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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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61층 (1)
거대한 얼음의 옥좌 위에 누워 뒹굴거렸다.
내가 침실로 쓰고 있는 60층 거주 지역의 여관방보다 두 배는 큰 옥좌 위에서.
딱 들어맞게 앉으려면 엉덩이 크기가 최소 5미터 이상 되어야 하는 이 거대한 구조물을 ‘옥좌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옥좌의 전 주인은 분명 이것이 옥좌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옥좌인 것이겠지.
한 번 정해진 답은 굳이 파고들지 않는 편이 좋다.
정확히 말하자면 61층을 통과하지 못해 60층에 갇혀 지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일종의 버릇이다.
한 번 정한 일은 최대한 돌아보지 않기로.
답을 구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답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내가 예상한 답안지를 적고 제출한 지 오래지만, 그 결과는 도대체 언제 받아 볼 수 있을지, 과연 그 끝이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구해지지 않는 답에 대한 고민과, 불완전한 결정에 대한 후회는 내 정신을 좀먹는다.
시원한 한기가 올라와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하다.
아니, 이건 이 공간의 특성이다.
이 공간에서 죽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깔끔히 개이는 듯하다.
뭐랄까, 마치 키리키리의 동산에 누워 낮잠을 잘 때처럼.
그러고 보니 키리키리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그리고 그녀의 세계에서 낮잠을 잔지도 굉장히 오래되었다.
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황급히 지워 버렸다.
머리와 가슴속에 남아 있는 찌꺼기들을 청소하려고 61층에 온 것인데,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을 쌓이게 놔두면 안 된다.
얼음의 옥좌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메시지가 날아왔다.
[박정아, 90층 : 방금 이연희 배웅했어.]잘했네.
수고했어.
[박정아, 90층 : 그런데 지금 정말 바쁜 거야? 여유가 있는 거면, 배웅은 직접 하는 게 낫지 않을까?]얘는 왜 또 신경이 날카로운 것 같지.
기분 탓인가.
[이호재, 60층 : 바빠 겁나 바빠.] [박정아, 90층 : 하나도 안 바빠 보이는데. 다음부터는 이런 거 나 시키지 마.]왜 또 이래.
뭔가 문제가 있었나?
[박정아, 90층 : 아니 그게 아니라. 이연희가 날 조금 싫어하는 거 같아서.]…뭘 또 뜬금없는 소리를.
그러면 이 튜토리얼 안에 널 반기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또 있을 줄 알았냐?
[박정아, 90층 : 헛소리하지 말고. 진짜로.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올바른 대답을 위한 여정의 종착역까지 너무 많은 수의 함정들이 펼쳐져 있다.
어떻게 대답해도 독이 되어 돌아올 것 같은 이 기분.
철혈의 마녀, 혹은 사람을 조지고 싶어서 정의의 탈을 쓰고 있는 소시오패스라는 평을 듣는 양반이 개인 메시지를 보내니까 이연희가 쫄아서 그러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박정아는 그런 대외적인 악평을 싫어하지 않는다.
자경단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 점을 들어 이유를 추측한 것은 좋은 판단이었다.
박정아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그럴싸한 추측이었으니까.
[박정아, 90층 : 그런가? 아무튼 앞으로는 이런 일 시키지 마. 누구한테 친절하게 말하는 거 못하겠어. 두드러기 나는 기분이야]친절하게 말했다고?
이연희가 날카롭게 반응한 이유가 그거일지도 몰라.
사람이 갑자기 안 보이던 태도를 내비치면, 다른 사람은 그걸 공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거든.
심리학 서적에서 읽었어.
60회 차쯤, 전직 정신과 의사였던 플레이어가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간 이후, 이 튜토리얼 내에서 심리학과 신경 정신학의 최고 권위자는 다름 아닌 이 몸이다.
튜토리얼 내에서 가장 심각한 정신질환 환자를 매일 진단하고 있거든.
물론 내 생각을 메시지로 보내지는 않았다.
[박정아, 90층 : 그리고 전에 말했던 거 기억하지? 뭔가가 열릴 것 같다고. 조금 있으면 그 정보가 들어오니까 메시지 무시하지 말고 대기해.]예이.
61층 공략을 계속해야 하지만. 뭐, 여유가 있으니까.
‘뭔가 열린다’라.
음… 이참에 그걸 실험해 봐야겠다.
내 분신을 다른 난이도로 보낼 수 있는지를.
내 분신은 플레이어가 아닌 소환수 판정을 받는다.
그렇다면 소환수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다른 난이도에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경단에…….
아니, 자경단이 아니라 분신을 밖으로 보낼 수도 있겠다.
젠장, 이걸 왜 지금에야 생각한 거지.
분신을 밖으로 내보낸 뒤에 분신과 나의 영혼을 바꾸는 것이다.
완벽한데?
[완벽하긴 개뿔. 나는 일반적인 소환수가 아니다. 본체 놈아]듣고 있었냐?
[당연한 소리를. 게다가 다른 난이도는 이곳과 완전히 다른 세계다. 너와의 링크가 끊기면 나는 더 이상 생을 유지하지 못한다. 멍청한 본체 놈아.] [너도 아는 내용이지 않은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 나는 멍청한 실험 정신 때문에 죽고 싶지 않다.]씁.
참으로 쓸모없는 녀석이다.
[뭐?]저놈을 만들 때는 61층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건만.
정작 저 녀석을 만들고 나선 정말 아무 데도 쓸 데가 없다.
영혼을 쪼개려던 시도 끝에 얻게 된 정신분열증만이 남았다.
쯧.
[그게 내 탓이냐, 본체 놈아? 피임의 실패로 태어난 막내아들이 된 기분이다.]분신 놈의 그럴싸한 비유에 혼자 낄낄 웃었다.
마음이 좀 평안해지니 저런 농담에도 편하게 웃을 수 있다.
진작 61층에 올라와 볼 것을.
헤츨링이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 정신을 좀 청소해 둘 겸, 포인트를 좀 벌어둘 겸 올라온 61층이다.
왜 진즉 올라와 보지 않았나 후회가 될 정도로 후련한 기분이다.
이 후련한 기분이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속이 편하니 좋네.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분히 오래 뒹굴거렸으니 움직여야지.
거대한 얼음의 옥좌 위에서 내려와 포탈로 향했다.
[입장하시겠습니까?]아니, 못 하는 거 알면서 그래.
“귀환.”
시동어를 중얼거리자, 얼음으로 뒤덮여 있던 공간을 벗어나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익숙한 모습의 모닥불.
61층의 초입이다.
눈앞에는 세 개의 포탈이 존재했다.
하나는 60층으로 향하는 포탈.
나머지 두 개는 각기 다른 스테이지로 향하는 포탈이다.
이곳에서 파티는 두 곳으로 나누어져 양쪽의 스테이지를 동시에 공략해야 한다.
그리고 양쪽 스테이지의 보스룸을 공략하고, 양쪽의 포탈을 가동시키면 61층의 보스룸에 진입할 수 있다.
간단한 콘셉트의 스테이지다.
단지 양쪽의 포탈을 가동시키고 보스룸에 입장할 때, 소환수나 분신체가 나와 별개의 도전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용용이는 어떨까?
용용이는 명백하게 이곳 튜토리얼에서 태어난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용용이는 도전자의 자격을 받을 수 있을까?
최소한 용용이는 나의 소환수도 분신체도 아니다.
나와 별개의 개체로 인정받는다면… 음.
사실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그래도 뭐 해 보는 거지. 언제나 그래 왔듯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입장.”
다음 순간 나는 불타는 사막 위에 서 있었다.
언제봐도 끔찍한 경치다.
저 열기에 피해를 입지는 않겠지만, 이 끔찍한 기후 상황에 쾌적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극도로 건조하고 뜨겁다.
무엇보다 날아드는 모래 바람이 가장 성가시다.
마력 실드를 전개해 모래 바람을 막으며 앞으로 걸었다.
“축지(縮地).”
이런 불유쾌한 환경 속에서 오래 있을 생각도, 뜨겁고 끈덕진 괴물들을 일일이 상대해 줄 생각도 없다.
바로 마지막 방으로 가자.
공간을 접어 가며 걷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막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막의 끝 마지막 오아시스의 중앙에 존재하는 포탈 위로 향했다.
문득 이곳 61층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난다.
59층을 클리어하고 나서 61층에 대한 정보를 키리키리에게 이미 들은 상태였다.
그래도 ‘혹시? 어쩌면?’ 하는 기대와 함께 이 포탈에 올라섰다.
“이동.”
* * *
[어서 오게. 오랜만이군.]멀리서부터 메아리치는 듯한 거대한 음성이다.
고개를 들어 거대한 그리고 비어 있는 옥좌의 옆에 앉아 있는 붉은 거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위에는 새빨간 용암들이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그래. 오랜만이네. 영감.”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다른 쪽에 들렀더군. 전 여왕은 여전하던가?]“뭐, 여전하지, 그럼. 여전히 피부 노화에 대한 걱정이 지대하던데.”
귀를 아프게 하는 폭발적인 굉음이 울렸다.
고통보다는 청각이 그 소리의 정체를 정확히 잡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뼈아팠다.
여전히 이 몸은 인간의 몸이다.
정신을 집중해 귓가에 마력 필드를 덧씌우자 비로소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 늙은 거인의 웃음소리였다.
[그 얼어붙은 피부가 늙을까 걱정한다니! 시간이 지나도 그 멍청함은 변하지 않는군!]“글쎄, 전 여왕은 그대에 대해서 비슷한 말을 하던데.”
또 한 번 거대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 웃어라 좀.
[그대의 안배는 아직 멀었는가?]안배? 그걸 안배라고 할 수 있나?
“멀었다. 한참.”
[안타까운 운명이다. 그토록 강력한 힘을 지니고도 쓸 수가 없으니. 이미 누구보다 완벽한 검이 되었거늘. 여전히 완성이 되질 못하는군]“이 또한 완성의 단계일지도 모르지.”
[어느 신과 비슷한 말을 하는군. 그대는 완성되지 못한 검이라는 건가?] [목적 없이 만들어지는 검은 없지. 그대가 검으로서 완성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 힘으로.]갑자기 이게 무슨 선문답이야.
곤란한 질문을 한다.
“글쎄. 일단 이 길고 긴 담금질이 끝나야 무엇에 쓰일 물건인지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대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검이니까? 재밌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제작자들의 의지는 어떠한가?]“나는 내 자율 의지를 가지고 있다. 영감. 검과는 달리.”
…짜증으로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굳이 대답을 다시 듣고 싶은 걸까?
[그럼 그 자율 의지는 무엇을 가리키는가?]“모른다.”
[하하하. 그래.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왕이여.]“그렇지.”
이 늙은 거인은 도무지 다른 존재의 이목을 생각할 줄을 모른다.
“이제 위험한 대화는 이만하지.”
[미안하군, 그래. 나이를 먹으니 다시 확답을 듣고 싶어서 말이야.] [때가 오면 잘 판단하라. 우리의 뜻은 이미 그대에게 맡겼으니.] [그대의 우유부단함이 결정을 그르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 시작할까?]말을 마친 늙은 거인은 바닥에 꽂혀 있던 거대한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신호로 용암 속에 잠들어 있던 거인 기사들이 하나둘 밖으로 걸어 나왔다.
도합 이백 기.
저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힘을 생각한다면, 그 힘이 이 공간에 한데 모여 있다는 사실이 불합리하게 여겨질 만한 전력이다.
[왕이여, 잘 부탁하겠네. 앞으로도.]늙은 거인, 그리고 이백의 거인 기사들은 대검을 들어 올려 제식적인 동작을 취했다.
그들의 예법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지만, 결투 준비가 끝났다는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굳이 무기를 꺼내 들지 않았다.
내 몸이 곧 무기이니 그저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디며 손을 들었다.
* * *
[이호재, 61층 : 대화합의 날이 아니라고?] [박정아, 90층 : 응. 아직 개최 시기도, 이유도,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지만 확실히 대화합의 날이 아니야.]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