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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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토스 (4)
타다토스는 내 예상과 사뭇 다른 곳이었다.
처음 퀘스트창을 읽고 타다토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독기가 만연한 늪지대를 연상했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늪에 빠져 죽고, 물 마시다가 중독되어 죽고, 자다가 지붕을 뚫고 날아든 우박에 맞아 죽고.
뭐, 그런 동네를 연상했었다.
그 어디보다 죽음이 가까운 세계.
하지만 타다토스는 퍽 정상적인 동네였다.
해파리 문어 대가리가 되는 수술을 받은 노블들이 지배하는 세계를 정상적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긴 하다만.
내 예상과 비교해 보자면 그랬다.
한 가지 특징을 더 꼽아 보자면, 굉장히 발달해 있는 기술력이 있었다.
여러 세계를 열심히 돌아다녀 본 입장에서, 지구 이상의 혹은 동등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세상은 흔치 않았다.
과학이 아닌 마법을 통해 발전한 문명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신들의 사정 때문일 것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신에게 덜 의존하게 된다.
기술력을 통해 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고, 가치관 또한 염세적으로 변화한다.
신들에게 있어서 신도들의 문명은 적당히 야만적이며, 동시에 충분한 인구수를 유지할 정도가 가장 적합했다.
하지만 이 타다토스는 그렇지 않았다.
도시블의 열정적인 연설에 이곳 타다토스에서의 죽음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약속된 최후.
죽음이라는 최후 때문에 현재에 더 몰입하고,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 세계였다.
그렇기에 이만한 기술력을 보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시블이 떨어뜨린 태블릿은 여전히 잿더미가 되어 버린 도시의 전광을 비추고 있었다.
무가치한 죽음이었다.
죽음을 최후의 구원이라 믿고, 그 죽음에 비추어 더욱 찬란히 빛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저 허무한 죽음에서 어떤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여겨지진 않았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죽음의 신에게.
저 광경이 정말 의도하고 있던 것이냐고.
[죽음의 신이 당신의 물음에 긍정합니다.]그렇다면 내게 원하던 것도 저런 것이겠네.
노블들을 찾아 제거한다든가 하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당장 행성 표면을 쓸어버려서라도 배교자들을 몰살시키는 게 목표였던 것이다.
어쩌면 노블들에 영향을 받은 평범한 사람들 또한 제거 대상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너무 허무하겠는데.”
죽음을 절대선이라 부르던 도시블도, 그리고 다른 신도들도.
[그것이 죽음이다.]죽음의 신의 목소리였다.
익숙한 기운이었다.
죽음의 신에게서 선물 받은 권능들을 오래 사용했었기에 그랬다.
“얼씨구, 이제는 직접 말도 하네. 진작 하지 그랬어.”
튜토리얼에 있던 시절처럼 메시지창만 보고 의사를 확인하느라 성가셨는데.
[이제야 나설 수 있게 되었으니까.]전쟁 때문일 것이다.
이제 막 시작된 전쟁.
아직도 폭음이 연이어 울리고 있었다.
희생의 신의 선제공격과 함께 만신전과 백신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네 특기를 살려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랐다. 최소한 이 전쟁이 다른 곳에서 시작되게끔.]역시 내가 오자마자 시밤쾅이라도 한 방 쏴 주길 바랐나 보다.
[하지만 바람대로 모든 일이 풀리지는 않지. 삶의 유지를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결과로 틀림없이 존재하는 죽음은 언제나 당혹스럽고 허무한 법이다.]이놈의 신들은 이게 문제야.
등장하기만 하면 지들 개념에 대한 강의부터 시작한다니까.
안 궁금해.
“네가 권능을 몇 개씩 퍼주면서 애썼지만, 정작 나는 네 사도 자리에 관심이 없어서 대충 거절했던 것처럼? 아, 비유가 좀 이상한가?”
[…….]죽음의 신은 유난히 많은 권능을 선물한 신이었다.
물론 정식으로 선물할 수 있는 권능에는 제한이 있었지만, 죽음의 신은 자신을 감추면서까지 내게 권능들을 선물했다.
하지만 모험의 신이나 느림의 신이 선물한 권능들에 비해 크게 쓸모 있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건 문제는 해소될 테니, 너에게 주어졌던 임무는 성공으로 해 두겠다.]의구심이 들었다.
이리도 쉽게 퀘스트를 완료시켜 주는 것이.
죽음의 신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도 그랬다.
키리키리는 이것을 나와 엮이기 껄끄러워한 신들의 판단이라고 설명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실이 생길 때마다 대충대충 완료시켜 둔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백신전 신들이 최대한 빨리 내 퀘스트를 완료시켜야 한다고 여기는 것처럼.
그들의 입장에선 전혀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이제 돌아가라.]죽음의 신이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와락 인상을 썼다.
“지랄하네. 내가 왜 돌아가냐.”
[그대가 더 이상 여기서…….]죽음의 신의 목소리를 차단했다.
뭔데 밑도 끝도 없이 이래라저래라야.
“야, 야야.”
“끄으윽…….”
바닥에 쓰러진 도시블을 발로 툭툭 차 보았다.
도시블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끙끙대고 있었다.
포션을 마시게 했는데도 차도가 없다.
어지간해서는 못 일어날 듯했다.
할 수 없지.
도시블은 대충 아공간에 던져 두었다.
이준석이 알아서 돌보아 줄 것이다.
도시블 본인은 그대로 죽는 것을 선호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가 필요했다.
쾅쾅!
전쟁의 폭음이라기보다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음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만신전 신들과 희생의 신은 하늘 높은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으나 그 여파는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전투 지역 아래로 결계를 깔아 행성의 지면을 보호했다.
급한 대로 대충 씌운 결계라 그리 튼튼하진 못했다.
타다토스에 모인 수많은 신이 공격을 시도한다면 삽시간에 파괴될 것이다.
상관없었다.
결계는 의사 표현이었다.
이 밑으로는 건드리지 말라는.
결계에서 내 힘을 느낀 신이라면 다들 알아들었을 것이다.
결계가 깔리자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여러 신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우.
나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한 공간에 존재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신격이 모여 있었다.
아무튼 전투의 와중에도 신들은 결계를 펼친 내 존재를 인지했다.
전쟁에 와중에 아무 이유 없이 적을 하나 추가하고 싶은 머저리가 아니라면 섣불리 결계를 파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세레지아.”
[역시 결계에 흠집이라도 나면 그걸 빌미로 나선다는 작전입니까? 제가 결계를 향해 돌진하면 되는 겁니까?]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세레지아가 물어 왔다.
뭐, 그런 자해 공갈단 같은 작전이 있나.
“아니, 그냥 바로 나선다는 작전이야.”
[만신전과 용사님은 협정을 맺었던 걸로 아는데요.]그 협정은 이미 깨졌다.
“내 빡빡이 친구가 다쳤어.”
도시블은 내 친구다.
비록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깊은 교감을 나누며 우정과 신뢰를 공유했다.
도시블 또한 나를 절친한 친구로 여길 거라 확신했다.
나는 그런 친구가 입은 부상에 분노했고, 이 빌어먹을 폭발을 일으킨 신들에게 충분한 보복을 가할 것이다.
[완벽한 논리입니다.]“역시 그렇지?”
*
신들의 전투는 계속되었다.
양측 모두 결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합의라도 본 것인지,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아주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어쩌면 그럴 겨를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수천에 달하는 만신전의 신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개중에는 이전에 보았던 유연의 신의 모습도 보였다.
희망의 신은 유연의 신을 만신전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이며, 백신전의 다른 신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다.
심지어 만신전 진영에는 유연의 신과 비벼 볼 만한 신이 몇이나 더 있었다.
정말 압도적인 스케일의 세력이었다.
희망의 신이 괜히 실질적인 세상의 실세들이니, 뭐니 하면서 추켜세우던 게 아니었다.
전투는 일방적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숫자가 많은 만신전 측이 우세한 게 일반적이겠지만, 놀랍게도 희생의 신 단 하나가 만신전 신 모두를 압도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희생의 신은 정말 힘에 한계가 없는 것처럼 막대한 양의 힘을 쏟아 내고 있었다.
만신전은 그런 희생의 신에 대항해, 최대한 피해 없이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피해를 감소하고 역공을 시도하기보다는, 오버페이스를 보이고 있는 희생의 신의 힘이 고갈되기를 노리는 듯했다.
내가 보기에도 저건 오래가지 못할 듯했다.
희생의 신이 보여 주고 있는 출력은 분명 오버페이스가 맞았다.
사용하고 있는 힘의 반작용으로 지금 당장 소멸해 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 공격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희생의 신은 그저 차분히 공격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타이밍 괜찮네.”
어찌 되었건 양쪽이 균형을 이루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든 균형추가 무너지기 직전.
밥상 엎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신나게 싸우고 있는 신들에 붉은 점 수백 개가 동시에 생성되었다.
이러니까 옛날 생각 나네.
예전에 정령왕과 완성자가 치고받고 싸울 때도 똑같은 방법으로 뒤통수를 쳤었는데.
“시밤, 쾅.”
수백 개의 붉은 점이 동시에 폭발했다.
전투에 정신이 팔려 있던 만신전 신들은 갑작스러운 폭발에 대응하지 못했다.
빛과 폭염이 삽시간에 신들을 휘감았다.
시밤쾅은 분명 강력한 기술이지만, 그 자체로 신격을 쓰러뜨릴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신력의 공간적인 확장으로 상대방의 대응을 제약하고 빛과 열을 통해 교란하는 것이 주 활용법이었다.
그사이 내 신력을 담은 불길의 소용돌이 속에서 완벽한 면역력을 갖춘 거인들이 돌격해, 근접전으로 상대 신을 끝장내는 게 우리의 기본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 신들을 상대로 살상력은 좀 떨어졌지만, 혼란 유발이라는 역할은 모자람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세레지아, 얘기는 잘됐어?”
[물론입니다.]오, 쉽지 않았을 텐데.
[인간 상태로 산책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지나치게 짠 조건이었다.
조금 가혹할 정도로.
[가만히 봉인되어 있는 걸 굉장히 싫어하더군요. 시간 유폐를 사용해 천 년쯤 가둬 두겠다고 협박했습니다.]그야 당연히 봉인되어 있는 걸 싫어하겠지.
원래 제국 황궁의 지하에서 수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검이니까.
어쩌면 그 촐싹거리는 수다도 장기간 봉인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진입합니다.]세레지아의 말과 함께 공간이 열렸다.
오늘 하루만 해도 수천에 달하는 신이 공간을 비틀어 오고 간 타다토스였다.
이곳에서 공간의 비틀림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이 열린 공간에서 등장한 것은 신격이 아닌 두 자루의 검이었다.
세레지아와 아부부였다.
[주인공 아우부츠 등장입니다!]뭐가 그리 좋은지 아부부는 공간의 틈을 넘어오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가상 세계가 펼쳐졌다.
*
“다시 봐도 개사기네, 이거.”
황무지 흙바닥을 툭툭 발로 긁으며 말했다.
방금 전만 해도 타다토스에 있었거늘, 한순간 천공의 신이 만든 가상 세계로 소환되어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만신전의 신들과 희생의 신도 함께 소환되었다.
[제가 이렇게 위대합니다, 용사님.]거들먹거리는 아부부의 목소리 너머로, 당황과 공포에 찬 괴성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천공의 신이 내 연구물을 가지고 아부부를 매개체로 만든 이 가상 세계는 참 놀라운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소환 대상을, 신격을 획득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려 버린다는 것이었다.
-크와오오!
-카아악!
“저 못 배워 먹은 것들, 시끄러운 것 봐라.”
만신전 신들은 광기에 젖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잡아먹고 잡아먹어 비로소 이성을 가지고, 신격을 얻어 신이 되었던 자들.
그들이 신격을 잃어버리자 과거 욕망에 사로잡힌 근원의 괴물, 그 원형으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사냥감들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