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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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신 (6)
[이제 돌아갈 건가?]희망의 신이 물었다.
“말 돌리지 마.”
희망의 신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참 볼수록 묘한 존재였다.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거냐.]뭐 어쩌기는.
해명해야지.
희망의 신과 내가 한 거래에는 정보의 제공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희망의 신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길 원했다.
하지만 정작 희망의 신의 정보가 잘못되었다면 그 손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질서의 신은… 응당 자아가 없어야 했다. 그게 맞고, 또 옳은 일이기도 하다.]희망의 신이 설명했다.
[자아를 가진 존재에게 주어지기엔 너무나 큰 힘이다. 백신전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시스템은 그저 시스템으로만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성을 얻었지만, 그뿐이었고.]자아가 없는 존재의 신성 획득은 이해할 수 있다.
생각보다 흔한 일일 것이다.
토테미즘으로 대표되는 고대 신앙들에선 사물을 신성화하는 경우가 잦았다.
돌, 해골, 보석 등은 물론 이전 시대의 문물이라든가, 예술품을 두고 신격화할 수도 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지구가 있었다.
자아가 존재하지 않지만, 기나긴 세월 동안 인간들의 간접적인 신앙을 받으며 신성을 획득한.
그래서 완성자들에게 그 힘을 추출당했던.
아마 지구뿐만 아니라 수많은 행성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구는 끝까지 자아를 획득하지 못했다.
지구가 표현할 수 있던 유일한 의사는 무의미하게 자신에게 신성을 건네주는 만물에 대한 미안함뿐이었다.
반대로 시스템, 질서의 신은 그런 한계를 뛰어넘어 자아를 갖추었다.
욕망을 깨달았고, 자의적인 행동까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질서의 신이 높은 수준의 지성을 갖추었다면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하지 않겠느냐.]“왜?”
[그야 신들이 시스템을 교체할 테니까.]교체라.
백신전과 만신전의 신들이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질서의 신의 역할이다.
하지만 시스템을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으로 교체한다면.
그건 그들에게 허락된 질서 안에서의 행동일 수 있다.
“그럼 이제 와서 그 사실을 드러낸 건.”
[글쎄.]신들에게.
심지어 사도인 희망의 신에게조차 사실을 숨기고 있던 질서의 신이.
고작 내 도발에 넘어가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내보였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보다는 스스로 알렸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자신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무슨 자신.”
교체되지 않을 자신이라.
애매했다.
“만약 질서의 신에게 자아가 있다는 걸 깨달으면 다른 신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미쳐 날뛰겠지. 신이란 존재는 보통 자기 위에 누가 있는 걸 싫어한다. 시스템조차도 그러했는데, 그 시스템이 이성을 갖춘 신이라면 발작을 일으키겠지.]그랬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러니 교체 또한 가능할 것이다.
대다수의 신이 자아를 가진 질서의 신을 거부한다면 백신전과 만신전 전체의 투표를 통해 시스템의 교체 혹은 개보수가 시행될 테니까.
만약 그것을 막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가능할까.
[우선 정치와 세력전을 통해 투표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왜?”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질서의 신은 세력이 없다. 당장 여러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신전은 볼 것도 없이, 백신전 내부만 보아도 그렇다. 한 축을 이루던 천공은 이번 일로 약화되겠지만, 모험과 느림이 여전히 건재하고, 나도 있다.]끝이 좀 이상하다.
희망의 신은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게 아닐까.
자기과시?
[…아니다.]“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팔아먹는 짓은?”
[불가능하다. 만신전 신들은 나에게 너무 당했다. 내가 약해지자마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끝내 버렸다. 시스템의 규율과 별개로 그들 사이에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자랑이다.
[무엇보다 질서의 신은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한다. 시스템의 허점을 들쑤시는 것 자체가 질서의 신의 신성에 반하는 데다, 그런 사실을 방조하는 것만으로도 그 힘이 깎여 나갈 테니… 으음.]“왜 또.”
희망의 신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침묵했다.
왜 그러냐고 보채었더니, 희망의 신은 찝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험이 날 질서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던 게 이것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이 판국에 그 조무래기를 꼭 잡으러 가야겠느냐?]희망의 신이 물었다.
나는 잡으러 가야겠다.
애초 이 행성에 발을 들인 이유가 그것이다.
만신전 신에게 소집되어 내게 반항하려 했던 하위 신 하나를 추격하는 것.
[굳이…….]굳이 가야겠다.
나는.
우리는 지금 행성 지면에 내려와 있었다.
정확히는 어느 번화한 도시의 거리에.
행성과 신도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천공의 신과 약속한 것 때문에 약간 돌아가야 했다.
하위 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내가 있는 거리에서 올려다보이는 산 중턱이었다.
그 산 중턱에 특이한 양식의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하위 신의 신전인 듯하다.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도시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좋은 입지였다.
쓸데없이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었다.
외부에서 침입하려면 꽤 큰 충격이 주변 지역에 퍼질 듯했다.
하지만 도시를 통해 신전 정문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면 결계에 걸리지 않았다.
아마 신도들이 저곳을 드나드는 길일 것이다.
거리는 활기찼다.
아공간에 봉인된 아부부가 말했듯이 좋은 곳이었다.
먹을거리도 많아 보였다.
“저거 하나 먹고 싶습니다.”
거리를 둘러보고 있는데, 세레지아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언제 또 인간 모습으로 변했는지, 내 옆에 서서 꼬치구이를 파는 가판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돈 없는데.”
“훔칠까요?”
세레지아는 너무나 당연하게 물어보았다.
마치 말만 하면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듯 자신 넘치는 목소리였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선량한 인간들이 꼬치구이가 먹고 싶은 신에게 소매치기를 당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기 전에 가판대로 다가갔다.
세레지아는 무언가 주문을 하기도 전에 가판대에 있는 꼬치를 하나 집어 들고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판대 주인은 별로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거리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곳 화폐의 생김새를 확인하며 물었다.
“얼마입니까?”
주인은 간단하게 네 개라 대답했다.
내가 확인하기로, 이곳의 화폐는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등의 다양한 색의 동전으로 구분되었다.
문제는 어떤 동전 네 개를 주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노란색 동전으로 주면 된다.]희망의 신의 조언이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꺼내는 척하며, 손안에 노란색 동전 네 개를 만들어 내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통화위조죄에 해당하는 불법행위였지만, 들키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노란색 동전인 건 어떻게 알았어?”
[당연히 알아야지. 희망은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이해해야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어 있는 세계에서 자본은 항상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 근간은 또 언제나 화폐인 법이지.]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조용히 꼬치를 굽던 가판대 주인이 불쑥 말했다.
“자네들 무교인가?”
아닌데.
나 종교 있는데.
심지어 내가 그 종교의 신이다.
“혹시 대지의 신을 믿을 생각 없는가? 그럼 내가 꼬치를 몇 개 무료로 줌세.”
하마터면 세레지아가 대지의 신의 신도가 될 뻔했지만, 가까스로 말리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 *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분명 어디서 들어 본 노래였다.
경쾌한 음률에 아름다운 가사의 노래였다.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침착의 신께서~”
“응, 꺼져.”
포교를 위한 노래만 아니었다면 나도 별생각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에 손을 맞잡고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꺼지라고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대체 거리 한복판에서 왜 이러는 거야.
수치 플레이인가.
신종 괴롭힘이냐.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진심을 다해 우리에게 포교를 시도하고 있었다.
“세레지아!”
저 멀리서 세레지아가, 케밥처럼 보이는 음식을 든 주방장 아저씨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었다.
저 케밥 아저씨는 또 어느 신을 믿는 신도인지 모르겠다.
사건의 발단은 꼬치구이 아저씨가 소란을 피운 것이었다.
그때부터 거리의 사람들 모두 우리가 무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끝도 없는 포교가 시작되었다.
그 포교의 방식이 불쾌하거나 위험하진 않았다.
음식을 공짜로 준다든가, 꽃다발이나 사탕 등을 선물하려 하든가, 방금처럼 노래를 불러 주거나 하는 식이었다.
문제는 내게 종교에 귀의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었다.
세레지아는 좀 다른 것 같았지만.
결국 세레지아를 데리고 거리를 벗어나야 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진 우리 때문에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왜 저러는 거야.”
곤란해하는 나를 보고 킥킥거리고 있던 희망의 신이 설명했다.
[무교이니까. 여기 사람들은 가슴에 단 배지로 종교를 구분한다. 참고로 이 행성의 종교인 비율은 99퍼센트 이상이다. 성인 나이까지 종교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사회 구조거든.]그래 보인다.
무교임을 들킬 때마다 저렇게 거리에서 수치 플레이를 강요받는다면 누구나 종교를 갖게 될 것이다.
[그게 아니다. 이곳의 신들은 적극적으로 신도들에게 베풀고 있다. 워낙 다양한 종교가 뒤섞인 각축장이고, 이 행성의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자연히 신도들에게 최대한 많은 혜택을 준다는 건가.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무교를 택할 이유가 없는 거고.
공급 포화 시장이구만.
[성인이 배지를 달고 있지 않다는 건, 실수로 두고 왔거나.]“두고 왔거나?”
[최근에 종교를 버렸다는 거지.]종교를 버린다고?
그건 또 무슨 뜻인가.
[담당 사제와 불화가 있었거나 더 나은 혜택을 주는 다른 종교를 찾고 있든가.]생각보다 사소한 이유였다.
기괴한 사회였다.
어쩐지 꺼림칙한 경험이었고.
[이런 곳이 몇 군데 있다. 신들 간의 경쟁이 과열되어 있는 곳. 신도들에게 지나친 혜택을 퍼붓고, 사제들은 한 명의 신도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애쓰지.]얼핏 보았을 때, 이 행성이 발전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행복 지수가 높고 번화한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신들과 신전이 그들의 생활을 거의 책임지고 있을 테니까.
막상 생각해 보니 이곳 사람들 입장에선 살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들이 안전과 의식주를 모두 챙겨 주는 삶은 어떨까.
절박하지 않을 것이고, 남는 노력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가 따로 없겠네.
신들이야 점유율이 좀처럼 늘지 않아 답답하겠지만.
신도들에게는 너무나도 바람직한 사회 체계일 것이다.
“괜찮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많은 세계를 보아 왔다.
튜토리얼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튜토리얼에선 그 어느 신도 구원해 주지 않는 세계들을 보아 왔다.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노력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압도적인 절망 앞에 희망조차 잃고 자포자기하는 인간들도 볼 수 있었다.
죽은 세상이었다.
반대로 튜토리얼에서 나온 이후에는 단 하나의 신이 지배하는 세상들을 보아 왔다.
주로 신의 성지가 그랬다.
단적으로 천공의 신을 떠올려 보아도 그랬다.
신도들에게 잘 대해 주고, 관리 체계와 교리가 잘 잡혀 있다는 천공의 신이다.
하지만 성지에서는 어떨까.
만인이 천공의 신 아래 평등할 것이다.
사회주의와 평등주의의 이상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세상에선 발전과 성취를 통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거세될 것이다.
평등하나 만인은 항상 만인으로.
세상 모두와 똑같은 자신은 될 수 있지만,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개성은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관점에 따라 그 또한 지옥이었다.
희망의 신의 성지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신도들을 유리관 안에 가둬 두고, 그들에게 삶과 죽음을 강요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망을 착취하고 있었다.
비인도적인 처사에 거부감을 느껴 충격을 받고 분노한 것이 아니었다.
내 충격은 희망의 신의 성지에서 내 성지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해.
오직 승리만을 위하여 자신을 혹사하고, 또 혹사하는 거인들의 세상.
거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승리가 성립될 만큼 가혹하고 잔혹한 행위를 거듭 견뎌 내야 했다.
물론 거인들이 스스로 바란 것이었다.
과거에 내가 그러했듯.
하지만 그게 정상적인 세상의 모습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