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394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15화(394/432)
외전 15화
도플갱어 (1)
신탁이 내려졌다.
대륙 서쪽 어느 이름 없는 던전 아래 귀한 것이 묻혀 있을 것이다.
‘그것을 파내라.’
파격적인 신탁이었다.
세월 속에 잊힌 고어도 아니었고, 난해한 미사여구로 의미가 감추어진 암어도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때때로 해석이 뒤바뀌는 예언조차도 아니었다.
단순한 전언이었다.
저기, 귀한 것이 있으니 알아서 파내거라.
교단의 성서를 해석하는 최고 해고관도 저잣거리 과일 장수도 똑같이 이해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말이었다.
그런 특이한 신탁이 대륙 전역의 모든 신전에 내려졌다.
황도 한복판에 우뚝 솟은 교황청에도, 요양하는 노인들을 돌보던 산중 작은 수도원에도.
신탁의 내용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사제들의 입에서 신도들의 입으로 제국은 뒤늦게 소문을 막아 보려 했지만,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제가 처음 신탁에 대해 들었을 때, 이미 대륙의 많은 사람들이 신탁에 대해 들은 이후였다.
이미 퍼져 버린 소문은 황제조차도 막지 못했다.
일확천금을 위해서, 인생 역전을 위해서.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자기 집 대문에 못을 박아 두고는 꼭 금의환향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대륙 서쪽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보물을 찾아서.
1년이 지났다.
고향에서 농부였고, 대장장이였고, 제빵사였고, 사냥꾼이었던 사람들은 서쪽에서 모험가가 되었다.
모험가들은 던전으로 몰려갔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명칭과는 달리 그들은 모험에 서툴렀다.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허무하게 죽어 나가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하루하루 사라지는 사람들보다 새로이 던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던전 인근에는 그런 모험가들을 위한 도시가 세워졌다.
꿈을 위해 삶을 포기한 시한부들의 돈주머니에는 주인이 없었다.
3년이 흘렀다.
대륙 서쪽에 있는 던전이란 던전은 죄다 공략되고 있었다.
던전 인근 지역에는 어김없이 모험자들을 위한 도시가 형성되었다.
급하게 조성된 도시는 마찬가지로 빠르게 쇠락했다.
모험가들이 고향을 떠나오며 가져온 노잣돈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였다.
모험가들은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생산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도적이 되었다.
5년이 흘렀다.
탐색자들은 언젠가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어버렸다.
남은 건 피폐해진 대륙 서부 지역과 가장을 잃은 채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 그리고 도적 떼뿐이었다.
그렇게 신탁이 불러온 욕망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지고, 비로소 그 아래 폐허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쯤 거짓말처럼 발견되었다.
신탁이 내려지기 이전에 이미 공략이 끝난 폐던전에서.
탐지 마법으로 던전의 외벽을 조사하던 어떤 마법사는 작은 쥐구멍 너머 직선으로 길게 뻗은 루트가 있음을 발견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없는 인위적인 직선 통로였다.
숨겨져 있던 길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아직 해산되지 않고 남아 있던 탐사대들은 이름 없는 폐던전으로 향했다.
‘…파낼 수 있나?’
‘뭘, 보물을?”
‘아니, 길을.’
던전의 숨겨진 길은 막혀 있었다.
깊은 동굴 속, 암반이 무너져 길이 막혀버린 땅굴 너머에 있었다.
쥐구멍이라 생각했던 구멍은, 지반이 무너져 내린 곳에 생긴 작은 틈이었다.
소식을 들은 마탑의 마법사들이 던전에 도착했지만, 그들도 길을 뚫지는 못했다.
섣불리 마법으로 통로를 뚫으려 했다가는 던전의 지반 자체가 내려앉을 위험이 있었다.
결국 남은 방법은 깊은 던전 속에서 돌무더기를 일일이 치워 내는 것뿐이었다.
이 시점은 개인으로 움직이던 모험가들은 대부분 이탈한 뒤였다.
던전의 주축 탐사대는 교단, 왕실 기사단, 마탑, 용병 길드였다.
그들은 던전의 길을 뚫기 위해 투자할 시간도 자금도 충분했다.
1년이 더 지났다.
탐사대는 쥐구멍만 한 땅굴을 개구멍만 한 땅굴로 넓히는 데 성공했다.
마법을 동원해 돌무더기를 잠깐 들어 올리고, 몇 사람을 집어넣어 길 너머를 탐색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본래 몸이 날랜 몇 사람을 먼저 들여보내자는 계획이었지만, 여러 탐사대가 맞물린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각 탐사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하나씩 선정되어 선발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어둡고 작은 통로를 다섯 명의 남자가 걷고 있었다.
“불 좀 위로 들어 주시죠.”
선발대의 선두를 선도하고 있던 모험가가 말했다.
모험가의 바로 뒤에서 걷고 있던 마법사가 지팡이를 더 높이 들었다.
저 마법사는 어느 유명한 마탑의 탑주였다.
본래라면 모험가가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는 위인.
마법사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서 걷고 있는 기사는 왕실 기사단 소속이었다.
사실 모험가는 어렸을 적 기사가 되고 싶었다.
고향 마을의 모든 남자아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물론 불가능한 꿈이었다.
기사의 뒤에는 교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광스러운 성기사가 일행의 마지막에는 용병 길드의 에이스 전사가 따라오고 있었다.
모험가는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나 대단한 일행을 뒤에 줄줄이 세워 두고, 그들을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드디어 던전의 길이 뚫렸고, 보물을 탐색하기 위한 선발대에 자신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흥분과 기대 그리고 긴장이 더해졌다.
그래서 이 경력 많은 모험가는 실수를 했다.
무려 십 년을 던전에서 먹고 자며 생활해 온 모험가답지 않게 발아래 그려진 도형을 알아보지 못했다.
모험가의 발이 내디뎌짐과 동시에 도형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함……!”
모험가가 함정이라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던전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벽이 무너지며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고, 공동 중앙에 놓인 관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반이 흔들리며 공동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급히 뭐라도 붙잡으려 했지만, 정신이 혼미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기절 마법 함정의 효과로 정신을 잃어가던 와중.
모험가는 보았다.
검은색 촉수를 꿈틀거리며 관 밖으로 기어 나오던 악마의 모습을.
* * *
눈을 떴다.
잠시 눈을 뜬 상태 그대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공동 안으로 어스름한 빛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마법사의 지팡이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젠장.
천장이 무너진 건지, 돌아갈 길이 막혀 있었다.
공동 안에 갇혀 버렸다.
“라이트.”
마법사의 조용한 말이 공동에 울렸다.
지팡이에서 새어 나오던 빛이 강렬해졌다.
주변 상황이 훤히 보였다.
안전해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누군가의 팔이 불쑥 내 옆구리로 들어왔다.
돌아보니 용병이었다.
용병은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탐사대와 함께하는 와중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못한 나는 용병 길드에 꼽사리 끼어 있는 신세였다.
이 용병과는 안면이 있고,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심지어 동향이었다.
나는 기억이 없었지만, 용병은 나를 기억한다고 했다.
나도 일단 기억나는 척했다.
“일단 한곳으로 좀 모이세. 혹시 안 보이는 사람 있는가?”
성기사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마법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마법사는 그런 성기사에게 지팡이를 들이대었다.
“그만,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성기사는 황당해했다.
마법사는 자신이 기절하기 전, 도플갱어라는 악마의 모습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 말에 성기사는 수긍하고 뒤로 물러섰다.
“저도 보았습니다. 기절하기 직전 저기 있는 관에서 도플갱어가 기어 나오는 모습을 말입니다. 거기, 용병님과 모험가님도 서로 떨어지는 편이 좋을 겁니다. 도플갱어라는 악마는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다고 들었습니다. 절대 육안으로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다고 합니다.”
기사가 설명했다.
나 같은 무식쟁이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었다.
생각보다 말을 잘하는 양반이었다.
성기사는 잠시 기도를 하더니, 더없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도플갱어는 아직 이 안에 있네.”
젠장.
젠장.
왜 내 인생은 뭔가 풀리려 할 때마다 이렇게 꼬이는 걸까.
내가 그 함정을 미리 발견했다면 지금도 보물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을 것이다.
악마와 함께 공동에 갇히는 대신에 말이다.
빌어먹을.
“투명 마법을 사용하고 숨어 있는 건 아닙니까? 도플갱어도 악마라 했으니, 마법을 사용할 줄 알 겁니다.”
내가 말했다.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했다.
악마가 공동 구석에 숨어 있는 거라면 우리 대단한 일행이 어떻게든 죽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디텍트 인비저빌리티.”
마법사의 주문이 시전되었고.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방에서 급히 마법 도구를 꺼내보았다.
주변에서 시전되고 있는 마법을 감지하는 아티팩트였다.
반응이 하나 있었다.
지금 이 공동 안에 유지되고 있는 마법은 하나뿐이었다.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시전되고 있는 라이트 마법.
“제 감각에도 여기 있는 우리 다섯이 전부입니다. 역시 우리가 기절해 있던 사이에 누군가가 이미 살해당하고 도플갱어에게 모습을 빼앗긴 듯합니다.”
기사가 말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똥 씹은 기분으로 천장이 무너져 내린 곳에 다가가 보았다.
뒤를 돌아보자 일행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 되겠습니다. 밖에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 이 잔해를 치우고 나가는 건 어렵겠습니다.”
“여기 마탑주님이 계신데, 어떻게 안 될까?”
용병이 물었다.
“안 될 것 같아.”
이 잔해는 천장에서 쏟아진 거다.
이걸 그냥 치운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치워 낸 만큼 더 쏟아져 내릴 수도 있고,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이 통로로 진입했을 때처럼 다수의 마법사가 필요했다.
마력으로 지반 자체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구조대가 오기는 할 겁니다. 2차 탐사대가 3일 안에 올 것이고, 그들이 이곳을 발견한다면.”
기사가 말했다.
그 말을 마법사가 이었다.
“내 제자가 포함되어 있겠지. 메모리얼 마법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읽어 낼 수 있을 테니, 분명 구조대가 편성될 것이다.”
다행이었다.
아직 내가 죽은 건 아니었구나.
배 속에 들어 있던 돌이 밑으로 쑥 빠진 듯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야 언제 어디서 죽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버러지 인생이지만, 다른 일행은 하나하나가 귀중한 인사였다.
탐사대는 이 일행을 그냥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성기사가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자신에게 주목해 달라는 듯.
“당장 우리가 탈출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도플갱어는 절대로 바깥세상에 나가게 두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악마종이다. 구조대가 오기 전에 여기 있는 우리끼리 해결을 해야 해.”
저 미친 새끼.
너무나 지당한 말이었음에도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그럼 우리가 다 죽어 나가도 그것보다 도플갱어를 찾는 걸 우선시해야 된다는 건가.
말이 되냐.
일단 살고 봐야 할 것 아니야.
“하지만 한 번 사람의 모습을 훔친 도플갱어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도플갱어는 사람의 외면뿐만 아니라 기억과 성격까지도 훔쳐내기 때문에 쉽게 분간할 수 없습니다.”
기사가 말했다.
그래, 그렇게나 찾기 힘든 악마를 무슨 수로 찾아.
구조대가 오면 그중에 악마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 사람에게 맡겨 보는 게 맞는 거지.
“여기 도플갱어의 정체를 알아낼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 없나?”
용병이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용병의 말에 일행 모두 생각에 잠겨 방법을 고민했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는지 다들 침묵을 지켰다.
잠시간의 침묵 뒤 일행은 도플갱어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나 일화 등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불안함을 가증시키기만 하는 흉악한 이야기뿐이었다.
꺼림칙했다.
막상 여기 있는 누군가가 사람이 아닌 악마라고 생각하니.
다른 일행과는 달리, 나는 누군가가 공격해 오면 그대로 당해야 한다.
이곳의 최약체란 말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경계되기 시작했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 오른쪽에서 있는 용병.
그리고 왼쪽의 성기사.
중앙에 서 있는 마법사를, 원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젠장. 내가 여기서 정말 살아 나갈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게만 들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한 것은.
[안녕한가, 인간 친구? 아무래도 내 얘기를 하고 있었나 보군.]악마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