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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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16층 (4)
“인정?”
“이… 인정하겠수.”
“인정. 어, 인정. 좋구요. 자, 여기 포션.”
팔다리가 아작 난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용병에게 포션을 건네주었다.
용병은 유일하게 멀쩡한 왼손으로 포션병을 따고 벌컥벌컥 내용물을 들이켰다.
통증이 상당할 텐데, 별 내색 없이 포션을 마시고 자신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전투는 마법사가 각혈을 하며 기절한 이후 15분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물론 결과는 나의 승리.
사라진 보호막 안에 있던 성기사와 용병을 차례로 때려눕히고 나자, 더 이상 덤벼드는 사람이 없었다.
정확히는 덤벼들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조금 의외였던 점은 생각보다 성기사가 많이 약했다는 것.
치료가 가능한 신성 주문을 익히고 있는 성기사는 전사라기보다는 치료사에 가까운 포지션이었는지 전투력이 많이 떨어졌다.
신성 주문을 전투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동급의 전사보다도 상대하기 훨씬 까다로울 것 같은데 말이지.
그리고 용병은 생각보다 끈질겼다.
몇 대 맞으면 빠르게 항복할 것 같은 인상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달려들었고, 결과적으로 가장 많이 얻어맞았다.
좋게 말하자면 근성이 있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멍청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공동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돌아가며 나에게 얻어맞았지만, 도플갱어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내 공격에 죽일 의도가 없음을 알고 본모습을 내보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정체를 드러내는 것에 제약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여기서 쓸데없이 도플갱어의 정체가 밝혀지면 딱히 좋을 게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그리고 도플갱어는 나를 위해 정보를 뱉어 내야 한다.
도플갱어를 처치할 시간은 충분했다.
벌써부터 입이 하나 줄면 안 되지.
이내 포션을 모두 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 용병이 투덜거렸다.
“쉬벌. 저 겁 많은 뺀질이 자식만 아니었어도…….”
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나불거려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는 마법사를 쓰러뜨리는 데 일조한 기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기사는 구석에서 투구를 만지작거리며 용병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너무 그러지 마. 그 마법이 높은 집중력을 요한다는 정보가 없었더라도, 보호막이 내 공격을 한 시간이나 버티진 못했을걸.”
“…빌어먹을, 그 한 시간이라는 시간도 저 기사가 말해 준 것 아니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
용병이 기사를 보고 이를 갈 만하다.
용병과 다른 일행 입장에선 저 기사가 배신자처럼 보이겠는데?
그런데 기사는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어쩌면 정말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하지 못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성격일지도 모르지.
정말 그렇다면 기사는 정말 멍청이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
아니라면 단순히 죽기 싫어서, 모르는 척 내게 정보를 넘긴 것일 수도 있다.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 입장에서, 대놓고 살고 싶어 하는 티는 내지 못하니, 비슷한 처지의 나에게 정보를 건네 마법사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 경우에는 기사는 명예를 모르는 배신자로 몰려도 할 말이 없다.
마지막 세 번째 경우의 수가 있다.
똑같이 죽기 싫었지만, 사실은 그 정체가 도플갱어라는 경우의 수.
만일 기사의 정체가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도플갱어라면, 기사라는 껍데기의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내게 정보를 흘릴 수 있다.
용병과 성기사가 기사를 바라보는 눈초리를 자세히 보니, 단순히 비겁한 배신자를 힐난하는 눈초리가 아니다.
강한 의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번째 가능성과 세 번째 가능성을 동등하게 보았다.
하지만 용병과 성기사는 설마 명예로운 기사가 그러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세 번째 가능성을 기정사실처럼 여기고 있는 듯했다.
멍청이냐, 비겁자냐, 도플갱어냐.
어느 쪽이라도 절망적이다.
기사의 행동은 그야말로 당장의 목숨을 구하고 살아남기 위함이었다고 봐야겠다.
좀 전부터 용병이나 성기사가 나에게 보이는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데에도 기사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제 나보다 저 기사가 더 의심스러워진 상황이니.
사실 내 입장에서는 기사가 도플갱어든, 아니든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기사가 도플갱어이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나에게 더 많은 정보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법사는 아직 기절해 있었다.
마법사는 두 번에 걸쳐 기절하였고, 마지막에는 마법을 시전하던 중 집중력이 흐트러져 마력의 폭주로 인해 쓰러졌으니 내상이 상당할 것이다.
마법사의 경우에는 기절의 원인이 단순한 외상이 아니라 마력과 관련된 것이다 보니, 반나절 정도는 저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는 성기사의 진단이 있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성기사가 직접 치료하기로 하였다.
모험가의 경우에는 내가 너무 세게 때려서 일어나지 못한 것이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용병에게 포션을 건네주며, 아직도 배를 붙잡고 끙끙거리는 모험가를 치료하라 일렀다.
아까 보니 두 사람은 제법 친한 것처럼 보였다.
잠시 기다리자, 모험가도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많이 아팠나 보네.
그러게, 말 좀 예쁘게 하지 그랬니.
“자, 여러분, 이제 우리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봐야겠지?”
손뼉을 치며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거, 아까 말했던 그 마피아 게임인가, 그걸 말하는 거요?”
용병의 질문이다.
적극적인 질문. 좋은 태도다.
“아니.”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내 속마음을 알려 주었다.
“사실 그건 정보를 얻기 위한 수작이었어. 이제 귀찮게 그런 게임 같은 걸 할 필요는 없지.”
벙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자, 지금부터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해. 그냥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야.”
“무슨 이야기를 말하는 겐가?”
”모든 이야기. 알고 있는 지리, 역사, 종교, 정치, 문학, 경제 등의 상식. 여러분이 소속되어 있는 곳에 대한 정보. 보물, 마법, 몬스터, 보구, 던전에 대한 이야기들. 어린 시절 있었던 경험담이나 예법과 예절, 아니면 어디선가 들어 본 헛소문도 괜찮아.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걸 알려 줬으면 해.”
사람들의 눈에 나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스며든다.
내가 그들을 제압하고도 해치지 않자, 조금 옅어졌던 의심이 다시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놓고 세상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으니, 정말로 내 정체가 도플갱어이기 때문에 정보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사람들이 머리 굴리고 있는 것이 훤히 보인다.
아무리 내게 얻어맞은 직후라지만, 악마로 의심되는 자에게 정보를 건네주어도 괜찮은 건가, 죽더라도 다시 덤벼 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겠지.
다시 위압 스킬을 사용하고 기세를 끌어 올렸다.
상대와의 격차가 크게 느껴질수록, 그리고 멘탈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상대일수록 위압 스킬의 효과가 커진다.
이제 막 나에게 얻어맞고, 정신을 차린 직후이다.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고.
전투 전 겪었던 위압 스킬의 부담감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이전에 나를 보고 부담스러운 존재감을 느꼈다면, 이제는 그 존재감이 자신의 어깨를 내리누르고 있는 듯할 것이다.
“자, 여러분.”
손에 마력을 둘러 손뼉을 강하게 짝, 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다들 움찔거렸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나는 궁금한 게 많아서, 여러분이 계속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화를 낼지도 몰라요.”
나에게 유난히 세게 얻어맞은 모험가의 경우에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다들 눈만 뒤룩뒤룩 굴리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로 다른 사람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새로운 협박의 필요성을 느끼고, 어떻게 겁을 줄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학교 교실에서 성실한 우등생이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듯, 다소곳이 손을 들어 올린 기사가 말했다.
“저부터 말하고 싶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아하니, 남들은 서로 먼저 나서길 바라면서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저 기사는 자기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도 괜찮을지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말해 보라 하였다.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케이시스 아르한입니다. 제가 태어났던 날, 제 조부께서 지어 주신 이름으로…….”
기사는 그렇게 자신의 탄생일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기사의 이야기는 던전에서 맞는 첫날의 새벽이 다가오기 전까지 끝나지 않았다.
새벽이 다가와, 취침을 위해 기사의 이야기를 멈추었을 때, 기사의 이야기는 고작 11살 학교 입학 당시에 머물러 있었다.
놀랍도록 디테일한 이야기였다.
덕분에 이 튜토리얼 16층 스테이지의 배경이 되는 세계의 아주아주 사소한 이야기들까지 알게 되었다.
기사는 저녁 식사 이야기를 한번 할라치면, 그 식기 하나하나에 대해 묘사를 해 주었다.
어떤 식기가 있고, 그 식기의 장인이 누구고, 그 가격이 얼마이며, 자신의 가족 구성원이 그 장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판까지 말해 주었으니, 새로운 정보는 넘칠 정도로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저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떠들어 대면서도 청자의 흥미를 계속해서 이끌어 낼 수 있다니.
이야기꾼으로서 최고의 재능이었다.
가끔 이야기가 너무 과장되거나, 미화되면 용병이나 모험가가 끼어들어 내용을 조금 수정하기도 하였다.
솔직히 재밌었다.
어쩌다 보니 분위기가 수학여행 온 반 친구들끼리 수다를 떠는 모임처럼 변하였다.
아예 아공간 가방에서 간식과 술을 꺼내 먹으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도 아공간 가방이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조금 신기해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기사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떠오르는 모든 것을 묘사하다 보니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느렸다.
그리고 이야기가 종종 다른 길로 새었다. 양탄자의 품질 검사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흘러 흘러 자신의 조부가 왕궁에 입성하고 무공을 세워 작위를 수여받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게다가 기사는 몇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안, 입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간식도 안 먹고, 가끔 포도주로 목만 축이며 이야기에 열중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이 천만다행이었다.
기사가 이야기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자, 이야기를 오래 듣는다는 행동이 상당한 육체노동이며, 동시에 정신노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 시간이 지나자, 머리가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다섯 시간이 지났을 무렵 다른 사람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드디어 편하게 쉴 수 있겠다는 표정이었고, 기사는 더 떠들지 못해 아쉬운 표정이었다.
목이 아프지도 않나?
사람들은 취침을 위해 공동 구석 여기저기에 흩어져 바닥에 누웠다.
수면 중에는 서로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기로 하였고, 다가왔을 시에는 공격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아 두었다.
나야 별 상관없었지만, 사람들은 수면 중의 안전 문제에 매우 민감했다.
나도 인벤토리에서 침낭을 꺼내 구석에 누웠다.
기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며 마력 회로라도 돌리고 있어야지.
그렇게 30분쯤 지났을 때, 누군가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살아서 수다를 떨고 싶어서 마법에 대해 나불거렸던 게 분명해. 저 새끼가 물에 빠져 죽으면 입만 동동 뜰 거야.”
음색으로 보아 용병의 목소리 같았다.
동감이다.
* * *
모험가에게서 빼앗은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침낭 속에서 나왔다.
잠은 자지 못했다.
내 불면증은 잠재적 적들이 밀폐된 공간에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수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밤중에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모두가 잠든 틈을 타 도플갱어가 움직임을 개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공동 안을 돌아다니며 일행들을 깨웠다.
아침이었다.
우선 아침밥을 먹고… 기사 녀석이 수다 떠는 걸 들어 줘야지.
오늘은 기사의 어릴 적 스토리를 듣기에 앞서, 그의 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봐야겠다.
성기사에게 종교에 대해서도 물어봐야 하고, 모험가에게 던전에 대한 이야기도 물어봐야 한다.
어제 들어 보니 용병도 세간의 풍문을 제법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서 마법사가 일어나야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 텐데.
오늘 저녁까지 못 일어나면 엘릭서의 사용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마법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모아 놓고 아공간 가방에서 음식들을 꺼냈다.
각자 육포나 건량 등의 음식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어젯밤 내가 꺼낸 음식들을 맛보아서인지, 맛없는 건량은 꺼낼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다들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기사가 다소곳한 자세로 손을 들어 올렸다.
“먹으면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제발 좀. 안 돼.”
“먹을 때만큼은 닥치고 있자. 내가 부탁하마.”
“식사 중에는 정숙해야 한다네, 아르한 경. 자제해 주게.”
세 사람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힌 기사는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아쉬워하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머뭇거리던 기사는 이내 포기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 중에 이야기하는 것이 이 세계의 예절에 크게 어긋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저 수다쟁이 기사의 입을 막고 싶었던 걸까?
아무래도 후자 쪽인 것 같다.
[모험의 신이 아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