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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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신 (8)
“하악, 흐억, 흐억.”
여사제가 불썽사납게 헐떡거렸다.
잠시 숨을 고른 여사제는 이렇게 소리쳤다.
“여기까지 올라오시다니, 정말 독종이시군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적당히 떨어져 나가 돌아갈 줄 알았던 여사제가 아직까지 쫓아오고 있었다.
여사제는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도, 한참 뒤처져 있으면서도 기어코 쫓아오고 있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도 된다니까 그러네.”
복잡한 거리를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안내하고, 희망의 교단에 대해 설명해 준 걸로 저 여사제가 할 일은 끝났다.
충분했다.
하지만 저 여사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듯했다.
“그럴 순 없죠!”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악쓰는 듯한 목소리다.
그럴 만도 했다.
현자의 사당으로 향하는 계단은 이제 암석 절벽이나 다름없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계단이라고 부르기도 좀 그랬다.
밧줄에 매달려, 절벽의 흠을 찾아가며 올라야 하는 계단이 있겠는가.
높이가 높아지다 보니 바람도 거세지고.
자연히 서로 간의 목소리도 잘 안 들리게 되었다.
나에게는 상관없는 문제였지만, 여사제는 의사소통을 위해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당연히 목이 쉴 대로 쉰 상태였다.
“전 안내자로서 끝까지 동행할 의무가……!”
독해라, 독해.
과거의 누구를 보는 듯했다.
“저러다 죽겠군요.”
옆에서 세레지아가 중얼거렸다.
별로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곧 일어날 사실에 대해 중얼거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희망의 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뭐하자고 이런 평화로운 행성에 저런 스파르탄 여사제를 육성하고 있던 건지.
[그게 교리다.]“끝까지 동행하는 게?”
개떡 같은 교리였다.
별.
살아남기는.
그 교리를 지키다가 단명하게 생겼구만.
[목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쯧, 하고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여사제는 이제 한계였다.
덜덜 떨리는 입술은 몸의 기력이 다했음을 알리고 있었고.
가끔씩 멈춰서 아무 움직임도 하지 않는 꼴을 보아 신체가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건 휴식을 위해 잠시 멈춰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도한 고통과 피로 때문에, 그리고 공포 때문에 뇌가 열심히 호르몬을 분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한계를 마주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내지 않는다.
대신 죽음을 대비하기라도 하듯 스스로를 마취시킨다.
나는 그 꼴을 잠시 지켜보다가 여사제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사제는 내밀어진 손을 보고도 잠시 반응하지 못했다.
물고기 앞에 낚시찌를 흔들 듯 손을 흔들고 나서야 여사제의 눈이 정확히 내 손을 인식했다.
“잡아. 올려 줄게.”
“…감사합니다!”
여사제는 그 와중에도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손을 맞잡았다.
손아귀에 힘이 없었다.
땀으로 축축했다.
조금 찝찝했다.
나는 그 손을 붙잡아 올렸다.
반쯤만.
여사제의 붙잡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연히 여사제는 밧줄에서도, 절벽의 흠에서도 멀어졌다.
그저 내 손에 붙들려 있을 뿐이었다.
“저, 저기…….”
여사제는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까만 동공이 여러 감정을 말해 주었다.
조금 미안했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깨달았으면 했다.
자신의 처지를.
나는 손을 놓았다.
이미 손아귀에 힘이 남아 있지 않던 여사제는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여사제는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다만 떨어지면서도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외의 바라볼 것이 없었을 것이다.
놓아 버린 내 손에 초점을 맞춘 채로 계속 추락했다.
탓.
손가락을 튕겨 여사제를 희망의 신의 신전 앞으로 이동시켰다.
여사제는 신전 앞 거리 바닥에 나뒹굴고는 당황해 주변을 살폈다.
잠시 후 자신이 있는 곳을 파악한 그녀는 힘이 빠져 그대로 거리에 누워 버렸다.
신전 근처를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부축하기 시작했다.
괜찮을 것이다.
근육통이 심각하겠지만.
아마 포션 하나 까 마시고 며칠 푹 쉬면 다시 건강해질 것이다.
[히히힛, 아주 좋다.]그리고 희망의 신은 행복해하고 있었다.
아주 격하게.
나에게까지 그 감정의 파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뭐가, 저 여사제가 추락하면서 느낀 공포와 절망 그리고 그 순간 떠올린 너의 존재가?”
[그래, 이왕이면 그대로 바닥까지 떨어졌어도 좋았을걸.]이 미친 새끼.
이놈의 신도들도 이 사실을 알아야 할 텐데.
[떨어지는 인간은 항상 자각하지. 아, 이쯤이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추락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죽음을 예감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리는 그 착각이 있지.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아, 그게 정말 좋은데.]이게 문제다.
신은 인간 개개인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조금만 더 떨어진 다음에 이동시켰어도. 조금만 더…….]굳이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말이었다.
무시하고 조용히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이라고 쓰고, 살인 암석 등반 코스라고 읽어야 하는 이 길은 여러 마법이 겹겹이 걸려 있었다.
거리에서 올려다보던 것보다 훨씬 길었고, 또 험했다.
저 위의 현자는 개개인의 사소한 일조차 신경 써 준다고 했다.
당연하다.
이 계단 길을 극복해 낼 정도라면 이 행성에서 손꼽히는 초인일 것이다.
듣기로 정작 현자가 나서서 해결한 일은 대륙의 위기나 재해를 막는 등 굵직한 일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만인을 평등하게 대하며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준다는 허명을 쌓고 있었다.
초인과 신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애매한 수준의 신격이었지만.
신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과연 현자라 불릴 만했다.
“그런 의미에서 질서의 신은 이상적인 신이지.”
말 그대로 이상적인 신이다.
신들에게 최소한의 규칙을 강요하는 한편 필멸자에게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은 인간들과 멀면 멀수록 바람직했다.
신은 절대 이롭지 않다.
세상을 위해 필수 불가결적인 존재로 보이기도 하지만, 세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지성체들에게 신은 절대로 이롭지 않다.
최소한 이 세상에서 내가 보고 겪은 신들은 모두 그러했다.
신격은 극단적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자신의 신도에게 강요하는 순간.
신도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행성처럼 여러 신이 뒤섞여 신이 신도에게 아무것도 강요할 수 없는 세상은 조금 나았다.
“질서의 신은 초월 신이 되려 하겠지.”
[초월 신? 그럴싸한 표현이다.]초월 신이 된 질서의 신은 분명 세상에 자신의 질서를 강요할 것이다.
과거 느림의 신이 시도했듯이.
[질서의 신은 스스로 자아가 있음을 드러내었다.]내 도발에 의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도발을 그냥 받아넘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질서의 신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자아가 있음을 세상에 보여 주었다.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겠지.]신통했다.
고민을 해결해 주는 계단이라더니.
오르다 보니,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사실 뻔한 고민이었지만.
어떤 고민이든 그렇지 않겠는가.
곧 계단을 모두 오를 수 있었다.
시간을 지체시키고 있던 여사제가 없으니 금방이었다.
계단의 끝에는 잘 차려진 사당이 있었다.
이거 완전 드래곤볼 카린의 탑…….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물론 인테리어와 조경 상태가 어떤 유명 만화에서 본 것 같다는 점이 거슬렸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이 있었다.
신전인지, 선두 저장 창고인지 모를 이곳에는 경비병들이 있었다.
그리고 요상한 디자인의 갑주를 입고 있는 경비병들은 하나같이 멈춰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경비병들은 아무 이상 없었다.
마법에 당한 흔적도 없었고, 경직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저 멈춰 있었다.
곧 경비병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있었다.
시간 유폐.
그들은 시간에 갇혀 있었다.
자신의 자아를 제외한 모든 세상을 느리게 만드는 느림의 신의 권능.
과거 세상을 집어삼킬 뻔했다는 느림의 신의 권능답게 흉악하다 못해 괴이하게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권능이었다.
이 경비병들은 그 권능에 의해 제압되어 있었다.
심지어 무언가 변형된 상태로.
시간 유폐는 세상 모두에 적용되고, 자신의 자아만을 예외 사항으로 둔다.
하지만 이곳에서 펼쳐진 시간 유폐는 세상이 아닌 경비병들에 한해서만 적용되었다.
경비병들은 무한히 느려진 세상 속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전방을 바라보며 경계를 서고 있을 뿐이지만, 밖에서 보기에 경비병들은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당연하지만 경비병들은 현자의 수족이었다.
신의 하수인이다.
신의 힘을 받들고 있는 이들에게 다른 신의 권능이 이런 식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는데…….
“상식 밖의 일이 계속 벌어지네.”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다.
무슨 날인가.
“느림의 신이 개입한 걸까.”
[아니다. 느림의 신이라기보다는, 음…….]희망의 신은 무언가를 설명하려다 말을 멈추었다.
다시 캐물었지만, 희망의 신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나불거리지만, 정작 중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된다.
경비병들을 무시하고 신전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현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현자는 밖에 있던 경비병들과 마찬가지로 기괴한 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돌이 되어 있었다.
황당하네.
나는 만신전에서 마주친 현자의 힘을 추적해 이곳까지 왔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돌멩이가 현자라고.
저걸 죽은 거라고 봐야 되나, 살아 있다고 봐야 되나.
그냥 모습을 돌멩이로 둔갑한 것이 아니었다.
현자는 말 그대로 돌이 되어 있었다.
이성도, 자아도,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신성이 있지만, 자아가 없는 지구와 똑같았다.
“허 참.”
차라리 죽어 있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신이라고 완전한 불사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신이 돌멩이가 되어 있다니.
생각을 정리하자.
당장 어쩌다 현자가 저런 꼴을 하게 된 건지는 다음 문제다.
현자를 돌로 만든 이의 목적이 가장 중요했다.
“나 때문이겠지.”
[내 생각도 그렇다.]갑자기 현자에게 원한을 품은 정체불명의 존재가 하필 오늘 현자를 돌로 만들고, 이곳에 고이 모셔 두었다기보다는.
현자를 추적하고 있던 나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누군가가 이곳으로 도망친 현자를 돌로 만들었다기보다는 현자를 돌로 만든 뒤에 이곳에 가져다두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내가 알기로 저 돌멩이는 몇 개의 행성에 거점을 두고 있다. 이곳은 오히려 작은 편이다.]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본래는 저 돌멩이가 된 현자가 천공의 신을 떠올리고, 그로 하여금 나를 막게 하기 위해 이곳으로 도망쳤다 생각했지만.
만약 누군가가 현자를 의도적으로 이곳에 두었다면.
나와 천공의 신의 충돌을 조장했다고 볼 수 있다.
필연적으로 질서의 신이 반응할 충돌을.
누굴까.
나와 천공의 신의 성격을 이해하고 있고.
만신전과 나의 충돌 사이에 끼어들어 현자를 가로챌 수 있는 존재.
더불어 나도 이해하지 못할 기술을 사용하며 이 상황을 조장할 수 있는 존재.
내가 알아차리길 바라는 건가?
아니면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나를 바보로 보고 있나 본데.”
*
“잘 지냉?”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차분한 고요가 존재할 뿐.
키리키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곧바로 돌아오지 않는 대답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증명하는 신은 그렇게 대화한다.
“지낼 만한가 보네. 다행이양. 나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
키리키리는 힝,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느림의 신의 방은 참 묘한 곳이었다.
몇 번을 와 보아도 그렇게 느껴졌다.
“시간이 되었어.”
[또 내 힘을 훔치러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