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SS 402
튜토리얼이 너무 어렵다 외전-23화(402/432)
외전 23화
호치 (2)
“호멘.”
“호멘.”
서로 합장하며 기도했다.
호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짝퉁 기도 인사는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무심결에 시작했던 것인데, 이제는 이호재교의 전통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제대로 된 단어를 찾아볼 걸 그랬다.
“이제 들어가게?”
김민혁이 물어보았다.
호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이호재교 창교 1주년 행사였다.
한국의 중심 도시이자 수도였던 서울은 이제 이호재교의 성지로 인식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교민들이 몰려왔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좁게 느껴질 정도의 인파였다.
축제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이호재교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교인이라면 축제에 참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참가하지 않고 생업에 종사했다가는 신앙도 점수가 깎일 수도 있었다.
축제는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불꽃놀이가 사실상 축제의 마지막 행사였다.
사진도 다 찍었고,
만날 사람도 다 만났다.
호치는 뒷일을 김민혁에게 맡기고 신전으로 돌아갔다.
“호치 님, 안녕하세요? 호멘.”
“호멘”
신전 안에서 마주치는 교인들도 있었다.
이호재교의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직 신도들도 있었고, 숙식을 신전에서 해결하며 상시 거주하고 있는 신도들도 있었다.
신전의 분위기는 활기찼다.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호치는 자랑스러웠다.
자신이 만들어 낸 종교 시스템이.
모든 사람이 도덕적 가치를 우선에 두고, 준법적으로 행동하게끔 만들었다.
더 많이 화합하라.
더 선해져라.
더 신실해져라.
그것을, 처벌을 통한 강요가 아니라 사람들이 열망하는 보상을 통해 이루어 냈다는 점도 자랑스러웠다.
호치는 사람이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악해질 기회를 조금 더 쉽게 선택했다.
불법을 저지르면 법에 의한 심판을 받는다.
하지만 법에 접촉되지 않는 선에서 혹은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악해질 수 있었다.
반대급부가 없었다.
대신 악행을 통한 보상만이 존재했다.
반대로 선행에 대한 보상은 사라져 갔다.
남을 돕기 위해 참견하는 것은 오지랖이 되었고,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뿐이었다.
경쟁 사회가 되어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생계가 어려워질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졌다.
이호재를 보아도 그랬다.
경쟁에 미친 놈이었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했다.
호치는 알고 있었다.
오직 호치만 알고 있었다.
이호재가 어디까지 승패에 미쳐 있었는지.
이 철저한 미친놈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치밀함과 치졸함을 들키지도 않았다.
나쁜 놈이 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다음번에는 같은 방법을 못 써먹을까봐 자신의 행동을 감춘 것이었다.
그 대가로 이호재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종에서 정점에 올라섰고.
또 정점에서 은퇴할 수 있었다.
호치는 이호재의 그런 면이 싫었다.
이호재교의 종교 시스템은 그 소유주라고 할 수 있는 이호재의 성향과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이 더 느긋하고 평화로워지도록 유도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강박 없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갔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종교가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가족을 책임져 줄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선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선행은 종교 포인트라는 실리적인 이득과 정서적인 만족감 모두를 충족시켜 주었다.
세상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적어도 호치의 관점에서는 그러했다.
* * *
호치는 소파에 반쯤 누워 있는 할멈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할멈은 교단 축제를 위해 지구에 거하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철 거리에서 진행된 축제 기간 동안 사람들이 더위를 먹어 쓰러지지 않도록 온도를 조절해 주고 있었다.
신전 휴게실 소파에 누운 채로.
호치는 그런 할멈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본래라면 이호재에게 물어보았어야 하지만, 이호재가 질서의 신을 때려잡으러 가 버린 지금 마땅히 상담할 사람이 없었다.
“할멈은 어떻게 생각해?”
“네가 애 같다고 생각한다.”
호치는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봐라, 애 같은 반응이지 않으냐.”
할멈은 호호, 웃으며 말했다.
호치는 전혀 웃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뭐가 애 같은 건데.”
“애처럼 귀여운 것이.”
할멈은 자신이 말해 놓고도 웃겼는지, 조금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호치의 표정은 갈수록 안 좋아졌다.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게 맞지 않으냐.”
“아닌데.”
할멈은 또 웃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진짜라니까!”
호치가 소리쳤지만, 할멈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예 목을 젖히고 껄껄, 웃기 시작했다.
호치는 억울함이 치밀어 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좀 생각나고 신경 쓰이는 거야.”
“그래, 그러시겠지.”
할멈은 계속 웃으며 놀리기만 했다.
호치가 그냥 방을 나가 버릴까 고민할 때쯤 할멈이 비로소 웃음을 멈추었다.
“어떤 점이 그렇게 신경 쓰이니.”
“그냥 뭐….”
복잡했다.
과거, 이연희에게서 느꼈던 질투와 부러움, 열등감.
미안함과 애잔함, 죄책감.
한 가지를 꼽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공통점도 있었다.
같은 목적을 위해 이호재에 의해 키워졌다는 것.
“그 정도면 관심이 가기에 충분하구나.”
할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자주 가서 이야기해 보거라. 대화하다 보면 언젠가 너도 네 감정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겠지. 61층에 갇혀 있는 그 여자아이에게는 대화가 절실할 것이다.”
이연희를 위해서라도 자주 대화를 해보라.
호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확하고 현명한 조언이었다.
“그나저나 말이다.”
할멈이 운을 띄웠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너는 왜 왕을 원망하지 않는 거냐.”
할멈이 말하는 왕은 이호재를 뜻했다.
호치는 그 질문에 명쾌히 대답해 줄 수 있었다.
“원망해. 아직도.”
“그런가.”
호치의 신체는, 이론상 61층에서 분신을 만들어 내던 그 당시의 이호재의 신체와 동일하다.
두뇌의 기능도 그랬다.
61층에서 호치가 겪었던 일들을 호치는 망각하지 않았다.
그 경험들을 망각하기에는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았다.
하지만 호치는 때때로 그 일들을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들이었다.
이호재에게서 사과를 받고, 그와 가족이 된 지금도 그랬다.
이호재는 처음부터 자신에게 부당함을 강요했다.
분신인 자신이 61층 클리어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61층에서 낙오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당연히 호치는 저항했다.
아주 격렬하게.
이호재의 뜻대로 되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맞섰다.
그 마음가짐이 꺾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호재는 천부적인 싸움꾼이었다.
심지어 경험 많은 고문 기술자이기도 했다.
이호재는 호치를 성장시키려 했다.
61층의 끝까지 혼자 나아갈 수 있을 만큼.
혹은 튜토리얼의 도전자로 인정받을 만큼.
그 성장 과정 또한 고문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호치는 이호재와 달랐다.
같은 것을 보아도 똑같이 익힐 수 없었다.
이호재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호치가 61층 클리어를 방해하기 위해 억지로 성장 속도를 늦춘다고 생각했다.
‘강해져! 강해지지 못하면 죽는다! 네가 61층에서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네가 부족하면 61층에 집어넣기 전에 내가 죽일 거다.’
그리고 죽인 다음에 다시 만들 거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호치는 몸서리쳐야 했다.
몸이 힘들고 고되었다기보다는 정신이 무섭고, 공포스러웠던 나날이었다.
결국 호치는 61층을 클리어하지 못했다.
강해지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호치는 61층의 도전자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호치는 이호재가 쓸모없어진 자신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61층 폐허 속에 몸을 숨겼다.
금방 들킬 것이 뻔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고 싶었다.
몇 분이라도, 몇 시간이라도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하루가 지나고, 한 주가, 한 달이 지났다.
그제야 호치는 깨달았다.
이호재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증오하지도 않는다.
놀랍게도.
호치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괴롭혔던 건, 정말 순수하게 호치를 강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 악독한 행동 속에 아무런 악감정이 없었다는 것이 기가 막혔다.
분신을 이용하는 방법을 포기한 이호재는, 호치 대신에 다시 자기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있었나?”
“용서는 무슨.”
호치는 용서하지 않았다.
용서하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 당시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상, 완전히 이호재를 용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호재도 스스로 죄책감을 벗어 던지지 못할 것이다.
“용서했다기보다는 이해한 거지.”
“이해?”
“원래 그런 놈이라는 걸.”
이호재는 타인보다 자기 자신을 다그치는 성격이었다.
어쩌면 그 독한 성정을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호재 본인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그 희생정신은 참 불가사의했다.
안락한 생활에 대한 욕심이나 만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태함과 느긋함을 정신적으로 거세해 버린 인간 같았다.
“스스로도 죽인 것이겠지. 자기의 약한 면을. 너에게 그랬던 것처럼.”
할멈이 말했다.
호치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인간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강박적으로 태어나겠는가.
스스로 자신의 약한 면을 쳐낸 것이다.
호치도 알고 있었다.
이호재는 호치가 빈둥거리고, 게으름 피우며 노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짜증을 내었고, 핀잔을 주었다.
가끔 화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호치는 이호재의 질투를 느낄수 있었다.
이호재는 호치의 게으름을 부러워할지언정 제지하지 않았다.
물론 61층 공략을 포기한 이후의 이야기다.
이호재는 호치의 취미 생활을 위해 소설을 써 주고는 했다.
이호재 본인도 자신이 쓴 소설을 읽으며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대신 호치가 소설을 읽으며 재밌어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간접적인 대리 만족이었다.
그게 그렇게 재밌냐며 틱틱거렸지만.
호치가 소설을 거의 다 읽어 갈 때면 새로운 소설을 필사해 주고는 했다.
호치는 이호재가 지금 뭐 하고 있을지 떠올려 보았다.
상상이 가지 않았다.
초월 신에 근접한 질서의 신을 때려잡겠다며 사라졌는데.
아직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질서의 신이 초월 신이 되어 세상이 멸망하지도 않았다.
얼마나 또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 * *
교단의 축제가 마무리되었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호치는 비로소 조금 한가해졌다.
끝이 없어 보이던 업무에서 벗어나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있는 호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호재를 걱정하고 있는 건 자신만이 아니었음을.
“삼촌!”
용용이가 자신을 불렀다.
눈을 부릅뜨고 작은 손을 꼭 쥐고서.
결의에 찬 목소리로.
결연해 보이기보다는 마냥 귀여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어… 어.”
호치는 당황했다.
용용이의 복장 때문이었다.
용용이는 평소 동화적이고 소녀적인 옷을 즐겨 입었다.
하지만 지금 용용이가 입고 있는 옷은 누가 보아도 전투복이었다.
군복 비슷한 복장이 묘하게 귀여웠지만.
어쨌든 그랬다.
“나는 아빠를 찾으러 갈 거야!”
호치는 더 당황하게 되었다.
어떻게? 어디로? 무슨 수로?
여러 의문이 호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니까 삼촌도 같이 가자!”