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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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12층 (2)
두 마리의 미친 짝퉁 드래곤들이 날뛰고 있는 현장을 벗어나는 데는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몸체가 워낙 크다 보니 아무리 멀어져도 바로 근처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한참 동안 수풀을 헤치며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격전의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확실히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자, 주변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어휴.”
어쩌냐, 이제.
이거 엄청나게 막막하네.
인벤토리창을 열 수 있으면, 아니 기본적인 칼과 방패만 들고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막막하진 않을 것이다.
일단 당장 음식과 물을 꺼낼 수 없으니 식량 걱정부터 해야 한다.
이곳은 울창한 밀림이다.
사방에 널린 것이 나무고 풀이니, 찾아보면 먹을 만한 과일이나 나물 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배고프다고 주변에 보이는 과일을 생각 없이 따 먹었다가 독에 중독된다면 정말 곤란해진다.
언제 어디서 예기치 못한 위험이 나타날지 모르고, 여차했을 때 해독이나 회복을 위한 포션도 꺼낼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11층을 클리어하고 독 대내성 스킬을 얻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
과일은 보이는 대로 모아 두고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한 이후에, 혹은 정말 굶어 죽을 것 같으면 먹자.
먹기에 가장 안전해 보이는 것은 육류인데.
생고기를 도축해서 불에 구워 먹으면, 독에 대한 위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독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보통 입가에 독샘을 가지고 있으니, 힘들게 독샘을 제거할 걱정 없이 머리통을 쳐내면 되고.
완전하진 않지만 그 정도면 독에 대한 최소한의 방비는 될 것 같다.
그 이상의 처치는 내가 몰라서 못 하는 거고.
식량 확보를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 전 만났던 두 마리의 짝퉁 드래곤이 다시 생각났다.
그 거대한 크기의 몸체.
일부라도 그 고기를 얻을 수 있다면, 한동안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지금쯤이면 승부가 났겠지?
음…….
아니다. 괜한 생각하지 말자.
하나가 죽었다고 해도 하나가 남아 있을 것이다.
혹시 다가갔다가 식사를 방해하는 걸로 인식하고 덤벼들면 큰일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스캐빈저가 또 있을 것이다.
저토록 거대한 공룡의 시체를 탐내는 존재가 나밖에 없을까?
이 밀림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저 공룡들처럼 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훨씬 작은 놈들도 있겠지.
나만 한, 혹은 나보다 작은 놈들도 있을 것이고.
나에게는 거대한 공룡보다는 작은 크기의 적이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적들이 시체 주변을 기웃거릴 텐데,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괜한 위험을 자초하지 말자.
아니, 오히려 그런 놈들이 이 주변으로 몰려오기 전에 더 멀리 벗어나야 한다.
다시 움직이자.
* * *
이 울창한 밀림 속을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니 처음에 가지고 있던 경각심은 옅어지고 짜증만 남았다.
덥다. 그리고 너무 습해.
달라붙는 풀 쪼가리들도, 시야를 가로막는 나뭇가지들도 싫다.
주변에 날아다니는 날벌레들은 더 싫다.
젠장.
12층 스테이지에 진입하고 나서 본 것은, 처음의 두 공룡들.
겁나게 많은 나무와 잡초들.
그리고 벌레밖에 없다.
매우 높은 불쾌지수를 유발하는 환경이다.
[이형진, 3층 : 형 지금 바빠요?]메시지다.
…이참에 잠깐 쉬자.
이만하면 스타팅 지점에서 제법 멀리 벗어난 데다, 주변에 위험은커녕 벌레 외엔 아무런 생물체도 보이지 않는다.
[이호재, 12층 : 아니, 아직은. 곧 바빠질 거야.] [이형진, 3층 : 형 12층이네요. 12층은 어때요?]어떻게 말해 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이형진 또한 헬 난이도에 있는 당사자니까.
[이호재, 12층 : 아주 개 같아. 인벤토리창이 닫혔어.] [이형진, 3층 : 인벤토리창이요?]그의 의문을 해결해 주기 위해, 내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형진은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이형진, 3층 : …아무래도 저는 거기까지는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형. 아니, 못 가는 거겠네요.]음…….
사실 ‘엌ㅋㅋ. 역시 난이도 미쳤네. 형 힘내요’ 정도의 반응을 예상한 과장 섞인 설명이었는데.
이형진이 실시간으로 헬 난이도에 도전하고 있는 당사자라는 점을 간과했다.
이 녀석 아무래도 지금 멘탈에 금이 가기 직전의 상태 같은데.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돌리자.
[이호재, 12층 : 뉴비들은 어때?] [이형진, 3층 : 그럭저럭 괜찮아요. 계속해서 1층에서 못 벗어나니 답답해 보이긴 하는데. 뭐 어쩌겠어요. 섣불리 나오려다간 죽을 텐데.]이 녀석이 이렇게 우중충한 성격이 아닌데 원래.
무척 밝은 녀석이다. 사소한 일에도 잘 웃어 주는 녀석인데.
[이호재, 12층 : 너는 어때?] [이형진, 3층 : 저 3층 보스룸 도전은 그냥 다음 회 차로 넘기려고요. 저는 형처럼 구름다리에서 안 떨어지는 건 힘들 것 같고, 그 밑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불안하게 도전하고 싶진 않아요.]3층 보스룸 도전을 포기하면서 의기소침한 걸까?
[이형진, 3층 : 우선 통과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길 때까지 성장하면서 기다리려고요.] [이호재, 12층 : 그래. 그게 안전하지. 그럼 수고해라.] [이형진, 3층 : 네, 형.]이형진은 사람을 대할 때는 밝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테이지에서는 매우 차분하고 안전 지향인 녀석이었다.
플레이 스타일은 아주 꼼꼼하고 차분했다.
움직이기 전에 많은 것을 생각하고 검토한 후에 움직인다.
게임으로 따지면 도둑이나 암살자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아직 3층에 있으니 제대로 된 전투는 해 본 적이 없지만, 그의 성향이 그러했다.
나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2층 이상에 도달한 헬 난이도 도전자이니, 그 능력은 그것으로 이미 증명이 되었다.
그렇게 신중한 녀석이 왜 헬 난이도에 들어왔나 물어보았더니, 이 녀석도 술 마시고 객기에 헬 난이도를 선택했다고 한다.
역시 술은 만악의 근원이다.
그래도 다정한 성격인지라,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와 대화하길 좋아한다.
그 와중에 생각이 깊고 신중해서 다른 헬 난이도의 저층 도전자들(모두 1층에 있다.) 모두를 맡아 그들에게 조언을 해 주고, 상담해 주고 있다.
그 조언의 정보는 대부분 내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내가 직접 조언하는 것보다는 이형진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좋다.
사람들이 그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이형진이 내 조언을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잘 설명해 준다.
심리적인 상담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낫고.
여러 방면에서 높게 평가하고 있는 친구다.
나보다 나이는 조금 어리지만, 배울 점도 많은 녀석이고.
그런 녀석이 저리 침울해 하니 신경이 쓰인다.
그러고 보니 이번 회 차 말미에 대화합의 날이 있다고 했다.
그때 이형진을 만나 이야기를 좀 해 보아야겠다.
가능하면 김민혁에게 이야기 좀 같이해 달라고 부탁해야지.
솔직히 대화로 누군가의 기분을 풀어 주는 건 영 자신 없다.
김민혁을 데리고 가면 알아서 잘 다독여 줄 것이다.
최근 김민혁이 매우 바쁘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무시했다.
자 이제 다시 내 상황에 집중하자.
일단은 근거지가 될 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클리어 조건이 장시간의 생존인 만큼 휴식과 안전을 위한 근거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근거지를 기점으로 차츰 영역을 넓혀 나가자.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근거지 후보는.
냇가 주변.
동굴.
커다란 나무 위.
이 정도인가.
냇가는 이 근방 포식자의 영역일 가능성이 높고, 동굴은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은 것은 나무 위.
유난히 크고 높은, 그리고 위에 간이 움막을 지어 지낼 만한 나무를 찾아보자.
어떻게 찾지?
…그냥 조건에 맞는 나무를 발견할 때까지 하염없이 걸어야 하나?
이 밀림 속을 헤치며?
가능하면 주변을 좀 둘러보고 싶다.
빽빽히 자라 있는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너무 좁다.
스테이지의, 아니 최소한 이 주변의 지형이라도 좀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내 위치와 주변 지형을 보려면 그냥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 가장 편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허공에 그대로 노출된다.
하늘 위를 공격 범위에 넣고 있는 적이 있다면 그대로 공격당한다.
시야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조그마한 벌레 때문에 풀잎이 흔들리며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발소리였다.
의도적으로 소리를 죽이고 내딛는 발걸음.
8층에서 겪었던 고양잇과 맹수들이 이러한 발소리를 냈었다.
가만히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다.
발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훑어보았지만, 발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방향을 잘못 잡은 건가?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 소리와 함께 벌레들과 새들이 우는 소리가 어지러이 뒤섞인 밀림이지만 내 감각이 틀릴 리가 없다.
분명히 왼쪽 방향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전투 집중]그렇다는 건, 적이 내 눈에 안 보이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전투 집중을 활성화시켜서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차분히 기다렸다.
적이 나타나기를.
암살 계열의 적과 싸우는 건 처음이다.
암살자를 상대로 주의해야 하는 것은 기습이겠지.
하지만 그 존재를 미리 알고 있다면.
기습을 가하는 건 이쪽이 된다.
있다.
보이지 않는 적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올수록 그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조용한 발소리도 나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마력 회로를 통해 체내에 마력을 돌리고, 그 마력의 일부를 왼쪽 손끝에 집중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내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왼쪽으로 손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칼날의 형태로 손끝에 맺혀 있던 마력에, 무언가가 베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스걱-
[키에엑!]“이제야 보이네. 안녕?”
내 눈앞에 나타난 적은 긴 팔 오랑우탄과 비슷한 생김새의 괴물이었다.
쥬라기 시대와 비슷한 환경이라고 생각했는데, 포유류도 있구나.
왜 저놈을 그냥 오랑우탄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표현했냐면, 저 괴물의 양 어깨 밑에는 평범한 팔 대신 거대한 낫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사마귀처럼.
그리고 주둥이는 조류의 부리와 검치호랑이의 치아 구조를 재주껏 뒤섞어 놓은 모양새다.
편의상 오랑우탄 괴물이라고 부르자.
오랑우탄 괴물은 목 주위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역시 공격은 정확히 들어갔다.
그 점에서 소소하게 만족감이 들었다.
우랑우탄 괴물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당황스러운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자신을 정확히 공격했다는 것이 당황스러운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 우리 얘기를 좀 했으면 하는데. 내가 듣고 싶은 게 정말 많거든.”
[키… 키에에엑! 키에엑!]“뭘, 못 알아듣는 척을 하고 그래. 알아듣는 거 다 알고 있어.”
바벨 이전의 지식 스킬은 무자비한 스킬이다.
시전자 본인인 나도, 눈앞에 있는 상대도, 스킬의 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
[크르르… 크르오아.]그건 그렇고, 이 녀석 너무 비협조적이네.
아무래도 이 밀림에는 다른 동물을 현혹해 잡아먹는 식물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끈끈이주걱의 최종 진화판 같은 녀석인가.
“그러지 말고 진정을 좀 해 봐. 얘기가 잘 풀리면 내가 살려 줄 수도 있잖아?”
[크오와아아아!]안 되겠다. 이 녀석, 말을 들을 때마다 적개심이 더 짙어진다.
하는 수 없지.
원래 말귀를 못 알아 듣는 녀석에겐 매가 약이라 하였다.
조금 뒤에 다시 얘기해 보자.
한 발 앞으로 다가서자, 오랑우탄 괴물이 다시 한 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투명화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그리 뛰어나지 않군.
눈에 훤히 보이는 상태로 무작정 달려드니,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저것 흉측한 물건이 많이 달려 있긴 하지만, 결국은 야생동물의 수준이다.
휘둘러지는 낫을 마력을 두른 손으로 막아내고, 다른 손을 휘둘러 어깻죽지를 베어 냈다.
마력을 두른 손은 방패도, 검도, 될 수 있다.
물론 마력을 두른 방패와 검이 훨씬 강력하다.
길이의 차이도 있고. 더 안전하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오랑우탄 괴물의 하체를 걷어차서 넘어뜨린 뒤, 그 가슴팍을 밟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괴물은 계속해서 발버둥을 치며 저항했다.
휘둘러지는 낫을 막기 위해 한쪽 어깨를 또 잘라 내었고, 발버둥을 멈추기 위해 복부를 몇 번 가격했다.
그제야 괴물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제 심문을 시작할 수 있겠다.
“아프냐? 그러게 처음부터 신사적으로 나왔으면 얼마나 좋냐. 지금부터라도 묻는 말에 대답만 잘 하면 내가…….”
아, 포션이 없다.
그럼 이 녀석, 얼마 못 가서 죽을 것 같은데.
괴물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차에, 괴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키야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우렁찬 괴성을 내질렀다.
이거 안 좋은데.
야생 동물의 단말마인 만큼, 고등 종족의 언어처럼 그 의미가 세세하게 짜여 있진 않았다.
하지만 저 괴물이 내지른 괴성들은 한 가지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복수.
[키에에에엑!] [키에에에에에엑!]저 멀리서 비슷한 음역의 괴성들이 메아리쳐 들린다.
괴성들의 주인이 한둘이 아닌 모양인데.
들리는 것만 수십이다.
고개를 내려 내 발밑에 깔려 있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괴물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이거 일이 아주 짜증 나게 꼬이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거친 발소리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적들의 힘을 모른다.
그 숫자도 모른다.
이곳의 상황도 잘 모른다.
지형도 모른다.
모든 상황이 불리하다.
일단 도망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