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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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신 (3)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신격을 잃어보는 것도.
과거를 되돌아볼 수도 있었고.
“음음, 나쁘지 않았지.”
혼자 중얼거렸지만, 굳어 버린 수많은 아부부들은 한 마디 말조차 하지 못했다.
마법에 의해 경직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 가상 세계 자체의 시간을 멈추어 둔 것이니.
느긋하게 다음 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아부부가 속박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집어치워 둬도 좋았다.
“이거 괜찮은데?”
이참에 시간을 들여 연구 좀 해 볼까.
안 그래도 천공의 신이 어떻게 이 공간을 완성시켰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이 공간을 내가 챙겨 두었다가 나중에 사용해도 괜찮았다.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라는 건 여러모로 쓸데가 많았다.
이렇게 하나의 세상의 시간을 멈추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절대로.
당장 지구의 경우를 생각해 보아도 그랬다.
그곳에 사는 수많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이 있었다.
수많은 존재가 거주하는 장소의 시간을 멈춘다는 건 그 존재들 하나하나에 관여해야 가능했다.
게다가 지구의 시간이 멈추었을 때, 우주의 시간 축에서 지구만이 어긋나게 된다.
그 비틀림을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텐데, 차라리 행성 몇 개쯤 소멸시키는 건 우스워 보일 페널티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좀 특수했다.
우선 공간이 한정된 가상세계라는 점이 주요했다.
존재 또한 나와 아부부밖에 없었고.
물론 아부부의 수가 어마어마했지만, 아부부 본인이 직접 말했듯 저 많은 아부부들은 모두 하나의 존재이다.
마지막 이유가 있는데.
이 세계에는 다른 신이 없다.
오직 나뿐이었다.
그렇기에 세상에 관여해 내 의지를 마음껏 펼쳐 낼 수 있었다.
소모값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절대로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세상에서, 예를 들어 다종교 사회였던 아부부의 영역은 다르다.
여러 신의 신전이 있고, 영역을 관리하는 사도들도 있다.
백신전에 속하지 않은 몇몇 신의 경우 직접 영역에 관여하기도 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소모값과 별개로, 세상 전체의 법칙을 비트는 것이 불가능했다.
다른 신의 고유 영역이 있으니.
문득 느림의 신이 떠올랐다.
모든 게 멈춘 이 모습이 과거 느림의 신의 권능 시간 유폐를 사용했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키리키리는 느림의 신의 신명이 번역 오류에 가깝다고 말했었다.
실제로 느림의 신은 단순한 속도를 뜻하는 신이 아니었다.
시간 유폐는 시간을 극도로 느리게 해, 마치 시간이 멈춘 세상 속을 경험하게 했다.
하지만 반대로 점멸은, 가속된 시간을 통해 남보다 빠르게 거리를 점유하게 하는 권능이었다.
느림의 신이 뜻하는 바는 그저 시간의 흐름.
그뿐이었다.
희망의 신이 입에 달고 다니는 그 우주의 일원화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다.
만약 느림의 신이 신 위의 신.
신격의 상위 존재가 되었다면 분명 전 우주에 자신의 신성을 강요했을 것이다.
느림의 신의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신이라는 존재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리고 느림의 신이 펼쳐 내었을 세계는 그저 무한히 흐르기만 할 뿐인 세상이었을 것이다.
생명도, 죽음도 없이.
흐르는 과정에서 격동이 있을지언정, 그게 막히는 일 없이.
영원히 흐르는 강물처럼.
살짝 소름이 돋았다.
멈추어 있는 세상과 아부부가 다시 보였다.
이런 세상을 원했던 걸까.
이런 세상이 누군가의 이상향이 될 수 있는 걸까.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납득은 가지 않았다.
나 또한 이 멈춰진 세상을 보고 반색하기는 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기회가 생겼음에 기뻐한 것이었다.
하지만 느림의 신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 외의 목적이.
오래전 키리키리가 해 준 조언이 기억났다.
느림의 신은 인간이 믿을 만한 신이 아니라고.
그 조언이 다시 한 번 와닿았다.
[들리십니까?]세레지아였다.
신격을 복구하자 다시 연결이 된 모양이다.
희망의 신의 목소리도 들렸다.
“어, 들려.”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고 나자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가.
이 공간의 시간은 멈추어 있다.
공간 밖에 존재하는 세레지아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말했을 터인데.
우우웅-
세상이 붕괴하고 있었다.
무거운 진동음과 함께 공간이 말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유는 뻔했다.
신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에 새로운 신격이 나타나면서, 세상의 인과가 뒤틀린 모양이지.
젠장, 꿀 빨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날리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이 공간에서 신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면.
천공의 신이 어떻게든 자신의 힘을 아부부에게 전달해 줄 방법을 찾아내었을 것이다.
시간이 멈춘 공간을 하나 가질 수 있으리라는 헛된 기대는 사라져 버렸지만.
어쨌든 초기의 목적은 가볍게 달성했다.
아부부를 깔끔하게 제압해 두고, 이 붕괴 중인 세상에 휘말리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가면 끝이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엉?
어디서 많이 듣던 신호 같은데.
기억났다.
세레지아의 등장 멘트였다.
[메이데이, 메이데이.]아, 안 돼!
아니, 되는데 조금만 있다 쳐들어와!
쿠아앙!
붕괴하고 있던 세상의 하늘을 부수며 거대한 검이 낙하했다.
*
“와, 진짜 식겁했네.”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낙하하는 세레지아를 피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와중에 세레지아와 함께 붕괴하는 공간에서 탈출해야 했다.
사실 이런 경우가 가장 위험했다.
내가 적에 의해 소멸당할 일은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휘말려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또 달랐다.
심지어 세레지아는 내 적도 아니어서, 이 또한 투쟁의 일부라고 확대해석할 수조차 없었다.
“세레지아, 조금만 기다렸다 들어오지 그랬어.”
몇 분이라도 지났다면 나는 안정적으로 탈출할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사실 몇 분까지 걸리지도 않았다.
내가 언제 마음먹느냐에 달린 거라.
[그러게 제 말을 왜 무시하셨습니까?]“내가 언제 무시했어. 들린다고 했잖아.”
[저한테는 안 들렸습니다.]세레지아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와 연결이 되었음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곧바로 쳐들어온 모양이다.
[나한테도 안 들렸다.]희망의 신이 말했다.
응, 너한테는 말 안 했으니까 안 들렸겠지.
뭘 바란 거야?
세레지아에게 내 목소리가 닿지 않은 이유는 아마 저것 때문일 것이다.
저 높은 곳에 위치한 천공의 신의 신전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곳에 현신하기 위한 소환 과정이다.
자신을 대행하던 아부부가 당하자 직접 상황을 정리하고자 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천공의 신의 의지가 중요하겠지.
무엇을 원하는지.
[내놓아라.]천공의 신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말했다.
협상의 여지는 없겠군.
[나의 사도다.]신전의 에너지를 통해 현신한 천공의 신의 화신체는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으레 신들의 모습이 그러하듯.
몸은 마치 구름과 같이 하얗게 보였다.
간혹 먹구름처럼 어둡게 보이는 부분도 있었으나 대개 하얀색이었다.
얼굴 부근에 위치한 두 눈은 마치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하늘의 신이라는 콘셉트에 걸맞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검이기도 하지.”
아부부의 실소유주는 나였다.
천공의 신이 회수해 가기 전까지.
그리고 나는 그 회수에 절대 동의한 적 없었다.
절대로.
[너와 함께 있던 아이는 이제 일부일 뿐이다.]그래.
스테이지에 존재하던 수많은 아부부를 모아서 합쳐 버렸으니.
나와 함께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아부부는 이제 아부부의 일부가 되었다.
“걱정 마, 다시 떼어 낼 테니까. 나머지는 돌려주지.”
[그 아이가 그것을 원할 거라 생각하는가.]잠시 침묵했다.
확답할 수 있었다.
나는 모른다.
그가 기뻐할지.
오히려 실험체처럼 계속 합쳐지고 나뉘는 자신의 처지에 비관할지.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절망하게 될지.
하지만 나는 할 것이다.
이기적이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나와 함께했던 아부부를 위해서.
나와 함께했던 아부부는 분명 이런 식으로 합쳐지게 되었을 때, 그것을 거부했을 것이다.
거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절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거인들에게 약속했듯.
그리고 미래에 튜토리얼 스테이지 속 모든 존재에게 그러할 예정이듯.
아부부에게도 진실한 일자로서의 자아를 안겨 줄 것이다.
그게 내 의지였다.
[지독하게 이기적이군. 네가 품고 있던 괴리를 타인을 통해 해소하려 하는가!]천공의 신이 일갈했다.
저 천공의 신이라면 그럴 것이다.
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에게 대항하라고 아부부를 보내고.
그 아부부를 지키기 위해 제약마저 무시한 채 직접 행차할 수 있는 저 천공의 신이라면.
이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말을 인정했다.
천공의 신의 거대한 신체가 요동쳤다.
두루뭉술한 인간의 상체를 하고 있는 천공의 신은 거대한 팔을 저 위로 뻗었다.
그러자 그 끝에 거대한 창이 나타났다.
작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신체처럼 새하얀 창에 담긴 거력은 굳이 맞아 보지 않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세레지아.”
천공의 신은 힘을 통한 강압적인 문제의 해결을 선택했다.
나에게도 반가운 선택이었다.
세레지아는 거검의 형태에서 크기를 줄였다.
잡기 좋은 크기로 변한 세레지아는 알아서 내 손에 쥐어졌다.
[조심해라, 천공의 신은…….]언젠가부터 조심하라는 말만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희망의 신의 목소리는 무시했다.
“왕이여.”
멀찍이 떨어져 있던 거인 둘이 다가왔다.
“그래, 우리의 적이다. 가라.”
내 말을 듣자마자 거인들은 천공의 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단둘만을 데리고 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상황을 낙관해서가 아니라.
저 두 거인이 가진 힘이 그만큼 강력해서였다.
오랜 시간, 신들을 잡아 죽이는 것만을 위해 자신들을 갈고닦은 전사였다.
이른바 신살의 스페셜리스트들.
하지만 저들에게 모든 걸 맡길 수는 없었다.
희망의 신의 경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천공의 신은 경계해야 할 강적이다.
비록 백신전의 신들이 유폐되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성장하기도 어렵다고 들었지만.
저 천공의 신은 한때 전 우주를 집어삼킬 뻔했던 사건에서 한 주축을 이루었다.
깔끔한 승리를 위해서라면 앞뒤 잴 것 없이 최고의 일격으로 전투를 끝내는 편이 가장 좋다.
거인들이 천공의 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사이, 나는 공격을 준비했다.
큰 거 한 방을.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빛의 신이 새로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빛의 신이 새로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빛의 신이 새로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퀘스트창이 갱신됩니다.] [빛의 신이 새로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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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빠르게 자리를 이탈하십시오.]느닷없이 등장한 퀘스트창 메시지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 퀘스트창 메시지는 백신전 신들의 퀘스트를 알리는 것 외의 기능은 없다.
퀘스트창을 만들어 준 키리키리는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이 경고는 뭐지.
키리키리의 개인적인 경고라고 해석해야 하는 건가?
의아함도 잠시.
경고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아아아!]천공의 신 뒤편으로 공간이 열리고, 괴생명체가 등장했다.
저걸 생명체라고 불러야 할지 의문이었다.
분명 살아 움직이고 있었으나 마치 금속 장치처럼 보였다.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는 그것은 날카로운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수천 개의 가지로 나뉘어 천공의 신의 몸을 옭아매었다.
가지의 끝에 달린 날카로운 황금빛 칼날은 천공의 신의 화신체를 너무나도 쉽게 관통해 파고들었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힘의 등장이었다.
저게 도대체 뭐냐고 희망의 신에게 물어보려다 깨달았다.
떠벌리기 좋아하는 희망의 신이 침묵한 채 공포와 함께 바라보고 있을 대상이 무엇이겠는가.
“질서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