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71
x 71
튜토리얼 12층 (10)
“케륵, 케륵. 집이 불타고 있다, 대장.”
으음… 그러네.
근거지로 삼고 있던 토굴 주위도 결국 불길에 휩싸였다.
생각보다 불이 너무 잘 번진다.
지나치게 잘 번진다.
비가 오지 않아 건조해진 날씨와 계속해서 서쪽으로 불고 있는 바람.
집단을 이루고 있는 문명 종족이 없다는 조건들이 합쳐진 결과다.
12층 스테이지, 이하오이 대륙의 괴물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하고 특이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족 이상의 문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끽해야 그 오랑우탄 무리 정도.
오랑우탄 무리들은 불길을 발견하고, 그냥 서쪽으로 도망가는 걸 택했다.
불길이 어느 정도 이상 번지면, 뒤늦게 어떻게든 불을 소화해 보려 할 수도 있지만, 내가 그걸 방해하고 있는 이상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계획이 너무 매끄럽게 굴러가고 있다.
우리를 방해하려 드는 예상외의 적도 없었고.
그저 혼비백산해 도망치거나, 어떻게든 불길을 막아 보려는 괴물들을 편하게 사냥하면 끝이었다.
이렇게 일이 잘 굴러가면, 이제는 오히려 불안해진다.
헬 난이도에서 이럴 리가 없는데.
“…케륵.”
어? 이디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야, 너 우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움직임만 느껴졌을 뿐.
느낌상 손을 들어 눈가의 눈물을 닦아 낸 것 같다.
이거 어쩌지.
이디를 울려 버렸다.
이디가 저기서 불타고 있는 집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너무 간과했다.
달래 줘야 하나?
어떻게?
이 상황을 되돌릴 수도 없다.
저 불길은 이젠 내가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는 수준이다.
집은 이미 불타 버렸고.
와, 나, 진짜 이거 어떻게 하냐.
김민혁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어볼까?
사람 관계에 있어선 도라에몽보다 편리한 녀석에게 조언을 구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등 뒤에는 이디가 업혀 있다.
메시지를 읽고 뜻을 알아차리진 못하겠지만, 이 상황에서 이디를 무시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
진퇴양난. 사면초가.
12층 진입 이후, 최대의 위기다.
무언가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어… 음.”
젠장. 급한 마음에 입을 열어 보았는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미치겠네.
늦었나?
이미 무언가 말을 걸기엔 늦어 버린 게 아닐까?
어색한 침묵과 불편한 분위기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 곤란한 상황을 해소시켜 준 건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아니, 인물은 아니다.
괴물이다.
[캬오오오!]그래, 나왔구나!
짝퉁 드래곤!
그냥 크기만 큰 괴물이 아니다.
화염 브레스 스킬을 가지고 있는 진짜 짝퉁 드래곤이다.
진짜 짝퉁이라니까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지금은 저 괴물이 정말 반갑게 느껴진다.
“이디! 일단 저 녀석을 처치하고 생각해 보자!”
“케륵, 알았다.”
이디는 금세 우울한 기색을 지우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점멸을 연속으로 사용해 날아드는 화염 브레스의 범위에서 벗어나며 저 짝퉁 드래곤에게 근접하기 위해 날아갔다.
* * *
[콰오오오……!]결과는 당연히 우리의 승리였다.
괴물은 화염 브레스라는 고위력의 공격 스킬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보호막 스킬을 가지고 있던 녀석보다 훨씬 상대하기 수월했다.
화염 브레스 스킬이 쏘아지기 전의 전조가 너무 뻔히 드러났다.
‘나 지금 브레스 쏜다!’
라고 알려 주며 공격해 주니, 그냥 그때마다 점멸을 사용해 피해 내면 끝이었다.
저것도 못 피하는 사람은 와우 레이드도 못 뛰는 똥손일 거다.
아, 물론 공중을 날 수 있어야 하고, 점멸 스킬 정도의 이동기는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일단 피한 다음에는 브레스를 내쏜 괴물이 멍청하게 숨을 고르는 동안에 검을 푹푹 쑤셔 주니, 그대로 승부가 갈려 버렸다.
보호막을 쓰던 괴물과 마찬가지로, 영혼 착취의 쇠약 효과와 독기에 의해 중독된 괴물은 그대로 힘을 잃고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다음은, 그냥 괴물의 마빡에 검을 찔러 넣어 마무리하는 것뿐이었다.
푸욱-
괴물의 거대한 몸체는 지진이라도 난 듯한 굉음을 일으키며 땅에 쓰러졌다.
이번엔 레벨 업 안 하네.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크흠. 이디, 그… 지금 우리 계획이 너무 효과가 좋아서…….”
“케륵… 알고 있다.”
“원래 동쪽 지역 정도만 먼저 태워 볼 생각이었거든. 이렇게 빨리 서쪽까지 불이 번질지 몰랐어.”
“케륵, 케륵.”
자,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거야.
이왕 집까지 타 버린 거, 이대로 밀림 전체를 불태우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해 보자, 이디.
“알겠다, 대장.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알고 있다. 더는 불평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다오.”
여전히 침울한 기색이었지만, 이디는 시원한 말투로 그렇게 물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려면 이곳에서 25일간 생존해야 하는 것이 조건이지만, 모든 걸 불태우고 정복 클리어를 달성하면 그 즉시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 * *
[키에에에엑!] [캬악! 캬아악!]귀가 아프다.
수만, 수십만의 괴물이 한데 모여 괴성을 질러 대고 있다.
결국 밀림 전체를 뒤덮은 화재는 이곳, 스테이지의 서쪽 끝까지 진행되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도망치던 괴물들은 이제 스테이지의 경계를 가로막고 있는 투명한 벽에 막혀 갇힌 상태다.
이거 지옥도가 따로 없네.
한쪽에선 수많은 괴물이 이런저런 스킬들을 사용하며, 어떻게든 불길을 막아 보려 애쓰고 있다.
역시 이 녀석들 나름 지능이 높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종을 초월해 나름대로 협력이라는 걸 하고 있다.
한쪽에선 여기저기 화상을 입은 괴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고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선 다른 괴물들을 밀치고 밟아가며 조금이라도 서쪽으로 도망치려는 괴물들이 날뛰고 있다.
서로의 심기를 건드려 이 북새통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괴물들도 있다.
저러다 밟히고 밀쳐지며 깔려 죽는 괴물의 수도 상당하다.
그렇게 몇 가지 군상들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군상들 모두 절망적이고 참혹하다.
저 괴물들이 지금 내뱉고 있는 괴성들을, 나는 이해하고 있다.
바벨 이전의 지식 스킬은 저 비명들에 담긴 공포와 분노, 절망, 슬픔과 그리움을 내게 선명하게 전해 준다.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다.
“케륵. 대장, 여기 있다.”
이디가 건넨 열기 내성 포션을 마셨다.
6시간 간격으로 꾸준히 이 열기 내성 포션을 마시고 있다.
포션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에 조금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대한 밀림 전체를 태우고 있는 저 화재의 열기는 이제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디는 제때 이 포션을 마시지 않으면 거동이 매우 둔해지고, 어지럼증과 두통 증세를 호소했다.
자, 가 볼까?
이디와 함께, 저 괴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 한복판으로 날아갔다.
괴물들은 나와 이디를 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우리 또한 저 화재를 피해 여기까지 도망쳐 온 수많은 괴물들 중 하나로 인식되는 건가?
나쁠 것 없지.
나와 이디는 괴물들의 이목을 끌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였다.
괴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 한복판으로.
수십만에 달하는 괴물들의 한복판.
서쪽은 투명한 벽으로 가로막혀 있고, 동쪽에서는 거대한 화마가 다가오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장소다.
원하던 상황이고 원하던 적들이다.
찔끔찔끔 밀림 속에서 괴물 한두 마리 찾아가며 사냥하는 것보다는 역시 이런 게 좋다.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미친 듯이 싸우는 것이.
스며드는 흥분감이 감각을 고조시킨다.
“자, 시작할까?”
“케륵.”
이디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외날 검을 빼 들고, 등을 보이고 있는 괴물의 목을 쳐 날렸다.
그리고 옆에 서서 저 멀리 화재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괴물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저 멀리 보이는 불 때문에, 주위에 바글바글한 괴물들 때문에, 불안과 공포 때문에, 우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괴물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다.
일격에.
큰 소동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지만, 이 수많은 괴물들 모두가 얼이 빠져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처치한 괴물들의 시체가 늘어갈수록 주위 괴물들이 우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전투태세로 돌변했고, 저 멀리서부터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달려오는 괴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 지옥도 여기저기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괴물들이 수백은 넘을 거다.
대부분의 괴물들은 ‘아, 저기서도 싸우나 보다.’ 하고 우리를 무시했다.
그렇게 또 한참을 베고 찌르며 괴물들을 처치하다 보니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괴물들이 우리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케륵. 이제야 다들 눈치챈 모양이다.”
우리가 닥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괴물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걸 말이지.
“그래 봤자지, 뭐.”
[영혼 착취]영혼 착취 스킬을 좁은 범위에 한정하여 사용했다.
범위 안에 있어, 영혼 착취의 쇠약 효과를 받게 된 괴물들의 눈빛에 적의가 짙어진다.
이제 저 괴물들 모두 나를 분명한 적으로 인식하고 노려보고 있다.
살기가 가득 담긴 괴물들의 눈빛이 나에게로 집중되자, 짜릿한 긴장감이 피어오른다.
하하하하.
그래, 이거지.
이거라고.
“뭘 꼬나보고만 있냐! 이 괴물 새끼들아!”
그렇게 외치며 눈앞에 보이는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위의 괴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적의를 내뿜고 있다지만, 결국 국소적인 규모다.
이 장소에 모인 수십만의 괴물들 대부분은 우리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괴물들을 죽여 나간다.
저 밖에서는 계속해서 번지고 있는 화마가 괴물들을 삼킬 것이고, 안쪽에선 우리가 혼란에 빠진 괴물들을 하나씩 사냥한다.
완벽한 마스터플랜이로군.
[캬아아악!]외날 검에 다리가 잘려 비명을 지르는 괴물의 목줄기에 단검을 꽂아 넣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완벽하다고.
* * *
“케륵.”
이디가 심통이 나서 케륵거리는 소리에 고개가 더 아래로 숙여졌다.
“케륵. 대장, 그래서 그 정복 클리어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음… 그게, 그… 모르겠다!”
당당히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데 어쩌겠는가.
왜 밀림 전체를 불태우고 살아 움직이는 괴물을 모조리 죽였는데도 정복 클리어가 달성되지 않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케륵… 대장, 나 일단 조금 쉬어야 한다. 열기에 너무 오래 노출되었다.”
괴물들을 하나씩 처치하고 있던 중 이변이 생겼었다.
어떻게든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괴물들의 방어선이 무너진 것이다.
불길은 다시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서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투명한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물론 벽은 굳건했다.
그 벽은 튜토리얼 스테이지의 공간을 제한하기 위해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벽일 테니.
삽시간에 수만이 넘는 괴물들이 서로의 밑에 깔려 사망했다.
그렇게 미쳐 날뛰는 괴물들 사이에선 우리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사냥을 중지하고 지역을 이탈하였다.
이미 모든 것이 타 버리고 재만 남아 불길이 사그라진 곳으로 이동했지만, 이동 과정에서 화마의 위를 날아서 통과해야 했다.
이디에게 열기 내성 포션과 하급 엘릭서를 마시게 했지만,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다.
아공간 가방에서 텐트를 꺼내, 이디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침 내부 온도 유지 기능이 달려 있는 텐트를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가방에서 냉각 포션병들을 꺼내 주위에 냉각수를 뿌리기 시작했다.
논밭에 농약 치듯, 주위에 가진 냉각수를 모두 뿌려 대자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조금이나마 식었다.
여전히 한증막 수준의 온도였지만.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아.
이거 어쩐다냐.
이대로 회 차가 끝날 때까지 버텨야 하나?
모든 것이 불타 버린 이곳에서?
…가방에 육포가 얼마나 남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