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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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12층 (8)
판타지의 매력이 무엇인가.
일상 속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신기한 일들을 보고 들으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데 있지 않을까?
누구나 판타지적인 로망을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런 로망을, 꿈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소설이나 영화에 쉽게 몰입하고 매료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런 로망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판타지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그리핀 라이더, 와이번 라이더, 드래곤 라이더.
이런 것들 말이다.
흔히 ‘날탈것’이라고 불리는 비행 몬스터의 등에 타고 창공을 날아다니는 기사들.
어린 시절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나도 저런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절벽 위에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아닌가.
기뻐해야 마땅하다.
비록 나 자신이 날탈것이 되어 버렸지만.
“자, 업혀라, 이디.”
“케륵. 내가 리자드맨 최초의 휴먼 라이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괴한 이름의 클래스가 귓가에 계속 맴돈다.
인간 날탈것을 타는 리자드맨, 휴먼 라이더라니.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이냐.
* * *
[탈라리아의 날개]절벽 끝에서 거대한 날개를 펼쳐 들고 몸을 숙여 자세를 잡았다.
“자, 업혀라, 이디.”
이디는 잠시 케륵거리며 재미있어 하다가, 조심스레 내 등 뒤에 업혔다.
“케륵. 내가 리자드맨 최초의 휴먼 라이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도 리자드맨을 등 뒤에 태우고 하늘을 날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날탈것에 대한 판타지를 꿈꾸면서, 내가 탈것이 된다는 상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케륵. 케륵. 대장이 원한다면, 언제든 내 위에 올라타도 상관없다만.”
내가 네 위에 올라타서 뭐 하겠냐.
목마 태워 주게?
아니, 잠깐만.
이거 섹드립 아니야?
“야!”
“케륵, 케륵.”
등 뒤에서 이디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좀 전과는 달리 음흉한 목소리로 케륵거리며 웃는 이디 때문에, 목과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
나를 놀리기 위한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소름 돋는다.
“야! 팔 만지작거리지 마! 비행하는 데 방해된다고!”
“케륵, 케륵.”
아주 신나셨구만.
더 이상 이디가 장난치지 못하도록 빨리 비행을 시작해야겠다.
비행 멀미가 어떤 건지 보여 주마.
아주 혹독하게 멀미의 고통을 체험시켜 주겠다.
발걸음을 옮겨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탈라리아의 활공 효과가 발동되었고, 그렇게 비행이 시작되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다.
비행하기엔 딱 좋은 날씨지.
지평선까지 펼쳐지는 밀림의 멋진 광경도 보기 좋고.
“케륵! 케륵!”
재미있냐?
신나냐?
조만간 지옥을 보게 될 거야.
* * *
“케륵. 대장, 나 또 토할 것 같다.”
“…좀 참아. 더 천천히 갈게.”
나를 놀려 댄 이디에게 지옥을 보여 주겠다며 몇 번에 걸쳐 곡예비행을 하자마자, 나는 그 행동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디가 멀미를 참지 못하고, 토했다.
내 등에.
내가 무리해서 곡예비행을 한 탓이니, 이디한테 뭐라 하지도 못하겠고.
…아, 진짜.
결국, 땅에 내려와 냇가를 찾아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정말 얌전히 저속 비행만 하고 있다.
모범택시가 따로 없다.
젠장, 젠장.
“대장… 정말 미안하다. 화 많이 났나?”
“아니야… 내가 심술부리다가 생긴 일인데. 신경 쓰지 마.”
내가 누굴 탓하겠니.
내가 죽일 놈이다.
에라이.
화창한 대낮에 이디와 함께 맘 편히 하늘을 날 수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준석이 하드 난이도 관리자에게 얻어서 보내 준 이하오이 대륙에 대한 정보.
이하오이 대륙은 빽빽하고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여 있는 지형 때문인지 대형 비행 종이 많이 서식하지 않는다.
둘째로는 저번 회 차 때, 24일간 이 밀림에서 지내며 괴물들의 수준을 대략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떤 적들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저번 회 차 초기와는 상황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이디와 이렇게 합체한 상태에서…….
아니, 합체한 상태라니까 말이 좀 이상하잖아.
이렇게 이디를 등 뒤에 태운 상태에서 어지간한 적들은 쉽게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라리아의 활공 효과를 이용해 비행하고 있기에, 나는 비행을 위해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비행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만큼, 전투에 있어 운신과 판단이 편해진다.
여기에 바람 정령의 가호와 점멸 스킬이 추가된다.
그리고 내 등 위에서 긴 창을 들고 있는 이디가 공격과 후방 시야를 맡아 주면.
완벽하다.
공중에서는 우리를 당할 적이 없을 것이다.
최소한 이 12층 스테이지에서는.
이러한 근거들을 통해 비행이 충분히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고, 목적지까지 날아가기로 하였다.
속도 문제는 둘째 치고, 울창한 수림을 뚫고 수백 km 단위의 거리를 주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어렵다는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피로도가 장난이 아니다.
계속 눈앞을 가로막는 수풀을 칼로 쳐내며 걸어야 하고, 좁은 나무들 사이를 헤쳐 나가야 한다.
발밑의 나무뿌리도 조심해야 하고.
수많은 벌레들과 독초들.
무더운 날씨까지.
아무리 내가 고행을 좋아한다 해도, 결국 그건 모두 성장을 위한 노가다의 개념이다.
이왕이면 쾌적한 것이 좋다. 너무 당연한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비행에 집중하고 있는데, 뒤에서 이디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었다.
“대장, 제법 오래 날아온 것 같은데, 내려가서 도시락이라도 먹으면서 잠시 쉬는 게 어떤가?”
“그래, 그러자.”
이디의 목소리에 계속 미안한 감정이 묻어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디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칭찬이라도 해 줘야겠다.
한두 시간쯤 도시락을 먹으며 땅 위에서 쉬다 보면 멀미도 가실 것이다.
* * *
이디의 기운을 북돋워 주기 위해 칭찬을 해 주겠다고 마음먹었었지만, 괜한 생각이었다.
도시락은 칭찬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최고다, 이디.
“케륵. 많이 먹어라, 대장.”
이디는 흐뭇하다는 듯, 엄마 미소를 지으며 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와, 이거 진짜 맛있네.
심각하게.
장사해도 되겠다, 야.
사실 예전엔 리자드맨은 당연히 생식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이디가 특별히 요리를 잘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 먹던 음식들보다 이디의 음식이 훨씬 맛있다.
“케륵. 왜 리자드맨이 생식을 할 거라 생각한 건가?”
“도마뱀은 원래 생식하잖아.”
“원숭이도 생식한다, 케륵.”
음… 할 말이 없네, 그건.
“케륵. 지금부터라도 유념해 둬야 한다. 대장이 살던 곳은 인간이 유일한 지적 생명체였다고는 들었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튜토리얼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종족들을 만나게 될 거다. 그들 앞에서 경솔히 말했다간 자칫 그들의 심기를 상하게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경솔했다.
4층에서 고블린들을 단순히 몬스터로 취급했다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새 이런 안일한 마음가짐이라니.
“아마, 그동안은 대장이 다른 종족들을 모두 처치해야 할 적으로 만나 왔던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적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건, 종종 독이 되니까.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만나야 할 다른 종족들 모두가 적으로 등장하진 않을 거다.”
이디의 충고를 잘 기억해 두자.
값진 조언이다.
내가 어디에서 이런 조언을 들을 수 있겠는가.
“고마워, 이디. 잘 기억해 두고 앞으로 주의할게. 그리고 혹시 내 말 때문에 기분 상했으면 내가 사과할게.”
“케륵, 케륵. 괜찮다. 내 잔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니 그게 고마울 따름이다.”
괜한 오지랖을 떤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말을 끝맺는 이디를 보며 조용히 웃었다.
얘는 말도 잘해.
새삼 그렇게 느꼈다.
이디와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참 특별한 인연이다.
5층 보스룸에서 적으로 처음 만난 그녀와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친한 사이가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며 대치하던, 그리고 느닷없이 이디가 나에게 고백을 하며 달려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졌다.
재밌는 일이다.
이제 이디는 내 하나뿐인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나의 조언자이며 서포터이고 선생님이기도 하다.
어쩌면 가족이라고 불러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자경단의 녀석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커뮤니티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그들과는 다르다.
자경단원들과의 관계는 아무리 친해지고 서로에 대해 알게 되어도 결국 일적으로, 혹은 사회관계적으로 이어진 느낌이 든다.
그것이 필요하기에, 혹은 그것이 서로에게 편하기에 가까이 지내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이디는…….
그런 딱딱한 관계가 아닌, 좀 더 밀접하고 따뜻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굳이 필요 때문에 서로를 찾는 사이가 아니다.
만약 이디가 스테이지 진행에 있어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럼에도 나는 이디를 소환해 함께하고 싶을 것이다.
함께하는 것이 좋으니까.
곁에 있으면 편하니까. 의지가 되니까.
쉽게 서로에게 공감하고 함께 웃을 수 있으니까.
나에게 이러한 친구가 있다는 건, 그리고 쭉 혼자였던 이 튜토리얼 안에서 그런 친구가 곁에 있어 준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모험의 신이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모험의 신이 당신의 깨달음에 크게 만족합니다.] [모험의 신이 당신의 생각을 읽고 크게 감동합니다.]모험 신의 시련 [달성률 : 39/224]
* * *
드디어 도착했다.
이틀간의 비행을 통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손을 내밀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더듬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만져졌다.
마력을 움직여 보았지만 마력도 투명한 벽을 통과하지 못했다.
불도 마찬가지겠지.
여기가 12층 스테이지의 끝이다.
투명한 벽으로 가로막힌 12층 스테이지의 동쪽 끝.
이곳이 바로 내가 오고자 했던 목적지였다.
지난 며칠간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제법 건조한 날씨다.
앞으로도 5일 동안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풍향은 동풍.
동쪽으로부터 서북 방향을 향해 불고 있다.
크, 완벽하구만.
“자, 시작하자, 이디.”
이디를 등 뒤에 태우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리 꺼내 둔 커다란 보따리에서 이디가 발화석을 하나씩 꺼냈다.
“케륵, 이대로 던지면 되는가?”
“어. 던져서 발화석을 깨트린다는 생각으로 나무나 바닥을 향해 던지면 돼.”
나머지는 발화석이 알아서 다 해 줄 거다.
이디가 발화석을 아래로 집어던질 때마다 조그맣게 불이 피어난다.
한 번 불을 피워 내기 시작하면 반나절 동안 계속해서 화력을 뿜어내는 발화석이다.
효과는 확실하다.
주위에 태울 만한 나무와 수풀이 넘쳐나는 환경.
이런 환경에선 담배꽁초 하나에서 시작된 불길이 산 전체를 불태우는 법이다.
사실 발화석 800개가 아니라 20개만 있어도 거대한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케륵. 대장, 공기가 뜨겁다.”
이디가 10개쯤 되는 발화석을 집어던졌을 때, 크게 번지기 시작한 불길 때문에 주위 온도가 급상승했다.
리자드맨은 어쨌든 변온동물이고, 온도 변화에 취약하다.
불길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자리를 피했다.
“케륵. 이제 좀 살 것 같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불길을 바라보니 장관이 따로 없다.
와오.
타올라라 나의 경험치들이여!
“불장난을 할 거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하하.”
“케륵… 케륵.”
이거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뭔가 이상하다.
화재를 일으켜 숲을 불태우는 것에서 쾌감이 느껴진다니.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서서히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불길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냥 재미있다.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즐거워지며 흥분된다.
이거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종종 불을 지르게 될 것 같은데.
하하하하.
“자, 이디, 저기에도 발화석을 던져. 불을 더 빨리 키우자. 더,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