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62
x 362
천공의 신 (7)
[내 신전으로 가자.]희망의 신이 말했다.
뜬금없이.
“네 신전은 왜.”
[어차피 시간이 필요하지 않느냐.]“무슨 시간.”
희망의 신은 킥킥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이미 여러 번 들어 보았지만, 들을 때마다 신선한 짜증이 솟구치는 웃음 소리였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뭉그적거리는 거라면, 이렇게 지붕 위에서 청승 떨 필요 있겠느냐. 안내와 휴식이 필요하다면 내 신전으로 가자.]혼자 조용히 생각하기에 지붕 위도 나쁘지 않은데.
그리고 아직 이곳으로 도망친 하위 신을 잡지도 못했다.
그 전에 이 행성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다.]“응? 여기서?”
[그대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 왼쪽으로 틀면 금방이다.]희망의 신이 말한 방향을 바라보니 정말 신전 건물의 지붕이 보였다.
신전은 알아보기 쉬웠다.
상징성이 필요하니까.
신전은 누가 보아도 ‘아, 이 건물은 신전이구나’ 하는 느낌으로 설계되기 마련이다.
“저 신전이 네 신전이라고?”
[그렇다.]의외였다.
매우.
나는 시내 한복판에 희망의 신의 신전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이 행성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이유는 뻔했다.
희망의 신의 괴악한 이상 때문이었다.
희망의 신은 가장 절박한 순간이야말로 희망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행성에는 절박함이 없었다.
절박해질 수가 없었다.
수많은 신이 경쟁적으로 혜택을 들이붓고 있는 행성이다.
이 와중에 한 사람의 인생이 절박해지려면, 아주 기구하고 복잡한 사연이 필요할 것이다.
희망의 신이 자신의 신도들에게 그런 상황을 조장한다고 해도 그것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신도들이 희망의 신을 버리고 다른 신에게 귀의하면 그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행성에 희망의 신의 교세가 존재하리라 예상하지 못헀다.
하지만 희망의 신은 시내 한복판의 신전을 자신의 신전이라 소개하고 있다.
아, 그건가.
대륙의 숨겨진 흑막 세력 같은 거.
세상의 평화를 무너뜨리기 위해 암암리에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사교 집단.
떠올려 보니 그럴싸했다.
[선입견이다.]선입견은 무슨.
구 할 구 푼 구 리의 확률로 들어맞을 것 같은데.
[가 보면 알 것이다.]“가 보면 오히려 기분이 찝찝해질 것 같아.”
분명 신전 지하실에 고문실 같은 걸 숨겨 두었을 것이다.
분명했다.
일단 희망의 신의 말대로 신전으로 향했다.
사실 희망의 신의 말이 맞았으니까.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고.
하위 신을 잡으러 가기 위한 안내가 필요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희망의 신의 신전을 한번 보고 싶기도 했다.
*
“뭐야, 이건…….”
희망의 신의 신전은 예상외로 밝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신도들은 신전이 아니라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듯 여유롭고 해맑아 보였다.
사제들은 영업사원처럼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평화로워 보였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선입견이라고 하지 않았느냐.]희망의 신이 마치 자신이 이겼다는 듯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지…….”
내가 알아차릴 수조차 없는 굉장한 수준의 정신 오염인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자꾸 헛소리하지 말거라.]멍하니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으니, 여사제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새싹이 그려진 법복을 입고 있는 사제였다.
설마 저 새싹이 희망의 교단의 상징인가?
말도 안 된다.
[이곳에서는 그렇다만.]세상에.
말세로다, 말세야.
저런 사교가 새싹 같은 희망찬 상징물을 사용하고 있다니.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는 희망의 교단이었다.
[계속 그렇게 빈정거릴 것이냐?]“형제님, 처음 오셨나요?”
희망의 신과 여사제가 동시에 질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여사제는 나를 개인 응접실로 안내했다.
나는 안내받은 응접실에 들어가자마자 벽 이곳저곳을 두드려 보았다.
숨겨진 기관 장치는 없는 것 같다.
“벽은 왜 두드리시나요?”
“혹시 함정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을까 해서.”
수면향이라든가.
마비독이라든가.
그냥 독이라든가.
저주 마법이라든가.
하다못해 그냥 화살이라든가.
“그런 건 없습니다, 형제님.”
여사제는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함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혹시 내 감각조차 속이는 함정이 있을까 해서.
그편이 더 합리적이었다.
희망의 신의 신전이 정말 정상적인 신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무언가 굉장한 함정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여기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적어 주시면 됩니다.”
여사제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오, 역시 이건가.
타인의 개인 정보를 가지고 약점을 잡아 휘두르려는 건가.
[방명록이다. 그냥 대충 적으면 된다.]아니었다.
대강대강 방명록에 낙서를 끄적이자 여사제는 방문 용건을 물었다.
[안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된다.]그 말대로 안내가 필요하다고 말해 보았다.
그러자 여사제는 크게 반색했다.
“혹시 귀의하실 생각이-”
“놉.”
딱 잘라 말했다.
“예?”
“없다고.”
“아… 예.”
여사제는 눈에 띄게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포교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용건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떤 안내를 원하시나요?”
나는 여사제에게 아까 보았던 하위 신의 신당으로 가는 안내를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아, 길 안내였군요!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금방 준비해서 오겠습니다.”
여사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응접실에서 나가 버렸다.
무슨 준비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단순하다. 그냥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오는 것이다.]그런가.
음.
[뭐냐,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보아라.]희망의 신이 말했다.
그 말대로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왜 저 사제가 내 길 안내를 해 주려는 거지? 같은 신도도 아닌데.”
[그게 내 사제들의 역할이다. 길라잡이.]안 어울렸다.
[희망이란 막연한 기대다.]희망의 신이 설명했다.
[길을 잃어 방황하고 있을 때, 혼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앞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되어 주는 것이 내 사제들의 역할이지. 그로 인해 사람들은 나를 향해 희망을 바치게 되고, 더불어 미래에 곤란한 일이 생기더라도 주변에 있는 희망의 신전에 도움을 청하면 되겠지, 하는 인식을 갖게 한다.]내가 이전까지 알고 있던 희망의 신의 희망관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희망의 신은 절대 길의 이정표가 되는 등불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는 예방 정도의 의미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사제들은 사람들의 길을 알려 주지. 거리의 길을 안내해 주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하기도 하고. 그 답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나, 함께 걸어 주는 것이 내 사제들이다.]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네 이상은 그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절망 속의 희망이야말로 가장 찬란히 빛나는 희망이라고 믿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다.]희망의 신은 답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희망만을 요구할 이유가 있는가? 미약한 희망 또한 희망이다. 물론 내 입장에선 강력한 희망을 신앙으로 수급하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다른 방법도 추구해야지.]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건가.
생각해 보면 그랬다.
지옥도나 다름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희망의 신의 성역들을 떠올려 보면.
모두 희망의 신의 성지이거나 희망의 신이 독점적으로 소유한 영역들이었다.
희망의 신을 처음 마주했던 튜토리얼 49층도 그랬다.
여러 종교가 뒤섞인 세상이었으나.
모든 교단이 몰락하고 희망의 신의 성역만이 남은 대륙이었다.
희망의 신이 이 행성에 진실로 희망찬 교단을 세운 이유는 선악과 도덕성의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조건에 따른 경영 전략이었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
여사제를 따라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한 가지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안내역으로 사제가 붙어 있으니, 포교를 위해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없었다.
한 가지 단점도 있었다.
세레지아가 여사제를 너무 부려 먹고 있었다.
일행으로서 조금 민망할 정도로.
“저 아저씨가 대지의 신을 믿으면 꼬치구이를 공짜로 준다고 했습니다.”
“대신 제가 사 드리겠습니다!”
여사제는 호구같이 세레지아에게 음식을 계속 사다 받치고 있었다.
내가 본 것만 이미 네 번째였다.
아무래도 여사제는 우리가 희망의 교단에 귀의할 가능성을 아직 열어 두고 있는 듯했다.
안타깝게도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 사제들은 모두 박봉이다. 그만 빨아먹어라.]보다 못한 희망의 신이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거리의 음식들을 하나하나 다 먹어 보려는 세레지아를 말리고 하위 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길고 긴 계단이 거리에서부터 저 산 중턱의 건물까지 이어져 있었다.
내 기준으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사람이 걸어 올라가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계단은 가팔랐고, 지나치게 높았다.
아무리 보아도 등산 삼아 오를 만한 계단이 아니었다.
“가시죠.”
여사제는 기운차게 말하며 앞장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내게 물었다.
“현자님께 가시는 걸 보니, 고민이 있으신가 보죠?”
“현자?”
“예, 저곳에 계신 현자님이요.”
여사제는 산 중턱의 신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자라.
하위 신이 이곳에서는 현자로 지내고 있었나.
의외였다.
현자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사제는 현자를 찾아가면서 그 현자에 대해 묻는 나를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지혜로우신 분이죠. 대륙에 큰 재해가 오거나 위기가 닥치면 나서 주시기도 하고. 사람들 간의 사소한 문제조차 깊게 생각하고 현명한 판결을 내려 주시기도 하고요.”
여사제의 말을 들어 보면, 현자를 신이라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단순한 존경을 통해 신앙을 유지할 수도 있는 건가.
완연한 신격이 아니라 애매한 수준의 하위 신격이라면 가능도 할 것 같았다.
현자 행세는 여러 신이 공존하는 이 행성에서 하위 신이 신앙을 수급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찾아가는 사람이 많겠네.”
“예, 보시다시피요.”
여사제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계단을 오르고 있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자님을 만나 뵙는 분들은 별로 없으셔요.”
“왜지?”
“가지고 있던 고민을 곱씹으며 이 계단을 걷다 보면 고민이 해결되거든요.”
*
그 말 그대로였다.
제각각 문제를 가지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을 사람들은 하나둘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뒤돌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마법의 계단이 따로 없었다.
“흐억, 흐억… 커헙.”
여사제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만큼 이 계단은 평범한 사람이 오르기 어려운 구조였다.
너무나 가팔라 멈춰서 쉬기도 여의치 않았다.
갈수록 경사가 심해져, 거의 암벽 등반 수준의 경사가 되어 버린다.
까딱 발을 헛디뎠다가는 당장 추락사해 버릴 것이다.
육체적인 괴로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공포까지 불어넣어 주는 계단이었다.
이런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사소한 고민은 자연히 머릿속에서 지워질 것이다.
당연했다.
없던 고민도 사라질 판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