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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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60층 (5)
평소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인큐베이터의 유리창을 닦았다.
유리창을 꼭 깨끗이 청소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선명하게 유리창 너머의 알을 지켜보고 싶었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편지의 내용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인큐베이터 청소에 집중하니 기분이 한결 산뜻해졌다.
킹사이즈 침대보다도 큰 크기의 원형 인큐베이터의 중앙에는 드래곤의 알이 놓여 있었다.
얼마 전, 경매를 통해 입수한 드래곤의 알.
아직 부화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하고, 몇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매일, 온종일 저 알이 혹시나 움직이지는 않는지, 이상은 없는지, 지켜보고 있다.
저 드래곤 알의 이전 소유주는 알을 부화시킬 방법을 몰라 알을 경매에 내놓았지만, 나는 다르다.
부화를 위한 방법을 모르고 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이지 난이도의 도전자들에게 포인트를 걸고 관리자들에게 질문을 의뢰했다.
핫!
포인트가 많으면 못 할 것이 없지.
포인트 만만세다.
알에서 드래곤이 깨어난 이후를 위한 아이템들도 완벽히 준비해 뒀다.
우선 알을 깨고 나오는 즉시, 엘릭서로 목욕을 시킬 거다.
각종 내성 스킬을 부여할 거고, 영구적인 축복을 걸어 건강에 이상이 없도록 할 것이다.
식수도 희석한 엘릭서로, 이유식은 정령의 부산물과 그레이트 어스웜을 함께 갈아서 만들 것이다.
이유식 제작을 위한 거대 믹서기도 준비해 뒀다.
조금 큰 이후에 먹이기 위한 페어리 유충은 구하기 어려웠다.
워낙 희귀한 종족이다 보니.
급한 대로 거주 지역 구석에 축사를 만들어, 열심히 유충의 수를 늘리고 있다.
거대한 초호화 우리도, 정서 발달을 위한 장난감도 준비했다.
혹시, 새끼 드래곤이 나를 어미로 따르지 않을 가능성 때문에 폴리모프 마법도 배워 두었다.
여차하면 드래곤의 형상으로 폴리모프한 상태로 새끼를 돌볼 것이다.
그럼에도 새끼 드래곤이 내가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어색함을 느낄까 봐 열화판 드래곤 하트를 만들어 몸 안에 이식해 두었다.
드래곤 형상에서 편하게 움직이기 위한 연습도 이미 완벽히 해 두었다.
다행히 나는 파충류, 혹은 유사 파충류 인종에 대해 제법 익숙한 편이다.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과 그녀에게 얻은 지식들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준비는 완벽하다.
이제 저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흠흠.
너무 완벽하게 흘러가는 현실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이대로 마음 푹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좋게 풀릴 것만 같다.
더 이상,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물론 세상이 그리 만만하게 돌아갈 리는 없다.
이 헬 난이도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의도적으로 더 밝게, 행복하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큐베이터 청소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자니, 메시지 알람음이 울렸다.
익숙한 이름이다.
[이호재, 60층 : 왜?] [김민혁, 99층 : 왜긴 왜겠냐. 나가기 전에 연락한 거지. 좀 있으면 회 차 시작하잖아.]나는 이 녀석이 평생 노멀 난이도 30층에 짱박혀서 살 줄 알았다.
30층의 터줏대감 NPC를 넘어 무슨 장승같은 존재가 되려나 싶었는데, 결국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조금 심란한 상황이긴 하겠네.
평생을 이 튜토리얼 안에서 살겠다고 다짐한 녀석이었는데, 밖으로 나가게 생겼으니.
[김민혁, 99층 : 아니 뭐. 좀 심란하긴 한데. 불안한 정도는 아니고. 어차피 나는 밖에 나가서는 조용하고 얌전히 살 거다.]퍽이나 그러겠다.
물론, 김민혁 저놈은 빌런이나 괴수 잡겠다고 뛰어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뉴스에 나오겠지.
정치인들이랑.
전 세계에서 최고의 각성자 육성국으로 꼽히는 한국, 그 튜토리얼 한국 서버를 초창기부터 주도했던 놈이다.
심지어 최근 다른 선진국들이 한국 각성자들의 강세를 튜토리얼 내의 분위기나 규율 시스템 등에서 찾고 있는 추세다.
인맥도 짱짱하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이 많을 것이다.
한국에 남는다면 국가유공자 대접에, 거액의 계약금과 각종 특혜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을 것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정치권의 돌풍이 될지도 모른다.
최근 유명한 각성자들이 정치권에 조금씩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런데 그런 놈이 밖에 나가서 조용히 살겠다니, 주변에서 잘도 가만 내버려두겠다.
[이호재, 60층 : 좀 아쉽네. 대화합의 날이라도 있었으면 얼굴 보고 나갈 수 있었는데.] [김민혁, 99층 : 됐다. 좋은 일로 열리는 것도 아닌데. 대화합의 날은 차라리 안 열리는 게 속 편해.] [이호재, 60층 : 그러냐? 난 처음 이후에는 제법 괜찮았는데.] [김민혁, 99층 : 그건 네가 일을 안 했으니까 그렇지, 인마. 너 놀 때, 우리가 다 조뺑이쳐서 해결한 거야.] [이호재, 60층 : 아닌데. 나도 일 했는데.] [김민혁, 99층 : 구석에서 내성 올리겠다면서 자해하고 있었던 걸 일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 뭐… 하긴 그때 너는 뒷짐 지고 하품만 하고 있어도 도움이 됐으니까.]…이야기를 계속해 봐야, 이길 수 없는 주제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자.
[이호재, 60층 : 그래도 아쉽네. 조만간 열릴 것 같다는 정보가 있긴 했는데] [김민혁, 99층 : 정말? 언제?] [이호재, 60층 : 모르냐?] [김민혁, 99층 : 모르지 인마. 나 자경단 일도 손 뗀지 좀 됐다.]하긴 이 녀석은 지금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 같은 포지션이니까.
일거리와 관련된 정보는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김민혁, 99층 : 정아는 알고 있냐?] [이호재, 60층 : 아마.] [김민혁, 99층 : 그럼 안 열리겠지, 뭐. 늘 그렇듯이]대화합의 날은 평화로운 그 이름과 달리, 튜토리얼 내에 심각한 문젯거리가 있을 때만 개최된다.
따라서 대화합의 날이 열릴 예정이라는 정보는 튜토리얼 내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알람이 된다.
대화합의 날에 관련된 정보가 풀리면, 그 즉시 자경단이 움직인다.
그리고 문제는 해결된다.
문제가 해결되면 대화합의 날은 개최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화합의 날을 위해 문제를 방치할 수도 없고.
아니 실제로 그러는 게 어떠냐는 의견은 수없이 많았다.
튜토리얼 내에 흩어진 친구,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고 싶은 플레이어들을 중심으로.
하지만 자경단은 아니 박정아는 타협하지 않는다.
대화합의 날이 열리는 날은 박정아가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현실로 나간 이후에나 올 것이다.
[김민혁, 99층 : 야, 말 나온 김에 하는 얘긴데. 정아랑은 여전하냐?]느닷없이 여전하냐니.
[이호재, 60층 : 어.]당연히 여전하다.
[김민혁, 99층 :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다시 합칠 때도 되지 않았냐.]음…
생각할 시간이 있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뭐.
화해한다고 뭐가 바뀌는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여기에 갇혀 있는 이상.
[김민혁, 99층 : 나 나가고 나면, 정아하고 편하게 얘기할 사람이 너밖에 더 있냐? 가뜩이나 힘들 텐데 니가 협조 좀 해라.] [이호재, 60층 : 별소리를 다 하네. 니가 중매 할멈이냐? 아니 그보다 네가 지금 다른 사람 오작교 놔 줄 처지냐?] [김민혁, 99층 : 이 자식은 사람이 도와주려고 해도 곱게 받아들이질 못해요. 쯧. 그래도 한번 다시 생각해 봐라. 정아는 생각 있는 모양이던데.]정아가?
이거 기분이 쎄한데.
이 녀석 이거 나한테 연락하기 전에 박정아한테도 똑같은 말을 했을 것 같다.
이름만 바꿔서.
[김민혁, 99층 : 아니야, 인마.]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또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박정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에게서 답장은 없었다.
대신 김민혁이 답을 했다.
[김민혁, 99층 : 야! 너는 그걸 바로 가져다가 꼰지르냐? 정아한테서 쌍욕 날아왔다.] [이호재, 60층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민혁, 99층 : 뭐가 ㅋㅋㅋㅋㅋㅋㅋ냐. 이 개념 없는 놈아. 약 먹을 시간 지났냐?] [이호재, 60층 : 나는 내성이 너무 높아서 약 같은거 못먹는닼ㅋㅋㅋㅋ.] [김민혁, 99층 : 이 자식을 어떻게든 해야 되는데.] [이호재, 60층 : 나중에 정아랑 얘기는 해 볼게. 혹시 대화합의 날이 취소 안 되면 얼굴 보고 얘기하지 뭐.]안 한다는 얘기다.
[김민혁, 99층 : 진짜로 만약에 대화합의 날이 열리면, 그 뉴비도 볼 수 있겠네. 기대하는 애들 많더라.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헬 난이도를 뚫고 올라가나.] [이호재, 60층 : 그 정도까지 올라갔던 애들은 몇 명 있었어. 이제 고작 6층이야. 혹시라도 애 바람 넣을 생각 마라.] [김민혁, 99층 : 당연하지. 그래도 제법 하는 애 아니냐. 이번에는.] [이호재, 60층 : 그렇긴 하지. 나 정도는 아니지만.] [김민혁, 99층 : 네 경우가 특이했던 거야. 6층까지 10회 차 만에 도착했으면 충분히 빠른 거지. 너는 6층까지 얼마 만에 갔더라?] [이호재, 60층 : 3회 차던가?] [김민혁, 99층 : 새삼스럽지만 괴물이다 진짜… 너랑은 비교하기 어렵지만, 그 뉴비도 충분히 재능 있는 수준이야. 너무 마음 졸이고 불안해하지 마라.] [이호재, 60층 : 그렇긴 한데. 6층에서 얼마나 걸릴지 몰라서. 하필 또 궁수라.] [김민혁, 99층 : 통과는 할 수 있을 것 같냐?] [이호재, 60층 : 아마. 혹시 영영 통과 못 할 것 같으면 그냥 아이템 보내 줘서 뚫게 할 생각이야.]사실 이연희에게서 어느 이상의 싹수를 볼 수 없었다면, 1층에서부터 장비빨로 올라오게 했을 것이다.
못해도 10층까지는 그렇게 올라올 수 있을 테니까.
천운이 함께 하면 30층까지는 갈 수도 있고.
미국 애들처럼.
[김민혁, 99층 : 그래. 뭐 그쪽은 네가 알아서 하겠지.] [김민혁, 99층 : 아 이거 물어본다는 걸 까먹었네.] [김민혁, 99층 : 너 얼마나 세냐?]엉?
[김민혁, 99층 : 나 나가면 너에 대해서 물어 볼 사람이 많을 거 아니냐. 그럴 때마다 대충 대답을 들려줘야 한단 말이지. 그런 의미로 너 지금 어느 정도로 세냐?] [이호재, 60층 : 글쎄. 비교 대상을 뭘로 잡아야 되냐.] [김민혁, 99층 : G급 괴수 어떠냐. 우리 둘 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현실에서는 몬스터의 강함과 위험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평가한다.
초기에는 A에서 F등급만으로 이루어져 있던 등급표에 어느 순간 S급이 추가되었고
또, 얼마가 지나자 G급이 등장하였다.
이제 G급 이상의 괴수가 등장하면, 그건 또 어떻게 부를지 궁금하다.
아무튼 G급 괴수는 일반적인 위험 생물체 수준을 넘어 국가적인 재난 수준의 위험으로 취급된다.
지구에는 단 4마리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4마리 모두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간들은 차라리 그 지역을 포기하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오클레라 라는 이름의 G급 괴수는 자신의 영역을 뉴욕 맨해튼 근해에 두었었다.
미국은 그 지역을 포기할 수 없었고, 전 세계의 최상위 각성자들과 해군, 공군력을 총동원해 오클레라를 처치했다.
그때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상위 각성자 S급과 A급 각성자의 절반이 사망하였다.
오클레라의 정확한 힘에 대해선 잘 모른다.
김민혁이 말했듯이 우리는 그런 괴수를 본 적이 없고, 단지 튜토리얼에 새로 들어온 뉴비들에게 전해 들을 뿐이니까.
뉴비들의 이야기, 그리고 노멀신문의 분석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아니 뭐 굳이 고민할 필요 없다.
[이호재, 60층 : 걔네랑 비교해도 존나 세겠지 뭐.] [김민혁, 99층 :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성의 없는 대답 감사하고요.]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예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힘들었을 때, 좋았을 때.
단편적인 기억이고 추억이었다.
나는 언제나 헬 난이도에 혼자 있었으니까.
김민혁과 만났던 건, 대화합의 날에서 몇 번뿐.
그 외에는 그냥 커뮤니티를 통해 소통한 기억뿐이다.
하지만 김민혁과의 유대는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내게 몇 없는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밖으로 나가도 만나지 못하는 건 똑같은데.
굳이 따지자면 끊어지는 것은, 커뮤니티를 통한 소통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완전한 이별처럼 느껴졌다.
[김민혁, 99층 : 먼저 갈게. 밖에서 보자.]…그래야겠지.
[이호재, 60층 : 그래. 밖에 있는 애들한테 내 안부 전해 주고.]그래. 나가자. 나가야지.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던 걸까?
탁자에 어지러이 늘어져 있는 종이들 사이에서 이연희에게 보낼 편지지를 찾아냈다.
빼곡히 글씨가 적혀 있는 편지의 마지막 줄.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백 줄에 문장을 채워 넣었다.
키리키리에게 자라의 안부를 전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