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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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4)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에 잠에서 깨 눈을 떴다.
따가운 햇살 때문에 눈을 뜨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대기실에는 햇빛이 존재하지 않고, 키리키리의 들판에 내리쬐는 햇빛은 잠을 깨울 정도로 강하지 않다.
문득 허전함을 느끼고, 손을 움직여 옆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옆에 누워 있어야 할 박정아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멍하니 누워 있자, 잠결에 아침 일찍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먼저 방을 나서는 박정아를 배웅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 밑에 있던 빈 술병이, 발에 치어 데구루루 구른다.
어제 박정아가 방으로 들고 왔던 와인 병이다.
굴러, 굴러 방문에 부딪혀 멈추는 와인 병을 보고 있자니, 어제 방문에 기대서서 같이 한잔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던 박정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딴에는 여유롭고 쿨하게 한잔하자는 투로 말하고 싶었겠지만, 그녀의 표정은 부자연스럽게 경직되어 있었고, 목소리는 웅변 대회에 처음 나선 초등학생처럼 오락가락했다.
어설프고 이상한 모습이었지만, 귀여웠다.
그리고 박정아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술을 마시고 나서 있었던 일은…
잠에서 깨어난 아랫도리가 기지개를 켰다.
생리 현상이다.
바지를 고쳐 입으면서,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음… 혹시 내가 어제 너무 심하게 했나?
갑자기 걱정이 밀려온다.
박정아가 평소에 어른스럽게 보이기는 하지만, 7살 연하에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자애다.
어젯밤, 그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살짝 자괴감이 든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랬나?
튜토리얼에 들어온 지도 벌써 1년이 조금 넘게 지났다.
그 전에는… 폐인 생활을 했고, 프로게이머 시절에도 바빠서 연애는 못 했다.
와, 새삼 돌이켜 보니, 나 진짜 오래 안 했네.
그래서일까? 가슴속에 들어앉아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사라진 것처럼 가볍고 개운한 기분이었다.
행위에서 오는 만족감도 있었지만, 감정적인 충족감도 정말 컸다.
나는 박정아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를 연애 상대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었다.
굳이 따지자면, 당찬 그녀가 어리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응원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녀의 과감성과 용기에서 매력을 느꼈지만, 딱딱하고 무감정한 그녀의 태도는 애인이라기보다는 유능하고 좋은 동료로서 생각되게 하였다.
하지만 어제, 그전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술자리에서 보았던 그녀의 천진난만하고 밝은 웃음과 그리고… 어제 단둘이 있었을 때 보았던 모습들은 정말로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 매력들은 막연히 박정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호감을 한층 깊은 감정으로 바꾸어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쭉쭉 피며 스트레칭을 했다.
어제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거사도 치렀으나, 초인이 된 내 신체는 피곤하기는커녕, 가뿐하기만 했다. 기분도 최고다.
[경합 2일 차, 6시 10분]아직 경합 예선 시작 시간인 8시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았다.
경합은 총 3일에 걸쳐 치러진다.
1일 차는 개인전, 2일 차는 단체전, 3일 차는 자유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경합에 대한 정보를 얻자마자, 자경단은 경합의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합이 시작되기 전, 자경단이 모은 관련 정보를 모두 커뮤니티에 게시하였다.
나는 13층 공략에 집중하느라, 공지를 미리 보지 못했었다.
이미 한참 늦어 버렸지만, 커뮤니티를 열어 경합 관련 정보들을 읽어 보았다.
정보들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경합의 장에서는 아무런 방어 혹은 치유 효과가 제공되지 않는다.
2. 경합 1회 차는 튜토리얼 16회 차가 시작되기 전, 3일간의 대기 시간 동안 개최된다.
3. 1일 차는 개인전. 2일 차는 단체전. 3일 차는 자유 시간으로 구성된다.
4. 경합은 누구나 참가 혹은 불참할 수 있다.
5. 경합 2일 차, 단체전 본선이 마무리되는 순간 누구나 자율적으로 경합의 장에서 퇴장해 대기실로 돌아갈 수 있다.
6. 경합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개최된다.
7. 경합의 규모는 갈수록 커진다.
8. 두 번째 경합에 외국인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다.
저 중, 첫 번째 정보인 치유와 방어 효과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자경단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3일에 걸쳐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데다, 경합 도중 서로 감정이 상해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직까지 큰 문제는 벌어지지 않은 모양이지만.
커뮤니티창을 끄고 옷을 갈아입었다.
경합 시작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나가서 밖을 구경할지, 방 안에서 마법책을 읽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형진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형진, 4층 : 형, 혹시 지금 시간 있으세요?]* * *
“형! 여기예요!”
그렇게 큰 소리로 소리 안 질러도 다 들린다.
내 청각이라면 저 거리에서 속삭이듯 말해도 얼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형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곳은 경합의 경기가 열리는 콜로세움의 입구 반대편의 공터였다.
공터에는 이형진 말고도 여섯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모두 헬 난이도의 도전자들이었다.
“요, 좋은 아침이다.”
“네, 형. 좋은 아침이네요.”
“안녕하세요. 다들 오랜만에 보네요. 어제 숙소에선 별일 없이 잘들 주무셨죠?”
이형진과 다른 헬 난이도 도전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이형진을 제외한 다른 도전자들은 나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여 왔기에, 그리 큰 기대 없이 한 인사였는데, 다들 밝은 태도로 인사를 받아 주었다.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
살벌한 대기실과 튜토리얼 스테이지를 벗어나 축제 분위기로 치러지고 있는 경합의 장에 온 만큼, 다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이형진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 경합 단체전이 시작되기 전, 어제 그와 대결하며 느낀 점을 알려 달라 하였다.
그리고 가능하면 자신과 다른 헬 난이도 도전자들에게 모자란 점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왔다.
물론 나는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헬 난이도의 도전자들이 발전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언젠간 이들이 성장해서 나와 파티 플레이를 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오늘 반응을 보니 괜찮은 듯싶다.
우선은 어제 이형진을 상대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제 내 공격을 피할 때 보니까, 눈을 아주 부릅뜨더라고.”
“네. 공격이 날아올 때, 그걸 반드시 똑바로 보고 피해야 된다고 하셨으니까요.”
아, 내 말 듣고 그런 거였어?
“음… 그런데 사실 공격이 날아올 때, 눈을 뜨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어제 경우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때는 눈으로 들이치는 바람도 있고, 공격이 얼굴 방향으로 휘둘러지면, 몸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려고 하거든.”
“네. 그건 그렇죠.”
“어제 너를 봤을 때,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힘을 줘 부릅뜨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그렇게 눈을 뜨면 물론 앞이 보이긴 하겠지만, 그 짧은 순간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파악할 수가 없어. 눈은 크게 뜨고 있어도, 정작 시야가 좁쌀만큼 좁아진단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격이 날아올 때,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앞을 살필 수 있어야지.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부릅 떠 봐야 별 효과가 없어. 자, 이렇게.”
불시에 이형진의 얼굴 앞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이형진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물론 이형진의 두 눈은 감겼다.
“이런 공격에도 눈을 감지 말아야지. 방법은… 그냥 공격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겠는데.”
사실 이형진의 문제는 그냥 단순히 겁이 많다는 것이다.
시야 확보라는 기본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헬 난이도 4층까지 올라올 수는 없겠지.
그리고 다른 도전자들을 상대로 4승을 거둘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난이도 랭커들이 이형진을 상대하기 꺼려, 서로 도전을 미룰 리도 없었겠지.
뛰어난 회피 능력과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공격에 덜 노출되었고, 여전히 얻어맞는 것을 무서워하고 익숙해하지 못한다.
때문에 자신이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공격을 마주하면, 몸이 필요 이상으로 위축된다.
단순히 내 공격에 겁을 먹고 필요 이상으로 쫄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공격에 익숙해진다고요?”
“튜토리얼 안이 아니라면, 야구 배팅 기계라도 갖다 놓고 훈련을 시키겠는데 말이지. 아니면 나랑 일주일 정도 스파링만 꾸준히 해도 많이 좋아질 텐데. 지금 4층 중반이지?”
“네, 형.”
“그럼 고블린들한테 많이 맞아 봐. 피하지 말고, 일부러 맞아가면서 싸워봐. 얻어맞는 게 익숙해지면 겁도 없어질 거고 놀라서 눈이 감기지도 않겠지.”
이형진이 죽상을 지으며 징징거렸다.
“혀엉… 맞는 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없어. 그냥 시키는 대로 해. 겸사겸사 맷집도 기르고.”
“헐…….”
이형진의 움직임과 판단에 대한 내 의견도 알려주고, 다른 도전자들에게도 이것저것 알려 주기 시작했다.
“이렇게요? 이렇게 피하면 될까요?”
땀을 뻘뻘 흘리며 나름 회피 자세랍시고 몸을 움직이는 여자애를 보고 있자니 갑갑함이 느껴졌다.
이름은 오희진.
저번 회 차에 헬 난이도에 들어온 도전자다.
아직 그녀는 첫 번째 관문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첫 회 차 때는 무상으로 물과 육포가 주어지니까.
“아니, 그러니까 화살이 오른쪽 어깨로 날아오잖아. 그럼 어떻게 피하는 게 제일 좋겠어?”
“이렇게요!”
오희진은 왼쪽을 향해 몸을 날려 다이빙했다.
뭐하니, 정말…….
가장 좋은 회피 방법을 물으니,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회피 동작을 생각해 낸 모양이다.
“아니야… 반대야. 오른쪽 어깨로 화살이 날아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최대한 조금만 움직여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게 좋지. 생각을 해봐, 최대한 작은 동작으로 화살을 피해야,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잖아?”
“네, 그렇죠.”
“자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그다음으로 날아오는 화살에 대응할 수 있잖아. 그렇지?”
“네? 하지만 그다음 화살은… 아… 네. 아, 그러네요.”
그렇지. 오른쪽 어깨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고 나면, 곧이어 날아오는 후속 공격은 없다.
그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화살을 피하고 무방비하게 있으면 안 된다. 다음 공격을 피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것이 몸에 완전히 배어서 익숙해져야만 한다.
1층의 모든 함정에 정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노 패턴으로 발사되는 함정 구간도 존재하니까.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든 생각은 나와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나는 함정을 통과하는 행위를 내가 성장하기 위한 과정으로만 보았다.
그에 비해 이 사람들은 무사히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그러니 향상심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함정의 순서와 정보를 미리 받고, 그 정보대로 화살을 피한다.
스스로 성장을 위해 연습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부족하다.
그때그때, 함정의 순서를 확인하고 화살을 피하는 것에만 집중하다가, 조금 삐끗해서 판단이나 반응이 늦을 때마다 죽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다.
모두가 나와 같을 수는 없다.
아니,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게 이상한 거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처음부터 반복 도전을 하고, 자해를 하며 스킬 레벨을 높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리고 거주 지역이라는 확실한 1차 목표가 있는 다른 난이도와는 다르게, 헬 난이도에는 그런 희망조차 없다.
나조차도 30층 거주 지역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그러니 위험에 도전하는 대신, 목표를 잃고 1층에서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획득하는 포인트와 자경단이 보내 주는 지원금으로 식량을 사, 버티는 생활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언젠가는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이해해야지.
* * *
[경합 2일 차, 7시 40분]공터에서 헬 난이도 도전자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던 중, 경합이 시작할 시간이 되어, 다 같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으로 걸어가며, 이형진에게 물었다.
“단체전도 참가할 거냐?”
“아니요. 제가 누구랑 팀을 짜겠어요.”
“헬 난이도 도전자들끼리 참가해 봐.”
“네?”
이형진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제대로 전투를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어. 같이 예선전이라도 뚫어봐. 본선은 한 수 배운다는 생각으로 도전하고. 상대 팀 잘 골라서.”
“음… 괜찮을까요?”
괜찮다.
물론 본선에서는 상대도 안 되겠지만, 어차피 경합 대결 중 상대에게 필요 이상의 공격을 가하는 것은 자경단이 금지하고 있다.
말 그대로 경험 삼아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 봐. 그냥 기회가 있어서 해 보라는 게 아니야. 6층 때문에라도 너는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성장시켜야 해.”
“6층이요?”
“그래. 6층부터는 지금처럼 그냥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 클리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난이도가 올라가. 6층에서는 나도 혼자서는 클리어가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어떻게든 네가 위로 올라오려면, 저 사람들을 끌어올려서 파티 플레이를 해야 해.”
예전에 6층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기에, 이형진은 쉽게 이해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저 사람들을 끌어 올려 줘야 하지 않겠냐? 영원히 1층에서만 지내게 할 수는 없잖아.”
“네, 그럼 사람들하고 이야기해 볼게요.”
마침 경기장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형진은 헬 난이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대감에 설레고, 불안해하고, 설득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경기장 입구에 다가섰다.
[참가 여부를 결정하십시오.] [개인전] [1일 차] [종료] [단체전] [2일 차]“단체전에 참가한다.”
참가 여부를 밝히자, 파티 선택 창이 나타났다.
[참가 가능한 파티 목록(5/14)] [새로운 파티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단체전에 나 혼자 참가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파티를 개설해야겠지만, 박정아와 김민혁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참가하기로 해 두었다.
헬 난이도 인원들에게 조언을 하느라 조금 늦었으니, 다른 사람이 미리 파티를 개설해 두었을 것이다.
파티 목록을 살펴보았다.
[파티장 : 박정아] [파티원 명단 : 이유정, 김민혁, 이기준] [파티에 참가하시겠습니까?]“네.”
[해당 파티의 파티장이 당신의 참가 여부를 결정 중입니다.] [파티에 합류하셨습니다.] [경기장으로 이동됩니다.]“늦었네.”
“어. 잠깐 할 일이 있어서.”
경기장에는 파티원인 박정아, 이유정, 김민혁, 이기준, 네 사람 모두 모여 있었다.
경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
[경합 2일 차. 7시 45분]아직 예선 경기 시작 시간인 8시까지 15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조금 더 있다 와도 괜찮을 뻔했네.
“야, 여기는 이유정 씨. 저번에 봤었지?”
“아, 안녕하세요?”
내 인사를 받은 이유정은 이번에도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저번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마주 인사를 건네주었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나를 덜 무서워하는 것 같네.
기분 탓인가?
또 다른 파티 멤버인 이기준은 전부터 알던 사이다.
첫 번째 대화합의 날 당시, 김민혁과 마찬가지로 내가 먼저 접촉했던 랭커 중 한 명이다.
지금은 노말 난이도 30층에 김민혁과 머무르며, 자경단의 업무를 보고 있다.
“진짜 업무 담당 간부들만 모아놨네.”
“그렇지, 뭐.”
아예 거주 지역에 머무르고 있는 김민혁과 이기준은 물론, 박정아와 이유정도 튜토리얼의 공략보다는 자경단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경단 내부 일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박정아와 이유정도 보통 업무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도 단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공략을 위해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공략보단 자경단에 더 집중하고 있으니까.
대외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이미지 또한 그렇다.
아주 만만해 보이려고 작정을 했네.
“으음.”
그건 그렇고.
막상 박정아를 다시 보니, 조금 민망하다.
아까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박정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만나게 되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박정아와 눈이 마주쳤다.
우연히, 아니 우연히는 아니다.
서로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눈이 마주치자, 박정아는 쑥스러웠는지 슬쩍 눈길을 돌렸다.
“뭐냐, 이건. 야, 뭐야, 이 재수 없는 분위기는?”
박정아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냥 나를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예뻐서, 나도 마주 웃었다.
언제나 딱딱하고 우중충하게 무표정만 유지하던 사람이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지으니 정말 좋아 보인다.
술자리에서도 그리고 어제 내 방에서도 보았던 미소지만, 이렇게 밝은 곳에서, 트인 곳에서 보는 그녀의 미소에는 또 다른 화사함이 있었다.
“이런, 미친.”
옆에서 들려오는 김민혁의 욕지거리를 무시하고 박정아에게 다가갔다.
“죽창 없냐, 죽창?”
“없어. 그리고 있으면 뭐 어쩌려고. 저놈은 창으로 찔러도 안 죽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