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4
x 4
튜토리얼 1층, 대기실 (1)
[왼쪽 어깨, 심장, 미간에 한 방씩. 반 박자 쉬고 오른쪽 발목. 간단하지?] [못 피하면 어떻게 되냐고? 음… 괜찮아. 원래 처음엔 다 그래.]* * *
멍한 눈으로 TV 채널을 돌렸다.
예능은 재미없었고.
드라마는 뻔했다.
음악 프로는 말할 것도 없이 쓰레기 같았다.
자극이 필요했다.
일상은 따분하고 멍청했다.
벌써 2년째 이런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2년 전, 프로 게이머 생활을 때려치우고, 그간 모은 돈으로 편의점을 차렸다.
처음엔 손 가는 곳이 많아 바빴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후엔 알바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집에 틀어박혔다.
알바가 돈을 좀 삥땅치든, 말든 뭔 상관인가.
사는 게 재미없다.
역시 프로 게이머를 관두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게임에 있어선 최고였다.
이견의 여지가 있겠지만, 내가 한참 활약하던 전성기엔 분명 최고라고 불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정상의 자리에서 밀려났고, 그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 은퇴를 결정했다.
패자로 남을 바엔, 나는 게임을 아예 그만두는 걸 택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남달랐다.
숨바꼭질부터 동네 축구까지 일단 시작하면 반드시 이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방구 앞 오락기에서 대전 게임을 처음 접했다.
그날, 초등학교 6학년 형에게 처참하게 패배하고 얼마나 분했던가.
그때부터 게임에 빠져들었다.
2년 전, 은퇴하기 전까지, 게임은 내 인생이었다.
차라리 퇴물 소리를 듣는 걸 감수하고 게임을 계속했다면?
이렇게 삶이 끔찍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견딜 수 없을 만큼 지루하고 무료하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됐는데.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들었다. 술잔은 비어 있었다.
“시발, 시발.” 중얼거리면서 검은 봉지를 뒤져 소주병을 찾았다.
아, 벌써 다 마신 건가.
그때, TV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분 전, 전 세계 곳곳에 이와 같은 싱크홀 현상이 동시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싱크홀의 발생 원인을 빠르게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전문가들은, 되도록이면 싱크홀 주변에 다가가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상 NBS 뉴스 속보…….]이상한 내용의 뉴스 속보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저 뉴스 속보의 내용보다 더 이상한 현상을 보고 있었다.
눈앞에 글자가 떠오른 것이다.
튜토리얼? 게임 시작할 때, 조작법을 알려 주는 그 튜토리얼을 말하는 걸까?
술을 너무 마셔서 헛것이 보이는 건가. 아니면 내가 그냥 미쳐 버린 걸까
[튜토리얼 세계에 입장하시겠습니까?]이것이 ‘내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삶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나에게 새로운 삶을 준다면 난 환영이다.
소설과 만화 속에서나 벌어질 일이지만, 지금 눈앞에 그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새로운 세계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주인공이 되어서?
“…예.”
갈라진 목구멍 사이로 대답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대답하면 되는 걸까?
대답을 하자, 메시지가 바뀌었다.
[원하시는 난이도를 선택해 주세요. 난이도에 따라, 튜토리얼 스테이지의 위험도가 증가하고, 이와 비례하게 보상과 성장 속도가 증가합니다.]선택지는 네 개였다.
이지, 노멀, 하드, 헬.
영어 단어로 구분된 네 개의 난이도.
고민할 필요 없이 난 결정했다.
나, 이호재.
태어나 못 깨 본 게임이 없고, 못한다는 소리 한 번 들은 적 없다.
구기 스포츠라면 뭐든 수준급 이상 해낼 자신이 있었고.
게임에서만큼은 난 재능이 넘쳤다. 이른바 재능충이었다.
그렇게 난이도 헬을 선택했다.
그러곤 정신을 잃었다.
* * *
누군가 우악스러운 손길로 나를 깨웠다.
“이보게, 정신이 좀 드는가? 이제 잘 만큼 잤으니 좀 일어나 보게.”
눈앞에서는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날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드나? 괜찮은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나를 깨운 남자를 포함한 세 명.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시발… 누구, 누구야!”
그렇게 소리치며 뒷걸음쳤다.
내 방이 아니었다.
대리석 타일처럼 반듯하게 다듬어진 석재로 만든 바닥과 벽.
아무런 가구도 없는 삭막한 실내 공간이었다.
“어디야… 여긴 어디야?”
눈 떠보니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들만 보인다.
“여긴 1층 대기실이라네.”
“1층 대기실? 그게 무슨…….”
“이보게, 좀 진정해 봐. 대화를 좀 하자고. 자네는 그 메시지들을 보지 못한 건가?”
날 흔들어 깨웠던 남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은 험상궂은 곰 같은데, 목소리는 발라드 가수 같다.
“메시지?”
“왜, 그 튜토리얼 어쩌고 하는 메시지들 말일세.”
그제야 내가 정신을 잃기 전 기억이 떠올랐다.
이게 그건가. 차원 이동 같은 건가. 혹시 게임 세계로 들어온 건가.
머릿속에 온갖 물음들이 가득 찬다.
“봤습니다. 술에 취했던 상황이라 경황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 메시지들을 보고 이곳에 오게 된 겁니까?”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깔끔하게 나왔다. 정신을 잃기 전엔 만취해 있었는데.
“그렇다네.”
남자는 순순히 그렇다 대답했고, 뒤편에 있던 여자와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이 상황에 대해 자네가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 궁금해서 깨워 봤네. 아마 자네도 우리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온 것 같네만. 어쨌든 여기는 우리뿐이니 함께 도와야 하지 않겠나.”
음…….
나쁘지 않다. 혼자인 것보단, 동료가 있는 편이 좋다.
물론 저들을 믿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혹시 단서가 될 만한 일 없었나?”
“그러고 보니 그 메시지들이 떠오르기 직전에 뉴스 속보가 있었습니다.”
내 말에 일행의 이목이 집중됐다.
나와 대화하던 남자뿐만 아니라 뒤에 떨어져 있던 두 사람도 앞으로 다가왔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싱크홀이 발생했다는군요.”
“뭐야, 그게. 싱크홀이 생겨서 우리가 이런 곳에 오게 됐다는 거냐!?”
뒤에 있던 못생긴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왠지 조폭 같다.
“이런, 씨발. 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새끼야?”
음, 정말 조폭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도 이 상황이 불안한 건지, 민감하게 반응했다.
“저는 그냥 기억나는 걸 말씀드린 겁니다.”
다행히 저 조폭도 그 이상 따지고 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무뇌는 아니구나.
머리를 조금 흔들어 보았다. 뭔가 좀…….
“왜 그러나?”
“아뇨… 음, 제가 정신을 잃기 전엔 만취 상태였는데, 너무 말짱한 것 같아서요.”
“아, 그거 때문인 모양이군. 이 장소에선 저절로 몸이 회복된다고 하네. 그 영향인 듯싶군그래.”
“예? 저절로 회복된다고요?”
“그렇다네. 자네가 일어나기 전, 그런 내용의 메시지가 나타났었네.”
메시지.
뭔가 중요한 걸 놓친 모양이다.
“죄송하지만 그 메시지의 내용을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알았네.”
“우선 가장 먼저 나타났던 메시지부터 알려 주겠네.”
“감사합니다.”
곰같이 생긴 양반이 생각보다 친절했다. 몇 살일까?
남자가 가장 먼저 알려 준 것은 시작 무기에 대한 것이었다. 남자의 말을 듣자마자 내 시야 한편에서 시작 무기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발견했다.
메시지에 집중하자 곧 시야가 검게 변했다.
다음 순간, 나는 수많은 무기가 늘여져 있는 장소에 있었다. 아까 그 석실이 아니다. 사람들도 사라졌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인지…….
마음을 가라앉히자.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 없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엔 정말 다양한 종류의 무기들이 있었다.
창, 검, 활, 철퇴, 저건… 음,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는 기괴한 무기도 있었다.
아니, 저기, 저건 무기 맞나? 그냥 장도리 같은데?
활은 활통과 화살 한 묶음과 함께 놓여 있었다. 세트로 주어지는 모양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으레 맞이하는 선택의 시간이다.
이 선택이 어쩌면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큰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일. 신중해야 한다.
음… 고민되는 순간이다.
자, 뭘 골라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