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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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3)
[출전자 이형진이 네 번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출전하시겠습니까?]“야, 이제 내가 출전해도 되지 않을까?”
내 말에 김민혁은 남은 출전자들의 수를 세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하드 난이도 쪽 랭커들 몇 명이 안 나왔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형진에게 도전하는 출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이형진이 헬 난이도 도전자라지만, 하드 난이도 상위 랭커 중엔 충분히 그를 상대할 만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쉽게 이형진을 제압하진 못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다음 도전자에게 패배하고 우승을 놓칠까 하는 걱정으로 출전하지 않는 듯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이형진을 떨어뜨려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걱정도 팔자다.
진지하게 우승을 노리고 있다니. 내가 있는데. 꿈도 야무지다.
[출전자 이형진이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1분 남았습니다.] [출전하시겠습니까?]관중석 이곳저곳에 앉아 있던 랭커들이 일순 크게 당황하였다.
눈치게임의 시작이다.
이형진과 대결을 펼치는 도전자는 우승에서 크게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그대로 이형진이 우승을 차지한다.
“30초까지 아무도 안 나오면, 내가 나간다.”
“으음… 분명 10초 이내에 누군가 도전할걸.”
“과한 신중함과 욕심은 언제나 독이 되어 돌아온다는 교훈을 알려 줘야지.”
이형진을 직접 상대하기 싫어 도전을 미루던 랭커들은 내가 출전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과감하게 도전하고 들이받는 것도 필요한 법이야.”
“그래도 네가 혼자서 하드 랭커들을 연이어 때려잡는 건, 좀…….”
“살살할게.”
김민혁도 더이상 반대하진 않았다.
내 설득에 이유를 납득했다기보다는, 그냥 경합이 지루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실제로 급격히 지루해지고 있는 경합의 전개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거나, 경합보다는 옆사람과 떠드는 데 집중하는 관중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왕 열리는 경합, 사람들에게 엔터테인먼트적인 오락을 제공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자경단의 결정이다.
내가 출전한다면, 관중들의 기대와 이목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출전자 이형진이 우승을 차지하기끼지 30초 남았습니다.] [출전하시겠습니까?]“예스.”
대답을 마치자마자, 경기장 한복판으로 이동되었다.
[경합 개인전 부문, 본선의 14번째 대결이 시작됩니다.] [출전자 이형진 VS 이호재] [대결 시작까지 남은 대기 시간 : 1분]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좋아, 좋아.
솔직히 말해서, 관중들에게 이런 관심을 받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약간 관심종자 같은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은퇴한 스포츠 선수들 중 이 감각을 못 잊어 은퇴 후 우울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도 그랬고.
“호재 형… 벌써 나오시면 어떡해요.”
“아무도 안 나오는데 어쩌겠냐.”
“끝나기 전에 누군가 나왔을걸요.”
“그럼 재미가 없잖아.”
이형진 이 녀석 얼굴이 아주 뭐 씹은 꼴이 되었다.
저기 관중석에서 눈치 게임을 하던 랭커들도 마찬가지고.
“후. 뭐, 어차피 우승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지만, 승수는 조금 더 올려 보고 싶었어요.”
“충분히 이겼어, 자식아.”
“네… 형. 그럼 잘 부탁드려요. 살살 해 주세요.”
“오냐.”
[대결이 시작됩니다.]1분의 대기시간이 끝나자마자, 이형진이 앞으로 빠르게 대쉬해 들어왔다.
이형진의 장점은 나와 마찬가지로 속도에 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나는 시작 무기로 선택한 방패의 장점을 살려, 공격을 막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형진은 오로지 회피에만 의존하고 있다.
가끔 의도적으로 공격을 몸으로 막기도 하는 나와는 성향이 다르다.
안전지향주의적이다. 안 좋게 말한다면 겁이 많다.
그래서 이렇게.
부웅-
정면으로 내찌른 정권이 바람 소리를 일으켰다.
직선으로 파고들던 이형진은 급하게 방향을 틀어 왼편으로 나를 지나쳤다.
급히 방향을 바꾼 영향인지 발목이 흔들린다.
자기 속도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군.
게다가 제대로 공격 범위에 들어가지도 못한 내 정권을 지나치게 의식해, 먼저 이동 경로를 틀어버렸다.
이런 멍청한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더 파고들었어야지.
아직 4층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전투에서의 판단력이 떨어진다.
뒤에서 발차기가 날아든다.
시야 사각에서의 공격은 좋지만, 너무 뻔하다.
그리고 거긴 내 시야의 사각도 아니다.
날아드는 이형진의 다리를 손으로 잡아챘다.
“항복!”
이형진은 냅다 항복을 선언해 버렸다.
포기가 너무 빠르다.
“왜 조금 더 하지. 김빠지게 스리.”
[출전자 이호재가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흐아… 차이가 정말 많이 나네요.”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고칠 점이 보이긴 하는데, 나중에 알려 줄게.”
“네, 형. 우승하세요!”
응원과 함께 이형진은 관중석으로 이동되었다.
* * *
내가 출전한 이후, 아무도 도전하지 않고 그대로 우승해 버릴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제법 많은 랭커가 내게 도전해 왔다.
생각보다 온화하게 끝난 이형진과의 대결 때문인지, 나에게 도전하고 자신의 힘을 가늠해 보려는 도전자들이 많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출전자 이호재가 다섯 번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하드 난이도의 기대주, 이준석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이제 나한테 도전할 만한 랭커들은 다 도전한 것 같다.
저 멀리서 김민혁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벙긋거리며 뭔가를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적당히 하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난 정말로 적당히 하고 있는 중이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간결한 움직임만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있다.
화려한 권능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밋밋해 보이는 동작들 위주로 사용하고 있다.
분명 내가 제일 강해 보이는 것은 여전하겠지만, 랭커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괴물은 아니네. 어쩌면 이길 수도 있겠다.
막연히 그런 기대를 품을 수 있을 정도로만.
본래 자경단의 무력을 맡고 있는 내게 그러한 이미지가 생기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사실 나는 강해 보이면 보일수록 자경단에 도움이 된다. 압도적으로 보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김민혁은 외국인들과 함께하게 될, 두 번째 경합을 위해 판을 짜고 있다.
그때, 익숙한 모습의 남자가 경기장으로 이동되었다.
[경합 개인전 부문, 본선의 19번째 대진이 시작됩니다.] [출전자 이호재 VS 이찬용]출전자 명단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나자마자 관중석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이찬용.
튜토리얼 최상층 도전자이다.
자경단이 최초의 튜토리얼 클리어를 위해 공략을 지원하고 있는 도전자이기도 하다.
커뮤니티에서 종종 벌어지는 랭커 중 최강은 누구냐, 하는 설전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이찬용이 공략 중인 층수를 근거로 그가 최강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다.
하지만 누구도 확신하지 못 한다.
그에게는 힘을 가늠해 보기 위한 비교 대상이 없다.
보통 랭커라 함은, 노말 난이도와 하드 난이도의 상층 플레이어를 뜻한다.
노말 난이도 랭커는 보통 50층 전후, 하드 난이도 랭커는 30층 전후를 공략하고 있다.
랭커들의 강함은 보통 그들이 공략 중인 층수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이지 난이도 89층 플레이어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가?
이찬용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누가 89층 근처에라도 가봤어야지.
“형은 이런 데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요.”
이찬용은 말 그대로 튜토리얼 공략에 목숨을 내놓은 사람처럼, 클리어에 집착하고 몰두하던 사람이다.
강함을 원하는 사람도 아니고, 도전을 원하는 사람도 아니고, 오락을 원하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가족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설마 나를 상대로 우승을 거두고,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다 보니까.”
이찬용이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벽에 한번 막히다 보니, 비로소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더라고.”
이찬용이 89층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보고서도 작성했었으니까.
“그래서 나와 본 거야. 경험 삼아.”
경험이라.
경험은 중요하지.
“잘 부탁해.”
“예. 잘 부탁합니다.”
[대결이 시작됩니다.]까다로운 싸움이다.
전력을 모르는 적을 상대로 전력을 숨기며 싸워야 한다.
관중석에선 김민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지켜보고 있다.
김민혁이 원하는 건, 내가 고전하거나 팽팽한 싸움이 계속되다, 마지막에 내가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겠지.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필요한 대로만 움직이던가.
[점멸]점멸을 사용해 이찬용의 정면으로 도약하자마자, 그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제법 빠른 반응 속도로 이찬용이 가드를 올렸고, 내 주먹은 그 가드 위를 강하게 강타했다.
콰앙-
폭약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이찬용의 몸이 경기장 밖으로 날아갔다.
* * *
“내가 적당히 하랬지.”
“아, 거 미안하다는데, 계속 그러네. 그만 좀 해라.”
나와 김민혁은 경합이 끝나고 숙박 시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경기장에서 모든 인원이 퇴장하는 것을 확인하느라, 다른 사람들보다는 늦게 경기장에서 나와야 했다.
숙박 시설은 10층 규모의 목조 건물이었다.
1층에는 커다란 식당이 있었고, 2층부터는 개인실이 빽빽이 들어선 여관 같은 건물이다.
자경단은 임의로 사람들에게 방을 배정해 주었다.
남녀별로 층을 나누고, 다시 난이도별로 층을 나누었다.
물론 강제적인 배정은 아니었고, 방을 옮기길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옮겨 주었다.
어차피 사람 수보다 방의 수가 많을 정도로 큰 숙소였으니.
다만, 경합이 끝난 이후, 새롭게 친해진 사람들끼리 뭉치면서 방의 이동이 빈번해졌고, 덕분에 방의 배정을 담당한 자경단원들이 매우 바쁘다고 한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옆에서 걷고 있던 김민혁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야아, 진짜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스킬은 점멸밖에 안 썼어.”
“그래서 원 펀치로 끝장냈냐? 네가 원펀맨이냐? 빡빡이냐? 이러면 계획이 망가지잖아.”
“나는 이건 이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해.”
“무슨 소리야.”
“그냥… 빌미를 주기 전에 기회도 줘 보고 싶었어.”
김민혁은 잠시 침묵하더니,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하아, 모르겠다. 나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나중에 다시 생각하자.”
그래, 그게 편하다. 맞는 판단이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김민혁을 무시하고 인벤토리를 열어 우승 보상을 확인했다.
[첫 번째 경합의 우승자를 위한 수수께끼 상자]설명 : 처음으로 개최된 경합의 우승자를 위한 보상이다. 상자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나, 분명 우승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뭐, 어쨌든 우승하니까 기분은 좋네.
저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박종식과 박정아의 모습이 보였다.
여관 건물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축하연 삼아 술 마시고 놀면 딱이네.
완벽한 플랜이다.
* * *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박종식의 방으로 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술자리는 절반의 성과만을 거둘 수 있었다.
나나 박종식은 물론이고 박정아와 김민혁 또한 독 내성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독 내성은 술에 반응했다.
결국 우리 네 사람은 전혀 술에 취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에 취하는 데는 성공했다.
술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마시며 술 게임을 하고 재밌게 놀 수 있었다.
특히 박종식은 마치 술자리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김민혁은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미친놈처럼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박정아가 웃는 모습은 오늘 처음 본 것 같다.
언제나 딱딱한 무표정만을 고수하던 그녀가 밝게 웃어 보이자, 정말로 평소와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렇게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든 것이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프로게이머 시절 하락세를 타기 전 가졌던 술자리가 마지막이었나?
종종 이런 술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음번에는 네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세 사람도 튜토리얼에 들어온 후 그리 즐겁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각자 업무와 튜토리얼 공략에 몰두하고, 과로와 눈물과 죽음에 익숙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분명 내가 그렇듯, 그들도 이번 술자리에서 잠시나마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 수 있었을 것이다.
박정아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다.
여전히 나를 편하게 하대하지는 못했으나, 같이 웃고 떠들다 보니, 행동거지에서 불편함이 사라졌다.
최소한 사람들 앞에서 나를 대할 때, 어색한 모습을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술자리가 끝난 후, 나는 내게 배정된 방으로 이동했다.
마음 같아서는 밤새 놀고 싶었으나, 술이 다 떨어지기도 했고 김민혁에게는 내일 아침 일찍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여 술자리를 마치고 헤어졌다.
방의 침대에 누워 있으니, 갑자기 또 쓸쓸해졌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웃고 떠들어서인지, 조용한 방이 너무나도 적막하게 느껴졌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한숨 자면 시간이 딱 맞겠지만, 불면증 때문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보면서 양을 세다, 결국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책이나 볼까?
아까 읽으려다 말았던 마법책을 꺼내 들었다.
침대 옆의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으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똑.
문이 열리고 내 눈에 보인 것은 박정아였다.
손에는 와인병을 들고 있는.
“같이 한 잔 더 안 할래요?”
저건 분명 내 와인인데.
그리고 분명 술자리가 끝날 당시, 남은 술은 없었다.
박정아가 술병에 물을 채워오지 않았다면,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술이 다 떨어지기 전에, 미리 한 병 빼돌렸구만.”
“죄송해요. 사실은… 그, 따로 마셔 보고 싶었어요.”
“나랑 둘이서?”
“네.”
솔직히 당황스럽다.
내 당혹감이 얼굴 표정에 드러났는지, 박정아의 눈살이 조금 찌푸려졌다.
“왜, 왜요? 내가 아직도 교복 입고 있던 애로 보여요? 저도 이제 성인이에요.”
취했니? 독 내성 스킬이 있으니, 이제 와서 취할 리가 없는데.
박정아는 어디 성인 영화에나 나올 법한 요염한 대사를 읊고 있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말은 어색하게 뚝뚝 끊기고 있다.
붉게 물든 그녀의 얼굴과 문틀을 부서져라 잡고 있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저대로 내비 두면 울 것 같다.
“같이 술… 마시기 싫으세요?”
“아니야, 들어와. 마시면서 얘기하자.”
싫기는,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