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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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6)
귀를 먹먹하게 만들 만큼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 내던 마하마바족이 일순간에 몰살당했다.
텅 비어 버린 도시에선 휑한 바람 소리와 건물과 차량이 불에 타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사람들의 조용한 숨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한숨은 아니었다.
가늘고 간헐적이었다.
억눌린 숨소리였다.
자신들을 구하러 온 호치였지만, 그를 보는 인간들은 도리어 공포를 느꼈다.
그들을 탓하기는 어려웠다.
미지와 죽음은 인간에게 항상 공포의 영역이었고.
호치가 그들에게 보여 준 광경은 미지와 죽음 모두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반면 도전자들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통쾌함과 기대감을 느꼈다.
“다시 보고, 또 봐도 개사기네.”
“우리가 받게 될 건 마이너라고 했지만, 조합에 따라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들은 이런 광경을 이미 몇 번이나 보아 왔다.
처음 보았을 때는 당혹스러웠다.
그들이 훈련에 쏟고 있는 노력을 떠올리고 허탈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치가 사용하는 기술이 모두 권능이라는 걸 알게 되자 태도가 바뀌었다.
새로운 튜토리얼에서 훈련을 받고, 임무를 부여받는 도전자들은 확실한 보상을 약속받았다.
지구의 신도들이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과 공적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처럼.
도전자들에게는 그 이상의 보상이 약속되었다.
헬 난이도에 갇혀 있던 도전자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더욱더 강력한 능력.
그리고 그 욕망을 채워 주는 게 권능이었다.
보상을 통해 지급되는 권능은 원본에 비해 조금 다운그레이드가 되어 있었지만, 헬 난이도 출신 도전자들은 그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도전자들은 보상 목록의 권능들을 살펴보며, 권능들을 조합해 사용하거나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의 시너지를 예상해 보며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환과 고된 훈련 그리고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임무에도 그들이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겁에 질린 사람들과 기대감에 설레어 하고 있는 도전자들.
호치는 그들 모두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다.
마하마바 족을 쓸어버린 직후였지만,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도 더 경계심 있는 모습을 보였다.
“용용아, 찾은 것 같다.”
호치가 조용히 말했다.
분명 모든 마하바하 족이 소형 블랙홀에 휩쓸려 공간 너머로 빨려들어 갔다.
하지만 지금 거리에는 마하바하 족 한 명이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휑한 거리에, 마치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평안히 서 있는 존재가.
“네가 이 행성의 수호자구나.”
마하바하 족이 입을 열어 먼저 말을 건넸다.
수호자.
낯선 명칭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호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원하는 게 뭐지?”
이미 지구를 침략한 이들이지만, 호치는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의향이 있었다.
“너.”
하지만 마하바하 족은 장난이라도 치듯 실실 웃으며 말했다.
“궤멸의 신께서 곧 이곳에 내려오신다. 우리의 임무는 그때까지 방해가 되는 것들을 치워 두는 거지. 너처럼 이 행성을 지키고 있는 것들 말이야.”
호치는 잠시 침묵했다.
제한 구역에서 이동되지 않고 남아 있던 일단의 생존자 무리.
이상하게 이 구역은 통신도, 관찰도 어려웠다.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호치와 용용이는 이곳에 그들의 관측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구역에 침입한 이들 중 하나가 관측을 방해하는 특별한 물건을 지니고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도전자들을 추가로 증원하기보다 호치가 직접 이곳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물건이 아니라 저 마하마바 족의 능력이 문제였던 것 같다.
“너희 신은 지구에 나타나지 못할 텐데.”
호치는 그렇게 확신했다.
어느 순간부터 소환 포털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기존에 연결되었던 소환 포털이 사라지기도 했다.
지금 남아 있는 소환 포털들은 모두 초기에 열리고 그대로 방치된 것들이었다.
“힘을 소모하기 싫어서 숨어만 있는 그대들의 신을 향해 말해 보시지.”
마하바하 족은 그렇게 말했다.
사실 이호재는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만신전 신들을 직접 공격하기 위해 지구를 비운 것이었지만.
그것까지는 모르는 듯했다.
호치는 판단했다.
교섭의 여지는 없어 보였고, 대화를 통해 알아낼 정보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전투를 통해 자신이 물리치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용용아, 도와줘.”
호치의 부탁에 따라 다시 공간이 열렸다.
공간 너머로 보이는 건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아니었다.
거대한 눈동자였다.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그것이 천천히 움직였다.
주변을 살피기라도 하듯, 동공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마하바하 족을 향해 고정되었다.
방금까지 호치에게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던 마하바하 족은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뒤편에 있던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스로 살아남아 의식을 유지하고 있던 생존자들은 그대로 졸도해 버렸다.
방금 전까지 호치의 능력을 보고 감탄하고 있던 도전자들은 당황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뭐야, 저건.’
‘도망쳐야 돼.’
‘뭔가 잘못된 것 같아.’
‘항복할까. 그럼 살 수 있을까.’
그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은빛 눈동자에 대해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흉악함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눈동자는 그들의 생존 본능을 자극했고.
상황과 별개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하지만 눈동자에 직시 당한 마하바하 족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마하바하 족의 머릿속은 완전히 비어 버렸다.
눈동자를 마주친 그 순간부터 마하바하 족의 이성은 날아가 버렸고, 그저 공포를 느끼며 앞을 바라보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호치는 겁에 질려 있는 인간들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마하바하 족을 처리하고 용용이의 눈동자를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수단을 꺼내 들었다.
마하바하 족에게 다가간 호치는 권능을 사용했다.
[죽음]호치의 손 위로 검은 기운이 덧씌워졌고, 호치는 그것을 휘둘러 마하바하 족의 목을 살짝 베었다.
작은 상처였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죽음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 권능은 사실 이호재가 연구하던 독기 스킬의 최종 진화판이었다.
신이 된 이후에도 꾸준히 개량해, 기존 독기에 신력까지 섞어 말 그대로 신조차 죽일 수 있는 독효를 가지게 되었다.
직접 공격을 통해 독을 침투시켜야 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움직임이 제압된 상대에게는 이보다 치명적인 공격이 없었다.
마하바하 족의 몸은 그대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초인의 범주조차 넘어, 더 이상 필멸자라 볼 수조차 없는 존재라기엔 너무나 쉽고 허망하게 사멸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호치는 생각했다.
자신도 신이 되어야겠다고.
비신격과 신격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다.
지켜야 할 것을 갖게 된 지금, 호치는 이전까지는 기피해 왔던 강한 힘에 대한 필요와 열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
‘파주 지역 클리어.’
“바로 이동 준비 하세요.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니, 쉴 시간이 없다니까! 이동하면서 정비하세요. 강원 지역에서 증원이 갈 겁니다.”
김민혁은 텔레파시를 보내고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지도에는 실시간으로 지구에 침입한 존재들의 수와 상태,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각성자들과 군대의 현황을 보여 주었다.
용용이의 도움으로 텔레파시와 정신감응 등의 여러 도움을 받은 김민혁은, 자신의 손길이 닿고 있는 각성자들의 지휘와 군부대를 위한 조언을 담당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집중력 때문인지 이마에서 열이 느껴졌다.
만약 김민혁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나온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진작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집중력의 유지는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은 무언가에 집중을 하고 충분한 사고력을 소모하기 위해 열량과 체력 그리고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전 세계의 상황을 살피며, 즉석으로 각성자들과 군대를 움직여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 와중에 말을 들어 먹지 않는 각성자들과 입씨름도 해야 했고.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이들을 설득하려 협상을 하기도 해야 했다.
때때로 병력에 손실이 발생하면, 자신의 판단 때문에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김민혁은 그 와중에 잠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손으로 자신의 한쪽 눈을 가린 채 조용히 앉아 있는 용용이가 보였다.
그 모습에 경외감을 느꼈다.
예쁜 옷 입는 걸 좋아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기 방에서 뒹굴거리기만 하는 저 아이는 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튜토리얼에 있는 수많은 도전자를 상황에 맞게 인원과 조합을 배정해 격전지로 내보냈다.
그리고 매 순간, 모든 판단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었다.
옆에서 김민혁이 보기에 조금 무리가 아닐까 싶은 경우에도 도전자들의 성향과 조합을 통해 어떻게든 임무가 성공으로 끝났다.
용용이는 지구 전역에 결계를 세워 구역을 나누었다.
그를 통해 침입자들이 결집하거나 분산되는 것을 막았다.
이동하지 못하게 된 침입자들을 한 구역씩 확실히 처리한 뒤 위험 지역에 있는 인간들을 안전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그 와중에 호치의 요청에 따라 전장에 관여하기도 했다.
김민혁으로서는 따라 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능력이었다.
가만히 집중하고 있던 용용이가 돌연 고개를 들었다.
김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왜 그래?”
김민혁은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다시 가슴이 철렁함을 느꼈다.
다행히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용용이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돌아왔어.”
용용이의 대답을 들은 직후, 김민혁도 인지할 수 있었다.
일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더 무거워졌다.
신전 건물의 창문 너머로 거대한 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만신전 신들이 지구를 침공한 직후에 나타났다 곧바로 사라진 거인들.
지구를 침입한 신들을 직접 공격하기 위해 출정했던 거인들이 지구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김민혁은 용용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우리가 이긴 건가?”
용용이는 김민혁의 말을 듣고 그를 향해 다시 웃어 보였다.
*
“개판이네, 아주.”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하게 막아 낸 것이라 사료된다, 왕이여.]할멈이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용용이와 호치는.
지구는 침략자들을 잘 막아 내었다.
피해도 생각보다 적었고,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방어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개판은 개판이지.”
지구 여기저기에 만신전 신들의 하수인들이 뒤섞여 있는 광경은, 개판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어찌할까.]영감이 말했다.
질서의 신을 마주한 이후로 급속도로 말수가 적어진 영감이지만.
큰 문제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된 후 심도 깊은 상담이 필요해 보였지만, 당장 문제가 될 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 생각되었다.
“어쩌긴.”
지금 지구에 남아 있는 저들은 신들에 의해 방치된 이들이다.
심지어 그 신들조차 거인들에게 찢겨져 죽었다.
지구에 소환 포털을 연결한 신들의 성지는 단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모두 처리했으니 확실했다.
“제압해. 저항하는 놈들은 쓸어버리고.”
저항할 의지가 없는 이들조차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저게 다 인력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자고. 이미 결과가 나온 전쟁이야. 우리가 이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