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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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13층 (8)
불안감이 치솟아 올랐다.
주지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는 사실은 수많은 위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주지가 말했던 대로, 내가 의식의 너무 깊은 곳까지 내려와 버린 걸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단순히 주지가 말을 멈췄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극도로 위험하다.
아니, 후자가 훨씬 더 위험하다.
나는 지금 주지가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그대로 죽어야 할 처지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내 몸… 아니, 의식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단순히 내 의식이 너무 깊은 곳에 잠겨, 주지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 이후로는 다시 사고의 흐름에 집중하였다.
주지가 나에게 말을 걸어 내 정신을 일깨웠을 때, 나는 잠이 드는 것과 비슷한 감각을 느꼈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고 가정했을 때, 의식을 저 위로 올려 보낼 방법은 사고의 흐름을 더더욱 가속화시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최대한 집중해서, 빠르게, 많은 생각들을 하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거다.
이게 맞는 방법일지는 모르겠다.
사실 내 상태에 대한 가설에도 마찬가지로 확신이 없다.
그래도 일단 해 보는 거지. 뭐, 어쩌겠어.
* * *
언젠가 보았던, SF 영화가 떠올랐다.
우주비행사와 우주선을 이어 주던 선이 사고로 끊어지면서, 우주비행사가 우주 공간 한복판에서 미아가 되는 장면이 있었다.
지금 내 처지가 그 우주비행사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한 가지 나은 점이라면, 언젠가 이 시련은 끝날 거라는 것 정도.
젠장.
무감의 세계는 곧 무한의 세계가 되었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엔 오로지 내 사고만이 존재했다.
무언가가 필요했다.
내 정신을 지탱할 만한 것이 필요했다.
몸에 사고를 집중하였다.
느껴지지 않는 나의 신체에.
혼자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신체의 윤곽을 마음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무감의 세계에 끝없이 펼쳐진 칠흑의 도화지 위에 나의 존재를 그려 냈다.
사실 상상도에 가까운 그림이었다.
감각이 없는데, 내 손이 어디에 있고, 내 다리가 어디에 있고, 내 표정이 어떠한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심지어 그 그림은 계속해서 변화하였다.
어떨 때는 내 몸이 누워 있는 것 같았고, 또 어떨 때는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역시 무의미한 노력이었다.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껴 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내 신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신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고 싶었다.
불안감에 의해 내몰린 강박적인 집착은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과도 같은 내 신체의 예상도에 집중하였다.
* * *
신체의 상태에 대한 사고를 계속하였다.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 짓을 반복했을까?
계속해서 변화하던 신체의 예상도는 이제 고정된 형상이 되었다.
사실 이건 가상의 캐릭터나 다름이 없었다.
인터넷 미니 홈피에 등장하는 계정의 캐릭터처럼, 가상의 나를 표현해 주는.
내 신체는 반듯이 누워 있는 상태였다.
침을 조금 흘리고 있는 것이 흠이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손은 배 위에 올려져 있었고, 다리는 사람인 자로 뻗어 있었다.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공상물이라기엔… 너무나 실감 났다.
이게 정말 허상인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아무런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장기간에 걸쳐 감지해 내는데 성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저 내가 상상해 낸 허구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 그렇다면 허구가 아닌 신체는 무엇인가?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리인가. 허구가 아닌 신체는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지. 느끼지 못할 뿐. 아니,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무런 논리도 없이 수많은 물음들이 떠올랐고, 또 수많은 답들이 떠올랐다.
어느새 내 정신은 둘로, 그리고 그 이상으로 나누어져 질문과 대답을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났다.
[정신 오염 면역을 획득하였습니다.]* * *
[그래서 말인데, 우리 사원의 아침 메뉴는 조금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네.]느닷없이 주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다음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뭐야, 이게.
* * *
어느 순간, 갑자기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실제 신체 말고, 내 사고가 불안감을 줄여 보기 위해 그려 낸 허구의 신체 말이다.
나는 허구의 신체가 말 그대로 허구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
이건 그냥 내가 상상한 허상이라고.
내 사고가 만들어 낸 가상의 신체가 움직인다.
손을 들어 보고, 얼굴을 만지고, 팔다리를 주물러 보았다.
잘 움직인다.
그리고 느껴진다.
이런 미친.
이건 환상, 환각, 환통이다.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실감 나는 감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나도 보통 미친 게 아니다.
내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신체를, 사고의 신체라고 이름 지었다.
사고의 신체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다시 명상을 시작했다.
이것이 내 망상으로 이루어진 거짓된 신체라 할지라도, 어쨌든 이 신체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망망대해에 맨몸으로 던져진 사람에게, 커다란 나무판자 하나가 주어진 듯한 기분이다.
어쨌든 의지가 된다.
[명상을 획득하였습니다.]* * *
[나는 개인적으로 닭 요리를 좋아한다네. 승려라고 굳이 채식만을 고집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보네.]또다시 주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비로소 깨달았다.
시간의 흐름이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이다.
주지가 말을 멈춘 것도 아니고, 내가 의식 속에 잠겨 버린 것도 아니다.
단지 시간이 느리게, 아주 극도로 느리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내 사고가 정도 이상으로 가속화되어 있다.
그래서 수 시간, 수 일 분량의 생각을 마칠 동안 찰나의 시간만이 흐르는 것이다.
내 생각대로 주지의 다음 말을 듣기까지는 또, 체감상 며칠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닭 요리의 묘미는 닭 봉이라고 생각하네. 자네 취향은 어떠한가?]젠장.
시련의 조건이었던 48시간을 버티기 위해, 나는 과연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이 사고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 * *
결국 극복해 내었다!
48시간이 지나고, 시련이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이 미친 공간에서 끝없는 무료함과 불안감을 견뎌 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그냥, 이 모든 것을 고통으로 이해하였다.
나는 지금 내성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으하하하.
나는 시발, 지금 일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사고와 그 사고가 만들어 낸 공상의 신체만이 남겨진 세상 속에서 관조를 계속했다.
* * *
[보게나, 이 융통성 없는 급사가 또 감자를 가져다 주었네. 그래도 맛있어 보이는군. 미안하지만 자네는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나 혼자 먹겠네.]주지의 두 번째 식사 시간이다.
과연 저 주지는 하루에 몇 번 식사를 하는 걸까?
하루에 한 번만 밥을 먹는 체질이면 좋겠다.
그럼 벌써 이틀 가까이 지났다는 거 아닌가.
하지만,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먹는다면… 아직 하루도 안 지났다는 뜻이다.
제발 주지가 소식하는 체질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 * *
이상한 일이다.
마력이 모이지 않는다.
가지고 있던 마력을 모두 소진해 버렸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복되는 마력이 있을 것이다.
그 마력들은 어디로 갔는가.
설마, 시련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한 줌의 마력조차 회복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만이 지났다고?
그럴 리 없다.
아무리 시간 감각이 고장 난 상태라지만, 시발, 체감상 몇 달이 넘는 시간을 이러고 있었는데, 그건 너무하잖아.
[감자도 먹다 보면 고소하니, 맛있단 말이지.]넌 닥쳐 좀!
* * *
나는 이제 사고의 신체를 완벽히 인지하고 있다.
얼굴의 이목구비와 팔다리, 사지 모두 인지하고 있다.
정말 이것이 내 사고가 만들어 낸 허상일까?
믿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제의 신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뭐가 다른 것일까?
이 사고의 신체도 가지고 있을 건 다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만져지고, 느껴진다.
사고의 신체로 마력 회로를 돌렸다.
사고의 신체에도 마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돌렸다.
마력 회로의 경로를 따라, 신체를 계속해서 관조했다.
어차피, 내 내면에 대한 관조도 할 만큼 하였다.
내 과거의 기억에 대한 되새김도 질릴 만큼 하였다.
머리를 비우고, 마력 회로의 경로를 따라 의식을 움직였다.
[마력 회로를 획득하였습니다.]마력을 발견했다.
우연히 발견하였다.
어디 숨겨져 있던 마력이 아니다.
일전에 생각해 보았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동으로 수복되는 마력의 일부였다.
놀랍게도 이 마력은, 나도 모르는 사이 사고의 신체를 인지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다행히 마력은 소량이나마 남아 있었다.
이 조금 남은 마력을 이용해 내 몸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가능하면, 이 방 안의 상황과 주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마력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마력 회로를 통해 마력을 순환시켰다.
본래라면, 모든 감각이 마비되어 마력 회로의 경로를 인지할 수 없다.
그리고 마력의 경로에 착오가 생기면, 자칫 마력이 폭주할 수 있기에, 무턱대고 마력을 체내에서 순환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사고의 신체가 도움이 되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내 신체를 본떠, 나의 사고가 상상해 낸 사고의 신체.
마력 회로의 경로까지도 세세히 구현된 사고의 신체를 토대로, 나는 마력을 순환시켰다.
사고의 신체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체내에 마력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련이 시작된 이후 남은 마력을 순환시켜 불리기보다는, 단순히 아껴 쓰는 것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차분히 마력을 굴렸다.
조금씩, 조금씩.
실수로라도 이 극소량의 마력이 그대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신체와 주위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마력을 조금씩 불리는 데 집중했다.
[이번에는 고구마가 왔군. 난 고구마보다는 감자가 좋더군.]* * *
드디어 충분한 양의 마력을 모았다.
드디어, 드디어!
마력을 퍼트리기에 앞서, 사고의 신체를 움직여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집중해야 한다.
이 공간에서는 마력이 빠른 속도로 소진된다.
지금껏 모아 온 이 마력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필요한 정보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야 한다.
마음을 굳게 먹고, 마력을 퍼트렸다.
가장 먼저 마력에 의해 감지된 것은 내 신체였다.
내 신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마치 사고의 신체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도 내가 저러고 있단 말이야?
사고의 신체가 허상이 아닌 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의 공간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추측하고 상상하며, 내 신체의 윤곽을 그려 냈다.
그렇게 그려진 신체는 결국 허상일 거라 믿고, 사고의 신체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허상이 아니었다.
내가 그려 낸 것은 정답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이 공간에서 실제 내 신체를 정확히 그려 내어 인지했다.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기에 앞서, 마력을 더 멀리 퍼트렸다.
고민은 나중으로 미뤄야 한다.
지금은 이미 밖으로 내보낸 마력에 집중해, 최대한 많은 것을 감지해 내야 한다.
방 중앙에 앉아 있는 주지를 감지해 냈다.
다행히 주지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력은 더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33번 방의 입구 문과 출구 문까지, 그리고 그 너머로 퍼져 나갔다.
32번 방까지 마력이 퍼져 나갔다.
32번 방 중앙에 누워 있는 수도승을 감지했다.
31번 방도, 30번 방도 감지해 냈다.
25번 방의 수도승도 감지해 냈다.
그렇게 마력은 퍼지고 퍼져, 결국은 스테이지 초입, 1번 방에까지 미쳤다.
당황스럽다.
내 마력 양으로는, 그리고 내 마력 운용 수준으로는 절대 이 정도의 범위를 감지해 낼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지는 사원의 초입부터 마력을 이용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 현상이 주지의 능력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감을 획득하였습니다.] [신성력 내성을 획득하였습니다.] [느림의 신이 만족합니다.] [결투의 신이 툴툴거립니다.] [거의 다 왔다네. 도전자여, 조금만 더 버티게.]* * *
[정신 오염 면역 Lv.3을 획득하였습니다.] [명상 Lv.11을 획득하였습니다.] [마력 회로 Lv.15을 획득하였습니다.] [기감 Lv.1을 획득하였습니다.] [신성력 내성 Lv.1을 획득하였습니다.]한번 마력을 넓게 퍼트려 사원 전체를 감지해 낸 이후, 시간 감각이 조금은 회복되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주지의 말소리가 체감상 1분에 한 번씩 들려올 정도로.
[수고 많았네. 도전자여, 첫 번째 시련이 종료되었네.]정말 끝난 건가?
[그렇다네. 실감이 나지 않는가?]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조금 다른 것이 있기는 하는군.
[첫 번째 시련이 끝나면서, 이 방의 몇 가지 효과들이 사라졌으니 말일세.]예를 들어, 사고의 가속이라든지.
집중력의 향상이라든지.
시간 감각의 마비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지?
[그렇지. 잘 아는구먼.]가뜩이나 사람 미치게 만드는 시련인데, 저런 것들까지 넣을 필요가 있나?
방금 시련을 통과한 당사자로서 사고와 집중력의 강화는 정말 재앙처럼 느껴졌다.
사고가 지나치게 가속화되어, 시간의 흐름이 내 사고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내 사고에 갇혀 버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영원히 사고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봐.
[사실, 자네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유난히 심했던 것 같네. 결투 신의 안배 같지는 않다만… 흠. 하지만, 저런 효과들 덕분에 얻는 것도 있지 않는가?]확실히 얻은 것은 있다.
하지만 다신 해 보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 덕을 보는 사람보다, 미쳐서 죽을 사람이 훨씬 많을 거다.
[으허허허. 실제로 그렇다네.]웃을일이냐…….
[도전자여, 이제 두번째 시련에 곧바로 도전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하네. 시간이 없다네.]시간이 없다니?
[느껴지진 않겠지만, 지금 자네의 몸은 과도한 사고와 집중의 여파로 죽어 가고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