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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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60층 (6)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오늘은 유난히 펜을 놀릴 때마다 사각사각 나는 종이 소리가 경쾌하다.
평소와는 달리 이연희에게 보내기 위한 편지가 아닌, 책을 쓰고 있다.
곧 알에서 깨어날 헤츨링을 위한 마법서다.
얼마 전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바로 드래곤들을 위한 마법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마법의 종족이라고도 불리는 드래곤에게 마법서가 없다니.
드래곤용 마법서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상당히 황당했다.
드래곤은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레 마법을 깨닫고 익혀 나가기 때문에, 교육을 위한 마법서가 필요 없고 시간의 흐름에 의해 기억을 망각하지 않기에 기록을 위한 마법서 또한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는 한참 동안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재수 없는 종족이 다 있나.
아, 이런.
쏘리.
너한테 한 말은 아니야 용용아.
인큐베이터 속 알에게 마음속으로 사과를 전하고 시선을 다시 책 위로 돌렸다.
비록 드래곤이 아무런 교육이나 전승 없이도 마법을 깨친다고 해도 교육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가르친다면 드래곤은 마법을 더욱더 빨리 익히겠지.
61층 공략을 위해 헤츨링이 가장 우선적으로 익혀야 하는 마법은 폴리모프다.
상당한 고위급 마법이니만큼, 한가하게 헤츨링이 스스로 마법을 터득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다.
그 때문에 새로운 마법서를 집필하고 있다.
인족이나 마족들의 마법서를 기초로 드래곤은 굳이 몰라도 되는 쓸모없는 내용들을 쳐내고 언령과 내심 마력의 운용법, 그리고 그 활용에 대한 내용을 채워 넣었다.
마법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초적인 내용을 빠르게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펜을 놀리고 있는데 눈앞에 메시지가 펼쳐졌다.
[박정아, 90층 : 보고.] [이호재, 60층 : 헬 난이도 60층 거주 지역 이상 무. 매달 이러는 거 지겹지도 않냐?] [박정아, 90층 : 매달 나한테 잔소리 듣는 게 더 지겹지 않아? 메시지가 사시사철 시간을 알려 주는데, 매번 지각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말이 의문문으로 끝났다.
잘못 건드렸다.
최근 박정아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정보를 잠시 잊고 있었다.
이럴 때는 맞상대를 하면 안 된다.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피 본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필패할 싸움을 하기보다는 판을 엎어 보자.
[이호재, 60층 : 후우. 미안하다. 내가 요즘은 의도적으로 시간 가는 걸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서. 시간 메시지도 최대한 안 보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미처 시간 확인을 못 했네.] [이호재, 60층 : 미안해. 내가 요즘 좀 이상하네. 나 아무래도 여기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나 봐. 정신병이 또 도지려나. 이제 약효도 안 듣는데.] [박정아, 90층 : 아… 음, 미안.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 내가 너무 무심했어.]하, 어떠냐.
오늘의 이 대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고 또 참아 왔는데.
박정아는 그동안 매번 지각한다고 나에게 면박을 주었던 기억 때문에 한층 더 미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
크… 미쳤다.
나는 왜 이렇게 잘난 걸까.
위기의 순간을 멋지게 기회로 바꾸었다.
앞으로 귀찮은 일이 하나 줄었네.
이참에 귀찮은 일 하나를 더 줄여 보자.
[이호재, 60층 : 미안한데 95회 차 시작할 때, 이연희가 스테이지 들어가기 전에 배웅 좀 해 줄래?] [박정아, 90층 : 어. 해 줄 수는 있는데. 왜? 직접 하는 게 낫지 않아?] [이호재, 60층 : 나는 61층에 좀 올라가 보려고.] [박정아, 90층 : 61층은 왜?] [이호재, 60층 : 이번에 포인트를 너무 많이 써서 포인트 좀 벌어야 해서.] [박정아, 90층 : 알았어. 그럴게.] [이호재, 60층 : 관리자에게 전해야 하는 말 잊지 말라고 하고.]귀찮은 일이 또 줄었다.
홀가분하네.
앞으로도 계속 이연희의 배웅은 박정아에게 부탁할까?
[박정아, 90층 : 어지간하면 네가 해. 뉴비는 아직 6층이지?]쩝.
이연희의 성장은 이제 안정권에 들어섰다.
걱정하고 있던 6층에서도 제법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그대로 6층에 주저앉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자신만의 방법으로 차근차근 공략을 진행하고 있다.
6층이니만큼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6층을 통과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박정아, 90층 : 걔도 굉장하네. 네가 보기엔 어느 정도야?] [이호재, 60층 :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재능 있는 수준이지. 나 정도는 아니지만. 캐스터로서의 재능은 최상이고, 마력도 잘 다루고]이연희는 저층에서 궁수가 가지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시동 마법들을 익히고자 했다.
나도 그 의견에 찬성했다.
궁수와 캐스터의 조합의 효용성과 강력함은 이미 증명이 끝난 상황이다.
시동 마법의 습득 방법은 이미 오랜 시간 연구가 진행되어 있었기에, 이연희 스스로 커뮤니티나 경매창을 통해 포인트를 대가로 습득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습득이 매우 까다로운 마법들은 내가 마법서를 보내 주어 익히게 했다.
물론 시동 마법의 습득 방법을 알고 마법서를 읽는다고 해도, 아무나 익히고 모두가 능숙히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력에 대한 재능이 없으면 애초에 쓸 생각도 안 하는 것이 낫다.
전통 마법에 비해선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시동 마법은 말 그대로 캐스팅 위주의 마법이다.
스킬을 획득하고 제때 마력을 공급하며 시동어를 외치기만 하면, 큰 어려움 없이 발동시킬 수 있다.
초창기에는 커뮤니티에서 반쪽짜리 마법이라며 평가절하된 적도 있었지만, 금방 전통 마법을 밀어내고 대세로 자리 잡았다.
비교적 낮은 위력과 변형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쉬운 사용법과 빠른 캐스팅 속도는 그 단점을 완벽히 덮어 버렸다.
이제는 마법사라는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 중, 시동 마법사가 아닌 플레이어를 찾기 힘들 정도다.
스펠러, 혹은 주문술사 등으로 불리는 전통 마법사는 능숙한 사용에 앞서 마법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긴 캐스팅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이지 난이도에서조차 전투에 활용하기 까다롭다는 평을 받는다.
전통 마법은 연구원 기질을 가지고 있는 몇몇 소수의 플레이어들이나 나를 제외하면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이가 없다.
[이호재, 60층 : 근데 요즘 또 얘기가 들리던데. 뭐가 열릴 것 같다고.] [박정아, 90층 : 응… 그런 정보가 있긴 했었어.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더 알아봐야 해.] [이호재, 60층 : 굳이 열릴 거면 대화합의 날이었으면 하는데. 다른 건 너무 번거로워서.] [박정아, 90층 : 혹시 정말로 대화합의 날이면 이번엔 정말 다들 가만 안 둘 거야. 저번 일 뒤로 얼마나 지났다고 또 구멍이 뚫려?] [이호재, 60층 : 너도 좀 적당히 해라. 허구한 날 밑에 있는 애들 갈구기만 하니까 애들이 죽어나잖아. 요즘 너 신경 날카롭다고 자경단 애들이 나한테 징징거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야.] [박정아, 90층 : 누가?]어느새 말이 다시 짧아졌다.
혹여나 불똥이 나한테 튀면 안 되니까 친절하게 그 명단을 박정아에게 알려 주었다.
[박정아, 90층 : 이…….]뒤에 생략된 말은 분명히 욕설일 것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미안하다.
[이호재, 60층 : 애들 족칠 생각만 하지 말고, 애들 좀 풀어 줘라. 이제 김민혁이도 나갔는데, 네가 애들을 잡기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이호재, 60층 : 이제 자경단의 엄마가 밖으로 나가 버렸으니, 네가 엄마 역할도 같이해야 할 거다.] [박정아, 90층 : …난 그런 거 정말 못하겠어.] [이호재, 60층 : 해야지, 이제는. 아니면 그 역할을 맡을 다른 사람을 찾아보든가.]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찾지 못할 것이다.
박정아는 다른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한다.
김민혁이 밖으로 나간 지금,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아니 어쩌면 나 한 명뿐일지도 모른다.
[이호재, 60층 : 그러게 김민혁이가 이혼하려고 했을 때 말렸어야지.] [박정아, 90층 : …그렇게 이혼하고 바로 나가 버릴 줄 누가 알았나 뭐. 그냥 으레 있는 부부 싸움 정도로 생각했으니까.]그건 그래.
맨날 나한테 남녀 사이란 어떻고, 연애가 어떻고, 하던 놈이 이혼을 하고 밖으로 나갈 줄이야.
세상만사 모르는 일이다.
한참 동안 계속되던 필사가 끝났다.
노트들과 필기구를 책상 한편에 치워 놓고, 책상째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마법서의 준비는 거의 다 끝났다.
나머지는 헤츨링의 속성을 보고 나서 마무리하는 게 나을 것이다.
무슨 색이려나.
개인적으로 ‘드래곤’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골드나 레드, 아니면 블랙인데.
전혀 쌩뚱맞은 색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레드 드래곤이었으면 좋겠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멋있잖아.
혼자 실없는 생각을 하며 인큐베이터에 다가가 인사했다.
“집 잘 보고 있어, 용용아. 아빠 돈 벌어 올게.”
한동안 못 올 것이다.
61층 공략은 시간이 제법 걸릴 테니.
어디 보자. 온도, 습도 조절 장치 이상 없고.
소음 공해, 주거 침입에 의한 절도 등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 60층엔 나랑 용용이뿐이니까.
음… 그래도 이상하게 걱정되네.
걱정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걱정 때문에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거 이대로는 못 가겠는데.
씁.
애를 냇가에서 놀게 두고 일하러 가는 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아니 조금 다른가?
어쨌든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허공에 손을 휘저어 바닥에 두 개의 마법진을 그리고, 그중 하나에 올라섰다.
“소환.”
다른 하나의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한데 모여들더니 곧 사람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빛이 사그라지고 마법진의 위에는 나와 똑같이 닮은 사람이 서 있었다.
“뭐냐 본체 놈아.”
이 새끼 이거. 말 싸가지 없게 하는 거 보소.
“집 지켜라, 분신 놈아. 알도 지키고.”
“…여기가 어딘지 알고 하는 말이지? 치매냐? 너 그거냐? 그러면 본체 자리를 나한테 넘기는 건 어때?”
“그럴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거란다, 분신 놈아.”
내 분신이다.
나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싸가지 없고 약해 빠졌지만.
“누가 약해 빠졌다는 거냐, 본체 놈아.”
이렇게 서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멀리서도 그 감정이나 기분까지 알 수 있으니, 혹시라도 알에 무슨 변고가 생기면 바로 달려올 수 있다.
다시 말해 저 분신 놈은 고성능 알람 마법이라고 보면 된다.
“내 정체성을 멋대로 폄하하지 마시지.”
처음에는 61층을 클리어하기 위한 시도로 만들어진 놈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놈으로는 61층을 클리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 별 쓸모가 없어졌다.
이제 집 지키는 데라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개똥도…….
“이 이상 나를 비하하는 생각을 계속한다면 파업을 선언하겠다.”
그건 안 되지.
“그럼 나는 포인트 벌어 오마. 집하고 알, 잘 지키고 있어라.”
“그래. 잘 다녀와라.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싸가지 없는 분신 놈의 배웅을 받으면서, 거주 지역에서 61층 스테이지로 이동할 수 있는 포탈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