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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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신 (5)
“아이고, 천공의 신이 사람 패네. 아니, 사람 찌르네.”
피가 철철 흐르는 얼굴을 들이밀며 질서의 신 주위를 배회했다.
물론 얼굴이 찔렸다고 내가 피를 흘릴 리 만무하다.
조금 더 화려한 연출을 위해 직접 만든 혈액이었다.
질서의 신은 반응하지 않았다.
천공의 신을 구속한 상태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미친놈.]희망의 신의 경멸 섞인 욕설이 날아들 뿐이었다.
[질서의 신의 지능이 원숭이 수준인 줄 아느냐. 보는 내가 창피하니까 그만하는 게 어떠냐.]희망의 신의 말을 듣자 나도 조금 머쓱해졌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던 피를 멎게 하고, 다시 천공의 신 정면으로 돌아왔다.
자해 공갈은 안 통하는 건가.
아쉬웠다.
천공의 신이 나를 공격한 이후 질서의 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제재를 강화할지, 아니면 또 다른 행동에 나서게 될지.
그도 아니라면 자신의 관할 아래 있는 천공의 신에 대한 공격 행위로 판단하고 나에게 개입하려 할지.
어떤 행동을 하건, 그 행동을 통해 질서의 신의 성향과 행동 양식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 시도해 볼 만한 시도였다.
무엇보다 정말 될 거라 생각했다.
질서의 신이, 희망의 신이 설명해 준 그대로의 신이라면.
시스템 그 자체로 존재하며.
자아 없는 기계장치의 신이라면.
내가 천공의 신의 창날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관계만을 가지고 행동에 나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면 혹시 내가 공격당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건가.
너무나 경미한 피해라서?
조금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으면 달라지려나.
실험을 위해서라면 천공의 신의 창날에 팔 한두 개쯤은 잘려 줄 수 있다.
어차피 복구도 쉽고.
이번엔 생각을 시행하기 전에 희망의 신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질서의 신은 이미 인식했을 것이다. 천공의 신의 의사에 따른 상처가 아님을. 그리고 그대가 자해 공갈을 시도하고 있음을.]희망의 신은 한숨을 억지로 삼켜 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쩐지 한심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약간의 후회도.
뭘 후회하는 걸까.
[허튼짓 그만하고, 이만 네 행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희망의 신이 계속 징징거리고 있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 부모를 보채는 어린애나 다를 바 없었다.
아무튼.
질서의 신도 행동의 목적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거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질서의 신의 지능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신이 될 정도의 인공지능을 지구과학 수준의 인공지능 정도로 생각했으니.
“그럼 질서의 신의 칼날에 베여 보면 어떨까?”
[…제발 그만 좀 하거라…….]희망의 신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했다.
질서의 신을 대상으로 자해 공갈을 시도하는 것은.
“알고 있었어?”
[…당연히 몰랐다. 세상에 질서의 신에 접근해 스스로 공격당해 본다는 발상을 떠올린 존재는 네가 최초일 것이다.]설마.
분명 전에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몇 명은 있었을걸.
[없었다.]희망의 신이 몰라서 그렇지, 한 명쯤은 있었을 것이다.
최소 한 명은.
[확신하건대, 없었다. 그리고 만약 질서의 신에게 그런 미친 짓을 시도한 존재가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있느냐. 나는 질서의 신의 사도다.]자랑이었다.
질서의 신이 무서워 빨리 도망가고 싶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주제에.
[보통 질서의 신을 마주하면 상황을 모면하려 애쓰거나, 낙담하거나, 반대로 도망치려고 사력을 다하는 게 보통이지. 그대처럼 엉뚱한 실험을 시도한 경우는 없었다.]하긴 뭐.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 질서의 신 앞에서 이성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존재 자체가 몇 안 될 테니까.
백신전과 만신전의 모든 신을 통틀어도 백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하의 존재는 애초에 범접하지도 못할 것이고.
희망의 신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다.
[백? 열도 되지 않는다.]“열은 무슨, 영감이랑 거인들만 해도…….”
별생각 없이 영감과 거인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전투의 흥분이 이성을 마비시켰을 때는 모르겠으나, 냉정하게 저것을 직시할 수 있는 존재는 흔치 않다.]그런 것 같네.
거인들의 얼굴에 보이는 감정은 공포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보다는 일생일대의 혈전을 앞둔 전사들이 느끼는 긴장과 압박에 가까웠다.
놀라웠다.
질서의 신이 우리를 해할 의도가 없음이 명확함에도 저런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이.
그만큼 질서의 신의 존재감이 크다는 것이겠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저들의 정신을 압박할 정도로.
“영감.”
무슨 준비.
밑도 끝도 없이.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함께 싸우겠다!]“됐네요, 그냥 딴 데 가 있어.”
[왕이여!]“시끄러워.”
영감과 거인 무리를 다른 곳으로 날려 보냈다.
이참에 할멈과 다른 거인들도 함께 보냈다.
소환 전에 하고 있던 만신전 잔당들의 추격을 계속하라고 전언을 보내 두었다.
할멈에게서는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영감은 대답하지 않았다.
질서의 신에게 공격을 감행했던 게, 이래저래 정신적인 피해를 입힌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따로 케어가 필요할 듯하다.
“함께 싸우기는 무슨, 닿을 수도 없구만.”
괜시리 툴툴거렸다.
그리고 다시 질서의 신의 칼날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거 좀 그만하고 돌아가면 안 되겠느냐.]안 되겠다.
희망의 신의 말을 무시했다.
손을 내뻗어 황금빛 칼날을 매만지려 했다.
자연히 정제된 금속 특유의 차갑고 날카로운 질감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내 손끝은 황금빛의 칼날을 그냥 통과해 버렸다.
허공을 쥐듯.
빛에 의해 투영되는 홀로그램을 만지려 한 것처럼.
역시 재밌었다.
신이 된 이후 내게 미지의 영역은 없으리라 믿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있다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미지의 능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세상 모든 힘을 이해하고 통달했다고 생각했다.
미지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정서적으로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무언가 새로이 발견해 낼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리고 오늘은.
내 예상과 달리 미지의 영역에 닿아 있는 능력들을 여럿 마주하고 있었다.
질서의 신의 황금빛 칼날은 여전히 천공의 신의 화신체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만지려 하면.
손끝이 다시 한 번 허공을 휘저었다.
허상이다.
이게 가능한가.
천공의 신에게는 실존하는 칼날이지만.
내게는 그저 육안으로 보일 뿐,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다.
내 시밤쾅에도, 영감과 거인들의 공격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애초에 닿지 않는 공격이니.
구속되어 있던 천공의 신만 피해를 입을 뿐, 질서의 신을 공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묘했다.
이 와중에도 천공의 신은 자신의 화신체를 꿰뚫고 있는 칼날들에 의해 구속되어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하나의 신격에게 실존하는 동시에 다른 신격에게는 허상으로만 비치다니.
몇 가지를 시도해 보았지만, 나는 질서의 신의 칼날에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내가 인간이던 시절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상대가 신이니까.
하지만 스스로 신이 된 지금,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능력인지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하나의 신격에 적용되는 동시에 다른 신격에게는 허상으로 존재한다라.
[왜 그러십니까?]세레지아가 물었다.
아니, 그냥.
어쩐지 세레지아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 질서의 신이.
[불쾌합니다.]…도대체 뭐가.
밑도 끝도 없이.
“아쉽네.”
어떻게든 질서의 신의 행동 양식을 알아내고 싶었다.
조금 억지였고, 미련한 발상이었지만.
그만큼 어떤 신격의 행동 양식이란 귀한 정보이기에 그랬다.
질서라는 신성이 그 행동 양식을 일부 설명해 주지만.
정작 그 질서의 개념이 너무나도 모호했다.
*
“아부부는 내가 데려가겠어.”
천공의 신의 얼굴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처참한 꼬라지를 하고 있었지만, 두 눈동자만큼은 여전히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조용히 이글거리고 있는 두 눈을 바라보았다.
무언의 의미를 보내는 듯한 눈빛이었다.
미안하게도 나는 아무 뜻도 읽어 낼 수 없었다.
“아까 말했듯이, 나머지는 돌려줄게.”
내가 아는 아부부가 아닌, 천공의 신의 신물 아우부츠는 내가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분리시켜 돌려보낼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인들과 내가 질서의 신을 공격할 때 발생한 에너지와 열기로 가득했다.
천공의 신이 여태 버티고 있는 이유는 이것 때문일 것이다.
질서의 신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명확했다.
규율을 무시하고 직접 행동에 나서려 했던 천공의 신을 막기 위해.
그뿐이었다.
규율을 어기려 한 천공의 신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규율을 어기는 행동 자체를 막고 있는 중이라 보는 것이 옳았다.
그렇다면 이 상태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징치가 아닌 저지의 목적이라면.
천공의 신이 직접 행동하고자 하는 의사를 포기할 때까지 제약을 유지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고개를 들어 저 위를 바라보았다.
천공의 신의 신전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저 빛만을 내리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 신전의 힘은 결계를 형성해, 나와 천공의 신 근처에 가득한 열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 내고 있었다.
이 행성을 불태우기에 충분한 열기를.
“이리로.”
주변에 자욱한 열기를 한곳으로 모아 흡수했다.
거인들의 신력이 가득한 기운을 흡수하는 게 조금 까다로웠으나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근간은 결국 나의 존재였다.
열기를 모두 흡수하고 다시 천공의 신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행성에서의 일은 끝까지 봐야겠어.”
천공의 신이 자신의 사도 아부부를 내려보내고.
스스로 이곳에 나타나기까지 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행성의 신도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지. 약속할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나도 신들과는 상관도 없는 필멸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천공의 신은 나를 잠시 응시하다 천천히 빛으로 화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질서의 신은 천공의 신이 물러나는 것마저 막고 있지는 않았다.
규율을 어기는 행동을 막아 내고 있을 뿐.
천공의 신이 행성의 신도들을 걱정해 억지로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이내 천공의 신의 거대한 화신체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질서의 신도 자신이 나왔던 검은 공간으로 다시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의외네.]“뭐가?”
평소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천공의 신이 더 약화되고, 혹시 그 신격이 불안정해지기라도 한다면 빌미가 될 수 있다.
“그러다가 질서의 신이 천공의 신을 잡아먹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지잖아.”
이미 통상적인 신격을 넘어선 것처럼 보이는 질서의 신이다.
여기서 천공의 신을 잡아먹고 힘을 불렸다간 어디까지 나아갈지 알 수 없었다.
혹시라도 질서의 신이 과거 느림의 신이 되고자 했던, 신 위의 신, 초월 신이 되어 버리기라도 하면 매우 곤란해진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질서의 신은 자신의 임무가 아니라면 다른 행동은 하지 못한다. 애초에 자아가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데,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저렇게 한 마디 말도 못 하는 것을.]희망의 신이 질서의 신을 가리켜 말했다.
자아가 없기는.
말을 못 하기는.
나는 확신한다.
저 질서의 신은 기회가 생겼다면 주저 없이 천공의 신을 잡아먹으려 했을 것임을.
[말도 안 된다. 저 기계 신에게는 애초에 개인적인 욕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이미 겪어 보아 하는 말이다.
59층에서 나는 천공의 신의 도움으로 작은 근원과 신격의 힘을 이루어 냈었다.
그리고 스테이지 클리어 이후, 키리키리의 들판으로 이동되기 전, 어두운 공간으로 소환되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59층에서 쌓은 힘을 모두 빼앗겼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 존재가 바로 저 질서의 신임을.
희망의 신에게 내 경험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건 나의 것이었다.]질서의 신이 말했다.
검은 공간으로 기어들어 가고 있던 질서의 신은.
여태껏 말은커녕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던 질서의 신은 내 말에 반발했다.
이게 개소리하고 있네.
“내가 내 능력으로 이루어 내고, 모은 힘이었어. 그게 어떻게 네 거냐.”
이 날강도 같은 새끼야.
[나의 힘이다. 나의 세상에서 이룬 힘이다. 그곳에서 네가 만났던 적들, 네게 힘을 보내었던 인간들 모두 나의 것이다.]튜토리얼 속 세상이 자신의 일부이기에.
그 세상 속 사람들의 신앙을 받아 완성한 근원과 신성 또한 자신에게 속한다는 질서의 신의 주장이었다.
[그 세상은 나의 일부이고, 나야말로 그 세상이다.]“곧 아니게 될 거야.”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빌어먹을 새끼.
오랜만이지만, 저 목소리를 들으니 예전에 느꼈던 좆같음이 다시금 느껴졌다.
“내가 전에 말했었지. 언젠가 찾아가겠다고. 그리고 내 힘을 빼앗아 간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고.”
[어디 와 보아라, 도전자여.]질서의 신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검은 공간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검은 공간은 곧바로 닫혀 단절되었다.
개새끼.
내가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와 보라면 내가 못 갈 줄 아나.
“쯧.”
혀를 한 번 찼다.
그리고 벙해 있는 희망의 신에게 물었다.
“누가 자아가 없다고?”
[…이럴 리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