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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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합의 날 (6)
이걸로 대화합의 날에 해결해야 했던 안건은 모두 정리가 끝났다.
회의도 잘 마쳤고, 박정아에 대한 일도 잘 풀린 것 같다.
단순히 그녀의 태도 문제뿐만 아니라,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솔직히 박정아는 너무 딱딱하고 기계적으로 사람을 대해, 무서울 때가 종종 있었다.
원수의 머리통을 핸드건으로 날려 버릴 때도 차분하고 무덤덤해 보이던 그녀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언제나 냉철함을 유지한다는 건, 분명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인간적일 정도라면, 주변 사람들이 수장으로 믿고 따르려 하지 않겠지.
박정아는 이제 나를 윗사람처럼 대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존대도 최대한 생략하고 친한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겠노라 다짐을 받아 두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편하게 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전보다 더 불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눈이 마주치면 슬쩍 고개를 돌린다든가, 말을 걸다 말고 대충 얼버무린다든가.
방금처럼 자리를 피해 도망간다든가.
어색해서 그런 것이다.
익숙해지면 전보다는 한층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잠시 이디가 삐쳤다는 문제도 있었다.
아무래도 회의 동안 너무 심심하게 만든 모양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나만이 그녀와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하루 종일 그녀에게 신경 써 주지 못했으니, 심통이 날 만도 하다.
화를 풀어 줄 겸 얘기 좀 하려고 했더니, 이디는 텐트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누워 버렸다.
잘 테니까 깨우지 말라면서.
많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지금 텐트 안에는 구석에서 자고 있는 이디, 그리고 나와 김민혁뿐이다.
박종식은 박정아가 텐트를 나갈 때 같이 나갔다.
고개를 돌려 김민혁을 보는데, 이 녀석이 요상한 짓을 하고 있다.
“뭐 하냐.”
“보면 모르냐.”
김민혁은 한 손에는 나무토막을, 한 손에는 조각칼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조각칼로 나무토막을 깎아 내며 무언가 모양을 만드는 중이다.
“결국, 달빛조각사의 길을 걷기로 한 거냐?”
“뭔 뻘 소리야. 그냥 취미로 하는 거야, 취미.”
취미라.
나도 예전에 취미로 목도리와 양말을 짜거나, 장갑과 외투를 만들어 보거나 하였다.
아, 모자도 만들었었지.
인벤토리를 열어 보니, 그때 만들어 둔 옷가지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뭐야. 넌 재봉파였냐. 조각이 낫지. 조각 검술 스킬이 사기잖아.”
“그거야 주인공 버프고. 상식적으로 재봉이 훨 낫지. 근데 너는 갑자기 웬 조각이냐? 심심해?”
내가 취미로 재봉을 시작했을 때는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 있던 때였다.
눈만 뜨면 내성 스킬을 올리기 위해 자해를 하고 앉아 있던 때다.
이렇게 대화합의 날을 통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혼자서.
어느 순간 고통이 내 삶의 유일한 자극이 되었고, 강한 고통을 통해 쾌락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실실 웃으며 자해를 할 때마다, 고통 내성만큼은 더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고통마저 무뎌진다면 내 삶 또한 무뎌질 것만 같았다.
혼잣말이 늘어 가고, 강박적으로 나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데 집착했다.
단순히 내성 스킬을 올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더 고통스럽게, 더 위험하게.
어느 순간 내 행동이 지나치게 위험하고, 내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 상황을 피할 수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세 가지 방책을 찾아냈다.
그리 거창한 건 아니었다.
우선, 매일 일정 시간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는 것.
궁금한 것이 없더라도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둘째가 매일 짜인 스케줄에 맞춰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
마지막이 취미를 만드는 것이었다.
취미를 즐기는 여가 시간에는 튜토리얼이나, 스킬, 성장, 레벨 등 모든 것을 잊고 뜨개질과 바느질에 집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 가지 모두 제법 효과적인 방법들이었다.
“…역시 너도 엄청 고생했구나. 아니, 이건 그냥 고생 수준이 아니네. 나는 그런 건 아니고. 이번에 30층 거주 지역에 집을 하나 마련했거든. 그런데 인테리어라고 할 만한 게 없어서, 수공예로 직접 만드는 중이다.”
포인트로 사면 비싸잖아.
라고 김민혁은 덧붙여 말했다.
집이라.
30층 거주 지역에선 포인트를 지불하고, 거주 지역의 건물과 부지를 구매해 사유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듣긴 하였다.
집.
음… 뭐, 좋네.
부럽진 않지만.
“아까 그 이준식인가 이준석인가 하는 친구나 다시 불러 줘. 내성이나 올려야지.”
“알았어.”
김민혁은 대답하고는, 짧게 하품하며 메시지창을 열었다.
“그런데 너는 안 나가냐?”
“밖에 나가서 사람들 만나 얘기해 봐야, 일만 늘어나는데 뭐. 대화합의 날이 끝날 때까지 그냥 여기 있을란다. 그러는 너야말로 안 나가냐?”
“이거 내 텐트야, 인마.”
사실 나도 밖에 나가서 사람들 만나기가 좀 껄끄럽다.
날 무서워하는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 * *
“이하오이 대륙이요?”
“어. 이번 회 차 끝나기 전까지 정보 얻을 수 있어?”
“네… 그렇긴 한데요…….”
막간을 이용해 이준석에게 12층 스테이지, 이하오이 대륙에 대한 정보 수집을 부탁했다.
이준석은 정보 수집의 의무에서 면제된 자경단원이다.
면제 사유는 스테이지 클리어를 위한 정보 수집.
자기 자신을 위한 정보가 필요한 이준석인 만큼, 꽁으로 삥 뜯듯 정보 수집을 부탁할 순 없다.
“지금 마력 회로 스킬 레벨 몇이야?”
“3이요…….”
마력 회로의 스킬 레벨이 3.
딱 좋다.
정말 마력의 응용이 더럽게 까다로워지는 구간이다.
“자, 이거 껴 봐.”
인벤토리에서 팔찌 하나를 꺼내 이준석에게 건넸다.
“이게 형이 헬 난이도 10층 클리어하고 보상으로 받은 팔찐데. 부가 효과에 마력 회로 스킬 레벨을 하나 올려 주는 효과가 있어. 이게 그저 그런 상점창 아이템이랑은 차원이 달라. 일단 껴 봐. 설명해 줄게.”
이 가죽 마력 팔찌를 차는 것만으로도 마력 회로 스킬이 한 단계 상승한다.
마력 회로 스킬 레벨은 마력 회로를 통해 얼마나 더 능숙히, 그리고 원활히 마력을 운용하느냐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마력의 운용법은 그냥 본인이 혼자서 깨우쳐야 한다.
검술이나 창술은 비록 비전문가라고 해도,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이렇게 휘두르면 되겠지, 이렇게 하니까 좀 더 자세가 그럴싸한데? 이런 식으로.
그런데 마력의 운용은 그런 게 없다.
그냥 맨바닥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마력 팔찌가 더 귀중한 것이다.
아이템의 힘을 빌려서라도 한 단계 위의 마력 운용을 경험한다는 것 자체에 가치가 있다.
“그렇게 경험이 좀 쌓이면, 스킬이 4레벨로 올라가는 건 금방이지. 그다음엔 팔찌의 효과로 5레벨이 되는 거고. 조금만 노력하면, 금세 또 스킬 레벨이 5레벨이 될 거고. 그렇게 계속 오르는 거지. 그렇지?”
이준석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쩔지?”
“네.”
“딜?”
“네! 딜.”
좋아. 잘 풀렸다.
사실 설명대로 그리 이상적으로 일이 풀리진 않을 거다.
경험과 별개로 노력은 많이, 정말 많이 해야 할 거다.
100 정도의 노력량을 80 정도로 줄여 주는 수준이다.
“형이 보기에, 네가 요즘 보이는 애들 중에선 자질이 제일 좋은 거 같아서 주는 거야. 아, 다른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사실 오늘 텐트 안에서 만나기 전까진 이준석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런 멘트는 원래 그냥 던지는 거다.
이준석은 한층 밝아진 얼굴로 전격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김민혁은 ‘저 새끼 저거 약 팔고 있네.’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아, 형진이도 만나 봐야 되는데. 이따 나랑 같이 걔랑 얘기 좀 해 주라.”
“헬 난이도 3층?”
“어. 걔 상태가 좀 안 좋은 거 같아서.”
최근 이형진과 있었던 대화의 내용과 헬 난이도 3층에 대해 김민혁에게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글쎄, 걔 만나서 얘기 좀 한다고 해결될 것 같진 않은데.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그런가?”
“네가 해 줄 수 있는 건 위로 정돈데, 그것도 그리 와 닿진 않을 거야. 넌 3층 엄청 쉽게 통과했었잖아.”
그랬지.
아마 이틀인가 삼 일 만에 통과했다.
“걍 내버려 둬 봐, 일단은.”
오케이.
이형진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겠다는 생각은 저 멀리 우주 너머로 날려 보냈다.
사람을 대하는 일에 대해선 내 의견보다는 김민혁의 말을 듣는 것이 좋다.
사실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귀찮기도 하고.
그럼… 이제 뭐 하지.
다시 시선을 돌려 열심히 나뭇조각을 깎기 시작하는 김민혁을 보았다.
“야.”
“왜. 나 지금 집중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심심하다.”
“…야, 준석아, 좀 더 센 스킬 없냐?”
* * *
대화합의 날도 끝나고, 이제 14회 차의 종료도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난 한 달 동안 정들었던 이 집과도 이제는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집.
12층 스테이지의 근거지로 쓰고 있던 토굴 말이다.
계속 집, 집, 하며 불렀더니, 이제는 정말 집처럼 느껴진다.
토굴 밖의 주변 수풀들은 잘 정리되어 집 앞의 정원처럼 꾸며져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엔 화장실도 지어져 있다.
내부도 잘 청소되어 있고, 가재도구나 취사도구들도 한편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디가 시간이 나는 대로 꾸미고 정리하고 만들어 둔 흔적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정말 집 같네.
“그렇지 않아?”
“케륵, 나도 그렇게 느껴진다.”
튜토리얼에 들어오기 전에 살고 있던 원룸에서도 이런 느낌을 못 받았었는데.
그때는 오히려 집이 나를 가두고 있는 감옥처럼 느껴졌었다.
이디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 걸까?
“케륵. 나는 조금 다르다, 대장. 나는 이 토굴이 정말로 처음 가져 보는 내 집이다.”
담담하게 말하는 이디를 보며, 자세한 이야기를 물어도 될까 생각해 보았다.
실례가 되려나.
아니,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에게 상처가 될 기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이디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케륵. 나는 부락에서 동족들과 함께 살지 못했다. 근처 숲에서 혼자 노숙하며 지냈다. 주변의 상황 때문에, 이곳 토굴처럼 제대로 갖춰진 근거지를 가져 보지 못하고, 매일 밤 자리를 옮겨가며 노숙해야 했다.”
…이디의 과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드는 생각이 있다.
그녀가 다른 리자드맨들에게 배척받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묻기는 좀 그런데.
“그리고 당시의 기억조차 불분명한 튜토리얼 스테이지 또한 내 집이라고 할 수 없다. 그야말로 감옥이나 다름없지.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준 대장에게는 항상 감사하고 있다.”
‘데리고 나왔다’라.
그렇게 표현해야 하는 걸까?
전에 키리키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플레이어가 5층 보스룸에서 이디를 만난다면, 그녀는 나를 알고 있는 이디인가?
내가 소환한 적이 있는 이디인가?
키리키리의 답은 이러했다.
내가 소환한 이디와 5층 보스룸의 이달타르는 같으면서 다른 존재라고.
누군가 5층 보스룸에서 이달타르를 만난다면, 그 이달타르는 나를 만난 기억이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이달타르는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나를 만난 적이 없는 거라고 대답했다.
이디는 그 대답을 듣고 혼란스러워했다.
그 이후로는 그녀를 이달타르가 아닌 이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착잡해졌다.
뭔가 이디에게 말을 걸어 주고 싶었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복잡한 심경이 풀리지 않고 있는 와중에, 눈앞에 여러 개의 메시지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튜토리얼, 헬 난이도 12층 클리어에 실패하셨습니다.] [모든 상태 이상과 부상이 회복됩니다.] [플레이 기록을 바탕으로 추가 보상을 지급합니다.] [독기 Lv.1을 획득하였습니다.]추가 보상으로는 포인트나 조금 얻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스킬을 받았다.
하긴, 클리어만 못했을 뿐, 플레이 기록만 보면 완벽하다.
25일간 생존이라는 클리어 목표를 진작 보장하고, 수련에 여가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으니.
“케륵. 이제 3일간의 대기실 생활인가. 나쁘지 않다.”
“아니, 9일간의 대기실 생활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3일의 대기 시간 동안은 대기실에, 나머지 6일은 주로 모닥불 방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케륵? 6일간 대기실에서 더 지낸다고? 그러면 12층을 클리어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맞아. 12층은 몇 번 정도 반복해서 도전할 생각이야. 12층을 이대로 넘길 순 없거든. 이만큼 수련하기 완벽한 조건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야.”
시간 널널하고, 사냥감들이 혼자서 밀림 속을 어슬렁거리고, 귀찮게 뭘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막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짝퉁 드래곤들은 잡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