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00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21화(400/432)
외전 21화
도플갱어 (7)
“이히히히.”
행복함에 겨워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부스럭.
작고 짧은 소리다.
하체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그것을 회전축으로 삼아 상체를 크게 휘두르기 위한 준비 동작에 의해 발생한 작은 소음.
돌바닥과 무거운 군화 사이에 깔린 작은 흙과 돌조각이 마찰하는 소리.
약해 빠진 인간 친구라면 이 소음을 들을 수는 있어도 대응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이딴 쓰레기 같은 몸뚱이를 가지고도 보다 나은 움직임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이크.”
무릎을 굽히자마자 머리 위로 기사의 검이 쐐액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곧이어.
쾅!
기사의 검은 돌벽을 강타했다.
어이구, 망치로 돌벽을 때려도 저런 소리는 안 날 텐데.
저 친구는 인간이 맞나 의심스러운걸.
“히히히.”
몇 걸음 물러났다.
물러나자마자 그 자리 위로 파편이 우수수 쏟아졌다.
기사는 나를 쏘아보며 입을 방긋거렸다.
음, 퀴즈 시간인가?
저 입 모양을 보아… ‘네가 도플갱어였나?’ 등의 질문을 했겠네.
“그래, 내가 도플갱어다.”
기사는 자신의 목을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내려 했다.
헛수고였다.
“재밌지? 호흡이 좀 불편하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극독은 아니거든. 그저 말을 하기 어렵게 하는 마비약이야.”
그러게 왜 남이 주는 걸 곧이곧대로 받아먹고 그래.
아무리 매일 매 끼니마다 간식을 나눠주며 경계심을 풀었다 해도 마지막 날만큼은 경계했어야지.
안 그래?
“아르한!”
벽 너머에서 기사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사의 검이 벽을 강타한 소리를 들었나 보다.
아무래도 구조대의 가장 앞쪽에는 기사단이 있는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다급한 외침이었다.
기사는 대답해 주고 싶었는지, 열심히 목을 가다듬었지만 결국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안 된다니까 그러네.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성기사와 마법사도 순진하게 내가 건네준 자두를 집어먹었다.
주문을 사용하는 두 사람의 경우에는 기사보다 훨씬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르한!”
“성기사님, 안에 계십니까?!”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웅성거림이 시작되었고, 웅성거림은 곧 혼란이 되었다.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모험가 친구가 계획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 기특한 친구를 위해 내가 무얼 해줘야 할까.
고향 마을에나 한번 찾아가 줄까?
[죽여 줘…]“이히히히히.”
귀여워라.
죽여 달라니.
본인이 죽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는 걸 모르는 걸까.
모험가 친구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자의식이 사라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쓸 만한 녀석을 왜 버리겠는가.
상황에 맞춰 기억을 조작하고 전면에 내세우면 어떻게든 살아남자고 머리를 굴려 줄 것이다.
나를 위해서.
[…그냥 죽여 ]아이고, 고향 친구에 대한 기억이 돌아온 충격이 좀 큰가 보네.
걱정하지 마.
그 기억은 곧 잊어버리게 될 거야.
오히려 용병을 멋지게 속여 넘긴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게 될걸?
[악마…….]아아, 너는 귀여운 친구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똘뜰하고 우둔한 친구!
모험가 친구가 나를 즐겁게 해 주는 사이에 기사와 성기사는 마음의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무기를 꼬나 쥐고서는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대답해! 아르한! 괜찮은 거야?!”
벽 너머에서는 대답을 바라는 외침이 계속되었지만.
우리 말하기 좋아하는 기사님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무언의 기합을 내지르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 * *
목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물먹은 솜을 삼켰다가 목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히히히.”
그때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불길한 웃음이었다.
기사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모험가는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검을 피해 내고는 거리를 벌렸다.
그동안 모험가가 보여 준 몸놀림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기사는 그제야 정답을 알게 되었다.
모험가가 도플갱어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치명적인 독에 당한 건 아니었다.
기사와 일행은 무언의 눈빛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들이 이미 예상한 상황이었다.
구조대가 도착하면 도플갱어는 더 이상 살아날 방법이 없어진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도플갱어는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거라 예상했고, 정말 예상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니 원래 계획대로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도플갱어와 맞서 싸우며 버티면 될 뿐이었다.
처음 이 계획을 세웠던 것이 모험가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기사와 성기사 그리고 마법사는 불안을 삼킨 채 도플갱어를 향해 무기를 들었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는 팽팽했다.
도플갱어는 정체가 밝혀졌음에도 악마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험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모험가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모험가가 가진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와 성기사가 전열을 유지하고, 마법사가 뒤에서 도플갱어의 움직임을 견제했다.
셋의 연대는 단단했고,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오히려 구조대에 있었다.
“빌어먹을, 뭐 하는 짓거리야!”
“나오쇼. 이제 우리가 앞장서서 뚫을 테니.”
벽 너머의 구조대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공동 안에서는 전투가 계속되어 칼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행의 안부를 묻는 물음에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구조대는 기사단, 신전, 마탑, 용병 길드로 나뉘어 있었고.
각 세력은 서로를 경계하고, 적대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라. 경고한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야들아, 칼 꺼내라.”
기사는 답답했다.
저들이 지금 저기서 싸울 때가 아닌데.
무의미하게 피를 흘려서는 안 되는데.
뭐라고 한마디만 할 수 있었다면.
나는 괜찮다고, 여기 도플갱어라는 악마가 있어서 모두 함께 맞서 싸우고 있다고.
그 한마디를 전해 주지 못해 벽 너머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었다.
캉캉!
도플갱어는 모험가의 짧은 단검을 바지런히 휘둘러 가며 기사와 성기사의 무기를 꾸역꾸역 막아 내고 있었다.
이제 침착하게 전투를 이끌어 나가며 시간을 끌던 기사와 성기사는 반대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도플갱어가 돌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도플갱어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용병의 목소리였다.
도플갱어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배신이다! 이 시벌 것들이! 우리를 던전에 파묻고 보물을 독차지하려 한다!”
완벽한 용병의 목소리였다.
그 말투와 목소리, 억양과 음역대까지 용병의 것과 너무나 흡사했다.
도플갱어가 흉내 낸 용병의 목소리는 벽 너머까지 울려 퍼졌다.
벽 너머에서 들려오던 소란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도플갱어가 노리고 있던 게 이것이었나.’
기사는 뒤늦게 도플갱어가 노리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일행에게 마비약을 먹였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보물이다! 여기 보물이 있다!”
이번에는 모험가의 목소리였다.
도플갱어가 가장한 두 번의 외침은 너무나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거봐, 저것들이 우릴 속인 거라니까! 개새끼들, 우리가 용병이라고 우습게 보이냐! 죽여!”
벽 너머로부터.
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비명 소리가.
“으아악!”
“이 미친놈들이, 뭐 하는 짓이야!”
던전의 탐사대는 여러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공동에 처음 진입했던 일행은
그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집단은 모두 경쟁 관계였다.
길을 뚫기 위해 잠시 협력했지만, 결국 하나뿐인 보물을 쟁취하기 위해 다퉈야 하는 처지였다.
도플갱어라는 공동의 적 때문에 일행 모두 잊고 있던 사실이지만.
저들은 일행을 구조하기 위한 구조대일뿐만 아니라 보물을 가장 먼저 차지하기 위해 각 세력이 보낸 후발대이기도 했다.
“크아악!”
“제정신이냐!”
“그만! 멈추라고!”
“너희가 먼저 배신한 거잖아! 죽어!”
비명 소리.
죽음을 암시하는.
“크아악! 아르한!”
마지막까지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르는 동료들의 목소리.
‘안 돼… 안 돼!’
당장에라도 저 벽을 허물고 동료들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무의미한 전투를 멈추게 하고, 이 모든 일을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히히히, 어디 가려고, 우리 같이 놀던 중이었잖아.”
저주받을 악마는 길을 내주지 않았다.
기사를 조롱하는 것처럼,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사의 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공동을 환하게 비추는 검이 악마를 향해 휘둘러졌다.
콰직!
도플갱어는 급히 모험가의 모습을 버리고 악마의 팔을 뽑아내었지만, 기사의 검을 막아 내지는 못했다.
반은 인간, 반은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도플갱어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은 힘이 모자란가. 히히히.”
그렇게 중얼거리는 악마였지만, 뭉개져 버린 자신의 팔을 보면서도 아무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전투가 이어지던 그때, 커다란 폭발과 함께 벽이 터져 나갔다.
굉음에 파묻혀 벽 너머에서 들려오던 비명 소리와 칼 소리가 모두 사라져 버렸렸다.
무너진 벽으로부터 강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기다란 지팡이를 든 마법사.
걸어 나오는 마법사의 뒤로 보이는, 불 붙은 시체들.
‘아니야 ”
시체들의 얼굴을 확인한 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손아귀에서 검을 놓쳐 버렸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드디어 동료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비로소 마주한 것이 시체가 되어 버린 동료들의 얼굴이라니.
이 모든 것이 실제 상황이 아니라 짜인 연극처럼 느껴졌다.
압도적인 위력의 마법으로 벽을 뚫어버리고 나타난 것은, 마법사들을 이끄는 마탑주였다.
마탑주는 100살이 넘는 고령과 어울리지 않는 20대 젊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자를 자신의 모습으로 꾸며 들여보낸 뒤, 자신은 제자의 모습으로 후발대에 속해 들어온 것이었다.
제자 마법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그 얼굴에선 전혀 다른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스승님! 저건 도플갱어입니다!”
성기사의 뒤에 있던 마법사가 마탑주에게 외쳤다.
마탑주는 제자의 외침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마법을 준비했다.
거대한 마력이 움직였고, 그가 들고 있는 지팡이의 끝에 집중되었다.
“귀한 보물이군. 부디 살아남아 내 실험체가 되어라, 악마.”
마탑주는 도플갱어를 향해 말했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도플갱어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정말 완벽한 계획이었어, 친구.”
도플갱어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던전의 바닥이 빛나기 시작했다.
기사는 기시감을 느꼈다.
‘…기절 함정. 우리가 처음 이곳에 갇힐 때 보았던…….’
모험가와 도플갱어가 준비한 마지막 카드.
마법 함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