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01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22화(401/432)
외전 22화
도플갱어 (8)
눈을 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 흙더미가 쏟아져 있었다.
무심결에 팔을 들어 털어 내려 했지만,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제야 흙더미가 얼굴 옆으로 흘러내렸다.
남은 흙 때문에 불편했지만, 억지로 눈을 부릅떠 보았다.
시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불꽃이 있었다.
돌벽과 흙바닥에 들러붙어 주위를 밝혀주는 불이 있었다.
마탑주가 일으킨 폭발이었다.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던 마탑주는 기절 함정에 당해 쓰러졌고.
준비되던 마법은 갈무리되지 못하고 그냥 폭발해 버렸다.
폭발은 가뜩이나 위태로웠던 공동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다시 한 번 천장이 무너졌다.
덮쳐 오는 폭발과 무너지는 천장, 둘 다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고개를 돌려 팔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오른팔은 바위에 깔려 있었다.
오른쪽 발목도 마찬가지로 바위에 깔려 있었다.
으드득
뒤늦게 고통이 느껴졌다.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 내었다.
바위에 깔려 버린 팔다리에 아무 감각이 없었다.
그 무통이 더 공포스러웠다.
어깨와 무릎에는 신경선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있었다.
가슴 앞쪽에서는 타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폭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긴 했으나 화상 하나 없을 수는 없었다.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왼쪽 손은 고열로 인해 손가락이 서로 붙어 버렸다.
어린아이가 꼭 쥐고 있는 주먹처럼 뭉툭해져 있었고, 손가락 마디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것만 같은 중상이었다.
생존자는 나뿐이었다.
마탑주가 기절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폭발을 막기 위해 힘을 일으킬 수 있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무리 감각을 퍼뜨려 보아도 나 외의 살아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히히”
말을 조금 정정해야겠다.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없었지만, 살아남은 악마는 있었다.
악마가 철벽, 철벅,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내가 깨어난 걸 눈치챈 건가.
등골을 타고 혐오가 치밀어 올랐다.
역겨운 구토감이 느껴졌고, 폐부를 옥죄는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안녕, 기사 나리.”
도플갱어는 내게 걸어오며 인사했다.
악마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마치 너무 즐거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 몸서리치며 웃었다.
거대한 촉수가 나무줄기처럼 뒤엉켜 있었다.
꿈틀거리는 뱀처럼 몸 전체가 그렇게 꿀렁이고 있었다.
“악마.”
단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목이 종이처럼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히히히. 그래, 나는 악마지. 나도 알아.”
“…너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악마.”
악마는 다시 한 번 크게 깔깔거렸다.
“기사 친구, 정말 그렇게 생각해?”
악마는 촉수로 가득한 자신의 몸 위로 어떤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탑주의 얼굴.
“나도 이렇게나 강력한 인간을 잡아먹어본 적은 없어. 방대한 마력과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명성, 영향력. 히히히,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왕국? 제국? 어쩌면 이 대륙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마탑주의 얼굴 옆으로 다른 얼굴들이 떠올랐다.
성기사.
용병.
토벌대에 속해 있던 다른 인물들의 얼굴도 보였다.
“이렇게나 많이 잡아먹었단 말이지. 히히히, 정말 내가 얼마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악마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장난치며 놀리듯 낄낄거리는 소리는 점점 위압적으로 변해 갔다.
종래에는 그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려왔다.
바닥에 쓰러져 듣고 있는 것만으로 몸이 움찔거렸고,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아,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 기사 나리의 친구들도 있었지.”
도플갱어의 몸 위로 익숙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기사단의 동료들.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매일을 함께 하던 동료들이었다.
동료들의 얼굴은 심지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슬퍼? 친구들이 죽어서? 우리가 죽어서?]동료들의 얼굴이 내게 물어보았다.
너무 익숙해서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빠지는, 동료들의 목소리로.
악마는 자신의 몸 위로 떠오른 얼굴을 잡아 뜯었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촉수가 동료들의 얼굴을 고기 반죽처럼 쥐어뜯었다.
“이런 쓰레기들은 굳이 기억해 둘 필요도 없겠지. 히히.”
나도 모르게 혀를 꾹 눌러 씹었다.
피가 터졌다.
혀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처럼,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탓이었다.
내가 처리했어야 할 문제였다.
저들까지 끌어들일 일이 아니었다.
내 나약함이 초래한 결과였다.
어쩌면 모두 살아남을 수도 있겠다는.
동료들이라면 더 현명한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그런 안일함 때문이었다.
내가 죽였어야 했다.
“히히히, 어려웠어, 정말 어려웠어. 빌어먹을 성검 같으니. 수백 년을 잠들어 있었는데, 아직도 그때 당한 여파가 남아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도플갱어는 촉수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역동적인 움직임은 마치 인간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 모험가의 말을 듣지 말아야 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타당해 보여도 그 또한 도플갱어의 제안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었다.
일행 다섯 명.
다섯 명의 희생이 아깝다 생각해 그 희생을 수십 배로 늘려 버렸다.
“이 녀석이 정말 잘해 줬지.”
도플갱어의 몸 위로 모험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험가의 얼굴은 무표정한 다른 얼굴과는 달리 분명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죽여 줘]악마는 그런 모험가의 얼굴을 촉수로 할퀴고, 뭉개며 못살게 굴었다.
더없이 행복한 듯 웃었다.
도플갱어의 몸 위로 떠오른 수많은 얼굴.
그 사이에서 어릴 적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안해.’
‘약속했잖아, 나랑. 사람들을 지켜 주기로’
친구는 나를 탓했다.
어렸던 나는 지킨다는 행동이 다른 무언가를 버려야 함을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네. 이번에도’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도 노력했어.
최선의 결과를 위해.
‘하지만 네가 초래한 결과를 봐.”
작은 세계는 무너졌고, 사람들은 몰살당했다.
사악한 악마만이 남아 고인들을 조롱하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히히, 마력이 조금만 회복되면 마법사의 능력으로 밖으로 나갈 거야. 그럼 기사 나리 네가 살던 곳부터 찾아갈게.”
악마가 속삭였다.
이제 알겠다.
악마는 그냥 나를 놀리고 있을 뿐이었다.
남는 시간 동안.
심심풀이로.
왼손을 들어 올렸다.
유일하게 내 의지대로 움직여 주는 사지였다.
“뭐 하는 거야? 그걸로 나와 싸워 보려고?”
하지만 손가락은 열기에 눌어붙었다.
손목 위로는 내 마음대로 까딱거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다면 필요 없었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왼손이 터져 버렸다.
얼굴로 피가 튀었다.
내 검은 저 멀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도저히 팔을 뻗어 가져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미 망가져 버린 내 왼손을 무기로 삼겠다.
“뭐 하는 거지? 자결이라기엔 방법이 너무 조약한데. 명예로운 기사 양반, 자결은 신의 의지에 반하는 대죄임을 모르는 건가?”
악마가 신의 의지를 입에 담는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내 손을 불태우고 있는 불꽃은 점점 크기를 키워 갔다.
악마는 내게 달려드는 대신 뒤로 물러났다.
소용없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도망갈 곳은 없었다.
광검.
전설 속의 검사가 사용했다는 신화적인 기술.
후대의 검호들이 모방하려 애썼지만, 결국 오리지널을 구현해 낸 사람은 없었다.
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위력이 넘쳐서였다.
지나치게 강력한 위력 때문에 사용한 직후 살아남을 수 있는 사용자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광검은 개량되었다.
위력을 줄이고, 안정성을 높였다.
그렇게 광검은 변화해 왔다.
나의 대에 와서는 고작 빛나는 검을 휘둘러 바위를 조금 깨부수는 정도에 그치게 되었다.
사용자를 위험하게 하는 금지된 자폭기.
그래, 내가 죽겠다.
너와 함께 내가 죽겠다.
[카아아악! 멍청한 인간!]악마가 고함치며 몸을 부풀렸다.
내 왼손의 빚은 이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졌다.
새하얀 빛을 향해 기도했다.
부디 모두를 죽여 주기를.
악마의 촉수가 달려들었다.
소의 넓적다리만 한 촉수도 빛에 다가오면 그대로 불타 버렸다.
악마는 그 빛에 가까이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
빛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소리가 사라졌다.
악마의 비명 소리도, 내 귓가를 울리던 심장 박동 소리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계가 펼쳐졌다.
인지할 수 있었다.
전설 속에나 등장하던 바로 그 기술을 자신이 재현해 내었음을.
한 번 휘둘러 왕국을 지켜 내었다.
두 번 휘둘러 대륙을 수호했다.
생에 마지막에 세 번째로 휘두른 검은 신의 감탄마저 자아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이 되어 버린 검사의 기술.
광검.
광명된 빛이여.
나를 태우소서.
그리하여 모든 것이 태초의 빛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 * *
“성하.”
노인은 자신을 부르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방 안에 가득하였다.
“잠깐 졸았는가.”
잠시 생각해 보던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보고 느낀 것은 꿈이 아니었다.
“신탁이 내려왔다.”
대주교들은 놀라서 자리에 일어났다.
급히 성호를 그으며 신탁의 내용을 들을 준비를 했다.
노인은 감격에 겨워하며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주교들에게 전했다.
“신께서 만족하셨다.”
교황의 말은 대륙 모든 주교들에게 전해졌다.
대륙적인 축제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려온 빛의 신의 신탁.
‘서쪽에 귀한 것이 있으니 파내라.’
전례 없이 단순 명료했던 이 신탁은 서대륙의 많은 것을 뒤바꾸어 놓았다.
장정들이 던전으로 향하면서 영지 내 인구 비율이 무너져 경제난이 시작되었다.
경제난은 곧 식량난으로 이어졌다.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 수많은 고아와 거지들이 탄생했다.
무너진 도시에는 시민들이 아니라 모험가들이 채워졌고.
그런 도시들은 슬럼화되었다.
모험가들은 꿈을 잃어버리고 도적이 되었다.
모험가 도시는 도적들의 거점 도시가 되었다.
도시 규모로 활동을 시작한 도적들은 거대한 세력을 형성해, 서대륙을 무법 지대로 만들어 버렸다.
서대륙 어느 왕국의 이야기다.
신탁이 내려진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신탁을 포기하지 못한 왕국이 있었다.
왕국의 주요 도시들이 폐허가 되어 버렸기에, 신탁이 언급한 보물에 목을 매고있던 왕국이.
어느 던전에 파견되었던 기사단이 통째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왕은 기사단이 변절해 보물을 가지고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그 던전을 향해 병력을 급파했다.
병사들은 도망친 기사들을 찾지 못했다.
대신에 던전 잔해 속에서 기사들의 시체를 찾을 수 있었다.
강력한 지열로 군화 바닥마저 녹아내리던 무너진 던전의 잔해 속에서, 돌무더기에 묻혀 죽어 가고 있던 기사를 발견해 내었다.
* * *
“아르한 경.”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또 창문 너머로 황족분들을 훔쳐보고 계시는군요. 그러지 마세요. 혹시 들키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그저 미소 짓고 말았다.
창문 너머로는 황족들의 정원이 보였다.
아직 어린 황족들이 뛰놀고 있었다.
“저는 잠깐 나갔다 올게요.”
간병인 톰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갇힌 지도 수십 년이 흘렀다.
던전에서 기절한 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왕국에 있었다.
온몸이 포박된 채로
왕께서는 내게 사과하셨다.
공을 치하해야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이해하라 하셨다.
나는 이해했다.
도플갱어가 등장한 현장의 마지막 생존자다.
도플갱어를 처치한 영웅임에도 자유를 보장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나는 내가 감옥에 갇혀 죽든 조용히 처형당할 거라 생각했다.
상관없었다.
이미 버렸던 목숨이었다.
오히려 잠시 잠깐 덤으로 시간을 얻어, 왕궁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는 것에 감사했다.
그런 내게 왕께서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제국으로 이송될 거라는 이야기를.
황제와 교황이 수호하는 땅으로.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입에는 구속구가 물려져 질문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제국 황도의 이름 없는 탑으로 이송되었고, 유폐되었다.
탑에서 나갈 수 있는 자유도, 감시인 없이 침대와 의자를 벗어날 자유도, 심지어 대화할 수 없는 자유도 없었다.
나는 그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제국은 나를 잊어버렸다.
감시인은 간병인이 되었고, 탑 밖으로 나가 보아도 막아서는 경비병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탑에 가두었다.
입에는 더 이상 구속구가 달려 있지 않았지만, 나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게 되었다.
한때 악마를 이겨 내었고, 살아남았다는 승리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악마에 대한 공포는 날이 가면 갈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커져만갔다.
함부로 입을 열었다가 그날의 어둠이 다시 찾아오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혹시라도 악마가 자신의 몸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둡구나.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힘마저 잃어버리고, 이제 너무나 무력해졌다.
하나 남은 불씨마저 꺼져 버렸다.
팔다리는 하나씩 잘려 있고, 왼손은 손목 위부터 잘려 있었다.
한쪽 다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병신.
창문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날의 불꽃을 기억했다.
이따금 생각한다.
광검이라는 기술은, 정말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경지일까.
신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걸까.
다른 검호들에게 내 경험을 전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다 포기하고, 정말 죽을 생각으로 시도해 보라고.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으니.
생각에서 그쳤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해하지도 못한 경지를 남에게 가르칠 수는 없었다.
창문 밖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뛰노는 황족들의 목소리였다.
오랜 상념은 다시 잊어버리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천진한 순수함이 있었다.
물론 황족들이니만큼, 저 나이 때의 다른 아이들보다는 세상의 지저분함에 익숙해진 아이들이겠지만.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었고.
애들은 예쁜 법이다.
“그거 아세요?”
톰이 물어보았다.
아까 나갔다 온다고 그러더니.
어느새 돌아온 걸까.
“우리 기사단에 새로운 기사님이 오신대요!”
톰은 설렘과 흥분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저 나이 대의 소년들이 기사에 갖는 로망을 알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기사단에 신입 기사가 온다니.
나는 크논 기사단에 속해 있었다.
물론 소속 기사는 나뿐이고.
탑에 유폐되며 받은 명예직 같은 것이었다.
“이름은 크롬웰 경이래요!”
크롬웰.
톰에게 공부 좀 하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크롬웰은 제국의 성이다.
평민 혹은 서자 출신의 기사에게 붙여지는 성씨.
그런 기사가 이런 곳으로 오게 되다니.
무슨 사연일고.
안타까웠다.
명예와 명성에 죽고 사는 기사라는 족속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렇기에 유배지나 다름없는 이 기사단에 배속되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사회적인 죽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톰.”
“네!”
톰은 활기찼다.
“새로운 기사가 온다니, 환영을 해 주어야겠구나. 다과라도 좀 준비해 보거라.”
“네! 준비해 둘게요!”
톰은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소란스럽기는.
나는 잠시 의자에 머리를 기대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못 보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눈 밑이 벌게진 여자아이.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마침 등 뒤의 창문에서 햇살이 쏟아졌다.
구름이 가리고 있던 노을빛이 방 안을 비추었다.
회색빛처럼 창백해 보이던 여자아이의 얼굴도 조금이나마 생기를 되찾았다.
“…세레지아 크롬웰. 오늘부로 크논 기사단에 배정받았습니다. 기사단장님의 후임 기사로 배정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서 오게. 나도 귀관과 같은 기사를 후임으로 맞게 되어 영광이네.”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참 여기사 뒤로 쟁반을 들고 부지런히 오고 있는 톰이 보였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구나.
톰은 내가 부탁한 일을 잘 수행해 내었다.
쟁반 위로 달콤한 쿠키와 따뜻하게 데운 우유가 준비되어 있었다.
“세레지아 경.”
“예.”
“혹시 과자는 좋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