격에게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신력과 마력의 근본적인 차이는,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배력에 있다.
불덩이를 만들어 쏘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적의 몸속에 불을 피워 내는 힘.
그게 바로 신력의 힘이었다.
하지만 같은 신격을 대상으로는 그렇게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
신의 힘을 대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이 성지에 만연히 퍼져 버린 시밤쾅의 불길은 그 자체로 상대 신의 지배력 행사를 방해했다.
이 기술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시밤쾅을 통해 토해지는 화력의 확산을 막는 것뿐이다.
하지만 단순 물리력만으로 수백 개가 넘는 시밤쾅의 폭발을 억제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내가 만들어 낸 기술이라 그러기도 했지만.
나는 꽤나 자신하고 있었다.
물리력만을 놓고 보았을 때, 이것만 한 기술은 또 없을 것이라고.
시밤쾅의 불길 속에서 당황하고 있던 만신전의 신격을 향해 거인들이 쇄도했다.
산맥과도 같이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던 신이었지만, 거인들이 여럿 달라붙으니 그리 커 보이지도 않았다.
성인 남성의 몸에 초등학생 여럿이 달라붙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저 거인들은 어린아이로 볼 수 없었다.
달라붙어 만신전 신의 몸체에 상처를 입히고, 힘의 행사를 끈덕지게 방해했다.
보통 신격은 육탄전에 약하다.
많은 신을 상대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확언할 수 있었다.
지배력을 통해 타인을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는 신격이 저런 추잡하고 야만적인 싸움을 상정할 리 없다.
만신전의 신들 사이에서 영토 분쟁이 있다고는 했으나 신격 간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니까.
그건 마치 전쟁 중인 국가의 수장들이 한데 모여 복싱으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원시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원시적인 방법을 갈고닦아 왔다.
우리가 잃을 것보다 이미 빼앗긴 것을 생각했고.
안위와 보신보다 적의 패배를, 그리고 우리의 승리를 생각했기에 가능했다.
오로지 이 순간만을 위해 신살을 준비해 왔던 거인들에 의해 만신전의 신이 무너졌다.
그 팔다리는 조각조각 났고.
모가지는 뽑힌 뒤 뭉개졌으며.
가슴이 드러나고, 그 안을 채우고 있던 내장기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잔혹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화신체는 성지의 힘이 옅어짐에 따라 한 줌의 먼지조차 남기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거인들이 내지르는 함성을 들으며 성지를 메우고 있던 불길을 불러들였다.
시야에 방해가 되었다.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이 손안으로 모여들었다.
그제야 순식간에 박살이 난 성지의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정말 저주받을 기술이야.]희망의 신이 말했다.
자기 성지가 불타던 모습이 오버랩되나 보다.
두 가지 의외인 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만신전의 신이 너무 쉽게 죽었다는 것이다.
신의 존재는 화신체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화신체 하나를 살해했다고 그대로 소멸할 줄은 몰랐다.
[성지이지 않느냐. 그 의미를 생각해 보거라. 성지에서 그 화신체가 강압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신성이 소멸하지 않고 남아 있다면 그게 기적적인 일이겠지.]일리가 있었다.
희망의 신이 성지에서의 충돌을 피하고 도망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성지에서 화신체를 살해하는 것만으로 그 신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면 생각보다 일이 수월해질 것 같다.
“아니면 오히려 까다로워지려나.”
다른 신들도 다 희망의 신처럼 성지를 버리고 도망갔다가는.
그걸 쫓아다니는 데 긴 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시간에 쫓기고 있다.
지구와 60, 61층의 성지들이 완전히 몰락하기 전에 적들을 끝장내야 했다.
[그럴 리가. 어떤 신이 자신의 성지를 버리고 도망가겠느냐.]“네가 그렇잖아.”
[내가 특별할 뿐, 평범한 신의 경우는 다르다. 신이 성지를 버리는 건, 신성을 버리는 것과 진배없으니, 그 또한 소멸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항상 그렇다.
신의 힘은 한 가지 강점이 되었을 때, 다른 관점에선 새로운 약점이 되고는 한다.
그 결과의 끝은 항상 구속이다.
재밌는 사실 한 가지는, 만신전의 신은 저항을 시도하다 소멸했지만, 하위 신격들은 모두 도망쳤다는 것이다.
아, 모두는 아니었다.
하위 신격 둘이 구석에 죽어 있었다.
조금씩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남은 부위를 통해 사인을 추측할 수 있었다.
시밤쾅에 의해 큰 타격을 입고, 거인들에 의해 끔살당한 모양이다.
“저것들은?”
이곳은 저 하위 신들의 성지가 아니다.
다른 신의 성지에서 화신체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신이 소멸하다니.
[되다 만 쓰레기들이지. 화신체가 죽었다고 소멸하다니, 신이라 부르기도 아까운 것들이다.]희망의 신은 독설을 내뱉었다.
내가 보기에도 저것들은 신이라 부르기에 부적합했다.
신이라기보다는 완성자에 가까울 것이다.
몸에 묶여 있었고, 그 몸이 죽자 함께 죽어 버렸다.
“할멈.”
[후, 항상 이렇게 이글이글 끓는 것을 견뎌야 한다니.]할멈은 내가 부르자 투덜거리며 다가왔다.
얼음의 속성을 가진 할멈이나 다른 얼음 거인들은 시밤쾅의 화력을 견디는 게 더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힘의 확장에는 폭발만 한 것이 없었다.
할멈과 얼음 거인들의 특성은 오히려 확장보다는 동결에 강했다.
[시킬 일이 있나?]모든 일을 5백이 함께 해결한다면 위험은 적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부족했고.
팀을 나눠서 일을 처리해야 했다.
“여기서 도망친 놈들을 쫓아가.”
빠릿빠릿한 상황 판단으로 만신전의 신을 버리고 도망친 하위 신격들.
그들을 그냥 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처우는?]“우리에게 적대한 놈들, 그리고 적대했던 놈들 모두의 대가리를 뽑아 버려.”
이제 협상도, 타협도 없다.
우리를 적대한 대가를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
할멈은 알았다며, 휘하의 거인 몇을 모았다.
하위 신들은 제각각 차원문을 만들어 어디론가 탈출했다.
그 차원문의 좌표가 사라지기 전에 추격해야 했다.
할멈과 거인 몇이 차원문을 통해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조금 더 기다리자 죽어 버린 만신전 신의 힘이 완전히 걷어졌다.
이제 이곳은 어느 신의 성지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공백지라고 할 수 있었다.
지구와 통신을 시도했다.
아무런 방해 없이 호치와 직접 연결이 가능해졌다.
[지구로 쏟아지고 있던 구멍 몇 개가 사라졌어, 방금.]호치는 통신이 닿자마자 이야기했다.
몇 개라.
이 성지의 신이 여러 개의 게이트를 연결하고 있던 걸까.
아니면 이 성지의 결말을 엿본 다른 신들이 손을 떼어 버린 걸까.
알 수 없었다.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퀘스트창이…….]퀘스트창 때문에 요란스레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또 빛의 신 때문인가 싶어 짜증스레 퀘스트창을 열어 보았다.
[퀘스트창] [빛의 신-시밤쾅 터뜨려 주세요!(완료)] [빛의 신-시밤쾅 터뜨려 주세요!(완료)] [빛의 신-시밤쾅 터뜨려 주세요!(완료)] [빛의 신-시밤쾅 터뜨려 주세요!(완료)] [빛의 신-시밤쾅 터뜨려 주세요!(완료)].
.
[빛의 신-시밤쾅 터뜨려 주세요!(New!)]빛의 신에 대해 아는 존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조언했다.
그냥 무시하라고.
그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이건 그냥 넘어가도록 하고.
[파멸의 신-???(완료)]설명 : ????
[숲의 신-???(완료)] [고통의 신-???(완료)] [기만의 신-???(완료)] [혼란의 신-???(완료)]퀘스트창의 항목이 ‘???’로 차 있는 건 그대로였다.
하지만 몇몇 신의 퀘스트에 완료가 표시되었다.
상세 설명을 보려 눌러 보아도 설명조차 ‘???’만을 표시했다.
[난리가 났군.]희망의 신이 말했다.
“뭐가. 설명 좀 해 봐.”
[백신전에 난리가 났다는 말이다.]희망의 신은 백신전 소속이었고.
백신전 소속의 모든 신은 ‘백신전’이라는 공간에 화신체를 하나씩 두고 있어야 한다.
그곳에 뭔 일이 있는 모양이다.
[네 전력이 모두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탓이다.]“자세히 좀.”
[온건파 신들이 더 이상 너와 관련되고 싶지 않다고, 손을 떼고 있는 중이다.]그런가.
당장은 나쁠 것 없었다.
희망의 신이 전에 했던 말마따나, 백신전보다는 만신전에 신경 써야 할 때였으니까.
그나저나.
저게 온건파 신들이라고?
온건파 신들의 신명 상태가 좀…….
당장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일단은 내가 해야 할 일부터 마치자.
이제 다음 만신전 신의 성지에 쳐들어갈 시간이었다.
아직 죽여야 할 적들은 널리고 널려 있었다.
하염없이 시간을 죽일 수는 없었다.
원래라면 지구에 연결된 성지의 좌표를 역추적해야 했으나.
“야, 만신전 신들의 성지, 어딘지 알지? 좌표 내놔.”
[…알겠다.]다행히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