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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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12층 (11)
스테이지의 서쪽 끝에서 괴물들을 불태워 버린 이후, 나와 이디는 하릴없이 스테이지를 날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날아다니다 보면, 가끔 화재로부터 살아남은 괴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괴물들을 사냥하며 지냈다.
이제 비행에 완전히 익숙해진 이디는 그런 생활을 싫어하지 않았다.
사실 비행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모든 것이 불타 버린 지상으로 내려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도 동감이었다.
시꺼먼 숯검정과 허연 재밖에 남지 않은, 황폐해진 대지는 지내기 불편하고 불쾌한 환경이었을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찝찝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옛말에 때린 놈은 잠 못 자고, 맞은 놈은 잘 잔다고 했다.
역시 선인들 말씀에 틀린 말이 하나 없다.
화재를 일으킨 나는 찝찝함에 바닥을 딛고 걸어 다니기도 꺼려지는데, 당한 놈들은 잘 자고 있지 않은가?
모두 다 시체가 되어 잠든 것이긴 하다만.
“케륵. 대장, 이제 우리 마실 물이 없다.”
현실을 일깨워 주는 이디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젠장.
거대한 화재는 밀림 속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었던 냇가나 계곡 등을 모두 증발시켜 버렸다.
물이 없다.
남서쪽에 있던 제법 큰 규모의 호수에는 물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만, 불길을 피해 호수로 달려들었다가 익사한 괴물들의 시체 때문에 도저히 마실 수 있는 물이 아니다.
“일단 버텨 보자…….”
“케륵…….”
조난자가 따로 없다.
젠장, 밀림을 불태우고 상당한 경험치를 얻었지만 잃은 것이 너무 크다.
바캉스 라이프를 잃고, 조난 라이프를 얻었다.
식량도 거의 떨어졌다.
애초에 아공간 가방에는 식량을 많이 넣어 오지 않았다.
이전에 넣어 두었던 육포와 향신료만 조금 남아 있었을 뿐.
매끼마다 이디가 꼬박꼬박 요리해 주는데 뭐 하러 음식을 챙겨 오겠는가.
제기랄.
모든 것이 불타 버린 이 밀림에서 먹을 것을 찾는 건 정말 빌어먹게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에 널린 게 괴물들의 시체였지만, 그냥 시체가 아니라 아주 새까맣게 탄 시체들이었다.
조금이나마 상태가 좋은 시체들 또한 불타 죽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지난 상태다.
썩어 가는 고기를 도축해 요리할 수는 없었다.
가끔 발견되는 살아 있는 괴물들을 사냥해 고기를 얻고 있지만, 정말 드믄 경우다.
하루 종일 하늘을 날아다녀도 살아 있는 괴물 한 마리 발견하기도 어렵다.
아, 그냥 토굴에서 수련에나 집중할걸.
“케륵. 이제 와서 깨달아 봐야 늦었다.”
* * *
이디가 사라졌다.
사자 소환의 지속 시간이 종료된 것이다.
지속 시간에 대해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다시 소환할까?
음…….
다음에 소환하자.
12층에 재도전하게 되거나 다른 층에서 이디가 필요해지면, 그때 소환하자.
지금 소환해 봐야, 이디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리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디가 없어진 후, 내 생활은 더 곤궁해졌다.
살아 있는 괴물을 발견해도 도축할 줄 모르고, 요리할 줄 모른다.
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 것 정도는 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만, 이렇게까지 맛이 없을 줄은 몰랐다.
뭐지, 이디와 함께 있을 때 해 먹었던 바비큐는 이런 시궁창 같은 맛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그동안 이디와 지내면서 미각에 눈을 뜬 것이 악재가 되었다.
이전에는 육포만 먹으면서도 잘 지냈지만, 이제는 맛있는 요리가 먹고 싶다.
눈을 감으면 이디가 해 주었던 음식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식욕의 무서움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똥 싸고 밑을 닦을 것이 없다.
휴지 대용으로 쓰던 나뭇잎이 모두 불타 버린 상태니.
물도 없다.
꾸륵, 꾸륵, 소리를 내는 배를 부여잡고 아공간 가방을 뒤졌다.
무언가 닦을 만한 게 없을까?
휴지는… 없고.
종이… 없다.
갑옷… 으로 닦는 건 좀 아니지.
아윽!
갑자기 훅 들어오는 통증에 괄약근에 힘을 빡 주었다.
아, 미친. 너무 오래 참았더니 머리가 어지럽다.
빨리 싸고 편해지고 싶다.
그러다 아공간 가방에서 찾아낸 물건이 바로 목도리다.
2층 대기실에서 취미 삼아 직접 짠 수제 목도리.
부들부들한 재질의 목도리를 보면서 고민했다.
이 알록달록한 목도리를 휴지로 써도 되는가.
이건 그냥 목도리가 아니다.
정신적으로 몰려 있던 시절, 마음의 위안을 찾기 위해 만든 목도리다.
나에겐 월슨이나 다름없는 녀석이란 말이다.
사실 이름도 있다.
이 목도리의 이름은 호로롱이다.
내 편의를 위해 호로롱을 희생시켜도 좋은 걸까?
도저히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이호재, 12층 : 야, 인간의 존엄과 과거의 소중한 추억 중에 뭐가 중요할까?] [김민혁, 30층 : 바쁨.]이 매정한 자식.
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어쩐지 나를 보며 울고 있는 듯한 호로롱을 손에 꼭 쥐며 마음을 굳혔다.
튜토리얼 헬 난이도, 12층 스테이지. 호로롱 전사.
* * *
[축하합니다. 당신은 최초로 12층 스테이지 관문을 완전히 정복하였습니다.]호로롱을 땅에 묻어 주고, 그 위에 타다 남은 숯을 비석 삼아 꽂아 준 뒤 기도를 하고 있던 중,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복 클리어의 메시지였다.
이제 와서!?
왜? 이렇게 갑자기!
호로롱을 희생시키고, 묘를 만들어 주자마자!
10분만 빨리 클리어됐으면 호로롱이 죽지 않아도 됐잖아!
젠장.
이 시점에 정복 클리어가 달성된 데에는 집히는 구석이 있다.
밀림 전체를 불태워 버렸던 대화재 이후에도 생존해 있던 괴물들이 제법 있었다.
보통 불에 저항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거나, 비행처럼 빠른 이동이 가능했던 소수의 괴물들.
나는 그 괴물들이 정복 클리어를 방해하는 마지막 걸림돌이라 판단하고, 그들을 찾아 사냥하고 다녔다.
그리고 방금, 마지막으로 생존해 있던 괴물이 죽은 것이다.
내가 사냥한 것은 아니지만.
대화재 이후, 밀림의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밀림은 어디까지나 튜토리얼 스테이지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에 의해 밀폐된 공간이다.
이 특수성은 화재와 함께 이곳의 생태계를 아주 완벽하게 작살내 놓았다.
당장 나만 해도 먹을 것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았는가.
밀림 전체를 날아다니는 내가 이러한데, 다른 괴물들은 어쩌겠는가.
걔들은 아공간 가방이나 육포도 없다.
시간상 괴물들이 모두 아사할 만한 시점이기는 하다.
호로롱만 불쌍하게 되었다.
[화기 내성 Lv.1을 획득하였습니다.] [더위 내성 Lv.6, 화상 내성 Lv.12이 화기 내성 Lv.1에 통합됩니다.] [튜토리얼, 헬 난이도 12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모든 상태 이상과 부상이 회복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최초 클리어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5,1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4,9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플레이 기록을 바탕으로 추가 보상을 지급합니다.] [4,4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보통은 여기서 끝나야 할 클리어 메시지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수많은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떠오른 것이다.
[백신전의 모든 신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느림의 신이 크게 만족합니다.] [결투의 신이 당신을 싫어합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생명의 신이 당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숲의 신이 당신을 비난합니다.] [고통의 신이 당신을 향해 미소 짓습니다.] [헌신의 신이 누군가를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오락의 신이 당신을 보고 재밌어합니다.]그렇게 한참 동안 신들의 반응을 보여 주는 메시지가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 수가 딱 백 개.
클리어 후에 이런 메시지를 보는 건 처음이다.
굳이 따지자면, 12층 스테이지보다는 6층 스테이지의 클리어가 더 값진 성과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동안 나에게 관심을 두던 신들의 수가 꾸준히 늘어 왔다.
오늘에 와서 그 신들의 수가 백이 되며 이런 메시지가 나타나는 것일까?
튜토리얼에 존재하는 신들의 수가 모두 합쳐 백일 수도 있겠다.
아직 이 정보를 토대로 무언가를 얻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선 키리키리에게 물어… 보진 못하겠네.
신들에 대한 정보는 비싸니까.
궁금증의 해소는 나중으로 미루자.
그보다 보상을 확인해야지.
우선 추가 보상이다.
스킬이나 아이템이 아닌, 포인트를 받았다.
저번 회 차 때는 클리어에 실패했음에도 추가보상으로 독기 스킬을 얻었었다.
그래서 계속 스킬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12층을 반복해서 도전하려 했던 건데 말이지.
제법 거하게 12층을 클리어했음에도 포인트밖에 못 받았다.
역시 반복 도전을 포기하고 정복 클리어를 노린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사실 이럴 것 같았거든.
그리고 정복 클리어 보상으로 받은 화기 내성 스킬.
2층에서 정복 클리어를 달성하고 받은 것이 정신 오염 면역 스킬이다.
내성류 스킬의 상위 스킬이라고 볼 수 있는 면역 스킬.
현재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면역 스킬이며, 정신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좋은 스킬이다.
2층에서 얻었다는 걸 고려한다면, 사기급 스킬이라고 봐도 좋다.
정신 오염 면역이라는 훌륭한 선례가 있기에, 보상에 대한 기대가 깊어진다.
[화기 내성 (Lv.1)]설명 : 화속성에 대한 내성을 부여한다.
뭐여, 이건.
왜 이렇게 설명이 짧아.
화속성에 대한 내성이라.
더위나 화상처럼 제한적인 범주가 아닌, 속성 전체를 아우르는 내성 스킬이다.
더위 내성과 화상 내성에 비하면 상당히 상위 스킬인 것 같다.
더위 내성의 레벨이 8, 화상 내성의 레벨이 12였는데도 불구하고, 고작 1레벨의 화기 내성 스킬을 얻었다.
독 대내성 스킬을 얻을 당시, 4레벨의 독 내성 스킬이 통합되며 독 대내성 2레벨을 얻었던 걸 감안한다면…….
시간이 나는 대로 효과를 시험해 봐야겠네.
자, 이제 키리키리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흠흠,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리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사실 아주 좀스럽고, 뒤끝도 긴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눈앞의 묘지를 바라보며, 12층 스테이지에 진입한 직후 하였던 다짐을 다시금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호로롱이 묻혀 있는 묘비를 향해 합장하고 기도한 뒤, 포탈 위에 올라섰다.
안녕, 호로롱.
잘 있어. 그리울 거야.
네 복수는 내가 꼭 해 줄게.
“오랜만이야! 이번에는 정말 오랜만이넹!”
포탈을 통해 이동하자마자, 푸른 들판과 키리키리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키리키리는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부산스럽게 떠들었다.
“호오우재애, 이번에도 안 울어? 울어도 되는뎅! 아핳핳.”
나는 아무 말 없이 상점창을 열어 케이크를 구매했다.
* * *
“아아앙! 줘어! 먹던 거 뺏지 마아!”
서러운 눈물로 젖어 있는 키리키리의 얼굴을 보며 비열하게 웃어 보였다.
아핳핳이다, 이 녀석아.
“야! 인간적으로 휴지는 가지고 들어가라고 말해 줬어야지!”
“아앙! 그걸 말해 주면 재미가 없단 말이야!”
본 재판관은 피고인에게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 형을 집행합니다.
키리키리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탈라리아의 날개와 점멸을 사용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키리키리는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멀어지는 케이크를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아아안 됑! 내가 잘못했엉! 날아가지 마! 케이크 주고 날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