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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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2)
2미터가 넘는 신장, 우락부락한 근육들, 흉포해 보이는 인상.
딱 봐도 잡몹으로는 안 보이는 녀석들이다.
거기에 무장 상태도 상당하다.
각자 질 좋은 철제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하지만 헬 난이도 산 고블린들의 진면목은 그들의 지능적인 전투 수행 능력과 잘 짜인 포메이션에 있다.
전위를 책임지는 2명의 방패병이 전열에 서고 그 뒤에 2명의 창병이 창의 긴 길이를 이용해 적을 견제한다.
그 뒤에는 2명의 석궁병이 원거리 공격을 통해 지원 사격을 가한다.
방패병, 창병, 석궁병의 간격을 노리고 들어오는 적을 요격하기 위한 검병 한 명까지, 총 일곱으로 이루어진 저 포메이션은 쉽게 뚫리지 않는다.
지금껏, 파티를 이루어 몬스터를 상대해 왔던 도전자들은 생경함을 느낄 것이다.
역으로 포메이션을 짜고 있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혼자서 그들의 진형을 무너뜨리며 괴물처럼 날뛰어야 하니.
잘 짜인 진형의 위력은 인류의 오랜 전쟁사를 통해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저들의 진형을 혼자서 무너뜨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고블린들에 비해 압도적인 실력.
그리고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도전자는 많지 않다.
이미 15회 차나 진행된 튜토리얼이지만, 입장과 동시에 성장과 클리어에 목숨을 걸고 달리는 도전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고블린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도전자는 적을 것이다.
경합의 예선전에서 고블린이 등장한다니.
생각해 보니 제법 그럴싸한 배정으로 보인다.
우선, 혼자 싸우는 것에 약점이 있거나 익숙하지 않은 도전자는 모두 탈락할 것이다.
경합 개인전의 특성상, 파티에서 후방 지원이나 보조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이들은 크게 활약할 가능성이 적다.
역할군과 별개로 호기심에 출전한 저층 도전자들도 모두 탈락할 것이다.
본선이 시작되기에 앞서, 수준 미달의 도전자들을 탈락시키기에는 적절한 난이도이다.
거기에 더해, 방어 지향적인 헬 난이도 산 고블린들의 전투 성향을 생각해 본다면,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예선 상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내 상대로는 너무 김빠질 뿐이다.
주위의 다른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크헉… 하, 항복!”
판단이 빠르다.
원거리에서 공격을 퍼붓던 궁수가 빠르게 항복을 선언하였다.
고블린들은 방패병들을 앞세워, 안전하게 거리를 좁혔다.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방패병의 뒤에 몸을 가리고 있던 검병은 빠르게 대시해 아무런 제지 없이 궁수 도전자를 향해 태클을 걸어 넘어뜨렸다.
궁수 도전자는 곧장 항복을 선언했다.
고블린들이 역소환되고, 궁수 도전자는 관중석으로 이동되었다.
보아하니 원거리에 특화된 도전자들은 예선을 통과하는 게 쉽지 않겠다.
전투에 소극적이었던 도전자들이나 힐러들을 제외한 원거리 공격수들은 생각보다 경합에 많이 참가한 편이었다.
일대일 대결에서 거리가 좁혀지기 전, 사거리의 우위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었는데, 고블린들을 상대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 옆 경기장의 도전자는 육중한 도끼로, 방패병들의 커다란 방패를 열심히 두들기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저게. 장작 패는 것도 아니고.
힘만 들지. 무식하게시리.
저렇게 무의미하게 방패병들과 씨름하다, 체력이 떨어지는 순간 승부가 갈릴 것이다.
음…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겠는데?
항복이 늦는다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도전자들도 더러 있어 보인다.
다른 난이도의 도전자들은 고블린들처럼 지능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몬스터들을 만난 경험이 적다.
고층의 랭커들은 물론 만나 봤겠지만.
그나저나.
“너희는 왜 안 움직이냐.”
[이, 인간이 우리 말 한다.] [켁. 속지 마라. 악마의 속삭임이다. 키엑.]뭐래.
“그러지 말고 그냥 항복하는 게 어때?”
김민혁의 말대로 첫 번째 경합에선 힘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조용히 통과하는 것이 좋지.
저 녀석들 잡아 봐야 경험치도 별로 안 줄 텐데.
[하, 항복, 할 수 있는 건가? 키엑.] [모르겠다. 해도 되는 거 아닌가?]지들끼리 수군거리며 토론에 들어갔다.
한참을 의견을 교환하던 고블린들의 표정이 일시에 멍해졌다.
저건…
이디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키엑… 켁. 싸워야 한다.]안타까운 일이네.
시스템적으로 그들에게 전투가 강요되는 모양이다.
“그럼 할 수 없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고블린들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키엑! 키엑! 살살, 살살해달라!]유난히 겁이 많은 고블린이 하나 있다.
“알았어. 살살 할게.”
[멍청이! 악마에게 자비를 바라면 안 되는 거다. 큰일 나는 거다.]얘들은 왜 초면에 자꾸 나를 악마라고 부르냐.
기분 나쁘게.
바닥을 박차고, 방패병의 전면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방패 위를 강하게 걷어찼다.
쾅!
시끄러운 충격음과 함께 방패병과 석궁병 하나가 경기장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가볍게 주먹을 휘둘러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른 방패병의 턱을 돌려 주고, 그 방패를 뺏어 들어 검병을 후려쳤다.
동시에 찔러 들어오는 두 개의 창을 피하며, 거리를 좁혔다.
두 창병에겐 공평하게 똑같이 명치에 주먹을 꽃아 넣어 기절시켰다.
마지막으로 남은 석궁병 하나는…….
[사, 살살…….]“살살?”
고블린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살! 살살!]살살하라는 건지, 빨리 죽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뒤로 돌아봐.”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석궁병은 뒷목을 때려 기절시켰다.
뒷목을 때려서 기절시키는 것에 성공한 건 처음이다.
은근히 이게 전투에 써먹기 어렵단 말이지.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요령껏 기절시켰다기보다는, 힘으로 우악스럽게 기절시킨 것이지만.
막간에 신경 쓰고 있던 도전과제를 하나 달성한 듯한 기분이다.
[경합 개인전 부문, 예선을 통과하셨습니다.] [경합 개인전 부문, 본선은 1일 차, 12시 이후에 시작됩니다.] [관중석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에이, 몸도 안 풀렸네.
관중석에서의 그리고 다른 도전자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이동.”
* * *
관중석으로 이동되자마자, 김민혁이 앉아 있는 곳을 찾아갔다.
“야, 적당히 하라니까.”
“적당히 한 거야.”
“무슨. 발차기 한 방에 고블린 두 마리가 날아가는 걸,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러니까 그게 적당히 한 거야.”
“어휴.”
김민혁의 옆자리에는 박종식과 박정아가 있었다.
조장급들끼리 모여 있었구만.
“종식 형도 참가 안 했어요?”
“했지. 내가 제일 먼저 통과하고 나온 거야.”
오.
“오올.”
“오올은 무슨.”
박종식 정도 되는 하드 난이도의 랭커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통과할 난이도이긴 하다.
“야, 여기 인사해라. 단체전에 같이 참가하게 될 거야. 이름은 이유정 씨. 알지? 이지 난이도의 살림꾼.”
김민혁의 소개에, 박정아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네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뭘 감사해.
이 여자도 날 무서워하나?
그런 기색이 태도에서 묻어나온다.
“단장도.”
옆에 앉아 있는 박정아에게도 손을 들어 인사했다.
박정아는 갑자기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안!”
첫마디부터 삑사리를 냈다.
“안… 녕하셨어요?”
왜 다시 존대로 돌아간 거야.
저번 대화합의 날에 분명 반말하기로 했었는데.
그날의 창피함과 오글거림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저! 저는 그만, 가 볼 데가 있어서요. 먼저 가 볼게요. 나중에 봬요.”
박정아는 옆자리 의자에 부딪히고, 발을 헛디뎌 휘청거리며 부산스럽게 자리를 떴다.
아니, 여기서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이유정도 급히 그녀를 따라 나갔다.
박종식이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상태가 한층 심각해졌는데.”
“저번 대화합의 날에 있었던 일 때문에 저러는 거지? 야, 김민혁이. 이거 어쩔 거야. 역효과 났잖아.”
“나도 모르겠다, 이제는.”
심각한 문제다.
저번 대화합의 날에 박정아에게 반말을 시키며 생쇼를 했던 이유는, 그녀가 나를 필요 이상으로 공손히 대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저런 태도는 어떤가?
단순히 내 위치와 조직의 기강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간다.
“난 별다른 방법이 안 떠오르는데. 너희는 어떠냐. 젊은 사람들이 아이디어 좀 내봐라.”
“나도 모르겠어요. 야, 당사자로서 떠오르는 방법 없냐, 호가 놈아?”
호가 놈이라니.
그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호칭이냐.
음… 방법이라.
박정아가 나를 유별나게 대하는 이유는 아마, 첫 번째 대화합의 날에 있었던 일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녀를 구해 준 것이 사실이니, 충분히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그날 이후, 그녀가 나를 지나치게 우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에겐 내가 어디 동화책에서 나온 백마 탄 왕자님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다시 말해, 나에 대한 환상 때문에 콩깍지가 낀 거다.
그동안 내가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그리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 번 보여 줬을 텐데.
콩깍지는 여전히 벗겨지지 않았다.
“경합은 저녁 시간쯤에 끝나겠지?”
“너 하는 거로 봐서는, 그 전에 끝날 수도 있겠다.”
“그럼 밤에 술 마시자, 우리끼리.”
“술? 그거 좋지. 술은 있냐?”
박종식이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그럼요. 인벤토리에 제법 있어요.”
많은 양은 아니지만, 네 사람이 하룻밤 마실 정도는 된다.
안주도 충분하다.
“술 마시는 건 나도 찬성인데, 그게 박정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까?”
김민혁이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뭐… 술 마시고 개처럼 노는 모습을 보여 주면 환상도 깨지겠지.”
“키야, 명답이다. 오늘 한번 개처럼 놀아 보자!”
마음은 벌써 술판에 가 있는 박종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 * *
[경합 개인전 부문, 본선이 시작됩니다.]드디어 본선이 시작되었다.
도전자와 도전자가 대결을 펼치는 경합의 메인이벤트다.
[참가하시겠습니까?]보류다.
메시지를 무시하고 룰 북을 펼쳤다.
본선 경합은 조금 특이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태그 매치 같은 방식이다.
두 도전자가 대결해, 승자는 경기장에 남고, 패자는 탈락해 관중석으로 돌아간다.
승리를 거듭할 때마다 일종의 포인트를 얻고, 그 포인트 획득량에 따라 보상이 정해진다.
특이한 점은, 첫 번째 출전자에게는 보너스 포인트가 있다는 점.
그리고 최종 우승자에 대한 보상은 따로 존재한다는 점.
보상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는 우승, 첫 출전, 다승까지 세 가지가 있는 셈이다.
최대한 많은 보상을 얻기 위해선 첫 출전으로 연승을 거듭해 우승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다만.
“야, 너는 지금 나가면 안 된다. 알지?”
“알아, 자식아.”
내가 지금 나가면, 그대로 본선이 끝나 버릴 것이다.
아무리 보상이 탐나도, 사람들이 즐거워하는데 그 잔치판을 엎어 버리면서까지 얻고 싶진 않다.
물론 제일 중요한 우승 보상은 내 거지만.
그새 첫 번째 도전자들 두 명이 경기장에 소환되었다.
두 사람 모두 근접 전사였다.
1분간의 대기시간이 주어지고, 곧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것도 나름 흥미진진한데.
두 사람의 수준이 고만고만한지라, 손에 땀을 쥐는 승부가 펼쳐졌다.
원래…
“좆밥 싸움이 제일 재밌는 법이지.”
옆에서 박종식이 내 생각과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이거 진짜 재밌는데. 다음번에 경합이 또 열리면, 돈 내기라도 해보는 게 어때?”
“스포츠 토토? 글쎄, 사행성은 함부로 써먹을게 아니라서.”
“우리가 안 해도 누군가가 하게 될 거야. 우리가 직접 주최하는 게 나아.”
“그런가. 나중에 회의 안건으로 올려 볼게.”
인벤토리에서 감자 칩을 꺼내 먹으면서, 관람을 계속했다.
도전자들의 치열한 대결을 보고 있으니, 은근 기분이 들뜨고 있다.
다음번… 다음, 다음 차례에는 나가 볼까?
“너는 막판에, 다 끝나갈 때 나가야 된다. 알지?”
에휴, 얘는 가끔 내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나는?”
“종식 형도 안 돼요. 형, 아직 불참 안 했어요? 빨리 포기하고 편하게 구경하세요.”
갈수록 김민혁이 깍쟁이 시누이처럼 변해 가는 것 같다.
경합 본선의 또 다른 특징은 대결에 있어서 별다른 규제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아이템이 사용 가능하다.
1회용 아이템들도 물론 사용할 수 있다
급소 공격에 대한 제한도 없다.
심지어 경기 도중 살인마저도 가능하다.
복싱이나 이종격투기 시합이라기보다는 정말 콜로세움에서나 펼쳐졌을 검투 경기에 가깝다.
물론, 자경단은 경기 도중의 살인을 엄격히 금했다.
예기치 못한 실수로 일어난 살인에는 참작의 여지가 있으나, 고의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 즉시 처벌하겠다는 뜻을 경합 시작 2주 전부터 커뮤니티에 공지했었다.
살인뿐만이 아니라,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괴롭히거나, 항복하지 못하게 손과 입을 봉쇄하는 행위 또한 금지했다.
본선 진출자 대부분이 상층의 랭커이기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박종식이 경합을 포기하고 대기하기로 하였다.
정말 그러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빠르게 피의자를 제압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자경단 전투 조원 몇 명이 이미 대기 중이지만, 경합에 참가 중인 도전자 중에는 전투 조원만으로 제압이 힘든 상대도 있다.
자경단이 이런 일에까지 시스템이 허용한 곳까지 규칙을 만들어 규제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자경단의 결정으로 호기심으로, 맘 편히 참가해 보는 도전자들도 많이 늘었고, 경합 자체가 조금 더 평화적인 이벤트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박종식은 미련을 못 버리고 예선에는 참가했으나, 본선에는 예정대로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 김민혁의 결정이다.
“호재야.”
“네, 형.”
“우리 역할 바꿀까? 네가 나 대신 감시역을 맡아 주면 안 되겠냐? 내가 우승하면 우승 보상은 너 줄게.”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