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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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5)
잠시 서 있었다.
피처럼 붉은 돌멩이를 바라보면서.
“일단 돌아가서 생각하자. 그게 좋겠지.”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로 보이지는 않았다.
만신전 신들의 성지를 박살 냈다지만 지구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용용이와 호치가 잘 대처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었지만.
이 와중에 다른 일을 새로 벌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새로운 문젯거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있다면 더더욱.
[동의한다.]돌이 되어 버린 현자는 내가 챙기기로 했다.
자아가 완전히 없어졌는지, 내가 손으로 쥐어도 아무 반응이 전해져 오지 않았다.
정말 신력을 담은 에너지원 따위로 변해 버렸다.
챙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신력이 응축되어 있는 보물이었다.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행성에 빨대를 꼽고 근원을 빨아먹고 있는 신들이 보았다면 분명 눈이 돌아갔을 그런 물건이었다.
그저 담긴 힘 때문에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까.]희망의 신이 중얼거렸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다른 신격을 공격해 한낱 에너지원으로 격하시키고, 그것을 흡수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압도적인 힘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신들을 엎드려 구걸하게 할 수 있을 텐데.]희망의 신의 관점은 조금 다른 듯했다.
큰 차이는 없겠지만.
“연구는 해 봐야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회의적이었다.
쉽지 않을 것이다.
아공간을 열어 봉인된 아부부 옆에 현자의 돌을 보관해 두었다.
다시 아공간을 닫고 지구로의 귀환을 준비했다.
전쟁이 끝났다.
지구에 나온 뒤 처음으로 겪은 전쟁.
아니, 난생처음으로 치른 전쟁이었다.
이전까지 전투는 수없이 해 보았지만, 전쟁은 처음이었다.
항상 지킬 것 없이 혼자서 싸워 왔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구와 신도들이라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고.
거인들과 함께 세력을 이루어 만신전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맞서 싸웠다.
특별한 감회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혼자 싸웠을 때와는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무사히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느껴졌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느껴지던 허무함이나 아쉬움과는 정반대의 기분이었다.
“용사님?”
잠시 조용히 있자 세레지아가 나를 불렀다.
“아무것도 아냐. 돌아가자.”
* * *
지구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우려되었던 것과는 달리, 만신전 신들의 지구 직접 침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포석으로 투입된 병력이 문제였다.
비신격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그 병력의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소환 직후 추락사하거나 압사당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몇몇은 살아남고, 또 몇몇은 적극적으로 지구에서 파괴 행위를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느 시점 이후부터 소환 포탈이 추가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소환 포탈이 끝도 없이 추가되고, 무작위로 그 위치마저 변경되던 초반과는 상황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거인들이 만신전 신들을 역으로 침공하면서, 눈치 빠른 만신전 신들이 그대로 발을 빼 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구에 투입된 병력은 그대로였고.
그 병력은 고향으로 다시 송환되지 못했다.
그러기도 전에 만신전 신들이 거인들에게 소멸당하면서 소환 포탈 자체가 닫혀 버렸다.
돌아갈 길이 사라져 버렸다.
만신전 신들에 의해 소환된 병력 중에는 전투 의지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었으나.
반대로 아주 호전적인 이들도 있었다.
호주에 소환된 마하마바 종족이 그런 경우였다.
이마에 십수 개의 검은 뿔이 나 있는 이 종족은 소환 중에 추락사하지 않았다.
소환된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게 지구에 내려와 그들의 목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카아악! 죽여라!”
”부수고 무너뜨려라!”
“불태워라! 카아악!”
”우리의 신께서 이곳에 강림하신다!”
그들은 그렇게 외치며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런 마하마바 족을 피해 도망치고 있던 일단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막혔어!”
허공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투명 벽을 두드려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그건 평범한 인간이 부술 수 없는 벽이었다.
다급하게 뒤를 쳐다본 사람들의 시야에 그들을 추적해 온 마하마바 족이 보였다.
사람들은 저들에게 대항할 생각이 없었다.
완력으로 콘크리트 벽을 부수고 고층 빌딩을 무너뜨리는 괴물들이다.
초인이라 불리는 각성자들이나 저들을 막아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각성자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건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캉!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스패너 등의 연장으로 투명 벽을 때려 보았지만, 그 역시 소용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도 필사적이었다.
사람들은 각자 들고 있는 물건으로 혹은 맨주먹으로 끝없이 벽을 두드렸다.
연장이 부러지고 주먹에서 피가 튀었지만 그들은 멈출 수 없었다.
마하마바 종족 수십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앞이 가로막힌 인간들은 벽을 두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기적- 중급 보호자 소환] [중급 보호자 견습생 11인이 소환됩니다.]쾅!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벽에 막힌 인간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던 마하마바 족 수십이 밀려나 나동그라졌다.
폭발에 의해 일어난 먼지가 가라앉자 비로소 소환된 일곱의 모습이 드러났다.
소환된 그들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젠장, 제발 쉴 시간 좀.”
그렇게 푸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긴 또 어디야. 뉴욕인가?”
주변을 살피는 이도 있었다.
“아니, 시드니야. 예전에 와 봤어.”
그들은 퍽 여유로워 보였다.
이 상황에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짜증을 느끼는 듯했다.
“훈련도 좆 같은데, 실전은 더하군. 최소한 숨 돌릴 시간은 줘 가며 부려 먹어야지. 이러다 과로로 죽을 거야.”
“그런 소리 마. 헬 난이도에 평생 갇혀 있는 것보단 이게 낫지.”
투덜거리던 이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들은 튜토리얼 헬 난이도에 갇혀 있던 도전자들이었다.
그것도 1층, 2층과 같은 저층 구간이 아니라 마의 30층대 초반을 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던 미국의 헬 난이도 도전자들이었다.
“살려 주세요!”
그런 그들을 보고 벽을 두들기고 있던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도전자들은 그들을 보고 도우러 뛰어가기보다는 어리둥절해했다.
“엥. 왜 결계 안에 사람이 남아 있지.”
“아아. 여기 보호 대상들이 방치되어 있습니다만.”
도전자들은 급히 상황을 보고했다.
그 와중에 폭발에 의해 쓰러져 있던 마하마바 족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의 등장과 동시에 발생한 폭발을 떠올린 마하마바 족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카아악! 적이다!”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마하마바 종족은 크게 소리를 질러, 도심 곳곳에 흩어져 있던 동족들을 불러 모았다.
그 모습에 소환된 도전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들 31층에서 봤던 거 같은데. 마족 아니야?”
”나는 이제 머리에 뿔 달린 놈들은 보기만 해도 신물이 올라와.”
[기존 임무가 취소됩니다.] [새로운 임무가 발생하였습니다.] [임무- 생존자 보호.] [알 수 없는 이유로 제한 지역 내에 보호 대상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보호 대상자들의 전송이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보호 대상자들의 안전한 격리를 위해 증원이 파견될 겁니다. 증원이 도착할 때까지 보호 대상자들을 보호하십시오.] [증원까지 남은 시간: 약 5분]당연하다는 듯 나타난 메시지가 그들에게 할 일을 알려 주었다.
메시지를 읽은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5분이 아니라 50분이어도 괜찮은데. 이참에 좀 쉬게.”
”그러게. 하하하.”
그들은 자신이 있었다.
마하마바 족의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길을 가득 메우다 못해 건물 외벽을 타고 몰려들고 있는 마하마바 족의 수는 정말 끔찍하게도 많았다.
“50분?”
“5분이면 딱 적당하지.”
순식간에 모여든 마하마바 족은 지체하지 않고 도전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아악!”
“적이다! 죽여라!”
“불태워라!”
“찢어 죽여라!”
도전자들이 쏘아 대는 마법이 날아와 수십의 마하마바 족이 일시에 폭사당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곧 우리의 신께서 이곳에 강림하신다!”
신의 존재를 부르짖으며 전진할 뿐이었다.
* * *
카아악!
마하마바 족 몇이 건물 옥상에서 낙하를 시도했다.
도전자들에게 보호받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습격하기 위함이었다.
마하마바 족은 도전자들이 그 뒤에 있는 약한 인간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그들을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도전자들은 약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빈틈을 내보여야 했다.
끝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화염이 빌딩보다도 높게 치솟았다.
돌개바람이 몰아치고, 아스팔트 바닥이 얼어붙고, 녹아내렸다.
도전자들은 많은 수의 마하마바 족을 상대하기 위해 갖가지 마법을 쏟아 내고 있었다.
달라붙은 마하마바 족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강맹한 주먹질에 얻어맞은 마하마바 족의 머리통이 어깨 밑으로 박혀 버렸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방출되는 오러에 마하마바 족 여럿이 동시에 휩쓸려 나갔다.
교환비는 압도적이었다.
도전자들은 아직 한 명도 죽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수천 단위의 바하마하 족을 처치했다.
단순한 초인이 아니라, 신들이 사도로 삼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헬 난이도에서 오랜 시간 생존해 왔고, 또 어느 정도 성과를 내 왔던 도전자들이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호흡을 맞춰 온 도전자들이었고, 또 이렇게 수많은 적을 상대로 이겨 낸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그들에게도 벅찼다.
그들의 뒤에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튜토리얼에선 누군가를 보호하더라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자신의 목숨이 가장 중요했고.
그다음이 동료의 목숨.
그다음이 스테이지에 대한 정보였다.
하지만 지구에선 달랐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살아 있는 인간들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을 방치하거나 다치게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계속 틈을 허용하거나 스스로의 힘을 제약해야 했다.
“젠장. 죽겠네.”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도전자가 중얼거렸다.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메시지가 일러 준 5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카아아! 신께서 강림하신다!”
“신께서 우리를 바라보신다!”
”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마하마바 족은 기세등등하게 신을 부르짖고 있었다.
그때 허공에서 공간이 열렸다.
그것을 본 마하마바 족은 환호를 터뜨렸다.
도전자들도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멍청이들. 저건 우리 편이야.”
갈라진 공간에서 나온 건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인간은 아니었다.
[증원이 도착하였습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료하였습니다.] [증원이 도착할 때까지 완벽하게 보호 대상자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차후 성과에 따른 보상이 지급될 것입니다.] [증원 (1/1)] [이호치]공간에서 걸어 나온 호치는 구석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도전자들을 확인하고 마하마바 족을 향해 손을 들었다.
호치는 누군가와 싸우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지 않았다.
매우 싫어했다.
이호재는 소환 포탈을 통해 소환된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쓸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호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들은 희생자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마하마바 족은 척 보아도 그런 부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적극적인 공격 의사를 가지고 파괴 행위를 시도하고 있었다.
지구와 신도들을 지키고 있는 호치에게 마하마바 족은 자비를 베풀 대상이 아니었다.
언젠가 이호재는 호치가 스스로 손에 피를 묻혀야 할 날이 오면, 미리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할 거라 말했었다.
기우였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호치는 기꺼이 잔인해질 수 있었다.
[마력 압제] [절대 대상 지정] [초소형 블랙홀 생성]호치의 손 위에 작고 검은 공간의 틈이 열렸다.
“발동.”
짧고 간단한 시동어였다.
호치가 시동어를 외자, 주변의 마하마바 족이 공간을 향해 끌려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힘이었다.
마하마바 족은 힘에 끌려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모두 무의미했다.
어떻게 버텨 보려 해도, 마하마바 족은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블랙홀의 힘은 마하마바 족에게만 적용되었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나 건물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지나치게 강한 인력에 마하마바 족은 무언가를 제대로 붙잡지도 못했다.
바로 옆에 있는 가로등를 잡고 버티려 해도, 가로등에 손을 뻗기도 전에 이미 공간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건물 안이나 건물 뒤쪽에 있던 마하마바 족은 붕괴된 건물 잔해와 함께 빨려 들어갔고.
공간에 빨려 들어가기도 전에 곤죽이 되고 핏물이 되어 버린 마하마바 족도 부지기수였다.
단 1초.
공간이 열리고 마하마바 족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직후.
거리에는 단 하나의 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공포에 차 헐떡이는 숨소리만 고요히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