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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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전 (4)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퀘스트가 갱신됩니다.]성지 하나를 정리했더니 또 요란스레 퀘스트창이 갱신되었다.
가면 갈수록, 내가 신을 하나씩 때려잡을수록 잦아졌다.
백신전의 신들이 나와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이 짓도 하다 보니 익숙해지네.”
폐허가 된 성지를 정리하고 말했다.
시간도 가면 갈수록 단축되고 있었다.
자신의 성지에서 도망치는 신은 없었으나.
남의 성지에 도우러 온 신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심지어 그런 신들은 보다 빠르게 도망쳤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신에게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남의 성지를 돕는 일이 앞설 리 없었다.
신의와 의리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신전 신의 성지에 모여 있던 하위 신들은 전투 개시와 동시에 모두 도망쳤다.
마치 그것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해지고 있었다.
[지구에 연결되었던 게이트는 모두 닫혔어.]호치가 지구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치킨 레이스는 이쯤에서 끝난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지구의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다는 것이.
물론 공습을 위한 게이트가 모두 닫혔다 하더라도 그 혼란은 그대로일 것이다.
호치에게 수습을 부탁하고 통신을 마무리했다.
게이트가 닫힌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구에 게이트를 연결했던 신이 우리에게 소멸당하면서 게이트도 함께 끊어졌든지.
그게 아니라면 뒤늦게라도 발을 뺀 것인지.
전자의 경우는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연결되었던 게이트를 추적해서라도 잡아낼 생각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 적대한 뒤 적당히 넘어갔다는 선례를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왕 칼을 뽑았으니 이번 사건을 지켜보고 있을, 혹은 나중에 전해 들을 모든 이들에게 알려 둘 것이다.
한번 나를 걸고넘어지면 그 끝을 봐야 할 것이라고.
애초에 적대할 생각이 들지 않도록, 그래서 적대할 일이 없게 만들 생각이다.
[혹시 만신전의 모든 신을 공격할 생각이냐? 만약 그럴 생각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희망의 신이 말했다.
[지금이야 네 보복이 지구에 침범한 신들에 국한되어 있으니 조용한 것이다. 만약 만신전의 모든 신을 대상으로 한다면 저들은 다시 뭉칠 것이다.]타당한 조언이었다.
지구에 직접 침범을 시도한 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적은 수는 아니었으나 만신전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그랬다.
지구의 침범은 분명 만신전 규모의 행사였다.
직접 개입은 없었지만, 얽혀 있는 신들은 훨씬 많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들 모두를 손봐 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이전에 방문한 적 있던 곳이었다.
과거 희망의 신을 추적할 때, 여러 완성자 출신 신들의 영역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한 놈 조지고, 그놈에게서 좌표를 얻어 이동하고, 또 그 좌표에 있는 놈을 조지고.
그러다 고창의 신이라는 완성자 출신 신을 만난 적이 있었다.
고창의 신은 아마도 희망의 신에게 성지가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더 이상의 추적이 무의미할 거라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몇 가지 잡다한 정보는 덤이었고.
아집과 고집으로 뭉쳐 있을 수밖에 없는 신격답지 않게, 내가 원하는 정보를 말해 주는 데 스스럼이 없던 특이한 신이었다.
그래서 잘 기억하고 있었다.
“여, 오랜만이네.”
[…살려 주십시오.]이거 봐라.
신이라면 저런 말을 쉽게 할 수 없다.
희망의 신 같은 또라이나 항복 같은 말을 외치는 거지, 보통은 언급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저 고창의 신은 했다.
패색은커녕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데, 한번 싸워 보기라도 하는 건 어때?”
[당신과 그 신살의 거인들을 상대로 말입니까? 싫습니다. 살려 주십시오.]고창의 신은 내 뒤에 있는 거인들을 거론했다.
내 뒤에는 스물가량의 거인들이 있었다.
5백이 함께 출발했지만, 병력을 계속 나누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어차피 내가 있는 이상 많은 수가 필요하진 않았다.
[전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고창의 신은 방금 전, 어느 이름 모를 만신전의 신을 처단하다가 만났다.
만신전 신의 성지에 있던 고창의 신은 전투 시작과 동시에 도망쳤고, 나는 그를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게, 왜 또 내 적이 되어서 고생이냐.”
[저는 제 주인이었던 전래의 신의 부름을 받아 그곳에 소집된 것뿐입니다.]그러니까 그곳에 있었던 것 자체로 내 적이 된 것이다.
그곳은 적지였으니까.
[하지만 전래의 신은 죽었습니다!]물경 도망치던 고창의 신의 눈앞에서 목이 뽑혀 소멸했다.
[그러니 이제 저는 자유의 몸입니다!]그 말투에서 ‘도비는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라고 외치는 집요정이 생각났다.
어쩌면 부적절한 예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도움이 될 정보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올바른 판단이었다.
고창의 신은 전에 한번 내게 잡힌 적이 있지만, 정보를 대가로 해방된 적이 있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으니, 다시 한 번 정보의 거래를 제안하는 것도 당연했다.
다만.
“괜찮겠어? 이적 행위가 될 텐데.”
만신전 소속 신에게 부름을 받았다는 건 결국 만신전의 소속이라는 것이다.
하부 신이겠지만.
[저는 이제 자유의 몸이니까요!]역시 집요정이 생각났다.
거절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더 궁금한 정보가 있었나?]희망의 신이 물었다.
지금껏 내 궁금증을 풀어 주고 있었기에 묻는 것이다.
“아니, 딱히 더 알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닌데.”
[그렇다면 무슨 이유지? 굳이 저 신을 살릴 이유가 있나?]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희망의 신이 내게 말해 주었던 정보에 대해 고창의 신에게 다시 물을 것이다.
정보의 대조를 위해서.
“혹시 왜곡된 정보가 있기만 해 봐라.”
정보를 어떻게 왜곡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지는 희망의 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 또한 희망의 신이 감당할 몫일 것이다.
[…나라고 모든 것을 완벽히 아는 것은 아니다. 착오로 인한 오류도 조금은 있을지도…….]궁색한 변명이었다.
그동안 희망의 신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대조하기 위해 고창의 신을 붙잡고 질문을 시작했다.
질문하는 와중에 고창의 신이 돌연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야?”
[그게… 만신전의 신께서 연락을 하셔서…….]너는 이제 자유의 몸이라며.
아무래도 얽혀 있는 신이 하나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만신전의 신들께서 제게 대화를 주선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나와의?”
[예.]만신전이 나와 대화를 하고 싶다라.
이번 일을 어떻게 종결지을지에 대한 협의를 원하는 걸까.
나쁠 것 없었다.
필요하기도 했고.
“좋아.”
* * *
고창의 신의 영역에 찾아온 만신전의 신은, 유연의 신이라는 애매한 신명을 가진 신이었다.
마주하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야, 저거 센데?] [당연한 소리를.]의외였다.
물론 만신전 신들이 한가락 하는 건 당연했다.
나와 거인들에게 목이 잡아 뽑힌 신들은 하나같이 그랬다.
고창의 신과 같은 어중간한 하위 신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저 유연의 신이라는 신은 지금껏 목을 뽑아 온 만신전의 다른 신들과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 정도인가.
이런 점을 보면 확실히 백신전과 만신전의 괴리를 알 수 있다.
그 신성이 어떠하든,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든 백신전의 신들은 결국 구속당한 죄인 취급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싸워 보고 싶은가?]그렇지는 않았다.
이유가 없다면.
[나는 네 투쟁심을 안다.]희망의 신이 말했다.
튜토리얼에서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희망의 신이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굳이 싸워 볼 생각은 없었다.
물론 튜토리얼에선 나보다 강한 존재만 보면 어떻게든 싸워 보려 했지만, 그건 결국 성장과 더 큰 힘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이유 없는 전투를 즐기지는 않았다.
나는 전투의 신도, 도전의 신도 아니었다.
그에 따른 결과에 의미가 없다면 행하지도 않고, 행할 수도 없었다.
[상담은 다 끝났는가?]조용히 나를 지켜보던 유연의 신이 말을 걸었다.
잠시 침묵하는 나를 보고서, 내가 희망의 신과 따로 대화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희망의 신은 분명 그대에게 유익한 상담을 해 주었으리라 믿지만, 그 말에 의존하지 않는 것을 조언한다. 그는 세상의 추악함을 대변하는듯한 신이니. 가까이하면 가까이할수록 그 오물에 익숙해질 것이다.]실로 정확한 인물평이었다.
아니, 인물이 아니라 신격의 평가라고 해야 하려나.
[내 덕에 세력을 불린 돼지가 어디서 뚫린 입이라고…….]희망의 신은 답지 않게 거친 말을 내뱉었다.
물론 유연의 신이 들을 수 없게 내게만 하는 말이었다.
감정의 소모를 위한 욕지거리는 아니었다.
내게 들려주는 말이었다.
강대한 힘이 느껴지는 유연의 신조차 내려다보는 듯한 언사, 그리고 그 힘의 축적에 자신의 공헌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을.
참 일관되었다.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지. 그래서 제안이 뭐지?”
유연의 신은 만신전 신들의 의견을 대표해, 내게 제안을 위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협정이다. 그대와 그대의 영역을 인정하고, 부차적인 대가를 지급하겠다. 그 대가로 무차별적인 공습을 멈추어라. 원하는 대가가 있는가?]대가라.
물론 지구를 침공한 신들은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 대가에 목이 뽑히는 것 외의 다른 대책이 없어서 문제겠지만.
“안 되겠는데.”
[음, 그렇겠지.]유연의 신은 수긍했다.
굳이 다른 제안으로 나를 설득하려 하거나 제안을 다시 강권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확인해 두어야겠다.]유연의 신은 그렇게 말하고는 선언했다.
[그대 영역에 대한 침공은 만신전 모든 신들의 의지가 아니었으며, 일련의 사건에 대해 만신전의 다른 신들은 관계가 없음을.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그대와 관련 신들 사이의 사건들 또한 그대와 해당 신들의 문제일 뿐, 만신전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선을 그었다.
지구를 직접 침공한 신들과 만신전 전체와의.
유연의 신이 저렇게 말한 이상, 나는 그 선을 인정해 주어야 했다.
선언의 증빙 따위는 필요 없었다.
신의 말이었으니까.
큰 양보였다.
지구를 침공한 신들이 만신전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절대로 적은 수는 아니었다.
그들 모두를 잘라 내어 버린 것이니.
나쁠 것 없었다.
지구 침공의 대가를 만신전 구성원의 전부에게 물을 수는 없게 되었지만.
반대로 침공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신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때려잡을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의 신이 우려한 대로, 만신전의 모든 신들이 개입해 전면전이 벌어질 일도 없어졌다.
나는 유연의 신의, 그리고 만신전의 양보를 받아들였다.
* * *
이번 일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유연의 신과의 대화로 적의 범위를 한정되었다.
만신전의 신을 수천은 때려잡아야 끝날 줄 알았지만, 고작 수십 선에서 멈추게 되었다.
잘되었다고 해야 할지, 허무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의도하던 바는 모두 얻었다.
[…제정신이 아닌 사고방식이로다.]고창의 신의 영역을 떠나 찾아온 곳은 평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행성이었다.
그 모습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행성은 어느 신의 단독 영역이거나 성지가 아니다.
한 신격의 영향이 짙은 곳은 저렇게 일상적인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일견 광기와 부조리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신의 성지를 방문해 보았지만, 일관되게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찾아온 곳은, 고창의 신처럼 만신전 신에게 소집된 하위 신격이 도망친 좌표였다.
그렇다면 그 하위 신격은 자신의 고유 영역이 아닌 곳으로 도망쳤다는 얘기인데.
[놀라울 것 없다. 어느 식의 성역화된 행성보다는 이렇게 여러 신의 종교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 더 많다. 하위 신이라면 성지를 하나도 보유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일리가 있었다.
[백신전 신들의 영역도 대부분 이런 식이다. 성지는 몇 개 없지. 제약 때문에.]과거 튜토리얼에서 거쳤던 세상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 대부분이 다종교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백신전과 만신전의 신들의 종교가 뒤섞인 곳도 있다. 이곳처럼.]“뭐?”
[아마 알고 이곳으로 도망친 모양이다.]희망의 신의 말을 듣고 나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게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어느 신의 힘을.
신격은 아니었다.
물론 그럴 것이다.
백신전의 신은 보통 제약 때문에 직접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있는 것이 사도직이다.
오래전에 알고 지냈던 백신전 신의 사도가 내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마주할 수 있었다.
“이건 진짜 오랜만인데.”
[예. 정말로 그렇습니다, 용사님.]정말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천공의 신의 신물이자 사도.
에고 소드 아우부츠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