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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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토스 (8)
내가 막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다.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었고.
전세는 기울어 갔다.
위대한 우주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신들은 늘어만 갔고.
대항자들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험의 신은 결정을 내렸다.
[그게 대격변 말기에 일어난 일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몇몇 신이 없었다면 대격변이 아니라 창세기라 불렸을지도 모르지. 그 이전까지 존재하던 모든 게 멸망했으니까.]문득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고창의 신.
희망의 신을 추적할 당시 만났던 신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고, 덕분에 잡다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고창의 신은 퀘스트창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던 키리키리를 알아보기도 했다.
[오래전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신이지. 그마저도 노래를 통해 전승된 상징적인 은유들만을 알고 있어. 정확한 역사까지 알지는 못하겠지만.]세상의 멸망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희망의 신이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이전부터 희망의 신이 보이고 있던 불안 증세 때문에 과한 걱정을 하는 게 틀림없다고.
하지만 희망의 신은, 이전에 이미 한 번 일어난 일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때와 상황이 얼마나 비슷하지?”
[느림의 신은 의지를 품고 있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실상 전쟁은 그 추종자들과 반대자들의 전쟁이었다. 모험의 신은 모든 문명을 멸망시켜 신들을 공격했다. 그 신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의 추앙을 받고 있던 느림의 신을 봉인했다.]근원적인 신앙의 말소.
피라미드 가장 아래에 존재하는 신앙의 공급원들을 멸망시키고, 그 위의 신들을 공격하고.
차례대로 위로 올라가 느림의 신마저 봉인했다.
[지금은 질서의 신이 그러하다. 비록 추앙을 받진 않지만, 수많은 신이 시스템에 종속되어 질서에 신앙을 바치고 있다. 같은 상황이다.]시스템이라는 질서에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신들, 그리고 그 신들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신도를 죽인다.
그렇게 질서의 신의 힘을 약화시킨다.
이해는 쉬웠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신들은 모든 행동과 판단에 연속성을 가진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잖아,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신이라는 존재는 같은 상황에서 반드시 같은 판단을 한다.
모험의 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제 나를 도망치게 해 다오. 그들이 날 찾아올 게 분명하다.]그렇겠지.
정말 질서의 신을 약화시키기 위해 세상을 멸망시킬 작정이라면.
질서의 신의 사도인 희망의 신을 가만 내버려 둘 것 같진 않았다.
[정 믿지 못하겠다면 밖을 보아라.]희망의 신은 그렇게 말했다.
*
[왕이여, 괜찮은가.]할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밖으로 나온 것을 눈치챈 듯했다.
“괜찮아. 나중에 지구로 돌아가서 꺼내 줄게. 거기서 기다려.”
당장 여기서 그들을 꺼내 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그러지 말아야 할 필요만 잔뜩 있었다.
[전투는 어찌 되었지? 우리의 승리인가.]할멈의 마지막 말은 물음이라기보다는.
역시 그럴 테지, 하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그만큼 할멈은 우리의 승리를 믿고 있었다.
내가 그렇듯.
모르겠다.
만신전과의 격돌에서 우리는 분명 승리했다.
거기서 전투가 종료되었다 한들 승리자는 우리였다.
열세의 상황에서 우리는 압도적인 전과를 성취해 내었다.
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승리도, 패배도 아니었다.
결과가 연기된 것도 아니었다.
다시 돌아온 타다토스는 빛으로 이루어진 지옥과 같았다.
내 예상과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내 예상보다 더 끔찍하다는 것뿐이었다.
모든 것이 빛으로 바뀌었다.
타다토스는 빛으로 화해 소멸되고 있었다.
저 멀리, 타다토스의 위성 식민지들을 보았다.
위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며, 타다토스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길가에 굴러다니던 돌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한다.
밖으로 강렬한 빛을 방출해 내더니, 이내 빛을 견디지 못하기라도 한 듯 폭발해 버렸다.
침대에 누워 자고 있던 사람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다.
폭발한다.
칙칙한 콘크리트 벽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폭발한다.
모든 것이 발광하고, 또 폭발하고 있었다.
저건 시작일 것이다.
다시 타다토스로 시선을 돌렸다.
지면에서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흙바닥에서, 심지어 강과 호수, 바다의 아래에서도 강한 빛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이 타다토스 행성이 빛나고 있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행성도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별의 죽음.
생명체를 말살시키기 위해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이런 식인가.
이렇게 세상을 멸망시킬 생각인 걸까.
만신전 신들 일부는 도망친 것으로 보인다.
내가 내면세계로 피하기 전엔 없었던, 차원의 균열이 생성되어 있었다.
세상 만물을 자폭하는 폭탄으로 만든 빛의 신의 능력은 분명 대단했지만, 신들을 향해서는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상대방의 신성을 무시할 수 없음으로.
모든 게 폭발하는 세상 속에서 신들 또한 피해를 입겠지만, 최소한 그들 스스로가 폭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빛의 신의 공격은 처음부터 만신전 신들이 아닌 타다토스의 행성과 생존자들을 향한 공격이었다는 뜻이다.
[내 말대로이지 않느냐.]희망의 신의 추측 그대로였다.
만신전 신들이 패배해 도망쳤다.
아마 그들의 성지로 흩어졌을 것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백신전 신들은 만신전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스템의 제약을 피해 온 우주를 누빌 수 있게 되었다.
우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신전의 세력을 공격한다는 핑계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의 신이 말했던 대로 빛의 신이, 그리고 희생의 신이 이곳에 나타났던 이유는 만신전 신들을 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뿔뿔이 흩어 놓기 위함이었다.
저 멀리 우주를 바라보았다.
빛의 신이 있는 곳은 강한 폭발에 의한 빛에 휩싸여 있었다.
이 타다토스도 만만치 않았지만, 저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시밤, 쾅!] [시밤, 쾅!]빛의 신은 시밤쾅을 난사하고 있었다.
폭염이 둥근 형태를 유지하며 사방을 향해 퍼져 나간다.
저 기술은 동그랗게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다.
힘의 마찰을 이용하고 있기에, 균등한 원형보다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분사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빛의 신은 거의 완벽한 원형에 근접한 시밤쾅을 선보이고 있었다.
한두 번 연습하고 연구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나만큼 완벽하진 않았지만.
[시밤, 쾅!]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빛의 신은 같은 기술을 반복해 보여주고 있었다.
나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분명했다.
나 외의 저 모습을 볼 수 있는 존재는 없었으니까.
만신전 신들은 도망쳤고, 타다토스의 인간들은 모두 재가 되었거나 생체 폭탄이 되어 가는 중이다.
[시밤, 쾅!]멀리 우주 공간에서 피어나는 불의 꽃처럼 보였다.
둥글고 화려한 붉은 국화처럼.
예술적이었다.
저 형태를 자아내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고민을 알고 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지 마라. 도망쳐라.]희망의 신이 속삭였다.
[제발.]그 간절함을 무시했다.
세레지아를 손에 쥐고, 빛의 신을 향해 날아갔다.
타다토스의 위성 행성엔 아직 생존자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도 생체 폭탄으로 변해 가고 있었지만, 살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나에게는 방법이 없었지만, 빛의 신에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빛의 신을 향해 날아갔다.
두 개의 눈동자를 마주하기 전까지.
“안녕?”
나는 분명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서로의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이서 나타난 얼굴에 기겁해 몸을 뒤로 빼려 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커다란 둥근 두 눈과 그와 같은 눈동자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어린아이가 도화지에 검은 크레파스로 칠한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이질적인 눈동자였다.
“히힝, 놀랐나 보네.”
눈동자는 천천히 멀어졌다.
그제야 눈동자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키리키리.
“오랜만이양. 내가 연락 안 했다고 삐진 건 아니징?”
*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동하고 있던 속도를 생각하면, 아무런 반작용 없이 정지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앞에 아무런 전조 없이 키리키리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네 시간을 멈춰 두었던 것 때문에 내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니깡.”
그게 더 이상했다.
내 시간에 관여했다고?
불가능했다.
키리키리의 능력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신이었다.
확정된 사실이었다.
어떤 신이 다른 신의 영역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천공의 신의 영역에서 찾아갔던 현자의 신당에, 시간 유폐에 걸려 멈춰 있던 경비병들.
그들은 현자의 수하였고, 당연히 현자의 신력을 품고 있었다.
신력을 무시하는 신력.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설은 하나뿐이었다.
‘느림의 신.’
키리키리는 내 생각을 읽고는 대답했다.
“맞앙. 내가 조금씩 얻어 쓰고 있지.”
키리키리는 산뜻하게 말했다.
그러고선 자신의 손에 쥔 돌을 보여 주었다.
“히힝.”
묘하게 낯이 익었지만, 돌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키리키리는 나와 내가 이동하던 방향을 번갈아 보고는 내게 말했다.
“빛의 신과 대면하는 건 별로 좋지 않아. 전에도 말했지만, 빛의 신은 최대한 연관되지 않는 신이야.”
글쎄.
이제 빛의 신보다는 키리키리 그녀가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빛의 신은 아주 신나서 연신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접근한 것이, 폭발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신없이 터지는 폭발에서 빛의 신의 흥분이 느껴졌다.
하지만 빛의 신은 키리키리의 존재는 신경 쓰지 않았다.
폭발과 빛의 신을 향한 내 시야를 가로막고 있음에도.
키리키리의 등장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이대로 한동안 기다려 줬으면 해. 이 이상 방해하면 나도 곤란해.”
키리키리는 정말 미안한 부탁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뜸 상대의 움직임을 완벽히 제압해 두고 하는 부탁치고는 공손했다.
몸이 완벽히 제압되어, 생각을 통해 내 의사를 전달해야 했다.
내 생각을 남이 읽을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불편했지만, 때때로 편리하기도 했다.
“맞아, 멸망시킬 거야. 모두. 질서의 신을 막기 위해서.”
키리키리는 내 물음에 담담히 대답했다.
그 담담함에 오히려 질려 버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아니야.’
나는 부정했다.
내가 그녀의 입장이라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했을까.
아니었다.
“천공의 신과 같은 말을 하네. 천공의 신은 어느 쪽도 택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지. 하지만 나는 선택을 미루고 세상과 공멸할 생각은 없어.”
늘 그랬다.
모험의 신은 항상 과정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모험의 신이, 과정이 충분했다면 결과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신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들이 신성에 얼마나 강박적으로 메여 있는지를 생각하면 ‘중요시’라는 단어가 얼마나 애매한지 알 수 있었다.
과정은 어디까지나 선호의 문제였다.
돌이켜 보아도 모험의 신은 항상 내가 괴로운 선택을 내릴 때마다 그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했다.
키리키리는 정말 세상을 멸망시킬 작정이었다.
‘세상이 멸망하는 것보단 차라리 질서의 신이 초월 신이 되는 편이 낫겠는데.’
멸망한 세상과 질서의 신의 성역화된 세상.
어느 편이 나은지는 자명했다.
후자의 경우 생존할 수는 있었다.
“착각이야. 초월 신이 존재하는 세상은, 어떤 신의 율법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이 아니야. 초월 신의 의지만이 남은 세상이지.”
키리키리가 말했다.
“양쪽 모두 멸망이 예정되어 있어.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멸망시키는 걸 택한 것뿐이야. 최소한 세상을 재건할 수라도 있도록.”
키리키리는 자신의 작은 몸을 움츠리며,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